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끝자락에 서기를 주저한다. 단순한 주저함을 넘어 적극적인 자세로 끝에 서기를 피하려 애를 쓴다. 끝에 서 있다는 것은 곧 실패라는 공식을 억지로 성립시키려 한다. 아마 끝이라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인간은 어떻게든 머리가 되고자 한다. 끝이 아닌 선두가 되려 한다. 순리적으로 되지 않으면 부정과 음모를 꾸며서라도 머리가 되려 한다. 이 역시 끝은 마지막이라는 생각의 발로에서 일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끝에 서야만 하고, 싫지만 누군가는 끝을 장식해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그 끝에서 최선을 다하여 살며 날마다 행복의 꿈을 먹고 살아간다. 그 이유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그 끝 역시 중요하다는 진리를 알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웅장하게, 비장한 각오로 시작을 하였을지라도 마지막을 흐리게 마무리한다면 그 일을 곧 실패라고 보아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머리가 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분명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다. 시작을 화려하면서도 웅장하게 하는 노력도 주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지만 그 끝을 아름답고 멋지게 장식하지 못한다면 주님의 마음은 기쁘시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이나 사역, 교회 갱신 등의 모든 영역은 시작과 끝을 아름답게 하여 주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자.

과연 끝은 말 그대로 마지막일까?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포기의 땅일까? 희망을 상실한 곳일까? 우리는 끝이라는 것을 새로운 도약의 첫 발걸음으로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끝은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역동의 장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어 죽을힘을 다해 새롭게 시작해야만 하기에 부득불 힘과 용기가 필요한 자리이다.



필자는 땅 끝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땅 끝은 한반도의 최남단으로 북위 34도 17분 38초의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 사자봉을 가리킨다. 아마 여행 마니아들이나 고산 윤선도의 세연정과 곡수당 등의 유적지가 있는 보길도를 방문하기 위해서 한 번쯤은 들렸을 곳이다.

세밑에는 해넘이를 위해, 정초에는 해맞이를 위해 수많은 인파들이 이곳 땅 끝을 찾는다. 지금도 방학을 맞이하면 국토순례단들의 한반도 대장정을 이곳에서 시작하곤 한다. 지리적으로는 땅 끝이지만 한반도의 시작점이라는 의미를 크게 내포하고 있기에 이런 행렬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마을은 단일 마을이지만 여느 면 소재지 못지않은 규모를 가지고 있다. 해남군은 현재 513개 마을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이다. 해남군 내 해남읍과 면소재지를 제외한 면지역에서 제가 사역하고 있는 송지면 어란리가 300여 세대 900여 명으로 가장 큰 마을로 꼽힌다.

저희 마을은 해남 김 생산의 일번지로 통하고 있으며 구멍가게 9개, 식당 5개, 철물점 2개, 공업사 4개, 낚시점 2개, 김가공 공장 4개소가 있다. 마을 조직들도 대규모다. 군 대회에서 우승을 몇 차례 차지한 어란조기축구회 회원이 40여 명, 청년회원이 150명, 부녀회 회원은 100여 명, 65세 이상 노인들이 128명에 이른다. 마을에 초등학교 1개소, 육군 경비 초소, 해양결찰서, 수협지점 등의 기관이 자리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각 기관의 장들과 구성원들이 신앙인들로 채워져 있어 그들을 통해 지역 복음화의 가능성도 보여 지고 있다. 지금도 저는 새벽이면 이곳의 각 기관들의 기관장과 구성원들이 신앙인들로 채워지기를 위해 기도한다.

저는 감히 한국교회 부흥의 바람이 이곳 땅 끝에서부터 불어 한반도와 아시아, 더 크게는 열방 가운데 일기를 기도하며 작지만 그 일을 이루기 위해 몸부림을 쳐 본다. 바다를 주업으로 하는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수월치 않다. 우상 숭배와 더불어 술과 도박에 찌든 주민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직 미흡하다. 더욱이 농촌교회의 목회자의 잦은 이동은 주민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한다. 이 점이 농어촌 교회의 복음화의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두 자리 수 이상의 세월을 주님께 드리려고 기도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마을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관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지내려고 노력한다. 특히 초등학교는 저희 교회 주일학교의 텃밭임과 동시에 성경학교 기간 중에는 마치 학교를 교회에 옮겨 놓은 듯 한 형편이기에 장년 부흥의 전초기지로 알고 학교 운영위원직을 떠나지 않고 있다.

아직은 대도시 대형교회에 비해 미력할지 모르지만 땅 끝에서부터 부흥의 열기가 끌어 올라 반드시 이 민족 복음화에 이바지 하고픈 마음 간절하다. 이 일에 한 알의 밀알이 되고 싶다.

또한 건강한 교회를 위한 갱신의 운동 역시 이곳 땅 끝에서부터 일도록 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 본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목회자의 문제라고 했던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목회자가 주님의 제자가 되어 교회와 성도를 섬긴다면 굳이 갱신을 부르짖지 않아도 될 성 싶다. 이런 주님의 제자가 되고 싶다. 이런 목회자가 되고 싶다. 이런 마음에서 오늘도 주님으로 주님 되게 하는 교회, 초대교회를 닮은 교회, 이 땅에 주님 나라를 선포하는 교회, 성도들로 주님의 제자 되게 하는 교회, 혼탁한 세상에 소금과 빛이 되게 하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 제단에 무릎을 꿇는다.

더 나아가 성령의 바람이 이곳 땅 끝에서부터 불기를 소망해 본다. 과거에는 평양이 성령의 불 도가니였다면 이제는 이곳 땅 끝이 성령의 불도가니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아직 그 시작이 미약하지만 거룩한 소망을 주님은 이루실 것으로 확신하며 이 일에 쓰임받기를 기도해 본다. 성령의 바람이 크게 일어나 이 민족을 살리고, 민족의 미래를 제시하고, 한국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성령의 충만을 사모해 본다. 오늘도 겨울 바다 바람은 세차다. 이 바람과 함께 성령의 바람이 이 민족 전체를 삼키기를 위해 무릎을 꿇는다.

금년 우리 교회 성도들의 신앙생활 목표는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는 일이다. 이상에서 말한 대로 우리 성도들이 전부 주님의 제자가 되고, 부족한 사람이 이런 자세와 소원을 가지고 주님을 섬기며 사역한다면 분명 주님께서는 이 부족한 종을 보시며 미소 지으실 것이다. 그 주님을 찬양한다.

땅 끝의 노래 (명기환)

더 이상 갈 곳 없는 땅 끝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노래 부르게 하소서

오늘 하루만이라도
욕심의 그릇을 비우게 해 주시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용서의 빈 그릇으로
가득 채워지게 하소서

땅의 끝
새로운 시작

넘치는 희망으로
출렁이게 하소서

(땅 끝 전망대에 세워진 시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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