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08/23) 교갱협 제5차 영성수련회 폐회예배

마태복음 25장 14~30절

목회자나 성도나 심지어 불신자라도 크게 두 종류의 사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업이든 공부든, 전도든 기도든 몇 번 해보다가 힘들고 어려운 장애를 만나면 "난 안돼!" 하고는 아예 포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엇인가 남보다 앞장서 가는 성공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한 주변에 유익을 주는 사람은 공통적으로 다섯번 실패했어도 새롭게 마치 처음 하는 것처럼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합니까?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시면 여덟 번째 일어나는 기적과 은혜가 있고, 또 나아가 일곱번 실패하고 목회에 실패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또 새롭게 붙들어 주시면 벌떡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면 일곱번, 아니 칠십번 실패했을 지라도 하나님의 새 은혜를 받으면 일어날 줄로 믿는 교역자들에게 하나님의 새 은혜가 임할 줄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얼마든지 예가 되나니 그런즉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아멘으로 화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줄 믿습니다. 조금 양심에 가책이 되고 또 지지부진하게 살았을 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을 있게 하신 하나님이 내가 어둠 속에서 살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곳에 오늘의 빛과 같은 역사는 새롭게 나타날 줄로 믿습니다.

 

자신의 갱신

수가성에서 남편을 다섯 번씩이나 바꾼 사람 취급을 받기 어려운 여자에게 예수님은 "내가 생명수니 나를 믿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람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보고 돌로 쳐죽이자고 하면서 남을 판단하고 예수를 죽일까 저 여자를 죽일까 하는 데에만 핏기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죽이라고 했는데 예수를 살리려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게 되는 것이니 죽이자 하고, 또 여자를 죽이려고 하면 사랑을 말하면서 사람을 죽이니 거짓말쟁이이고 지도자도 아닌 것이 판명됩니다. 100% 예수를 죽일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뭔가를 썼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도망갔습니다. 바로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갱신한다고 모이면서 나부터도 자꾸만 남을 보기가 쉽습니다. 목회하면서 저 장로님 때문에, 저 집사님 때문에, 저 권사님 때문에, 이 사모 때문에, 이 교역자 때문에 우리 교회가 안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항상 영성수련회를 네 번, 다섯 번 와도 계속 가질 수 있는 생각은 남에게만 손가락질을 하기가 쉽습니다. 남을 손가락질하기 전에 자신을 보고 일곱 번 칠십 번 실수하고 죄를 짓고, 살인을 했을 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시금 하나님이 써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사람보고 싸우지 말고 누구 탓하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은 부족합니다. 얼굴에 철판을 깔고서라도 "하나님, 저 좀 도와주세요." 기도하며 하나님을 새롭게 바라보시면 그 하나님이 분명히 용서해주시고 새로운 기회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새천년에 맞이한 첫 번째 뜻깊은 교갱협의 수련회 주제는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입니다. 하나님은 여기 오신 실패하고 넘어지고 학벌도 없고 교인도 몇 명 모이지 않는 그런 교역자일지라도 분명히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지금 새 일을 나타낼 위대한 계획을 가지시고 우리를 부르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저처럼 실수 많고 허물 많은 사람도 어느 날부터 쓰시기 시작해서 안산땅에 "안산다, 안산다." 하는 사람들을 안심하고 살도록 붙잡아 목회할 수 있도록 하셨고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에 가끔 오르내리는 그런 도시가 되도록 하셨습니다.

 

인생의 전환점

저는 6살 때 화투를 배운 사람입니다. 화투도사입니다. 저처럼 싸가지 없고 말썽꾸러기이며 싹이 노랗던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15살 때 술 배우고, 게다가 우리 집은 아무도 안믿고 다 망한 집안이었습니다. 11남매 중에 10번째로 태어나서 저는 어머니 얼굴을 모릅니다. 제가 3살 때 제 동생인 11번째를 낳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는 한없이 울었고 어머니의 얼굴은 전혀 기억이 나지를 않습니다. 동생은 기를 수가 없어서 남한테 주었습니다. 제 동생이 살았으면 나이가 쉰살인데 살았는지 죽었는지 생사도 모릅니다.

6.25가 끝나고 피난 갔다가 돌아와서 경기도 시흥군에 있는 계수국민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집에서 약 4.5km 떨어져 있어서 산을 넘어야 학교가 있습니다. 8살 때 어머니 없는 가정에서 아버지는 어머니가 안 계시자 방랑생활을 하면서 투전판, 노름판만 돌아다니시고 집에는 잘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누나가 있다가 시집가고 9남매가 한 집에 살았는데 찢어지게 가난해서 수수풀을 먹기도 어려웠습니다. 그 가난 속에서 학교에 갔다오면 저희 형제가 하나씩 안보이는 것입니다. 1년 사이에 6남매가 영양실조와 유행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학교에 갔다오면 형이 안보이고, 누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섯을 끌어다가 무덤도 없이 묻어버린 그런 어려운 가정이었습니다.

그 후로 아버지는 어떤 여자를 만나서 재혼하여 소사읍에서 사시고, 큰 형이랑 둘째 형은 집을 나가고 저는 있을 곳이 없어서 새엄마와 아버지가 사는 소사읍에 찾아가, 작은 월세방에 낯선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와 세 식구가 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누구와 말도 하고 싶지않은 내성적인 성품이었습니다.

그러던 4학년 어느 날, 제 친구 상호라는 아이가 교회로 인도해서 구경을 갔다가 들락날락 거리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거짓말이다, 구라, 뻥이다, 밤낮 그런 생각만 했습니다. 어떻게 저리도 거짓말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과 갈등의 생활이었습니다. 중등부 총무,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원도 하면서 밖에서는 담배를 피우는 이중적인 생활 속에서 정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안 계신다는 근거를 댈 수도 없어 답답해 하던 생활이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계속 하다가 18살 때에는 술까지 배워서 술도 잘 마시고, 담배도 조금씩 피우고, 화투는 아주 좋아하는 이런 삶 속에서 몸부림을 참으로 많이 쳤습니다. 몸부림을 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고등학교에 못 가고 1년을 쉬면서 신문을 돌리고 노동을 했습니다. 대학을 또 못 가고 1년 동안 양계장에서 닭을 지키면서 닭똥냄새 속에 살았는데, 오뉴월 닭똥냄새가 얼마나 지독한지 저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도둑이 닭을 훔치러 오니까 주인은 보초병 하나를 세우고 집에 가서 자곤 했습니다. 말이 재수하는 것이지 먹고 살기 위한 피눈물 나는 전쟁을 겪어가면서, 학원에 하루도 다닌 적이 없이 혼자서 눈물나게 가난을 씹어가면서 공부했습니다.

그런 와중에28년 전인 1972년 어느 날, CCC 성경공부 모임에 어느 여학생을 쫓아갔다가 김준곤 목사님이 130명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성경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믿어지는 것이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죽고 부활하신 것이 믿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고 내 몸부림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 찢어지게 어려운 가난 속에 다 무너져가는 집에서도 나 같은 죄인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시고 나를 쓰실 계획이 있어 모든 고난을 유익한 결말로 바꿔주시는 징검다리로 쓰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큰 그릇으로 쓰기 위해서 내가 너를 불 같은 시험에도 통과시켜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25살이었습니다.

 

선한 디딤돌

마귀들이 득실거리는 목회지로 돌아가는 이 시간, 여러분은 어떤 각오와 자세로 돌아갑니까?나 같은 사람도 어느 날 하나님 말씀을 겸손하게 듣다 보니까 믿어졌습니다. 왜 우리 가정은 이 모양인가, 왜 세상은 이토록 불공평한가! 이 불공평한 세상을 뒤집어 엎어야지 하며 자가용 타는 사람을 보면 불을 지르고 싶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믿음이 없으니까 밤낮 불공평하다는 반발심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모든 고난을 저주해서 준 것이 아니라 선한 결말로 인도하는 디딤돌로 예비해 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972년 6월에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경이 읽고 싶어졌습니다. 한달반 만에 제 평생에 처음으로 수없는 줄을 쳐가면서, 그리고 암송해가면서 성경 신구약을 일독했습니다.

여러분의 목회와 개인의 수많은 고난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로마서 8장1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10절을 건너뛰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현재의 고난 중에도 아무리 고난과 고통과 불같은 시험이 있을 지라도 그 고난 중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 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신 동일한 말씀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지금까지 25년의 전반전 인생을 고생하도록 하신 것은 내가 고생하다가 죽으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면 영광의 미래로 바꾸어 주시는 도구로 준 것으로 믿습니다. 이런 믿음이 불타오르는 겁니다.

우리 집은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큰 형님은 두 번 이혼했습니다. 한 집에 두 여자가 10년 이상을 살면서 애까지 딸려있습니다. 참 복잡한 가정입니다. 김인중 목사 하면 대단한 사람인 줄 알지만 6살 때 화투 배우고, 15살 때 술 배우고 18살 때 담배 배우고, 우리 누나는 33년 충청도 온양골의 보살이고 큰 형님은 두 번 이혼한 가정파탄 인생의 낙오자이며, 둘째 형은 술주정뱅이 수사과 형사입니다.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막둥이 하나가 28년 전 은혜를 받았습니다. 나 같이 썩어빠진 인생을 이만큼 변화시켜 쓰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새 일을 나타내는 도구로 쓰임받게 하시는 대상인 줄로 믿습니다.

 

목회의 결산

하나님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본문에는 주인이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종들에게 주고 먼 길로 갔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사명을 깨닫고 새로워지려는 목회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새 일이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이런 기대감을 가진 동역자들을 여기에 모아주신 하나님은 분명히 여러분들을 쓰실 계획이 있으십니다.

3.1운동 때 꼭 33인이 그 방 안에 같이 있었겠습니까? 함께 가자고 할 때 바빠서 오지 못한 사람도 있을 터이고, 이런저런 이유를 대서 역사의 자리에서 빠져나간 사람은 흔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위대한 소식을 듣고 나라와 민족을 평화적으로 찾아보자고 역사의 자리에 끝까지 앉았다가 동참한 사람들은 역사의 위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도사로 목사로, 선교사로 사모로 세워주셨고 재능을 주셨습니다.

한 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입니다. 또 1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나 같은 화투짝만 만지던 사람이 목회하는 교회에 주일학교 학생 4,200명이 모입니다. 중학생만 700명, 고등학생도 평균 700명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목회할 수 있는 기회를 균등하게 주셨는데 마지막에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받는 동역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회는 다 똑같이 주셨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주인은 먼 곳에 갔다가 오랜 후에 다시 와서 종들을 불러서 결산을 보자고 요청합니다. 주인이 다시 오면 나눠주었던 달란트를 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이익을 남겼는지 어떻게 관리했는지 결산을 봅니다. 마태복음 25장 13절을 보면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와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다섯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마태복음 25장은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늘나라의 신랑으로 오시는 예수님이 재림하는 혼인잔치의 때가 있습니다. 우리 목회에 결산의 날이 있음을 믿고 그 준비를 날마다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0년 뒤에 결산을 볼지 5년 뒤에 결산을 볼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인생이 올 때에는 순서가 있어도 결산 보러 가는 날에는 순서가 없습니다. 저는 총신대신대원 72회 졸업생입니다. 21년 쯤 되어가는데 제 동기 중에 벌써 13명의 목사가 40대 나이와 50대 초반에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예수 믿고 목회하다가 가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은 결산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목회에 대해서 하나님이 반드시 결산을 보신다는 사실을 구구절절이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언제 결산을 보더라도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지금부터 목회의 기회를 최선을 다해 선용해서 착하고 충성된 종, 칭찬과 기쁨의 자리에 동참하는 멋진 목회로 새출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목회의 기회를 새롭게 주고 있습니다. 어제와는 전혀 다른 오늘을 주셨습니다. 오늘과 다른 내일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내일 또 주실 것입니다. 앞으로 20년, 30년 계속 주실 것입니다. 목회지도 주셨습니다. 양떼도 주셨습니다. 수많은 일터를 주셨습니다. 삼천리 반도 구석구석으로 우리는 파송받게 됩니다. 갈 때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가야 우리의 목회가 새로워지고 결산날에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책망받지 아니하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인정과 상급을 받고 기쁨과 떳떳함을 누리는 그런 복된 목회를 오늘부터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의 목회가 새로워질 수 있을까? 그 비밀을 마태복음 25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회지

나의 목회지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14절에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새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을 충성되이 여겨 목사로, 전도사로, 사모로 불러서 자기 소유를 맡기셨습니다. 교회는 장로나 목사의 것이 아닙니다. 내가 개척했다고 해서 내 것이 아닙니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목회지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하나님의 교회인 것을 믿고 매사에 하나님께 하듯 정성과 최선을 다하시길 바랍니다.

여기서 주인은 예수, 그리고 종들은 모든 시대의 교회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목회자와 모든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주인이 오랜 후에 다시 돌아와서 맡긴 것을 결산하는 날이 오는데 이것은 주님의 재림을 가리킵니다. 재림 후에는 우리의 목회와 개인의 삶과 공인으로서의 결산을 보아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명이나 시간이나, 재산이나 지위 등 소유한 모든 것들이 알게 모르게 내 것이라는 생각 속에 빠져들게 됩니다. 교회도 개척해서 얼마가 지나다 보면 설교는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라고 하고는 은퇴할 때는 내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모든 소유와 모든 달란트는 은도 금도, 땅도 하늘도, 재주도 다 하나님이 종들에게 준 것임을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긴 것이지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맡긴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동안 내가 책임지고 돌보아야지 내가 목숨 걸고 지켰다고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다수가 목회의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를 목회자로 부르셨고 목회를 감당할 수 있는 위로와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어느 곳에 가서 목회 하기를 원하시는지를 생명을 걸고 기도한 끝에 그 응답으로 지금의 목회지와 양떼와 그 지역을 맡겨주신 줄로 믿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질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허락과 계획과 뜻 속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 섬기는 목회지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우리가 목회하는 성도들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양이며 교회입니다.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위탁자이며 청지기입니다. 지금 목회하고 있는 곳은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한 계획과 뜻이 있어 그 목회지를 주신 줄로 믿고 돌아가시 기 바랍니다.

우리는 목회가 어려울 때면 이것저것 핑계를 대고 늘 싸우다가 인생을 보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달리기도 이왕 할 바에는 잘하는 것이 좋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분명하게 하고, 설교준비도 팀을 짜서 같이 준비하면 잘될 줄로 믿습니다. 저희 교회는 예배당이 두 군데니까 양쪽에서 동시에 예배를 진행합니다. 본당에서 3부, 고잔동 예배당에서 3부를 드립니다. 똑같은 본문을 가지고 연속해서 강해설교를 하는데 부목사와 설교준비를 같이 합니다. 같이 의논하고 물어보면 부목사들이 워낙 컴퓨터도 잘하고 하니 대개 열에 여덟이나 열번은 저보다 낫습니다. 가끔 두 번 정도는 핵심을 잘못 읽는 경우가 있으니까 수정해주면서, 양쪽에서 설교를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교대로 합니다. 그러니까 설교준비가 훨씬 쉽습니다.

 

모범을 보이는 목회

우리는 목회지에 부임을 했습니다. 돌아가면 은혜받고 오셨냐고 성도들이 다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목회지에 돌아가서 며칠 지나 약기운이 떨어지면 원통해 하고 분노하고, 불평하며 목회를 합니까? 그러다가 또 내년 수련회에 와서 다시한번 갱신해 보겠다고 합니까? 가능하면 반복하지 않는 길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왜 우리는 자주 낙심하고 좌절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습니까? 목회에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주인과 종의 관계를 잘 모르는 오만불손한 태도가 아닙니까? 우리에게는 원망, 불평하고 시비할 자격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배우지 못하고 전도 열심히 안하고, 기도 안하고 십일조 안한다고 우리가 그렇게 불평하고 원망할 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그것은 내가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모범을 보이지 못하고 영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장로님도 은혜 받을 평신도요, 모든 교인은 내가 은혜를 전달하는 것만큼 은혜를 받고 봉사하는 것이지, 은혜는 주지도 아니하고 일 안 한다고 불평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목회지와 양들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인데, 어떻게 우리가 함부로 원망하고 싸우고 불평합니까?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고 성경은 말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반드시 주신다고 구구절절이 약속하신 그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썽 피우는 인간이 있을지라도 염소가 있어야 양이 썩지 않는 것처럼, 그런 사람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겸손해지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순절의 성령은 홀연히 찾아 오셨습니다. 지금까지 은혜를 받지 못하고 감당할 은사가 없다고 할 지는 몰라도 마지막까지 사모하고 구하면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위탁받은 사명자

우리는 위탁을 받았을 뿐입니다. 우리에게는 소유권이 없습니다. 주장할 권세가 없습니다. 위탁을 받은 사람은 그것을 감당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저도 일이 많아지고 복잡하니까 차라리 사표 내고 섬에 가서 고구마나 캐고 살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준비하면서 깨달았습니다. 내 사명인데 이 자리를 떠나면 죽는 줄 알아야 합니다. 사명의 자리를 어떻게 떠납니까? 하나님의 양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는데 두 명이면 어떻고 만 명이면 어떻습니까?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입니다. 3만원씩만 일당을 주어도 1억 8천만원입니다. 다섯 달란트면 아마 9억 쯤 되는 큰 돈입니다. 1억 8천은 큰 돈인 줄 알고 9억은 큰 돈인 줄 알면서 한 명의 양떼, 작은 개척교회의 아이들, 노인은 귀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한 어린아이와 노인의 값어치는 온 천하보다 귀한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1억 8천, 9억 정도가 아닙니다. 온 세상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 한 생명인데, 돈 없어도 이 한 생명이 온 지구보다 귀한 줄로 믿습니다. "이 귀한 생명을 나에게 맡겨 주시니 목숨 걸고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나님! 이 생명을 돌볼 수 있는 능력과 은혜를 계속 덧입혀 주시옵소서. 저는 돌볼 수 있는, 기를 수 있는 실력이 없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고 사모하는 자,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반드시 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운전기사에는 두 종류의 운전기사가 있습니다. 택시운전기사는 개인택시 운전수가 있고 그 다음에 월급쟁이가 있습니다. 자기 택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피곤하면 운전 안하면 됩니다. 그 차가 자기 택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월급을 받으며 일하는 운전사는 피곤하거나 기분 나쁘다고 운전을 하지 않으면 쫓겨납니다. 우리는 내 마음대로 목회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피곤해도, 기분 나빠도 계속 운전해야 합니다. 사람 때문에 기분 나쁘다고 목회 안합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위탁받은 사명자가 사명지를 이탈합니까? 군인이 보초자리에서 이탈하면 전시에는 총살입니다. 영적전쟁의 마당에서 어떻게 기분 나쁘고 피곤하다고 사명의 자리를 이탈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소유를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1억, 10억 정도가 아니라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인 하나님의 양무리를 맡겨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출발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5장 2절에 보면 실수하고 넘어졌던 베드로가 후배들에게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하고 편지를 씁니다. 설교한 대로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기도하라, 전도하라, 헌신하라, 감사하라, 검소하게 살자고 말하면서 교인들이 주면 다 받아야 합니까? 무엇이 갱신입니까? 교인들이 주고 교회가 주면 내 마음대로 다 쓰는 것이 갱신입니까? 한국교회는 큰 교회부터 갱신해야 하고, 작은 교회는 악한 것을 갱신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갱신해야 합니다. 말로는 북한동포 도와준다고 하고 선교한다고 하고, 미래의 일꾼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과연 기르고 먹이고 보내는 일에 몇 푼이나 쓰고 내가 먹고 입고 쓰는 일에는 얼마나 쓰고 있습니까?

돈 있으면 차는 무조건 다 좋은 것 타고 다녀야 합니까? 돈 있으면 내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써야 합니까? 돈 없으면 공짜로 얻어먹기를 좋아해야 합니까? 그러다가 정치꾼의 앞잡이나 되고
조직의 앞잡이나 되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 갱신이 됩니까? 우리가 달라지지 않고 무엇이 어떻게 갱신이 됩니까? 숫자가 많이 출석하면 갱신입니까? 더러운 일을 위해 하지 말고, 돈 때문에, 사례 때문에, 먹는 것 때문에, 차 때문에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능력에 맞는 목회

두 번째, 내 능력에 맞게 맡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출발해야 합니다. 15절에 각각 그 능력대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각각 그 재능대로 우리를 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조그만 아이한테 쌀 두 가마를 얹어주고 지고 가라고 하면 죽이는 겁니다. 재능대로 주신 것이 바로 공평입니다. 그 목장, 그 양떼를 정확하게 아시고 우리를 파송하신 줄로 믿고 맡는 사람은, 그 마음이 새로워지고 거기에서 모든 문제는 풀려질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두 가지를 생각하십시오. 저 사람의 좋은 것은 무조건 본받고 못된 점은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두 가지만 알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가 일어나도 우연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어제도 아침을 안 먹었기 때문에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아침을 먹으려고 하는데 나같이 소리나 지르고 성질 급한 목사가 밥 다 먹고 설교해서 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오늘 아침을 안 먹었습니다.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릅니다. 능력은 뻔한데 이 똑똑한 선후배 목회자들 앞에서 무슨 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저 실력도 없고 능력도 없을지라도 아침 한끼라도 안 먹고 기도할 테니 우리를 새 일을 시작하는 도구로 써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라왔습니다.

목회는 날마다 반복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는 마지막입니다. 이 설교가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는 종말의식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각자의 종에게 다섯, 둘, 하나를 공평하신 하나님이 능력에 맞게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차등이 아니라 공평입니다. 아름다움과 균형과 조화입니다. 한국의 대형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들을 시기하지 마세요. 교갱협 회장님만 하더라도 죽었다 살아나서 지금도 겨우겨우 끌고 가는 것이 아닙니까? 자기 몸을 겨우 유지해가면서 지금도 네 번씩 설교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개척교회 목사들은 잠도 잘 자지만 이런 분들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마귀는 시기, 질투, 교만, 무식, 열등의식을 불어넣어 줍니다. 마귀가 들어와서 비교하게 만들고 열등감을 갖게 하고 우월감을 갖게 합니다. 좋은 차 탄다고 목회가 잘됩니까? 골리앗과 다윗이 비교가 됩니까? 그런데 골리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내 능력에 맞는 교회에서 힘과 능력이 나오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목회자의 능력대로 가장 공평하게 맡겨주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목회하도록 우리에게 목회자의 은사와 달란트와 소명을 주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도 내 은사와 달란트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을 주신 하나님의 것임을 깨닫고 감사함으로 목회지로 내려가시기 바랍니다. 성령충만 받고 용기있게 목회합시다. 겸손하되 당당해야지 비굴해서는 안됩니다. 자기 능력대로 최선을 다하세요. 그러면 그곳에 기적과 새 일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충성을 다하는 목회

세 번째, 충성스럽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능력을 발휘하고 실력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의 것을 다 드려야 합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는 어린이의 점심 한끼밖에 안됩니다. 벳세다 광야의 5천명 이상의 사람이 굶주려 있을 때 주님은 다 아시면서도 먹을 것을 찾아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어린아이가 자기의 도시락을 내놓았습니다. 그 아이는 이걸 내놓아도 소용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내놓았습니다. 주님이 그것을 받으시고 축사했을 때 그 어린아이가 바친 작은 최선이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기적을 주셨습니다. 저는 우리들의 목회지에 지금도 최선을 다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헌신자들을 통해서 얼마든지 이런 기적을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확실히 믿습니다.

21년 전 개척할 때 경기도 시흥군에 70년 된 감리교회가 있는 시골마을 지하실에 세 식구가 갔습니다. 처와 7개월 된 딸 하나, 이렇게 한 가족이 유일한 개척멤버였습니다. 돕는 사람 하나 없이 있는 것 다 바쳐서 물 새는 지하실 27평을 얻었습니다. 커튼으로 3분의 1을 막고 연탄아궁이도 없어서 전기장판 하고 석유풍로를 갖다놓고, 화장실도 없는 지하실에서 성경을 보면서 내 최선을 드리면 기적을 주신 하나님이 나에게도 그런 기적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 믿음과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전혀 걱정이 안되었습니다.

1979년 6월10일에 아내와 딸, 열흘 동안 전도한 두 남자로 개척목회를 시작했습니다. 한사람은 스치로폴 사러 갔던 가게 주인인데 전도해서 나중에는 장로까지 되었습니다. 또 한사람은 동산교회 간판 쓴 간판가게 주인입니다. 간판값 받으러 온 사람에게 전도했습니다. 그 사람은 8년 전에 가정파탄된 건달입니다. 간판값 받으러 왔다가 돈을 안주니까 안갑니다. 그래서 밤 8시부터 새벽2시까지 전도하고 결국에는 사영리로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새벽 2시반 경에 주님을 영접하고 처음으로 주일 11시 예배에 출석했습니다. 설교를 열심히 하고는 마지막에 제가 아직 전도사였기에 주기도문으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광고시간에 "오늘 새로 오신 분은 다 남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커튼을 열고 석유풍로에 커피를 끓여서 한잔씩 나눠주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인사를 하고 이런저런 얘기 도중에 설교시간에 뒤를 쳐다봐서 왜 그랬는가 물었더니, 제가 설교를 할 때 하도 소리를 지르기에 뒤에 사람이 꽉 찬 줄로 알고 쳐다봤다는 것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성경에 보니까 두 분은 우리 교회의 전도의 첫 열매입니다. 농부가 과원의 첫 열매를 추수하면 본격적인 추수의 때가 시작되었다는 신호입니다. 오늘 두 분을 우리 교회 첫 예배의 열매로 주신 하나님이 앞으로 중간열매, 나중열매까지 계속 주셔서 앞으로 이 지하실이 꽉 찰 줄로 믿고 설교했습니다." 그랬더니 "히히히, 거짓말하지 마세요. 동네도 조그만데 70년 된 감리교회까지 지어져 있는데요." 저는 "두고 보십시오." 하고는 헤어졌습니다.

6월 10일 처음 시작할 때 남자 둘과 아내, 주일학교 후보생 7개월 된 제 딸이 우리 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11일에 강도사고시를 대전에서 보고 14일에 합격하고 올라와서 본격적으로 250호 마을을 돌며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과수원을 건너가면 면사무소가 있는데 거기에 70년 된 교회가 몇 개가 있습니다. 천주교도 약간 있습니다. 그 마을의 한집을 다섯 번 내지 열세 번을 뒤졌습니다. 육개월 동안을 밥만 먹으면 나가서 집집마다 뒤졌습니다. 애, 어른, 할아버지 상관없이 사영리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작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250호 마을만이 우리의 선교지입니다. 70년 된 감리교회가 잘 지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 말씀에 믿는대로 주신다고 했더니 꼭 6개월만인 첫 번째 성탄절에 어른 97명이 출석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5장 9절로 10절에 사도바울이 말하기를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 " 사도바울 같은 사람도 새롭게 쓰신 하나님이 우리들도 더 새롭게 쓰실 줄로 믿습니다. 문제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꾸만 도망가려고 합니다. 신학교에서 목회하려고 하고, 목회하는 사람은 박사학위 따서 신학교 가려고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내가 모든 동역자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여러분, 바울처럼 그동안 목회로 지치고 수고하지 못하였을지라도 이번에 은혜받고  이 시간 이후로 최선을 다해서 사역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시간을 아끼는 목회

네 번째, 부지런히 시간을 아껴서 목회를 해야 합니다.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다섯 개, 두 개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였습니다. 받자마자 즉시 갔습니다. 시간을 아꼈습니다. 시간은 생명입니다. 우리가 어물대는 한 시간에도 우리의 양떼들이 지옥에 갈지 모릅니다. 넘어 질지 모릅니다. 시급을 다투는 수술환자처럼 부지런히 돌아가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갱신은 시간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자신의 영성관리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끊을 것은 끊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저도 노회장도 하고 노회서기부터 다했습니다. 총대 되면 가서 앉아있습니다. 자리도 안 지키면서 뭘 갱신합니까? 아무것도 안하고 뭘 갱신합 니까? 남보고 하라고 하지 말고 들어가서 책임지고 나부터 빛이 되면 갱신은 이루어집니다. 시 간을 아끼세요.

 

비교의식 없는 목회

마지막으로, 우월감이나 열등감 없이 목회합시다. 다섯 개 받았다고 목에 힘주지 마세요. 하나 받았다고 기죽지 마세요. 한 영혼의 값어치는 상대적이 아닙니다. 절대적입니다. 한 생명의 값어치는 온 천하보다 귀중합니다. 이상한 것이 교인이 좀 많이 모이면 벌써 태도가 자기도 모르게 건방져지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또 몇 명 안되면 위축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의 사자가 내게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맡겨주셨고, 이것은 남으로는 감당하지 못하고 나로서만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적임자로 보내신 줄로 믿습니다. 자존감을 갖고 당당하게 목회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해하지 않는 목회

결론으로, 오해하지 말고 끝까지 목회해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뿌리지도 않고 심지도 않고 뺏어가는 강도입니다. 자기가 농사를 지으면 주인이 다 뺏어갈 텐데 하면서 오해했습니다. 하나님을 오해한 것입니다. 설교는 잘하면서 자기는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나, 이 목회지가 내 목회지가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1947년 제가 태어나기 1년 전 미국 시카고 근방에 있는 천체연구소에 근무하던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유명한 첸드리스카 박사님 사무실로 시카고대학에서 전화 한통이 걸려왔습니다. "박사님, 이번 겨울방학 중에 우리 시카고 대학에 오셔서 고급물리학 특강을 좀 해주십시오." "제가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는 몇 주 뒤에 방학을 앞두고 전화가 다시 왔습니다. "박사님, 아무래도 박사님의 강의를 취소해야 되겠습니다. 왜냐하면 강의를 신청한 수강생이 두 명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 첸드리스카 박사가 말하기를 "작은 것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두 학생의 information을 보내주십시오." 그리고는 두 학생의 information을 받고는 강의를 했습니다. 시카고의 겨울에 엄청나게 눈이 오고 엄청나게 추운데 인데 두시간 반 떨어진 거리에서 그는 일주일에 이틀 동안 강의를 했는데 학생을 상대로 한번도 빠짐없이 강의했습니다. 그리고 특강을 마쳤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 첸드리카 박사에게서 강의를 받았던 두 학생이 노벨물리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사람은 첸린 양 박사이고 또 한사람은 춘돌 박사인데 중국계의 과학자였습니다. 그들이 노벨물리학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우리 두 사람을 앞에 놓고 끝까지 강의했던 첸드리카 박사의 강의 때문에 오늘 우리는 이 영광스러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두 명의 제자를 위해서 헌신적인 강의를 한 결과 두 사람은 10년 뒤에 노벨물리학상을 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목회하는 곳에 나이 드신 할머니 한 사람, 손자 한 사람, 공단의 종업원 몇 명, 중년의 부인 몇 사람, 돈 좀 있다고 으스대는 아줌마 몇 사람을 데리고 목회합니까? 과부된 롯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홀로 계신 시어머니를 공경하면서 그 십자가 지는 길을 따라가다가 다윗의 증조모가 될 줄을 누가 알았습니까? 예수의 조상이 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시골에서 할머니 한 분이 예수 믿고 기도하고, 객지에 나와서 일하는 공단종업원 중에서도 아름다운 전도사, 기능사가 나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양무리 후손 중에 그들이 예수 믿고 기도할 때 그들의 일가친척과 후손 중에 예수님을 닮아가고 다윗과 이삭을 닮아가는 위대한 후손들을 주실 줄 믿습니다.

보라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날 것이라. 나의 교회 한사람, 30명, 50명, 100명, 5000명을 통해서 하나님 새로운 구원의 역사, 확장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피묻은 복음을 들고 아골골짝 빈들에도 가겠습니다. 그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하며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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