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8/24) 교갱협 제4차 영성수련회 저녁집회

이사야 58장 12절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목회자들이 너무 바빠서 생각할 시간이 없다는 것, 자기자신의 삶과 목회, 가정과 인생을 돌아볼 기회가 적다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무엇보다도 고독한 시간, 묵상하는 시간, 혼자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교회의 목회구조가 너무 바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관리에 있어서 큰 허점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가지 원칙

저는 설교할 때, 성경공부를 할 때 네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설교학에서는 설교를 준비해서 설교를 마칠 때까지의 전체를 inventory라고 말합니다. 내 나름대로 설교를 inventory할 때 네가지 원칙으로 준비합니다. 처음에는 설교준비를 할 때의 원칙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공동체 훈련에도, 목회에도, 신앙생활 자체도 이 원칙이 적용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1) "쉽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 때 설교를 할 때, 성경을 교인들 앞에 풀어서 설명할 때 쉽게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71년 빈민촌에 들어갈 때인 30세였습니다. 아주 의욕을 가지고 들어갔는데 6개월간 헤맸습니다. 설교하면 교인들이 조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꾹 참았는데 6개월 지나서 친해지고 나서 교인들을 나무랐습니다. “여러분, 예배당이 여관이요? 오기만 오면 잡니까? 여관비(헌금) 좀 내고 주무십니까?” 했더니 할머니 한 분이 앞에서 졸다가 잠결에 듣고 “아이고, 전도사님도 참 딱하시오.” 그래서 “할매, 뭐가 딱해요?” 그러니까 “재우면서 존다고 그러면 어떡합니까?” 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설교라고 시작하면 도무지 뭔 소린지 방언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졸면서도 앉아있는 것을 고맙다고 해야지 꼭 집에 가서 자야겠어요?”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생각해보니까 그 할머니 말씀이 맞아요. 대학에서 제가 철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니까 대학에서 쓰던 그 용어, 그 분위기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껌 팔고 무우장사 하는 그런 사람들이 대학의 분위기에 안 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이 먹는 음식, 언어, 그 수준에서 Incarnation 했는데, 같이 살았는데, 그것이 기독교 진리의 핵심인데, 하나님도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땅에 오셔서 사람들의 생각과 언어와 문화를 그대로 겪으셨는데 설교자도 그걸 본받아야지, 되지도 않는 철학 조금 해놓고 빈민촌까지 와서 철학 이야기 하는 것은 못난 짓이다. 설교자도 Incarnation 을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그 다음날 골목에 엿장수가 지나가길래 빈민촌까지 가지고 간 철학책을 모두 다 줘버렸습니다. 엿 바꿔먹었습니다. 엿 세판 하고 바꿔먹고 동네 애들 불러서 오전 내내 엿잔치를 했습니다. 오전 내내 입이 붓도록 엿을 먹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주민들하고 행동을 같이한 것입니다. 넝마하고, 사과장수 옆에서 같이 장사하면서 말을 익힌 것입니다. 빈민촌은 빈민촌에서 쓰는 말이 있고, 감옥은 감옥에서 쓰는 말이 있습니다. 빈민촌의 말을 다 익힌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 그대로 설교를 했습니다. 육두문자도 나오고, “베드로 제 까짓 게 쪼다 같은 게, 말도 못 알아듣고 예수님이 기가 찼을 끼라 ... ” 하니까 조는 사람도 없고 헌금도 더 많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뒤로 책을 읽어도 설교를 어떻게 쉽게 전달할까? 껌장수 아줌마가 알아듣도록 하려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하는 기준으로 준비한 지가 20년이 넘으니까 지금은 아주 체질이 되어서 어렵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시 사람들도 쉬운 것을 좋아하더라구요. 그래서 어렵지만 (모세의 율법은 어렵지요.) 그러나 복음은 쉬운 것입니다. 조금 생각을 넓혀서 설교할 때 쉬운 복음을 쉽게 서민들의 가슴에 닿도록 전달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것이 설교의 원칙이 된 것입니다.

(2) "즐겁게"

설교가 지루하지 않도록 신경을 씁니다. 중간에 유머도 넣고 분위기를 바꾸고 신경을 씁니다. 설교시간이 마음을 열어놓고 즐거워야지 따분하고 딴 생각하다가 지겹고 길어지면 화나서 준비해온 헌금도 안내고 가버립니다. 설교자들이 신경을 써야 합니다.

그러니까 원고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원고설교를 하지 않으려면 준비가 철저해야 합니다. 저는 후배들에게도 원고설교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설교자로서는 불성실하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익혀서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면서 인격과 인격의 만남으로 설교해야 합니다. 그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생생한 인격이 만나는 스파크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준비를 철저히 해서 마스터하면 원고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부목사로 가거나 하는 분들의 문제가 뭐냐 하면, 부목사를 오래 하다보면 설교할 기회는 적고 행정에만 잔뜩 매달리다 보니 설교자로서의 자질을 닦는데 기회가 없지 않으냐! 그러니까 가능하면 부목사는 3~5년에 끝내고 젊을 때부터 스스로 설교해서 설교자로서 자기를 훈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은혜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라입니다. 기쁘다는 말도 카라입니다. 은혜충만이 카라충만이고 기쁨충만이 카라충만이니까 듣는 자도 설교하는 자도 기뻐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생활 자체가 기뻐서 교회가 잔치집처럼 축제분위기가 되게 하는 것이 목회자로서 당연히 신경을 써야 할 부분입니다.

(3) "깊이있게"

쉽게 하고 즐겁게 하지만 깊이가 있어야 자랍니다. 누가복음 5장에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 배를 빌려서 말씀을 전하고 나서 베드로에게 그물을 깊은 데로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물을 깊은 데로 던지라는 말이지만 좀더 넓게 적용해서 인생의 그물을 깊은데 던지라는 말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신앙의 세계는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 목회자들의 치명적 약점이 깊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깊이를 상실하면 영혼을 움직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종교, 신앙, 영의 세계는 특성이 “깊이”입니다.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데서 만나는 하나님의 은총이 기독교의 핵심인데 기독교는 깊이가 앞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변화되게

설교를 듣는 사람이 변화되려면 설교자 자신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Innovation을 자꾸 시도하면서 교인들이 변화되도록 하는 것이 설교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교인들이 그 설교를 듣고 변화되게 하려면 깊이가 있어야 하고 구체적 적용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할 때 실명제로 합니다. 구체적으로 합니다. 가끔 그것 때문에 말썽도 생깁니다만 이름을 그대로 거명하면서 확실하고 구체적으로 설교하고, 적용하는 것도 구체적으로 합니다. 그냥 애매한 설교를 하면 설교하기 위한 설교이지 가슴에 담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삶에 적용하고 변화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도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켜왔습니다. 아주 감사합니다. 세월이 갈수록 이 원칙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공동체 운동을 하면서도 공동체가 성공적으로 자라는데 있어서 이 네 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매주 제 설교테이프를 받아보는 분들이 있습니다. 국내회원이 15,000명, 해외 5,000명으로 2만 명이 테이프를 받아봅니다. 이익금은 북한선교와 장학금으로 씁니다. 사람들이 “목사님 설교는 쉬운데 한 번 듣고는 안돼요. 세 번, 네 번 들어야 되요. 들을 때마다 깊이가 있어요.” 라는 이야기를 가끔 듣습니다.

사실 저는 설교를 준비할 때 그것을 염두에 두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지만 내용이 깊이가 있어서 되풀이해서 들을 수 있는 깊이를 유지하려고 준비합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깊고 쉽게 하려면 책을 읽고 준비할 때 충분히 소화해야 하고 집중력이 있어야 합니다. 집중력을 가지고 깊이있게 소화해서 전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동역자들에게 참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스폰지 목회

저는 장신대 2학년이었던 서른살 때 청계천 빈민굴에서 교회를 시작해 이제 28년이 되었습니다. 한 우물을 판 것입니다. 잘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신 사명이라 생각하고 외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이켜보면 장단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부목사도 안해보고, 큰 교회에서 배우지도 않고, 신학교 학생 때 개척해서 지금까지 혼자 목회하니까 시행착오도 많고 문제도 가끔 있습니다.

한 3년 전에 성찬식을 거행하는데 한참 진행하다가 순서를 잊어버렸습니다. 떡이 먼저인지 잔이 먼저인지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럴 때 상식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이 먼저 잔을 돌려 목을 축이고 떡을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잔을 먼저 돌렸는데 예배 마치고 보니까 예수님은 반대로 했더라구요. 그래서 장로님들에게 “왜 그냥 두셨어요?” 라고 했더니 장로님들이 “우리는 새로 나온 법인가 했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한사람이 목회를 하니까 전교인이 제가 모르는 찬송은 다 모릅니다. 설교자에 따라서 선호하는 성경이 있잖아요. 28년 간 제 스타일 설교만 들은 겁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편식하게 된다는 것을 반성합니다. 그래서 내 생각 같으면 10년 단위로 교회를 한번씩 바꾸는 것이 좋겠다, 평생 10년 단위로 한 3개 교회 쯤 목회를 하면 좋지 않겠나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좋은 점은 한 교회를 10년 목회하고 나니까 목회가 기막히게 좋은 것이구나, 20년 지나니까 양(羊)이 뭔지를 알겠어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하셨는데 양을 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피부로 느끼겠더라구요. 교인들이 제직회나 당회를 하다가 무례하게 버릇없이 굴어도 20년 지나니까 엉뚱한 소리를 해도 귀엽고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스폰지 목회” 라는 말을 그래서 만들었습니다. 스폰지가 물을 받아들여 품고 있듯이 교인들이 악쓰고 버릇없이 구는 것을 탁구 치듯이 대하지 말고 다 받아들여 주어서 품고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다 받아들여서 묵묵하게 있는 것이 목회에 있어서 중요한 것입니다.

가끔 집회를 갑니다. 제 신학교 후배가 목회하는 교회에 집회를 하는데 후배 목사님이 강대상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목사 반대하면 저주 받을지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대상에서 말이 지나치다 싶어서 식사하면서 나무랐습니다. “그 말은 농담이지요?” 라고 했는데 “선배님, 왜 강대상에서 농담합니까? 진담이지요?” “아니 왜 저주를 합니까? 성령의 역사는 용서와 화해지 왜 저주입니까?” 그러니까 선배님은 요즘 교회를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서 고생은 했지만 목사님은 요즘 교회를 잘 모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길 잃은 양이라면 예배당에 나온 사람들은 길 찾은 이리떼입니다. 길 찾는 이리떼를 목회하려면 목사가 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예배당에 사자와 이리떼가 부딪히면 교회가 어떻게 됩니까? 내 생각에는 교인이 이리떼라도 목사가 양이 되어 잡아먹혀야 거기에 교회가 되지 이미 교회가 사라진 것 아닙니까?” 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그 교회가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가족들이 참 안됐어요. 처자식들 앞에서 교인들이 목사님에게 삿대질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목민목회

28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경험은 없고 의욕은 있어서 많은 실수를 했는데 언젠가부터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목회를 알만 하니까 목회를 처음부터 다시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저는 활빈교회를 떠나 다시 시작할 형편이 안됩니다. 교인들이 제가 사표를 내면 상대를 안해줍니다. “농담이겠지, 뭐 어디로 가겠어?” 라고 하면서 사표를 받지 않으니까 계속했는데, 한 3년 전에 구리시에 아파트 단지 5층 건물을 어떤 성도가 테이프를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두레빌딩이라고 등기해서 헌납을 했습니다. 그래서 창립 25주년 때 개척교회를 하나 하자는 결정을 내리고 지교회로 개척한 것입니다. 그게 2년 반 되었습니다. 구리 활빈교회를 시작하면서 내가 시작한 그런 목회관을 집중적으로 적용해보자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은 남양만에서 11시 예배 드리고 구리에서 4시에 예배를 드립니다. 지금은 한 600명쯤 모입니다. 처음부터 딱 계획하고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약점은 총괄적으로 말해 두 가지라고 합니다.

첫째는, 목회자들 내지 교회 지도자들의 신학적 혼란과 무지입니다.

목회자가 너무 양산되고 신학교육이 방향을 잃어버리면서 신학과정은 거쳤는데 신학훈련은 부족합니다. 졸업은 했는데 각자 알아서 몸으로 익혀야 합니다. 교단 구별 없이 보편적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신학적으로 혼란하고 무지한 것 때문에 개신교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둘째는, 교인들의 훈련부족입니다.

그래서 구리에서 개척교회를 하면서 이 점을 보완해 보자고 해서 지교회를 하면서 신학적 내용을 확실히 한 것입니다. 이런 내용을 가지고 이런 목회를 하겠다고 정했습니다. “목민신학” 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목민신학을 목회에 적용해가는 것을 “목민목회” 라고 하고 문서를 작성했습니다. 그리고 교인의 훈련부족을 개선하기 위해서 교인들을 철저하게 제자의 삶을 살도록 하는 훈련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창립예배인 3월 1일에 설교하면서 “이런 성경적 근거에서 신학을 바탕으로 이런 목회를 하겠다. 교역자들은 성경적, 신학적 훈련을 확실히 정하고 하니까 여러분들도 훈련을 받아야 한다. 다른 교회에서의 신분을 의자 밑에 내려놓고 초신자라고 생각하고 새로 시작하자.” 하고 설교했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인 훈련을 12시간 2회, 24시간을 받게 한 후에 시험을 치루었습니다. 60점이 안되면 재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시험은 집에 가서 해오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 보면서 집에서 시험을 쳐서 통과된 분들부터 등록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장로였던 분은 장로로, 집사는 집사로 부르면서 이전교회의 직책을 되살려드렸는데, 12시간을 마친 뒤에 둘러앉아 평가회를 했습니다. 소감이 어떠냐고 했더니 시내 어떤 교회 장로님이 눈물이 글썽이면서 “목사님, 저는 30대 중반에 장로가 되어서 20년 동안 장로를 했는데 예수 헛 믿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훈련을 받고 장로를 했으면 어땠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절대로 약화시키지 말고 훈련해야 한국교회가 제구실을 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자 다른 분들도 공감을 했습니다.

그 훈련교과서는 내부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전화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교회마다 사정이 다르고 자기 목회관이 다른데 확실히 검증되기 전에 책을 만들어 보급부터 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내부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순수하게 원칙을 지켜서 하자고 했습니다. 봉급체계부터 공동체성을 살려서 기본생활비를 똑같이 합니다. 사찰집사님까지 교회 전임일군의 기본생활은 동일합니다. 금년은 120만원입니다. 거기에 식구 1명당 10만원씩 더 붙입니다. 저는 170만원입니다. 그런데 우리 전도사님 중에 한 분은 애기가 3명이라서 나와 동일합니다. 그래도 너무 이상하게 치우치니까 목회비 50만원 포함해서 220만원, 부교역자는 목회비 20만원 등등 해서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이런 것은 작은 것이지만 교회를 새롭게 하는데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는 헌금이 기대 이상으로 많이 나옵니다. 교인들 얘기가 “우리 교회에는 헌금을 내는 것이 보람이 있습니다. 당회장부터 교역자들이 헌금관리에 투명하고 성경적 원칙으로 쓰려는 의지가 확고하니까 보람을 느낍니다.” 라고 말합니다. 물론 다 그렇게 말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무엇을 생각했는가 하면, 교회갱신을 위해서 미국에 있는 강사들을 데려다가 세미나를 하고 하는데 저는 고개가 갸우뚱 합니다. 우리가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의지가 없어서 못하는 건데 한국 백성들의 가슴을 뜨겁게 해서 이 땅에 교회다운 교회를 세워가는 것이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좀더 진실하고 좀더 정직하고 좀더 용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부터 고쳐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많이 만드는 것보다 교인들이 정말로 목회자의 삶을 신뢰해야 합니다.

 

바울의 목회

저는 일중독입니다. 어디에 가더라도 일이 모입니다. 동서남북에 일을 많이 깔아놓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내가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정은 모두 집사들에게 맡기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념했다고 하는데 내가 그 점에서 좀 빗나가 있다고 느끼고 일을 많이 줄이고 있습니다. 과감하게 줄이고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는 사도행전 6장의 목회로 되돌아가야 하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제가 일흔살 정년이 12년 남았습니다. 12년 남은 목회를 어떻게 마무리를 잘할까? 그래서 결론을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내렸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회를 따라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목회처럼 목회해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목회를 목숨을 걸고 했습니다.

저희 교회는 남양만 화성군에 있습니다. 교회 뒤에 소나무 밭이 큽니다. 지난번에 혼자 그 소나무 밭에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내가 30세에 활빈교회를 시작한 이래로 지금까지 빈민선교 할 때나, 정치범으로 감옥 갈 때나, 철거민을 데리고 갯벌에 올 때나, 공동체를 할 때나, 일관되게 전심전력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감사합니다. 이것 하다가 죽자! 여기에 무덤터 잡고 죽을 때 주민등록증 남기고 깨끗하게 가게 하신 것에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물론 과오나 실수는 많습니다. 그러나 한눈 팔지 않고 전심전력을 다했다는 것에 스스로 감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26절이 걸렸습니다.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내가 깨끗하니...” 에 걸리는 것입니다. 활빈교회 성도들과 활빈교회가 세워진 지역의 주민들의 피에 깨끗하냐 하는 것입니다. 큰 교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선교구역 안에 있는 영혼들의 피에 대해서 깨끗해야 하는데 이 점은 내가 너무 죄송스러워서 앞으로는 일 많이 하려고 하지 말고 가까이 있는 영혼들의 피에 대해서 깨끗한 목회를 해야겠다. 열매를 맺는 것은 그들의 문제이고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겠다. 목회범위를 좀 좁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 앞에 설 때 당당하게 큰일을 못했지만 내가 만난 영혼들의 피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31절 말씀처럼 앞으로의 목회는 이 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21세기 목회에 있어서 목회자들이 이 점을 회복해야 획기적인 기점이 세워진다고 생각합니다. “눈물로 각사람을 훈계한 것을 기억하라.” each person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회개하도록, 힘내도록 훈계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목회에 있어서 진면목이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의 질

저는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한가지 병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교회성장병” 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님을 왜 인정하고 따르느냐 하면 훈련입니다. 평신도들에 대한 존중입니다. 사랑의교회가 다른 교회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 하면 교회의 초창기부터 훈련을 강조했기 때문에 평신도 목회의 범위가 확장되어서 바람직하게 부흥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장신대 출신입니다만, 지난 봄에 장신대 재학생들이 한국교회 갱신에 대해서 토론을 열어 어떤 목회자가 바람직하냐 하고 토론했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 전도사님이 토론에 참여했다고 이야기하면서 토론의 결과로 두 사람이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선배로 한국교회의 희망의 조직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하면서 그 중에 한 분이 옥한흠 목사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후배들이 사랑의교회 목회를 인정하는 이유는 제자화와 평신도훈련을 통해서 바람직한 교회가 되도록 한 것입니다.

복음은 생명입니다. 생명이 확대되지 않는 것은 게으른 것입니다. 자식 못낳는 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개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원칙, 성도들에 대한 바른 훈련, 크리스챤다운 바른 삶을 통해서 교회가 부흥되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교회가 많다는 것입니다. 피터 와그너라는 분을 아시지요? 그가 지난 해에 “한국교회는 이제 벽에 부딪혔다. 한국교회는 이제 영적 전성기를 지났고, 별 볼일 없게 되었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세계교회의 희망은 중국과 브라질 교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얘기를 한참 생각했는데 두 가지 점에서 잘못 생각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대형교회를 보고 “한국교회가 잘 나간다, 감탄할 만하다.” 라고 소개하고 감탄하며 한국교회를 평가했습니다. 지금 그 점에서는 전성기를 지났고 흐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교회를 잘못 본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행사도 좋게 느껴지는 것이 교회갱신을 주제로 한 이런 수련회에 이렇게 많은 교역자들이 참여해서 뜨겁게 진지하게 모일 수 있다는 것이 한국교회의 깊이요, 가능성이요, 한국교회의 진면목이라는 것입니다. 특정교회 몇 교회를 보고 잘못되었다고 별 볼일 없다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관점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30대 목회자들이 진지하게 교회의 갱신을 위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부터가 한국교회의 저력이 나타날 때라고 생각합니다. 70~80년대에는 궤도를 벗어난 기간이었습니다. 그것을 반성하면서 2,000년대에 들어가면서 정말 양식이 있고 교회를 교회답게, 목회를 목회답게 하려는 목회자들이 전국에 깔려있기 때문에 한국교회를 정말 바람직하게 크게 쓰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줄서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단과 교파의식은 없어지고 신앙의 질을 따라 모이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신앙의 질이 삼분됩니다. 70~80년대를 거친 은사중심의 라인이 있고, 사회문제와 현실참여 쪽의 흐름이 있고, 복음적이고 성서적이며, 성경을 말씀으로 교인들에게 제자의 삶을 훈련시키는데 집중한 복음적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세 번째의 복음적 목회자들이 주류가 되어가고 있다고 보고, 시골에서 조그만 목회를 하지만 그 흐름에 한 자리를 차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질을 따라 줄을 다시 서는 것입니다.

저는 통합측에서 28년간 목회하면서 총회 총대에 한번도 못나갔습니다. 그리고 노회에 가보면 쓸데 없는데 열을 냅니다. 정말 한숨이 납니다. 보면 슬퍼요. 목회자가 정말 순수성을 잃어버리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순수한 것이 힘입니다. 정말 큰 힘입니다. 저는 정치적인데 관심이 있습니다. 지금도 저에게 정치하지 않고 시골에서 목회하느냐고 말합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교회 목회할 때는 절대 정치를 안합니다. 교인들 상대할 때는 절대로 정치적 수를 부리지 않습니다. 가끔 엉뚱한 성도들을 정치적으로 대하면 하루 아침밥도 안되지만, 참고 진실하고 순수하고 성령님이 역사할 수 있는 것으로 준비해야지, 이 삭막한 시대에 꾀로 살고 권모술수로 살아가는 이 시대에 교회까지 그러면 이 시대가 불쌍하지 않습니까?

 

통일을 준비하는 교회

저는 북한을 돕고 있습니다. 갈 때마다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 남북교회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은 종교집단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통일운동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북한 정권자체가 영적이기 때문에 바른 영으로서 통일운동도 하고 통일한국 시대는 교회가 이끌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김정일 생일 3일 뒤에 북한에 갔는데 숙소에서 TV를 켜니까 “김정일 장군님, 생신을 축하합니다.” 라고 하면서 대표적인 시인이 시를 낭독했습니다. 그걸 듣고 깜짝 놀라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염려스러웠습니다. “석가모니도 인류구원에 실패했고, 예수 그리스도도 인류를 구원하려고 십자가에 못박혔지만 실패하였다. 하지만 김정일 장군은 인류구원 역사를 효과적이고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계시도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국영TV 황금시간대에 그것을 방영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에 갤로퍼를 타고 들어가는데 5인 가족이 3일 먹을 수 있는 빵 50봉지를 넣고 갔습니다. 고개를 넘어가는데 안내인에게 “불쌍한 저 아이들을 태워줍시다.” 라고 했더니 자기는 모른 척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태워가는데 그 아이 동생이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힘들어서 어떻게 하느냐고 하니까 장군님이 계셔서 괜찮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 장군님이 동생 좀 살려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니까 그 옆에 있는 사람이 “김선생, 그만하시라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종교집단입니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서는 교회가 분발해야 합니다. 북한이 워낙 사이비 종교처럼 나가니까 교회가 분발해야 합니다. 우리 스텝이 2명씩 조를 짜서 국경지방에 지키고 있습니다. 산꼴짜기에 따뜻한 밥을 해놓고 탈북자들이 넘어오면 안전지대에 데리고 가서 돌봐주면서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러다가 잡혀가기도 하고 벌금을 물기도 합니다.

2년 전에 4명의 스텝이 13명을 모아서 중국을 관통해서 월남 하노이까지 데리고 가서 하노이에서 한국으로 데려왔는데 4개월 만에 그 작전을 마쳤습니다. 팀장이 보고하기를 “목사님, 이번 4개월간 탈북자 13명을 데리고 오면서 가슴이 참 아팠습니다. 통일이 되어가는 과정도 심각하지만 통일이 된 후가 훨씬 심각하다고 느꼈습니다. 13명이니까 방을 세 개 씁니다. 세 방에 흩어져 밥을 먹다가 수저를 들고 옆방에 갔다 오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자기보다 더 잘 먹나 보러가는 것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이 그 체제 속에서 심령이 상한 것입니다. 상한 심령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중국은 빵을 많이 먹으니까 13명과 일꾼 4명이 빵을 구하면 자기 양을 넘어 3~4인분을 안고 썩을 때까지 보관하는 것입니다. 다음에도 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통일 이후에 북한동포의 일그러진 상한 심령을 누가 치유하겠습니까? 정치가들이 하겠습니까? 나는 우리나라 정치가들은 치료받아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정주영씨가 이윤을 생각하지 상한 심령을 치유하겠습니까? 교회가 치유해야 합니다. 교회가 남한 백성들은 물론이고 북한동포들까지 복음의 능력으로 치유하겠다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걸 준비하지 못하면 교회가 사명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백성들에 대해서 바른 목회를 하기 위해서 남한 교회부터 뼈를 깎는 진지함을 가지고 순순해지고 성경적이 되고 목회자들이 정말로 바른 신학, 바른 목회관을 가지고 바르게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갱신에 대해서 각자 자기 목회지에서 철저하게, 진지하게,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의 자기관리, 가정관리

이런 일들을 하려면 목회자의 자기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달에 우리 두레마을 교회에서 제 딸이 결혼을 했습니다. 스물네살 딸입니다. 교인들이 다 우는 것입니다. 목사 딸이 결혼하는데 왜 우느냐고 했더니 두살 때 헤어졌던 딸이 지금까지 헤어져 있다가 이번에 결혼하러 처음 온 것입니다. 결혼 만큼은 아버지 앞에서 하자고 하면서 두레교회에 와서 결혼을 한 것입니다. 저는 감개무량했습니다.

목회자의 자기관리, 가정관리에 대해서 강조하고 싶어서 그런 것입니다. 목회하는데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아요. 자기 가정 돌보고, 건강관리도 하고 너무 열심히 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보다 더 열심히 하기 때문에 사모님이 상처입고 아이들이 방황하고 아주 힘들어지게 됩니다.

제가 15년형을 받고 감옥에 갔는데 15년 징역 다 사는 줄 알고 징역을 사는데 실제 13개월 살고 석방되었습니다. 13개월 만에 석방되어 나오니까 10일 뒤에 아내가 “미국 이민 갑시다. 안가면 이혼해주세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5개월을 설득했는데 남매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버렸어요. 저는 정치범이 되어서 미국에 가볼 수도 없고, 여권도 안나오는 것입니다. 기도만 하는 것입니다. 일체 연락이 없더니 6년 3개월 지난 후 엽서가 한 장 왔는데 내 주소만 쓰고 뭐라고 하느냐 하면 미국에서 재혼하고 가정도 안정되었습니다. 애들도 새아빠를 좋아하고 안정되게 살고 있으니 그 쪽도 알아서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뒤로 저는 아내는 잊어버리려고 하고 애들을 위해서는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 되어서 지켜주십시오. 두레마을을 해도 부모없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기도실에서 기도했습니다. “저는 두레마을에서 이 아이들을 잘 돌볼 테니까 미국의 아이들은 주님이 도와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는 줄은 교인들도 몰라요. 그런데 미국에 갈 수 있는 신분이 되어서 첫 번째 미국에 갈 때부터 비행기에 앉으면 “예수님, 이번에 미국에 가서 아들딸 좀 만나게 해주세요. 미국이 넓은 나라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애들 찾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는데 미국 땅에서 남매를 찾을 수가 없어요. 뉴욕에 있다고 했지만 보지 못했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되돌아올 때 비행기가 떠나는데 가슴이 아프고 몸에 열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13년 8개월 되었을 때, 성탄절을 3일 앞두고 전보가 왔어요. “감옥에 있을 때 낳은 딸 은송이가 아파서 병원에 있으면서 아버지를 찾으니 오시기 바랍니다.” 라고 전보가 왔어요. 성탄예배를 드리고 바로 미국으로 갔는데 플로리다 올랜도의 관광도시에 내려서 비행장에서 택시 타고 병원으로 직행했습니다. 거기서 엄마를 만난 거예요. 날 보더니 애 만나기 전에 내 얘기를 듣고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병이 들었는데 오진해서 병을 키워서 학교에서 졸도했는데 중환자실에서 헛소리하면서 서울 아버지만 찾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버지와 애들 사이를 가로 막았구나 라고 생각하고 중환자실에 있는 아이가 잘못되면 안되니까 전보를 쳤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나 데리고 창경원 가서 아이스크림 사준 것 기억하세요? 내가 기억하는 것이 아니고 새아빠가 상처를 주면 오빠가 날 데리고 가서 서울 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들 동혁이 보고 “왜 기뻐하지 않니?” 라고 물으니까 그들도 태평양을 보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 학생회 회장이에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우리 친구들이 저에게 묻기를 김진홍 목사 아냐? 하고 묻는 거예요.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아버지라고 말할 수 없어서 고개 숙이고 가만히 있었지요.”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까 한국에서 좋은 일은 내가 다하는 것처럼 전국을 헤매면서 다녔는데 내 아들 딸은 미국 땅에서 한숨 쉬고 상처받고 흑인촌에서 왕따 당하고 살았구나 생각하니 아주 정신이 없어요. 내가 의욕이 꺼지면서 20년을 해온 일이 무슨 일인지 하루아침에 흔들렸습니다. 제가 호텔에 가서 침대커버를 벗겨 덮어쓰고 혼자 울면서 “예수님, 나 가서 활빈교회 당회장 사표 내고 미국에 와서 애들 아버지 노릇해야 하겠습니다. 14년이 되도록 아버지 노릇 못한 저를 이해하시겠지요? 제가 내일 아침에 비행기 타고 가서 문 닫고 넘겨주고 미국에 와서 세탁소를 하든지 식품점을 하든지 애들 데리고 아버지 노릇하겠습니다.” 라고 결심했는데 아침 새벽기도 시간에 성경을 펴고 열왕기상 19장을 읽었어요. 묵상하면서 마음을 돌렸어요. 지난 세월 어떻게 살아왔는데 지금에 와서 그런 마음을 먹겠느냐? 열왕기상 18장에서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마른 하늘에 비가 오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물리치고 이겼는데 한 목숨 구하려고 사막으로 도망갑니다.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 네가 죽을 차례라는 말 한마디 듣고 도망갔는데 로뎀나무 그늘 밑에서 열왕기상 19장 3절에 죽기를 구했지만 하나님은 떡과 물을 주시고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날 아침에 내가 엘리야 같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떡과 물 한 병으로 상을 마련하시고 내게 “힘내라. 지금 와서 주저앉으면 되겠느냐?” 라는 음성을 듣는 것 같았어요. 떡은 말씀입니다. 물은 성령님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위로하심으로 내 영혼을 위로하시고 “김진홍 목사야, 말씀의 능력과 성령님의 위로하심으로 네가 힘내라. 앞으로 네가 할 일이 많다.” 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스케줄 잡고 미국으로 가서 3일 정도 지냈는데 그 아이들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광야가 끝나고 가나안이 보이는 것 같다.” 고 말해주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14년 만에 막혔던 하수도가 뚫리는 것 같았습니다. 성령님이 다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내 힘이 전혀 미치지 못했는데 감사했어요. 그리고는 제가 아버지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아파트도 얻어주고 생활비도 보내주는 것입니다. 그 후에 제가 갔는데 선물이 있다고 종이 한 장을 주는 거예요. 둘 다 전과목 A학점이에요. 아버지 만나기 전에는 학비가 없어서 접시도 닦고, 한 학기 공부하고 한 학기 일했는데 이제 학비 주시니 공부하자고 해서 성적이 잘나와서 선물로 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는 아무리 목회가 중요해도 가정을 함께 돌보면서 아버지 노릇 남편 노릇도 제대로 하면서 목회하는 것이 하나님 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절제하라고 했습니다. 좋은 일에도 절제해야 하고 하나님 일에도 절제해야 하고 가정을 잘 다스려 Home Ministry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너무 열심히 해버린 것입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벽에 부딪혀 얼마나 상처를 남기고 가슴아파 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성령님께서 때를 따라 은혜를 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제가 7년을 혼자 있다가 가정을 이루었는데 개신교는 독신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심방할 때, 병들었을 때 문제예요. 7년 있다가 가정을 이루었기 때문에 애들이 어립니다. 아들 둘을 낳았는데 제가 미국 처음 다녀온 때가 아이들이 5학년, 3학년이었어요. 그 아이들에게 내가 너희 형, 누나 만나러 갔다고 했더니 형제가 놀라서 3학년 짜리가 “아버지, 우리는 첩의 자식이야?” 라고 하는 것입니다. 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 “당신이 협조를 해야지.” 했더니 집사람이 입이 쑥 나와가지고 “자기가 저질러놓고 나보고 딴소리는 ... ” 하는 것입니다. 애들에게 설명할 길이 없어요. 참 난처해요. 어린 애들에게 어떻게 설명합니까? 그때 남미 4개국을 집회하기로 계획이 되어있었는데 집회 3일 전에 “강사를 취소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정환경이 바람직하지 못하고 복잡하다고 해서 강사를 취소한다고 적어서 팩스가 왔어요. 비인격자라는 소문 때문에 일년에 1~2번 정도 집회가 취소됩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집회를 와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둘 데리고 가정목회를 잘해야 하겠다고 해서 유럽으로 갔습니다. 유럽에 성 베드로 성당이 있습니다. 거기에 베드로 동상이 있습니다. 그 발가락에 입맞추고 기도하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전설이 있어서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입맞추고 기도하려고 줄을 섰는데 초등학교 5학년, 3학년, 집사람, 나 이렇게 섰는데 5학년 짜리가 기도하는데 “나는 아버지처럼 두 번 결혼하지 않게 해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동역자들 앞에 이런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목회가 다 자기 생각대로 됩니까? 저는 자기 생각대로 되는 것이 몇 가지 없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례되는 말씀이지만, 대학교 때 성적이 좋았습니다. 스트레이트로 1등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철학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영접하고 은혜받고 장신대 갈 때는 제가 교만했어요. 신학을 하는데 일류 목사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갔는데 신학교 2학년에 빈민촌 들어간 지 28년에 일류목사는 어디 갔습니까? 문제가 생기고 흠이 생겨 목사 중에 겨우 뒤따라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낙심하고 목회를 등한시 하고 기가 죽을 것인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잘하려 했는데 잘 안되어도 기죽거나 포기하거나 물러설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뎀나무 그늘 밑에 있는 엘리야를 위해 떡과 물을 마련해 주셨듯이 우리를 주님이 인정해주시고 기뻐해 주시니까 말씀과 성령의 위로를 힘입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목회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하려고 하다가 잘못되었지만, 열심히 했는데 허물이 생기고 과오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할수록 주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자들이 성공사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공한 사람들대로 하면 됩니까? 다 그렇게 성공하지 못합니다. 자기 한계가 있고 아픔이 있고 벽에 부딪히지요. 다 성공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입니다. 무능한 목사입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베드로는 한번에 3,000명이 돌아왔지만 다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충만 해서 베드로보다 더 좋은 설교를 했는데 3,000명이 돌아오지 않고 돌 3,000개 날아와 죽어 버렸습니다. 다 큰 교회 가면 작은 교회는 누가 지킵니까? 큰 교회가 몇 개나 됩니까? 이 집회에 오는 강사는 한국교회에서 10명 내외 입니다. 골짜기에서 7명 두고 인생을 거는 목회자도 하나님은 지금도 위로하고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목회자들의 실패 속에서, 가족들의 슬픔 속에서 주님은 영광을 받고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헌신할 때, 그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있는 자리에서 진실하게 시작하면 결국 우리를 사용해서 한국교회를 갱신시키시고 이 눈물 많은 백성들의 눈물과 한숨을 성령께서 깨끗이 씻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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