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덫과 세속의 철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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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덫과 세속의 철학자들
  • 박민균 기자
  • 승인 2008.04.03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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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 페터 마르틴/하랄트 슈만 공저, 강수돌 역, 영림카디널, 2003-05-01, 432쪽, 13000원
우리의 경제 대통령 이명박 장로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인수위의 활동과 청와대에 입성한 후 초대 내각 구성과 관련된 잡음은 사랑으로 넘어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10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었던 좌파정권을 종식시켰다는 것이다. 그것도 역대 대선 중 최대의 차이로 좌파를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다시 우리의 품에 안겼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좌파를 물리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명박 대통령만이 도탄에 빠진 우리 경제를 살릴 분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과거 우리나라 '갱제'를 외환위기에 빠뜨렸던 또 한 분의 장로 대통령과 질적으로 다르다. 경제는 확실히 "경제"라 말하고, 기업을 책임졌던 CEO로 이미 능력은 입증됐다. 그리고 온갖 반대를 꿋꿋이 이기고 삭막한 서울에 친환경적인 청계천을 만드는 행정력도 발휘했다.

다른 말이 필요없다. 이명박 장로를 지지하던 한 목사님의 외침,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려면 공산당 같은 좌파를 몰아내야 한다." 머리는 혼란스럽게 해도, 가슴은 뭉클하게 만든 이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비록 '자유주의, 민주주의, 공산당(주의), 좌파'라는 어떻게 조합시킬 수 없는 단어들이 머리를 아프게 해도 우리는 경험으로 그 분이 무엇을 말하는지 안다. 머릿속으로 자유주의의 반대는 사회주의,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주의, 공산주의의 반대는 자본주의, 좌파의 반대는 우파... 따질 필요가 없다. 그냥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위해서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돼야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돌고 돌아 '이명박 대통령'과 '갱제 대통령의 외환위기' 그리고 '자본주의'가 나왔다.

이제 책 이야기를 하면, 10년 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외환위기가 터졌다. 저주받은 세대답게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백척간두. 「세계화의 덫」(한스 피터 마르틴·하랄드 슈만)은 그때 만났다. 갱제 대통령이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금융시장의 문을 조금 열었을 때 IMF가 들이닥쳤고, 우리는 '세계화의 덫'에 걸렸다.

그때만 해도 세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좀 더 공부를 했으면 70년대부터 세계경제를 주도하던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대해 인식할 수 있었지만. <세계화의 덫>을 읽으며 세계화는 나와 같은 소시민이 아니라,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한정되는 단어임을 깨달았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을 키우기 위해 공장을 짓고 세계 곳곳에 물건을 판다. 그런데 어느 날 다른 나라로 공장을 옮겨 버린다. 왜 옮기냐고 물으면 세계화 시대에 기업이 보다 싸고 능력있는 노동자가 있는 나라로, 세금이나 규제가 없는 나라로, 노사분규가 없는 나라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들보다 나은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작업능력을 더 키우고, 국가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양성을 위해 교육을 개혁하는 한편, 기업이 원하는대로 규제를 풀어야 한다. 한마디로 노동자는 다른 노동자와 경쟁해야 하고, 국가는 다른 국가와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그 경쟁은 점점 심해진다. 그러나 이것이 다가 아니다. 기업보다 더 무서운 떼돈(금융)이 이곳 저곳을 마음대로 다닌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매각하면서도 세금 한 푼 안내는 이유가 있다. 수십 년 동안 다니던 공장과 회사가 중국으로 옮기는 바람에 우리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해고당하는 이유가 있다. 십만원이 넘는 아디다스 나이키 축구공을 만들기 위해 1630번의 바느질을 하지만 인도와 파키스탄 아이들의 일당이 300원인 이유가 있다.

다시 이명박 대통령. 노동시장 유연화, 공기업의 민영화, 규제철폐 등등 경제 대통령이 주장하는 말들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음을 깨닫는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쏟아내는 말들 속에 어떤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는지, 궁극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경제를 이끌어 가겠다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10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가 어렵고 사회 양극화가 더욱 심해진 이유는 좌파 정부여서가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받아들이고 우리 사회에 적용시키면서 나타난 결과일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경제를 잘 안다고 해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속에서 20:80 아니 10:90의 양극화는 피할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이런 사회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올해로 교계 기자생활이 7년째로 접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한국 교회의 일반적인 목회자들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 로버트 L. 하일브로너 저, 장상환 역, 이마고, 2008-10-15, 508쪽, 21000원
「세속의 철학자들」(로버트 L. 하일브로너)은 자본주의를 넘어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갖게 해준 책이었다. 딱딱하고 이해하기 힘든 '경제학'을 각 시대별 대표 인물을 통해 쉽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은 경제는 인간과 그 시대 상황과 밀접히 연관돼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봤던 경제사상가들이 어떤 기반 위에서 경제사상을 발전시켰는지 설명해주고 있다. 이 말은 곧 그 시대를 벗어난 경제사상은 환영받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인물을 통해 경제사상사 전반을 꿰뚫을 수 있는 책이라고 여겨진다.

가끔 성경의 희년과 안식년을 생각하면 오싹 소름이 돋는다. 자유주의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년과 안식년을 그대로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본다. 세상을 뒤엎는 혁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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