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에 있어서 정치는 피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두 사람 이상이 모이면 권력관계가 발생하고 정치적 현상이 나타납니다. 많은 경우 정치는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이익을 받는 사람과 손해를 받는 사람, 승자와 패자가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정치를 통해 이익을 얻기 위해 무리한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현상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하지만 정치는 다수의 사람들이 하나의 사회(community)를 이루고 사는 과정에서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진 계약과 같은 것으로서 사회생활에서 필수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성경에서 정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성경에 나타난 리더십은 어떤 리더십이고, 미래의 리더십은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우리가 정치적 현상 속에서 살아갈 때 기독교인으로서 어떤 관점에서 정치와 리더십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하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I. 정치의 근원: 성경에서 정치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정치는 여러 사람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을 때 보다 많은 사람의 공공선을 위해서 만들어진 문제해결 방식입니다. 정치는 또한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공동체에서 더불어 사는 삶에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류의 창조물입니다.

1. 성경에서 정치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말씀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생물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권리를 준 것이기에 엄밀한 의미의 정치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정치의 기본원리인 지배의 권리는 인간이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인(代理人)으로서 지구상의 생물과 인간들을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2. 성경에서 정치는 사회질서를 지키기 어렵고 공공선을 이루기 어려울 때 이를 위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나누어서 담당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핵심은 한 사람이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모든 일을 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시작됩니다. 구약과 신약시대의 위대한 지도자들도 그들이 모든 일을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 사회를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받은 것과 같이 지도자는 다시 다른 사람에게 그 권한을 나누어 주어서 보다 효과적으로 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너와 또한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 능력 있는 사람들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살펴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이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 큰일은 모두 네게 가져갈 것이요 작은 일은 모두 그들이 스스로 재판할 것이니 그리하면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일이 네게 쉬우리라” (출 18:18, 21~22)
* 참고: 민 11:16~17; 행 1~6

3. 성경에서 정치를 담당하는 하나님의 대리인들은 그들의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우두머리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고, 종의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생을 연극이라고 할 때 우리는 각자에게 맡겨진 역할이 있습니다. 연극에서 실제로 나이가 적은 사람이 어머니 역할을 할 때도 있고, 착한 사람이 악한 역할을 할 때도 있습니다. 당번도 돌아가면서 할 수도 있고, 반장도 선거에 의해 뽑힐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하나의 사회적 역할입니다. 정치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달란트인 것입니다. 교회에서의 직분도 하나님의 공동체를 잘 운영하기 위한 역할이지 자격이나 권세는 아닙니다. 사회에서도 리더나 구성원이나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수행할 때 사회는 건전하게 운영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잊어버리게 되면 그 공동체는 정치가 잘못되어서 많은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고전 12:24~25)
* 참고 마 25:14~30; 눅 19:11~27

II. 정치의 방법: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정치는 약속과 계약으로 이루어집니다. 공동체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약속과 계약이 필수적이고 이를 잘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또한 약속과 계약은 신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정치가들에게 제일 중요한 덕목은 신의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정치가들은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권리인 권력을 얻기 위해 신의를 저버리고 그 권리를 쟁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 때 그 정치가는 아무리 권력이 강하다고 하더라도 권위를 상실하게 됩니다.

권력(power)과 권위(authority)는 다릅니다. 권력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어느 한 개인이 하지 않을 일을 다른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하는 경우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즉 가만 놔두면 하지 않을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행동을 바꾸어 하는 경우에 둘 사이에 권력관계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French와 Raven이라는 사회심리학자들은 이와 같은 권력관계가 형성되는 근원으로 보상(reward), 징벌(punishment), 전문성(expert), 관계성 (reference), 정통성(legitimacy)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인간의 행위에 권력관계가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권력의 근원 또는 기초를 전제로 하여 사람들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즉 매번 권력을 행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권력의 근원을 갖고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기대하고 행동하게 됩니다. 이 경우에 우리는 권위(authority)가 있다고 합니다. 권력을 행사하지 않고서도 권위가 있으면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변화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우리를 지배하실 수 있는 힘, 즉 권력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지켜야 할 행동의 양식을 계약으로 알려주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믿으며 그 권위에 복종하게 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나 정치가들이 우리를 규율할 수 있는 권력을 갖고 있지만 매번 그것을 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사할 수 있는 권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우리는 그 권위에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적 권위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형성됩니다.

그러면 권위를 가진 정치가는 백성이나 시민들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즉 어떤 권위를 갖고 어떤 약속 하에서 정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요? 바로 그것이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리더십을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1. 정치에서 절대 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의 원리는 하나님 외에는 절대적인 선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동의된 내용을 잠정적인 선으로 선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유일한 선이고 예수님만이 유일한 의인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서구의 민주 정치는 이처럼 인간의 상대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 정치에서 많은 지도자들은 자신의 절대선을 주장하고 독선적인 정치를 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가치만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오류에 빠진 정치가는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한 정치가입니다. 성경에도 많이 나와 있듯이 독선적인 리더십은 지도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리더십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탄 미국의 Herbert Simon 교수는 합리성을 내용적 합리성(substantive rationality)과 절차적 합리성(procedural rationality)으로 나누었습니다. 내용적으로 합리적인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인간에게 없습니다. 즉 사회 현상에서 정답은 없다는 것입니다. 정답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정답이 없기 때문에 인간들은 잠정적인 정답을 찾게 되는데, 우리는 그것을 다수의 사람들이 합의한 절차적 합리성에 의존하게 됩니다. 민주 정치의 기본 원리는 이처럼 다수의 사람들이 합의에 의해 정한 약속이라는 차선책을 택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진리와 절대적인 가치는 하나님에게만 있습니다.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절차적 합리성을 통해 잠정적으로 진리에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정치의 기본 원리도 바로 그것에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인간이 아담으로 인해 원죄에 빠지게 된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원죄에 빠지게 된 것은 인간이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열매를 먹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마치 갖게 된다고 착각에 빠지면서 시작된 것입니다. 따라서 하와가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을 구별하는 열매를 먹고 나름대로 판단하기 시작하면서 죄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와가 뱀을 판단하고, 아담이 하와를 판단하고, 가인이 아벨을 판단하고, 하나님까지 판단하는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것도 인간들의 그릇된 판단에 기인한 것입니다. 정치가들이 빠지기 쉬운 유혹의 하나가 자신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서 자신이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적인 선과 절대적인 진리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차선책인 상대적 선을 찾으려고 하고, 그것을 위해 절차적 합리성에 의존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인간을 다스리기 위해 대리인인 정치가들에게 잠정적으로 권한을 부여하셨고,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해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셨습니다.

즉 율법은 하나님의 뜻을 인간이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지켜야 할 법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애굽기 20장에서 31장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법도에 대해 십계명뿐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들을 상세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시기보다 효과적으로 보았고,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말씀을 듣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율법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정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과 약속으로 행해져야 합니다. 따라서 법과 계약을 어기는 정치가는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지도자가 됩니다. 민주주의에서도 정치가는 법과 질서를 준수해야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취임할 때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하는 것이나, 한국의 대통령도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선서하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입니다.

3. 이와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대리인으로 허락한 왕이나 정치가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고 성경을 말합니다.

즉 절대적인 선을 완전하게 이룩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약속과 율법을 통해 허락한 왕과 권세자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백성들이 하나님이 권한을 부여한 지도자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공동체의 질서와 공공선은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공동체의 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이처럼 백성들은 하나님이 권위를 인정하신 지도자에 순종해야 지도자는 하나님에게 부여받은 권한 안에서 백성들을 다스려야 합니다. 이 경우에 율법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율법의 절대성에만 의존하여 정치가가 자의적으로 백성들을 다스리게 될 때 하나님을 대신하여 자신이 절대선을 제시하게 되는 모순을 낳게 됩니다. 하나님의 대리인인 인간은 정치를 할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야 합니다. 모세도 사울도 인간적인 판단으로 정치를 할 때 하나님은 대리인으로서 그들의 역할을 거두셨습니다. 따라서 정치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나누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여 사회의 공공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미국의 위대한 정치가이고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인 링컨은 취임식에서 마태복음 7:1의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마 7:1)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링컨은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지고, 다른 사람은 비판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서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를 따르게 했습니다.

4. 우리의 공동체 생활에서 예수님은 율법을 넘어서 사랑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참 뜻을 이루는 것은 사랑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합니다. 정치도 이와 같습니다. 흠과 죄가 없는 예수님이 몸소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준 것처럼 정치가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자신이 잘못한 점이 없더라도 어려움과 고통을 감내할 때 국민들은 그 지도자를 결국 따르게 됩니다.

법과 질서는 인간사회에 필요한 최소한의 가치이고 잠정적인 선입니다. 하지만 보다 궁극적인 선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사랑과 선으로 정치를 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 지도자를 따르게 됩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미가서 6장 8절을 인용하여 대통령의 직을 수행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미 6:8)

우리는 종종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정치가는 자신이 스스로 판단해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겸손하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기원해야 합니다. 또한 시민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유권자들을 자신에게 표를 던져 줄 하나의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III. 바람직한 정치가의 리더십

사회가 다원화되고 다양한 이익이 표출되는 현대 사회에서 정치가의 역할은 매우 어렵습니다. 다양한 문제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해야 하고, 다양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환경 속에서 지도자의 덕목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고, 어떤 리더십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1. 비전을 가진 리더십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진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문제만을 해결하려고 하는 지도자는 좋은 관리자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훌륭한 지도자는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전망과 비전을 가진 지도자만이 구성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정치는 상징의 극대화(symbol maximization)라고 생각합니다. 정치 지도자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미래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하고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마술사는 자신이 하려고 하는 마술에 대해 자기 스스로 절대적인 확신이 있어야 마술에서 실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좋은 정치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의 비전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훌륭한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좋은 지도자는 현실의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밝은 모습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수단적 가치만을 강조하는 리더십은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잘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왜 잘 살아야 하는지 궁극적인 가치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치가의 리더십이 더욱 필요합니다. 비전을 가진 정치가는 궁극적으로 국가와 국민들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지도자입니다.

관료제의 역기능을 설명할 때 이야기되는 주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수단과 목표의 전치현상(displacement of goal) 이라는 것입니다. 원래 추구하려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나치게 수단을 강조하게 되면 목표는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에게 잘 봉사하기 위해 여러 가지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다양한 절차를 만들고 이를 따르도록 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론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원래의 목적과는 동떨어진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유대인들을 비판하신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훌륭한 지도자는 끊임없이 조직의 궁극적 목표에 대해 고민하면서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리더십을 가져야 합니다.

2. 변용의 리더십

전통적인 이론에서 효과적인 리더십은 관리를 잘하는 리더십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즉 거래적 리더십(transactional leadership)에서는 부하들을 잘 통솔하는데 관심을 갖습니다. 부하가 잘하면 상을 주고, 잘못하면 벌을 주는 지도자와 부하간에 상호거래 관계로 리더십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리더십은 한계가 있습니다. 시키는 일만 하고 시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 비자발적 참여를 나타내게 됩니다.

효과적인 리더십을 이야기할 때 최근에는 변용적 리더십(transformational leadership)을 이야기합니다. 변용적 리더십은 지도자가 갖고 있는 가치를 구성원에게 설득하여 이를 전달하게 되면 구성원의 태도와 가치가 변화되어 지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리더십입니다. 이러한 변용적 리더십을 발휘하게 되면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조직의 공헌을 유도해 낼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지도자의 비전을 공유하고, 그 비전이 초래하게 될 미래의 가치를 인정하게 될 때 조직목표가 효과적으로 달성될 수 있습니다.

3. 통합의 리더십

정치지도자는 구성원 간에 차이를 밝히기 보다는 차이를 인정하고 이를 통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현대사회는 가치, 행동, 이해 등의 다양성이 심화됩니다. 구성원의 다양성이 심화될 때 지도자는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상호 다름을 강조하여 갈등이 조장되고 사회적 분열이 나타나는 것을 막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덕목입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의 분리주의적 성향을 제일 싫어 하셨습니다. 다양한 지체들을 그 나름대로의 특성으로 인정해주고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줄 때 공동체는 보다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마치 자신이 가진 기준이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판단하고 구분짓고 비판하는 것은 인간의 죄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최근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미래의 바람직한 지도자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누구의 잘못이라고 비판하기 보다는 이를 껴안을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야 합니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지혜를 동원하여 효과적인 방안들을 강구해 내야 합니다. 사회적 갈등과 분열에 대해 쉽게 포기하고 비판하는 자세로는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통합을 통해 사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의 삶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정치 지도자들은 노력해야 합니다.

4. 일을 나누는 리더십

앞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모든 일을 혼자 하려고 할 때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누구도 혼자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분권화와 유기적 네트워크가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사회운영 방식입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전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 리더십의 한 요인이 됩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일은 전문가에게 효과적으로 위임하여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독불장군처럼 모든 일을 혼자 힘겹게 하다가 시험에 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정치 지도자도 여야를 구분하지 말고 좋은 인재들을 다양하게 등용하여 일을 나누어 맡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친소관계에 의해 일을 맡기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심각한 실패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복할 때 참모들과 회의를 하면서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에게 악마의 대변인(devil's advocate)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모든 참모들이 동일한 생각을 갖고 문제를 풀게 되면 집단적 사고(group think)에 빠지게 되어 문제의 핵심을 잘 못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슷한 사람끼리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능력만을 기준으로 하여 참여할 수 있도록 정치가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미래의 바람직한 정치 리더십을 찾으려고 할 때 우리는 이에 대한 많은 내용들을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사회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다양해지고, 이해관계는 첨예하게 대립되는데 정치 지도자가 보다 장기적인 비전과 넓은 시야를 갖지 않으면 사회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어렵게 됩니다. 바람직한 정치 리더십은 정략적인 이해관계나 단기적인 문제해결 방식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대중의 인기를 얻는 포퓰리즘에서도 바람직한 리더십은 찾을 수 없습니다. 국가와 미래의 비전에 대한 진지한 고민, 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열정과 지혜, 구성원에 대한 따뜻한 사랑, 그리고 갈등을 극복하려는 포용의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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