누구에게나 잊을 수 없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목회자에게 예배당 건축은 분명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푸른초장교회는 교회 개척 12년 만에 예배당을 처음으로 신축하고 작년 12월 20일에 입당했다. 성도수가 열 명 정도였던 IMF 시절에는 주암산기도원에서 주일예배를 1년간 드리기도 했다. 상가를 빌려 예배를 드리다가 상가가 부도가 나서 기도원에서 자리를 깔고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상가 옥상에 가건물로 지은 사택도 항공사진에 찍혀 강제철거를 당하기도 했다. 그 때는 목회가 고단했다. 내일을 설계할 당찬 기백도 없었다.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더 쌀쌀하게 느껴졌고 신학교에서 배운 교회론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임종구 목사는 12년 전 대구에서 푸른초장교회를 개척해 섬겨오다가 새 성전을 신축하고 작년 12월 20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입당 후에는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해 금호강, 낙동강, 달성습지의 자연보호 활동과 궁산 등산로 청소, 지역거리 청소, 환경미화원 초청 위로회 등의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 푸른초장교회
임종구 목사는 12년 전 대구에서 푸른초장교회를 개척해 섬겨오다가 새 성전을 신축하고 작년 12월 20일 입당예배를 드렸다. 입당 후에는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해 금호강, 낙동강, 달성습지의 자연보호 활동과 궁산 등산로 청소, 지역거리 청소, 환경미화원 초청 위로회 등의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 푸른초장교회
1999년 40기 CAL 세미나가 기백을 잃은 젊은 목회자 한명을 정신 차리게 만들어 주었다. 내게 목회적 상황도 좋지 않았지만 나이가 젊은 것 하나 빼놓고는 희망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제1기 제자훈련이 시작되었는데 4명의 훈련생들이 하나같이 은혜를 받고 변화되었다. 그리고 2000년 1월에 대구 동구 방촌동에서 달서구 성서로 교회가 이전하게 된다. 10명의 성도가 겁도 없이 2억대의 아파트 중심상가를 분양받았다. 목회 필살기가 제자훈련이 전부였지만 제자훈련은 교회를 건강하게 성장시켜 주었다.

교회가 10주년을 맞았을 때 200명 정도의 성도들이 모였다. 믿어지지 않았다. 서울에는 분당과 천당이 있다고 하는데 여기는 대구가 아닌가. 대구에서 상가교회가 200명 모이는 것은 결코 상식적인 성장이 아니다. 그 은혜가 너무도 고마워서 하나님께 어떤 식으로든지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단독선교사 파송과 안동에 5억 원을 들여 예배당을 짓고 부목사님을 파송해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영남 지역에는 복음화율이 5%에 머문 곳이 유교도시 안동과 불교도시 경주이다. 선교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전략적 접근 지역인 것이다. 제자훈련을 목회철학으로 삼고 목회하는 교회가 다 비슷한 정신을 가졌겠지만 우리 역시 건물보다는 공동체를 중요시했고 사람들을 세우는 일에 목회의 역량을 기울였다. 그래서 정작에 본 교회의 예배당을 짓는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고 기도조차도 한 적이 없었다. 또 교회가 위치가 곳이 대학 중심가에 대학병원이 지어지고 있어서 교회가 건축부지를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했다.

그런데 좋은 건축부지가 나오게 되었다. 금호강변 10차선 대로변의 땅이 나온 것이다. 경관은 대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손색이 없고 지하철에서는 5분 거리의 땅이었다. 그러나 그 땅은 지주가 6명에 9개 문중이 주인으로 있는 250년 된 서당의 땅도 있었다. 그리고 부지 안에는 마을 당산나무와 제실까지 있었다. 현실적으로 이 모든 땅을 사들이고 건축까지 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부지 바로 옆에는 신축 아파트가 입주를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이미 하나님이 다 준비해 놓으셨고 우리는 즐겁게 하나님의 행하심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 무렵 필자가 쓴 글이 있다.

2006.12.10

며칠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나 싶을 때가 있다.
매일 낮에는 교회탐방을 다니고 밤에는 꿈속에서 교회를 지었다, 허물었다 한다.
미술도, 건축도, 설계도 모르면서 다이어리는 이미 절반이 교회 스케치다.
'하나님이 사실 집'
교회당이 너무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공간, 사람, 하나님
이런 컨셉들이 연결되면서 내가 지금 하나님이 사실 집, 하나님이 사람들을 만나실 공간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휠체어를 타고 목발을 짚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지친 사람들이 들어오고, 어린이와 외국인형제들이 들어오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청소년, 청년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리고 오르간과 악기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우리세대가 다음세대에 물려줄 하나님의 집을 짓는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조선중엽 30명의 선비들이 쌀가마니를 모아서 서당을 세운 땅에 또다시 하나님의 사람들이 교회당을 세운다.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산을 보며 강을 보며 기도하라신다.
이곳에 하나님의 집을 지으라신다.
금호강, 낙동강을 배를 타고 어린 학생들이 서당으로 글공부를 하러 모이던 이곳에 이제는 젊은이들이 지하철을 타고, 자전거를 타고 모여든다.
참으로 가슴 벅찬 일이다.
잠이 오지 않을 일이다.

2007.2.9

낙동강 모래밭에 내려앉는 기러기
금호강의 밤비
파산의 가을달
포구로 돌아오는 돛단배...
이락서당(伊洛書堂) 16경(景)을 노래한 17편의 시가 남아있다.
너무 좋은 땅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이 성전을 위해 내 몸과 생을 드릴지라도
세상에서 천날을 사는 것보다 아버지집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습니다.
잘 지을 수 있도록 하나님 도와주세요.

2007.5.11

어느덧 오월입니다.
새벽기도 나올 때 머리가 혼미할 정도로 진한 아카시아의 향을 맡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아카시아의 향이 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그러하시겠지만
날마다 성전이 지어질 미라클의 땅을 바라봅니다.
이제 제법 녹음이 짙어졌습니다.
교회 옆에 들어설 아파트는 서둘러 토목공사를 마무리 짓고 있습니다.
굴삭기가 등산로가 들어설 땅을 파고 산쪽으로 콘트리트 옹벽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미라클의 땅은 그냥 있습니다.
그 땅의 지번과 지형이 어지러운 만큼이나 그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도 참으로 복잡하더군요....
희망을 이야기하는 구청직원은 없지만...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건축설계사, 토목설계사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우리 편이라고 외치며 나아갑니다.
수없이 서류를 챙깁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수많은 서류가 요구됩니다.
등본과 초본, 인감, 재직증명서....
이런 서류들을 갖추어 제출하면서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서류는 과연 다 갖추었는가?

2007.10.31

내 옷을 다 팔아 땅 한평을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 젊은놈의 열정도 돈으로 쳐준다면 오늘 조금의 주저도 없이 드리리이다
내 서재의 책들이 벽돌로 바뀐다면 당신의 몸을 쌓는 일에 바치리이다
고통스럽게 물들어가는 저녁
홀로 힘겹게 강을 건너가는 새와
맥 없이 휩쓸려가는 낙엽들
오늘은
오늘은
이 작은 가슴이 터져버려서 나의 기도는 파열음이 되고...
이목숨
이목숨
이 작음 몸은 당신의 제단에 퍼덕이는 관제의 제물이 되고...
오늘 저녁제단에
부디
이 작은 소년을 가납하소서.

 
ⓒ 푸른초장교회
ⓒ 푸른초장교회

250여 명의 성도들이 50억 이상의 재정을 감당해야 했다. 건축을 총지휘하시던 집사님이 돌연사로 돌아가셨다. 매일매일 민원과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하루는 주일 저녁에 집에 돌아와 식사를 마치고서 너무 피곤하여 식사 자리에서 졸게 되었다. 보다 못한 아내가 "여보, 그렇게 피곤하면 안방에 들어가서 주무세요"라고 했다. 그런데 얼마나 건축에 신경을 쏟았던지 "여보, 본당에 이불 깔아요"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예배당 건축을 처음 결정하고 난지 2년 만에 우리는 무사히 입당을 하게 되었다. 물론 수많은 성도들이 눈물과 희생이 있었음을 분명히 적고 싶다. 12월 20일 입당을 하고나서 다음날 주일아침 함박눈이 내렸다. 새벽부터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참으로 감회가 새로웠다. 입당 이후에 느끼는 행복감은 성도들의 얼굴에서부터 나타났다. 지난 12년간 상가교회에서 고생했으니 새로운 예배당은 성도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교회는 더욱 활기를 띠게 되었고 우리는 새로운 비전을 품고 꿈도 조금 더 크게 가지게 되었다.

우리 교회는 3월부터 지역 사회를 섬기는 40일 캠페인을 진행하려 하고 있다. 금호강, 낙동강, 달성습지 자연보호 활동과 궁산 등산로 청소, 지역거리 청소, 환경미화원 초청 위로회, 노인정 방문 영정사진 봉사 등 많은 봉사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 사회에 구체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지역을 섬기고 봉사하는 교회로서 이미지를 다지려고 한다. 건축 기간 중에 걱정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선배, 동료 목사님들께 이 지면을 빌어 인사를 하고 싶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했다고 정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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