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가 몇 년 앞으로 다가왔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진입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볼 때 크로노스(chronos)지만 영적인 면에서 그것은 우리에게 카이로스(kairos)가 되어야 한다. 새롭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영적인 절박감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20세기의 찌꺼기들을 그대로 준비한다는 의미에서 '과세기'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한국교회도 과세기 정신을 가지고 변화를 해야 할 것이다. 교회 경영면에서 21세기에 어떤 변화가 있고, 이에 따라 한국 목회자들에게 요구되는 의식은 무엇인지 몇 가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21세기 교회환경 예측

21세기는 과연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지금까지 미래학자들이 여러 차원에서 예측을 해오고 있지만 한마디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할만큼 불확실한 시대, 그러나 20세기와는 아주 속성이 다른 시대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단절(disoontinuity)이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틀이 짜여질 것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삶에 갖가지 파괴현상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교회도 옛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게 되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교회 환경의 변화 가운데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교회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리라는 것이다. 21세기를 가리켜 정보시대, 창조시대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은 농경사회에서 공업사회를 지나 정보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라고 말하지만 20년 정도 지나면 정보시대가 열린다.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superhighway)공사가 세계적으로 마무리 되자면 약 40년 정도 되어야겠지만 우리나라는 2015년을 완공 시점으로 삼고 있다. 단군이래 최대 공사가 될 이 정보고속도로가 완성되면 그야말로 우리사회는 획기적으로 변화된다. 교회도 지금까지의 건물교회보다 사이버공간속의 사이버교회가 더 많아지고, 교인수도 헤아릴 수 있는 수보다 헤아릴 수 없는 사이버교인들이 많아지게 된다. 그때는 시간과 공간이 의미를 상실하게 되고 인간의 지식과 창의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 변화도 빠르다. 과거에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옛말이다. 1년이면 강산도 몇 번 변하는 시대가 온다. 우리는 광속시대에 살게 되고 교회경영도 광속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에 처하게 된다.

지금 인터넷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지만 그 때 가면 인터넷은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인터넷은 아주 작은 샛길 정도로 인식되거나 고속도로에 달리고 있는 수많은 자동차 가운데 하나일 뿐 이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그 인터넷 속에서 사이버교회의 모습을 맛보며, 홈페이지를 설정해 교회를 알리고, 인터넷을 통해 전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세계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놓고 약간 맛을 보는 것 뿐이다. 2천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사회는 무섭게 변한다. 교회도 획기적으로 변한다. 그 무서운 변화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인들의 영적인 욕구이다. 지금까지 각자 욕구가 달라도 밥상 위에 김치와 국만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교인들은 김치가 싫다. 피자를 달라, 햄버거를 달라, 스파게티를 달라고 할 것이다. 종래 목회자는 '배부른 소리한다. 그런 것은 없다'고 고함 한마디로 욕구들을 잠재울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 교인들은 억압한다고 해서 그대로 순종하지 않는다. 입맛을 따라 사이버 세계를 찾아 나설 것이다. 종보고속도로를 타고 순식간에 미국으로 가고, 남미의 교회로 가서 말씀을 듣고 그 교회에서 실시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21세기를 준비하지 못한 목회자들은 그 때 크게 후회하게 된다.

19세기 목회 스타일로 21세기 교회를 이끌 수 없다.

21세기는 교회 경영면에서 교회에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아직도 19세기 목회를 하고 있다는 점에 아주 큰 문제이다. 이제는 19세기식 목회를 벗어나 21세기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 점진적인 변화(incrementalchange)가 아니라 정말 과세기적인 도약변화(quantum change)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생각해보기로 한다.

첫째, 목회자는 교회와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를 역사의식과 비판의식을 가지고 봐야 한다. 많은 목회자들은 '우리 교회에 문제가 없다. 나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가를 보여준다. 종이 다른 종들 앞에서, 더욱이 하나님 앞에서 자화자찬하는 일은 꼴불견이다. 21세기의 종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말 '나는 무익한 종'이었다는 깊은 반성으로부터 미래를 시작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목회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로 만족하는 목회자는 앞서 나갈 수 없을 뿐 아니라 현상유지도 어렵게 된다.

둘째, 목회자들은 미래에 대한 전략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미래가 오면 그 때 가서 대처하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때가서 하겠다면 이미 때는 늦다. 광속시대는 광속결정과 광속경영이 특징이다. 미래는 그저 오지 않는다. 강하고 빠른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지금은 교회가 분초를 다투지는 않는다. 느긋함을 맛보며 목회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분초를 다투는 경영을 통해 교회의 미래가 판가름 나게 되는 시대가 온다. 그 때 목회자는 여유를 만끽할 시간이 없다. 그 시대를 위해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은 고도의 전문성이다. 따라서 미래의 목회자는 지금부터 전문성을 기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 전문성은 지금가지의 전문성과는 다르다. 글로벌 의식과 함께 세계교인을 향해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문성이다. 교회도 목회자도 특이한 목소리, 곧 핵심역량(core compence)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계의 교인들은 사이버망을 통해 특이한 목소리를 찾기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다. 특이하지 않으면 아무도 찾지 않게 된다. 이제 그렇고 그런 교회는 자꾸 작아질 것이고 급기야 문을 닫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목회자는 미래를 철저히 준비하는 전략을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핵심역량은 새벽기도회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정보통신망을 통해 세계교인을 향해 영적인 각성을 가져올 수 있게 하는 새로운 핵심역량이 개발되어야 할 차례이다.

셋째, 목회자들의 하나님관, 교인관, 그리고 교회관에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그것은 목회자 자신 중심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지는 것이다. 목회자들의 철학이 달라지면 관리스타일도 자연히 달라지게 된다. '관이 바뀌어지다니 갑자기 무슨 말이냐, 나는 무엇보다 하나님 중심으로 목회를 해왔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은 한국의 목회자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목회를 했다기보다 목회자 자신 중심으로 목회를 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보니 교인도 목회자 중심으로 움직여야 속이 풀리고, 교회도 자기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게 된다. 지난 세기에는 목회자가 그렇게 해도 참고 신앙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21세기에는 교인들이 이러한 목회스타일을 용납하지 않게 된다.

넷째, 정치에 대한 관심보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관심으로 대전환을 해야 한다. 이제는 당회도, 노회도, 총회도, 달라져야 한다. 한국에는 어느 회든지 윗자리에 앉아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한국교회는 지금 상석에 앉으려는 사람들로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주님 앞에서 누가 크냐고 싸우던 제자들과 하등 다름이 없다. 지금 한국교회에 필요한 인물은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겸손하게 그리고 높은 전문성을 가지고 21세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19세기 독불장군들을 정치마당에서 몰아내고 겸손한 종들로 다시 채워 21세기를 맞이해야 한다. 그 종들이 다시는 19세기 마당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시대를 준비할 수 있도록 교회가 적극 도와줘야 한다. 서로 노회장, 총회장이 되려고 하는 풍토가 사라질 때 한국교회는 바로 서게 될 것이다.

다섯째, 목회자의 권위주의가 척결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권위주의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 교회보다 강하다. 한 사람의 담임목사와 그 밑에 있는 현저하게 낮은 지위의 부목사나 전도사는 공존할 수 있어도 비교적 동등한 지위를 가진 복수의 목회자는 공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교회마다 큼직하게 쓰여 있는 당회장실, 당회원실은 권위주의를 대변한다. 그러나 21세기는 권위주의 목회를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다. 세계 교회는 한 사람의 만능적 사역보다 더 전문화된 목회자들에 의한 팀목회, 열린 목회로 방향전환을 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교회가 계속 권위주의적으로 목회를 유지해 나간다면 그 교회도, 목회자도 살아남지 못하게 된다.

여섯째, 통일시대의 한국교회를 대비하는 일이다. 지금 여러 교회에서 북한교회 재건을 위해 기도회를 갖고 재정적 준비를 하고 있다. 매우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통일시대의 북한의 교회가 지금과 같은 교회의 난맥상을 재연하는 마당이 되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

목회자가 교회경영을 잘하려는 것은 이름 있는 관리자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잘 하려는 것에 목적이 있다. 그런데 한국의 목회자들을 보면 행정가는 많지만 참된 의미의 교회경영자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교회행정이나 교회경영은 단지 반듯한 사무실, 직원, 질서정연한 정돈과 기록에 있지 않다. 교회 사무실을 이렇게 꾸며 놓는다고 해서 교회행정이나 경영을 잘한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다. 물론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모든 행정처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따금 한국교회의 여러 문제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목회자들의 마음속에 진정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그 마음속에 모시고 있다면 그렇게 행동할 리가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물론 훌룡한 다수의 목회자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목회자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강단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지만 교회를 다스림에 있어서, 교인들이나 교회밖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말씀과 어긋나는 일이 너무도 많다. 이런 목회자를 가리켜 하나님을 모시는 목회자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 목회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목회자가 아무리 목회를 잘한다 해도 그것은 교회행정일 수 없다. 목회자는 자신의 영적 상태부터 잘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경영이 바로 된다.

목회자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면 교회행정이 바로 설 수 없다. 목회자가 하나님보다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힐 때, 자기의 욕정을 절제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교회는 흔들린다. 영이 마비되면 행정도 마비된다. 이제 한국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제2의 종교개혁이다. 이 개혁은 다른 제도에 대한 공격에 있지 않다. 그 개혁은 목회자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개혁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교회행정이나 교회경영이 바로 시행되고 그 결과가 달라진다. 21세기 한국교회는 바로 목회자들의 대각성에서 그 성패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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