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희 저, 다우출판사, 2004-12, 132쪽, 6000원
오늘날의 시대는 경쟁의 시대이다. 세계화니 국제화니 하는 말들이 듣기에 그럴 듯해도 실제로는 전 세계가 무한경쟁에 돌입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경쟁을 통한 생존의 시대에 접어들면 경쟁에 취약한 계층은 설 자리가 없어지게 된다. 비록 정부나 민간 차원의 다양한 사회안전망을 통해 취약계층의 위기를 완충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지만 역부족인 것이 현실이다.

요한복음 5장에는 38년 동안 중풍으로 인해 거동할 수 없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끔 천사가 베데스다 연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이때 먼저 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중풍병자의 경우는 38년 동안 병을 앓는 동안 가족도, 친구도 다 떠나버렸는지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못의 물이 움직이기 시작하지만 꼼짝할 수 없는 그를 베데스다 못에 재빠르게 넣어줄 누구도 없는 것이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는 예수의 물음에 그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는 말로 자신의 답답한 현실을 호소하고 있다. 이 말을 하고 있는 중풍병자의 절망감은 오늘 날 무한경쟁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동일하게 발견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그리고는 그를 일어나게 하신다. 바로 이것이 복음이요, 기쁜 소식인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는 경쟁 사회에 뒤처지는 사람들에게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난과 장애와 질병 등으로 인해, 혹은 사회 변동 속에서 본인의 의사나 능력과 상관없이 실업자가 되고, 경쟁 사회에 진입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한국 교회는 어떻게 찾아 나설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고민에 대해 하나의 현실적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 있다. 바로 기부정보가이드 대표인 정선희씨가 기부 문화 확산을 위해 기획한 소책자 시리즈인 ‘기부정보가이드의 도토리 시리즈’의 첫 권, “이익을 만들고 행복을 나누는 사회적 기업”이란 책이다. ‘사회적 기업’이란 ‘사회적 목적’을 가진 기업으로,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목적이란, 직업 훈련이나 일자리 창출, 사회 복귀를 위한 서비스 제공, 비영리 조직의 서비스를 위한 자원 창출 등 다양하다. 이러한 목적은 기업의 이익이 사회적 이익으로 전환될 수 있는 효과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정선희 대표는 정상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사회 취약 계층이 평생 남의 도움에 의지해 살아가기 보다는 경제적 자립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성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사회적 기업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이 책을 쓴 목적을 이야기한다. 책의 서두에서 12세기 중세의 최고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가 한 말을 소개하고 있다. “최고의 자선은 상대방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더는 남에게 기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즉, 최고의 자선은 낚싯대를 주고 물고기 낚는 법을 가르쳐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저자는 이것이 사회적 기업의 정신이라고 말한다. 이윤 추구에 가장 효과적인 유능한 사람, 즉 소위 경쟁력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기업은 정상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사회의 취약 계층(장애인, 노숙자, 저소득층, 소외계층 등)이 평생 도움만 받고 살기보다는 경제적 자립을 통해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주체가 되게 하고자 노력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노력 끝에 일정한 성취를 이루어 나가고 있는 사회적 기업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한국에 비해 오랜 역사 속에서 시행착오를 경험한 미국의 사회적 기업들의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 사회적 도전을 어떻게 대응해 나갔는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약물 중독자 사업장과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이룬 대기업 ‘파이어니어 휴먼 서비시즈’, 노숙 청소년의 잠재된 가능성을 활용한 ‘쥬마 벤처스’, 그리고 비행 청소년들을 IT 일꾼으로 변화시킨 ‘홈보이즈 인터랙티브’, 장애인들과 노숙자들에게 자립의 기회를 제공한 ‘루비콘과 스쿠쿰’ 등 14개의 사회적 기업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고, 또한 2개의 실패 사례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130페이지 남짓한 작은 책이지만 새로운 희망을 소개하는 큰 책이기도 하다.
사실 사회적 기업은 성공하기가 매우 힘들다. 사회적 기업의 구성원들이 아직 기업과 같이 경쟁력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사회적 기업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국내의 사회적 여건이 아직 너무나 미흡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국 교회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소비 권리’는 시민들이 갖고 있는 최고의 권리 중 하나이다. 소비자는 자신의 소비 행태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이것을 ‘사회적 가치 소비’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유사한 수준의 상품이라면 소비자 입장에서 사회적으로 가치와 목적을 지닌 기업의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소비 권리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이 신앙서적은 아니지만 ‘사회적 가치 소비’에 대해 한국 교회가 관심을 가지고 사회적 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일에 일조를 하게 된다면 이 또한 복음의 역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한국 교회가 경쟁 사회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데 가로등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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