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복음주의 지성 제임스 패커James Packer 목사를 이제는 캐나다 성공회 목사로 부르는 대신 남미 성공회 목사로 불러야 할 것 같다.  제임스 패커 목사가 명예 협동 목사로 있는 밴쿠버 쇼네시 세인트 존스 교회가 캐나다성공회에서 남미의 서던 콘Southern Cone 관구(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파라과이 페루 우루과이 교구로 구성되어 있는 남아메리카 지역 성공회 관구. 관구장은 그레고리 제임스 베너블즈 대주교.)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세인트 존스 교회는 지난 2월 13일 투표로 캐나다 성공회 뉴 웨스트민스터 교구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뉴 웨스트민스터 교구에서 이탈해 서던 콘 성공회 관할권으로 옮긴 교회는 세인트 존스 교회 외에도 3개 교회가 더 있다.

제임스 패커 목사를 비롯한 “이탈” 교회 성직자 11명(사제 9명, 부제 2명)은 지난 4월 정식으로 뉴 웨스트민스터 교구 성직자 면허를 반납했다.

캐나다 성공회 최대 교회인 세인트 존스 교회를 비롯한 4개 교회가 이 교단을 떠난 직접적인 이유는 동성 결합 축복을 지지한 뉴 웨스트민스터 교구장 마이클 잉햄 주교 때문이다.

교구 이적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 들어가기 직전에 밴쿠버의 한 지역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제임스 패커 목사는 “우리 교회 성도들은 동성 결합을 교회가 축복하는 것은 복음에 위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적 결정에 다들 동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우리에게도 친숙한, 기독교 변증가 오스 기니스Os Guinness도 2006년 12월에 미국성공회를 떠났다. 동성애자 주교 서품을 강행한 교단에서는 신앙을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국 성공회는 동성애 파트너가 있다고 공개한 진 로빈슨을 지난 2003년 주교로 서품했고, 캐나다 성공회는 동성 커플의 “결혼”을 축복하는 성직자들을 막지 않고 있다.

이 두 진보적 관구 때문에 세계 성공회가 심각한 분열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이 위기 상황은 7월 21일 개회한 램버스회의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 램버스회의에 모인 세계성공회 주교들. 앞줄 가운데가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다.  ⓒ Lambeth Conference

세계 성공회 “일치의 장”이라 불리는 램버스회의 개회했지만

세계 성공회의 상징적 수장인 캔터베리 대주교의 주재로 10년에 한 번 열리는 성공회 최대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램버스회의 개회식 풍경을 전한 <뉴욕 타임스> 기자의 눈에 비친 로완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램버스회의Lambeth Conference와 캔터베리 대주교는, 관구장회의Primates’ Meeting와 세계성공회협의회Anglican Consultative Council와 더불어 세계 성공회를 하나의 공회로 묶는 4대 “일치의 도구”instrument of Communion로 불린다.

그런데 이번 14차 램버스회의와 이를 주재한 캔터베리 대주교의 권위는 “일치의 도구”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게 됐다.

7월 21일 주일, 고색창연한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열린 개회식에 입장한 주교는 650명. 전 세계 38개 성공회 관구 주교는 모두 880명. 1/4이 넘는 주교가 10년에 한번 찾아오는 기회인 램버스회의에 불참한 것이다. 불참 주교들 가운데, 일부는 캔터베리 대주교가 아예 초청을 하지 않았고, 또 일부는 스스로 보이콧했다. 윌리엄스 대주교가 초청자 명단에서 뺀 주교는 세계 성공회에 위기를 몰고 온 장본인인 진 로빈슨 주교와, 이 동성애자 주교를 주교로 인정할 수 없다며 미국 성공회를 이탈해 “불법” 단체를 조직한 일부 보수적 주교들이다.

나이지리아, 우간다, 케냐, 르완다, 서던 콘 관구장들과 이 관구들에 속해 있는 주교들, 그리고 호주 성공회 시드니 교구 주교들은 진 로빈슨 주교와 그를 주교로 서품한 미국 성공회의 주교들과 친교를 유지할 수 없다며 이번 램버스회의를 보이콧했다. 그리고 미국 성공회 일부 주교들은 진 로빈슨을 초청하지 않은 캔터베리 대주교에 대한 항의 표시로 이번 회의에 불참했다.

이번 램버스회의는 주교들의 낮은 참석률이나 보이콧으로 큰 상처를 입었지만, 더 큰 상처는 이미 한 달 전에 입었다. 지난 6월 예루살렘에서 세계성공회미래회의Global Anglican Future Conference가 열렸다. 세계 성공회 주교들을 비롯한 성직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까지 초청한 이 대회를 주관한 세력은 미국 성공회를 비롯한 진보적인 서구 관구들에 대항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남미, 아시아 관구들이 주축이 됐다. 일각에서 이 대회를 “대안 램버스회의”라고 부른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6월 세계성공회미래회의는 세계 성공회의 신학적 위기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램버스회의와 캔터베리 대주교의 능력과 역할, 권위에 문제를 제기했다.


▲▲ 램버스회의를 보이콧한 나이지리아, 우간다, 케냐, 르완다, 서던 콘 관구장들을 포함한 전세계 보수적 성공회 주교들과 성직자들이 2008년 6월 22일 예루살렘에 모였다. ⓒ Global Anglican Future Conference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지도력과 권위 실추

캔터베리 대주교와 그가 주재하는 램버스회의가 명실상부한 “일치의 도구”로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는 세계 성공회 보수 진영의 분위기는 우간다 성공회의 다음과 같은 판단과 입장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세계 성공회는 깊은 상처를 입었다. 2003년 미국 성공회가 현재 동성애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을 주교로 서품하여 세계 성공회를 찢어놓았다. 이 결정과 행동을 회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그들은 비성경적인 가르침과 실천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 성공회 주교들과 많은 성직자들이 동성 결합식의 주례를 서고 있다. 이 교회의 대주교는 ‘나는 길이요 진리로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수 없다’는 성경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이다. 미국 성공회의 또 어떤 주교는 “교회가 성경을 썼다. 그러니 교회가 성경을 다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들이 주교가 되고 교회 지도자가 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러면서도 교회가 그들을 징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과의 교제 단절을 계속 이어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러한 신학적 부패에 관용할 수 없다.

세계 성공회의 위기는 동성애 문제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권위와 관련되어 있다. 동성애는 현안일 뿐이다. 세계 성공회의 4대 일치 기구인 캔터베리 대주교, 램버스회의, 관구장회의, 성공회협의회 모두 동성애 관계를 인정하는 미국 교회에 반대했다. 그러나 미국 성공회는 공공연하게 그러한 결의들을 거부했고 어떤 징계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이것은 세계 성공회 내부의 권위의 위기이다. 더구나, 이 심각한 위기 상황을 인정하고 해결할 능력의 명백한 부재, 신앙과 도덕적 생활의 궁극적 기준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한 확신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보수적인 성공회 주교들의 이 같은 거센 요구에도 불구하고, 8월 3일 폐회하는 14차 램버스회의는 미국 성공회에 대한 구체적인 징계나 동성애는 복음과 합치할 수 없다는 세계 성공회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거나 하는 결정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은 채 끝날 가능성이 높다. 보수와 진보, 양쪽의 벌어진 간극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 보이는 이때, 세계 성공회가 복음의 진정성을 어덯게 지켜낼지 앞으로의 움직임에 귀추가 주목된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