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08/23) 교갱협 제4차 영성수련회 개회예배

이사야 6장 1~8절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의 연기가 충만한지라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의 기도

이사야는 답답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특별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든지 그것 때문에 특별기도를 하게 되면 그 기도대로 응답이 되든지 안되든지 간에 우선 하나님께서 보너스를 주시는데 그게 무엇이냐 하면 은혜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종들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사람을 찾아가고 인간의 방법을 찾고 고민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신 사인으로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고 안되고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우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자에게 주시는 보너스는 은혜를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으면 능력도 받게 되고 은사도 받게 되고 그러다가 보면 큰 종이 됩니다. 문제가 그냥 있어도 상관없습니다. 문제가 나중에 해결이 되긴 합니다만 문제가 해결이 안되어도 괜찮습니다.

 

시험이 곧 부흥이다

저는 수영로교회를 개척한지 24년이 조금 넘었는데 시험이 종종 옵니다. 시험이 자꾸 오면 기도하라고 하신 사인인 줄 알고 아예 교회에 가서 밤새도록 강단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기도하다 보면 은혜를 받고, 은혜를 받고 나서 보면 능력이 생기고, 그러고 나면 그 시험이 어떤 때는 인사도 안하고 재빨리 가버립니다. 언제 없어졌는지 없어집니다. 그러고 나면 교회가 부흥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시험이 오면 반갑게 느껴집니다. “또 은혜받을 때가 왔구나!” “또 교회가 부흥 되려고 하는구나!” 그래서 교회에 어떤 시험이 와도 겁이 안납니다. 왜냐하면 결과는 뻔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역사의 시작은 회개이다

이사야는 나라 걱정을 하면서 특별기도를 하다가 큰 은혜를 받고 큰 사명을 받게 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래서 이사야는 능력있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일을 하게 됩니다.

어떤 선교사님이 간증을 하는데 선교사가 되기 전 평신도로 있을 때 아프리카를 위해서 특별기도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어느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가라” 그러셨답니다. 아프리카의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이 사람에게 “네가 가라!” 아프리카의 영혼을 사랑하는 그 사람더러 선교사로 가라고 말씀하셔서 자기가 아프리카의 선교사가 되었다고 하면서 함부로 기도하지 말라고 합디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프리카 선교를 맡기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사야는 이렇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다가 은혜받고, 능력받고, 사명받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충성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는 특별기도를 하는데 영안이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를 특별히 보게 되었는데 하나는 1절에서 4절까지 하나님의 보좌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보좌, 천사들이 찬양하는 모습과 그 빛나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를 보게 되었는데, 자기 자신의 입술이 얼마나 부정하고 악했는가 하는 자기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를 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자신을 똑바로 깨닫고 회개한 이사야에게 하나님은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때 보면 언제나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영안을 밝혀 주시면서 먼저 깨닫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내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렇게 되면 회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성령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성령의 역사의 시작은 회개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회개를 시작을 하면 마음이 겸손해지고, 겸손한 만큼 더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제가 부흥집회를 인도할 때도 보면 회개역사가 일어나면 성공하는 겁니다. 이번 수련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가운데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면 은혜받는 집회가 될 것입니다.

제가 포항의 큰 교회에서 집회를 할 때입니다. 월요일 시작을 해서 화요일 낮공부 시간인데 뒷자리에서 사람이 자꾸만 왔다갔다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저렇게 왔다갔다 하나 하고 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 교회 장로님이셨습니다. 그 분이 장로님들 중에 아주 골치덩어리였다고 합니다. 누구 말도 듣지 않았다고 합니다. 십일조도 안하고, 주일성수도 안하고, 누구 말도 듣지 않는 것이었니다. 그래서 그 교회 장로망신은 그 분이 다 시키는 거고, 그래서 그 교회가 골치를 앓는 것이었습니다. 안하무인으로 양심도 없고 아주 골치거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분이 첫 시간에 깨졌는지, 그 다음날 새벽에 깨졌는지 모르지만 깨져서 감사헌금을 300만원인가를 했는데 왜 왔다갔다 했는가 하면 돈이 너무 많아서 부목사님한테 맡기고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십일조 떼어먹은 것 다 갚겠다고 부목사님께 말했다고 합니다. 담임목사님과 식사를 하면서 말하는데 그 장로님이 깨졌다고, 그 장로님이 회개했다고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면 성령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회개가 사명을 깨닫게 한다

그 다음에 깨닫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입니다. “나같은 인간은 죽었어야 하는데… 나같은 인간은 저주를 받았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은혜를 베푸셨구나!” 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되는데 눈물이 쏟아지고 얼마나 감사한지 찬양이 저절로 나옵니다.

집회를 인도하다 교인들이 얼마나 은혜를 받는가를 알 수 있는 것은 감사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가 작아도 은혜를 받으니까 감사헌금이 얼마나 많이 올라오는지,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결심하고 헌신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명을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는 만큼 변화된다

이렇게 깨닫는 역사 다음에 따라오는 것은 변화되는 역사입니다. 깨닫는 만큼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사야가 자기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니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실수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성도들을 깨닫게 하는데만 관심을 가지고 자기 자신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받아야 한다고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자신이 은혜받아야 한다는 것은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먼저 내가 깨달음이 있으면 성도들은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깨달은 목사가 깨달은 말씀을 전하면 성도들은 저절로 깨닫습니다. 내가 먼저 은혜를 받으면 은혜를 받은 나를 통해서 성도들은 저절로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가 자꾸만 교인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먼저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은혜를 받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생각은 고쳐야 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갈 때면 그 교회가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물론 그것도 생각합니다만, 그보다 “이번 부흥회에 내가 은혜받게 해주세요. 나에게 은혜를 주세요.” 하고 기도합니다. 얼마나 중요한 기도인지 모릅니다.

우리 아들이 학생들 부흥회 할 때 찬양인도를 한다고 하면서 “아빠 이번 부흥회에 제가 찬양인도를 맡았습니다. 기도해주세요.”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기를 “너는 찬양인도를 잘하려는 것보다 그 집회에서 네가 제일 은혜받기 위해서 힘쓰고 기도해라.” 라고 말했습니다. 그 집회를 우리 큰 딸이 뒤에 앉아서 보았는데 집회가 끝나자 찬양을 시작을 해서 한시간 이상을 찬양을 하는데 아주 굉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찬양인도를 하는데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하고 계속 주님이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래서 그 감격 속에서 찬양인도를 한 것입니다.

제가 중국에 가서 한 2만명 모인다는 교회인데 집회를 인도할 때 통역을 세워놓고 하니까 참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원고도 없이 간단간단하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이 중국인들이 다 울었습니다. 저는 안 우는데 다 울었습니다. 그래서 참 이상하다 생각을 하고 집회 후에 차를 마시면서 중국 목사님들과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알고 보니 이 통역을 하는 분이 의사인데 통역을 하다가 불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자기 평생에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너무 감격해서 울면서 통역을 했는데 설교자보다 통역이 더 은혜로웠습니다. 계속 울면서 통역을 하니까 전체가 다 울었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거기에서 굉장한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집회를 인도할 때 통역하는 사람보고 “당신이 은혜를 받으면 다 은혜를 받을 것이고, 당신이 은혜를 못 받으면 은혜받기 다 틀렸다. 그러니 통역 잘하려고 힘쓰지 말고 은혜 받으려고 힘써라.” 그랬더니 이 통역을 맡은 선교사가 금식기도를 했는데 정말 일본 목사님들도 은혜를 받아서 첫 시간부터 울기 시작하더군요.

우리가 성도들이 은혜받는 설교를 하려고 하면 내가 은혜받고 내가 충만하도록 노력하기만 하면 그 성도들은 은혜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변화된 만큼 능력이 임한다

이렇게 이사야가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고, 변화되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능력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변화된 만큼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는 큰 능력을 받으면 그 능력이 내 것이 되는 것처럼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를 사용하여 주실 때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이지 그 능력은 결코 나의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능력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타나는 것이지 내 맘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이 능력이 많이 나타날 때는 죽은 자까지도 살리는 굉장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디모데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 포도주를 써라.” 얼마나 나약한 소리입니까? 뭘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바울이 쓴 능력은 바울의 것이 아닙니다. 바울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능력을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 쓰실 때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능력을 나타내시면 그 때 우리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그 때 우리는 능력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목회능력은 학력이 아니다

일본에 제가 자주 가서 일본 목사님들을 위한 세미나를 합니다만 일본 목회자들이 공부를 많이 합니다. 연구도 많이 합니다. 하여튼 교회성장을 위한 것이라면 모든 걸 다 연구하고 적용을 해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렇게 이렇게 해서 부흥되었다. 그러면 그걸 다 가지고 가서 적용을 해보는데 안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교인이 줄었습니다. 무얼 가져다가 해보아도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교역자 수련회를 인도하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교회 부흥은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부흥되는 것은 교역자가 먼저 변화가 되어야만 부흥이 되는 것이지, 교역자에게 변화가 없는 한 절대로 부흥은 안된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교역자들이 변화해야 되지 그렇지 않으면 소망이 없다고 저는 그것을 아주 강력하게 강조합니다. 결국 문제는 나에게 있다는 겁니다. 내가 은혜도 못받고 변화도 안되었는데 어떻게 교회가 부흥이 된다는 것입니까? 그걸 깨닫고 일본 목회자들이 많이 웁니다.

교역자의 목회능력은 학력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은 목사가 학벌이 좋으면 교회가 부흥되는 줄 알고 교인은 10~20명도 안 모이는데 밤낮 공부만 합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공부 많이 했다고 목회를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벌에 자신이 없으신 분들은 고민에서 해방되시기를 바랍니다. 무디 같은 사람은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퇴를 했다고 합니다. 설교를 할 때 언어구사 능력이 없고 발음도 제대로 못해서 설교를 하고 나오면 항상 지적을 당하곤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디가 대부흥사가 되어서 그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100만 명이 넘습니다. 목회능력은 학벌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무슨 감투를 쓰고 직함이 많다고 해서 목회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학교 교수라고 해서 목회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총회장이라고 해서 목회를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몇 년 전에 하와이에서 목회자들 D.T.S를 처음 시작할 때 참석을 했었는데, 그 때 나이 많은 미국인 부부가 스텝으로 봉사를 했습니다. 그 분은 평생 교수생활을 했고 학장으로 정년이 되어서 은퇴하신 분인데 나이 많으신 분이 뒤늦게 하와이에 와서 D.T.S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은혜를 받고 아예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하와이에서 그 훈련 받으러 오는 사람들을 돕는 스텝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심부름을 다 해주고 있습니다. 그 분에게 한시간 강의할 수 있도록 했더니 자기는 평생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하나님의 종을 길러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는 머리로만 하나님을 알았지 가슴으로 하나님을 느껴보질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뒤늦게 하와이에 와서 D.T.S 훈련을 받을 때 가슴으로 뜨겁게 느끼는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조금만 더 젊었을 때 은혜를 받았더라면 40~50년 동안 그 제자들을 잘 길러냈을 텐데…” 하시면서 간증을 하는데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부산에 외국어대학교가 있습니다. 교목을 한 명 뽑는다고 하면서 저보고 뽑아달라고 그래서 이력서를 보니까 프린스턴 박사, 웨스터민스터 박사, 하여간 미국의 유명한 박사들이 많고 가장 낮은 분이 석사입니다. 지방대학교의 교목자리를 놓고 그런 쟁쟁한 사람들의 이력서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 중 몇 명의 설교테이프, 강의테이프를 보내달라고 해서 들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최종적으로 이사장님과 총장님과 제가 일일이 한 명씩 구두 시험을 치렀습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 앞에서 설교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결국에는 한 명도 없어서 안 뽑았습니다.

교역자의 목회능력은 오직 성령으로부터 오는 줄 믿습니다. 교회의 문제는 교역자가 은혜받고 변화되어야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느냐는 것보다 내가 어떤 인간이냐가 문제입니다. 내가 어떤 감투를 쓰고, 노회에서, 총회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보다, 내가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에게 평가를 받는다

(1) 인간적인 면을 평가받는다

교역자는 교인들에 대해서 인간적인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함께 지내보면 지내볼수록 느껴지는 인간적 평가가 참 중요합니다. 강아지도 주인 가족들에 대해서 인간적 평가를 합니다. 그래서 주인가족이 나가고 들어갈 때마다 냄새만 맡아보면 저 인간은 어떤 인간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좋은 인간이 나가거나 들어오면 꼬리를 치고 좋아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이면 가만히 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잘 압니까? 강아지도 자기 주인가족의 인간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데, 교인들이 왜 교역자의 인간적인 평가를 못하겠습니까? 다 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에 다닐 때 교수님들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교역자는 유리집 속에서 사는 것과 같다.” 교인들이 그만큼 다 안다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교역자들에 대해서 어떤 인간적 평가를 하느냐? 우리 목사님이 은혜받은 사람인가? 그것은 교인들이 잘 압니다. “우리 목사님은 교역자는 되었어도 은혜는 안받은 것 같아.” 특별히 사모님이 잘 압니다. 속일 수가 없습니다. 교인들이 생각할 때 우리 목사님은 은혜롭지도 않고, 은혜받지도 않았고, 그렇게 평가가 된다고 하면 그 교회가 부흥이 되겠습니까? 교인들이 은혜를 받겠습니까?

(2) 성품을 평가받는다

또 교인들은 우리 목사님의 성품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서도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같이 지내면 지낼수록 좋은 분이라고 한다면 그 교회는 부흥될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목사님이 좀 좋지 않게 느껴진다면 그 교회는 희망이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 자신이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3) 열심을 평가받는다

세번째는, 우리 목사님이 얼마나 충성하시는 분이고 얼마나 목회에 열심이 있는지 거기에 대해서 교인들은 굉장히 관심을 가집니다. 교역자들은 대개 1~2년은 열심히 합니다.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하는 열심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조금 지나봐야 압니다. 목회라고 하는 것은 1~2년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평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내면서 우리 목사님이 얼마나 충성스럽고 열심 있는 분인지 교인들에게 어떻게 평가를 받느냐가 중요합니다.

(4) 교회사랑을 평가받는다

네번째로는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 여기에 대해서 교인들이 관심이 많습니다.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랍니다마는, 교인들이 교회를 사랑하게 만들려면 교역자가 먼저 교회를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교인들도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교인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교회를 죽도록 사랑하면 교인들도 그것을 본받고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교역자가 교회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교인들이 교회를 사랑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희생하는 겁니다. 종은 울리기까지는 종이 아니고, 사랑은 베풀기까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교역자가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는가를 희생을 통해서 보여줄 때 교인들이 감동을 받고 교회를 사랑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5) 신뢰를 평가받는다

또 얼마나 믿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도 거짓말을 잘해서 믿지 못하게 된다면 교회 꼴이 뭐가 되겠습니까? 목사님 하시는 말씀은 틀림없다고 인정이 되면 그 목사님은 존경을 받고 교회가 잘될 줄 믿습니다.

(6) 실력을 평가받는다

또 목사님이 얼마만큼 실력이 있는 분인가 교인들이 잘 압니다. 학벌이 얼마나 좋으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 성경을 얼마나 깊이 알고, 실력이 있는지를 잘 압니다.

(7) 비전을 평가받는다

또 목사님이 꿈이 있는 사람인지, 꿈이 없는 사람인지, 교인들은 관심 있게 그것을 봅니다. 목회자들이 현상유지나 하려고 하고, 교회성장에는 관심이 없고 돌아 다니는 것 좋아하고, 여행하는 것 좋아하고...

 

좋은 목사라면 어디든지 좇아간다

여러분, 성도들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목사가 되어야지 성도들이 싫어하는 목사가 되면 결국은 교인들이 떠나든지, 목사를 내쫓던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싫어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제가 서울의 어떤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는데 그 교회는 장로님 가운데 한 분이 속초에서 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진주에서 온다고 합니다. 인천에는 수 백 세대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장로님께 “오고가고 은혜 받으시죠?” 그랬더니 그렇다고 합니다. 날씨가 안좋을 때는 토요일에 미리 온다고 합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가 속초, 진주, 수원, 인천 할 것 없이, 그러니까 수만 명이 모이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정말 좋은 목사라면 어디든지 따라 갑니다. 그러나 싫어지면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안됩니다.

 

성품을 회개해야 한다

(1) 악독한 성품을 회개해야 한다

우리 교역자들에게는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타락된 성품을 회개해야 됩니다. 문제는 성품입니다. 특별히 악독한 성품이 남아있으면 안됩니다. 말씀 전하다가 순교해야 할 하나님의 종이 착한 성품이 있어야지, 목사가 그렇게 악독하면 됩니까?

어떤 교회는 재직들이 놀러가면 개를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번은 개를 때려 잡다가 놓쳤습니다. 교인들은 미친개한테 물리면 큰일나니까 포기했는데 목사님은 기어코 따라와서 잡아죽여서 개고기를 먹었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교인들이 무엇을 느꼈을까요?

어떤 목사님은 깡패 기질이 있어서, 재직회의 반은 자기 편, 반은 반대 편이라 재직회를 하면 반대패들이 무조건 반대를 해서 뭐 하나도 결정을 할 수가 없어서 목사님이 너무 화가 나서 “이 새끼들 죽어!” 그 순간에 그 목사님 편이 다 없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쫓겨나서 목회를 못합니다. 아니 그런 성질을 가지고 무슨 목회를 합니까? 그 목사님은 사모님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모릅니다. 사모님이 싫어하는 목사를 교인들이 좋아하겠습니까?

(2) 불의한 성품을 회개해야 한다

또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성품은 의롭지 못한 성품, 불의하는 성품입니다.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삐딱하게 되어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 불의한 짓을 하는가 하냐면 대부분은 욕심 때문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불의한 짓 하다가 목회자의 말년이 비참해진 사람 많습니다. 어떤 분은 명예욕에 눈이 어두워서 불의한 짓을 하다가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못받고 비참해진 목회자도 있습니다.

(3) 거짓된 성품을 회개해야 한다

또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성품은 진실하지 못한 성품입니다. 신앙은 진실이 없으면 끝난 것입니다. 거짓된 성품, 위선적인 성품을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아주 경건하게 사는 것 같은데 얼마나 철저하게 위선자인지 사모님이 머리를 흔듭니다. 날마다 강단 위에서 살다시피 합니다. 그런데 사모님은 아예 머리를 흔듭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이중적입니까? 순수하지 못한 것, 위선된 기도와 행동, 솔직하지 못한 성품, 모두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다윗이 왜 그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까? 다윗에게는 일평생 정직함이 있었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은 것입니다.

(4) 교만한 성품을 회개해야 한다

또 겸손하지 못한 성품, 교만한 성품을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실력이 대단한데 목회를 못합니다. 알고 보니까 교만합니다. 자기보다 더 실력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생각이지 교인들도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 교만한 생각 때문에 목회가 안됩니다. 저는 굉장히 교만한 목사였습니다. 그래서 겸손해져 보려고 굉장히 애를 썼습니다. 겸손하게 말하고 행동하려고 애를 썼는데도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마다 내가 교만하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교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무엇을 보면 아는 줄 압니까? 사람들을 보면 허물만 보이는 사람은 굉장히 교만한 사람입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판단하게 되고, 비판하게 되고, 정죄하게 되고, 알고 보니까 그것이 교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왜 저 목사는 저 모양이냐, 그렇게 해봐라 목회가 되나 하고 정죄했었습니다. 그게 아주 무서운 교만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얼마나 책망을 하시는지 겸손한 자는 자기 자신의 허물을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면서 자기 자신은 그보다 몇 배로 더 악독하고, 더 불의하고, 더 위선적이고, 더 음란하고, 더 부족하기 때문에 감히 판단하고 비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교만한 인간은 자기 자신은 완벽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는 남들만 비판하고, 한국교회가 어떻고, 목사가 어떻고, 아주 교만할 때 그런 소리를 합니다. 저는 아주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 손해를 많이 봤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남들을 비판하고 깍아내리게 됩니다. 이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얼굴에서 거부감이 나타나서 이상하게 교만한 사람 얼굴은 보기가 싫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판단하고 있고, 그 사람이 나를 비판하고 있고, 그 사람이 나를 정죄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은 누가 봐도 거부감이 생깁니다. 굉장히 중요한 사실입니다.

성도들 중에 거부감이 나타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 사람을 위해서 그 얼굴에서 거부감이 없어질 때까지 특별기도를 합니다.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그 집사님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주세요.” 그러고 나면 자백을 합니다. “저는 목사님에게 섭섭했어요.” 그러면서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몇 년 전에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좋은 교역자들을 만나게 해주세요. 제가 그런 기도를 한 다음부터는 훌륭한 목사님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그런 뒤로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교만할 때는 그런 기도는 안하고 밤낮 비판만 했습니다.

(5) 너그럽지 못한 성품을 회개해야 한다

다섯번째는, 너그럽지 못한 성품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너그럽지를 못합니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사람들이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지만, 예수님이 죄없는 자가 돌로치라고 말씀하실 때 다 도망을 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의 인자하심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수가성 여인을 누가 사람 취급이나 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만나기 위해서 우물가에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수가성을 구원하는 일에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우리 목회자들은 자기 자신에게 대해서는 철저해야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 대해서는 너그러워야 되는데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이 많습니다. 저는 주님 앞에 책망을 들은 것 가운데 하나가 “왜 자꾸 판단하고, 비판하느냐? 너그러운 아버지의 마음으로 저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없겠니? 저들을 안아줄 수 없겠니? 저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줄 수 없겠니?” 라고 저에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도 너그럽지 못한 목사였음을 깨닫고 회개하고 그 다음부터는 저희 노회의 생각만 해도 안좋은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끌어안는 상상을 하면서 기도하다 보니까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 분들과 좋은 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6) 사랑이 부족한 성품을 회개해야 한다

특히 우리가 회개해야 할 것은 사랑이 부족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이 미움이라는 것은 악령을 끌어들이기 때문에 우리 마음에 미움이 생길 때마다 내가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철저히 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처음 개척을 했을 때 미운짓을 하는 성도가 많았습니다. 그 미운짓을 하는 성도를 보면 설교를 하다가도 나도 모르게 내리치게 되고 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듣지도 않고 엉뚱한 사람이 듣고 상처를 받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교회부흥을 가로막는 방법이 목사로 하여금 자꾸 화나게 만드는 겁니다. 사탄의 전술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미운사람이 생기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하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사람들이 다 변합니다. 결국은 그 사람들도 저를 사랑합니다.

목회를 하면서 제일 보람이 있었던 것은 개떡 같은 성질의 사람들이 다 변화된 것입니다. 그것이 제일 행복합니다. 우리교회에도 싸움꾼이 있습니다. 하여튼 그 사람하고 싸웠다가는 본전도 못찾습니다. 그런 사람이 변화가 되어서 지난 주에도 맨 앞줄에 앉아서 은혜를 받고,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과일 한 상자를 들고 왔습니다. 목회의 행복이 그 변화에 있습니다.

목회를 하는 가운데 성공의 비결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것을 3단계로 나누어 보겠습니다. 1단계는 열심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해야 합니다. 열심히 없으면 소망이 없습니다. 2단계는 은혜입니다. 열심은 있는데 은혜가 안되고, 심방을 해도 은혜가 안되고, 그러면 목회는 성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은혜가 안되면 아무것도 안되는 것입니다. 3단계는 사랑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성도들을 사랑하고, 정말 그렇게 사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저는 저희교회 장로님들을 정말로 사랑합니다. 저희 교인들을 정말 사랑합니다. 그런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강단에 서서 설교하면 보기만 해도 좋아합니다. 우리교회는 주일에 9번 예배가 있어서 제가 많이 피곤합니다. 그러면 저희 장로님들은 저보고 당회에 들어오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는 당회서기가 와서 “목사님, 의논할 것 있습니까?” 하고 물어보면 “이것 좀 의논해주세요.” 하면 그렇게 해주고, “없습니다.” 그러면 자기들끼리 1시간 동안 찬송을 부르고 기도합니다. 그 기도제목은 당회장을 위한 기도가 첫번째입니다. 우리 애들까지 이름을 써놓고 다 기도합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들끼리 안아줍니다. 그리고는 돌아갑니다. 지구상에서 당회를 그렇게 하는 교회는 저희 교회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장로님들이 뭘 의논을 해와서 제가 좋다면 당회록에 기록이 되고, 이러저러 해서 안하면 좋겠다고 하면 안하겠다고 합니다. 우리교회 당회는 그렇게 끝납니다. 또 1시쯤 끝나는 예배 후에는 장로님들이 제 방에 와서 인사하고 갑니다. 그러면 악수하고 인사하고 보냅니다.

어떤 장로님은 제가 무슨 말인가를 하다가 한 번 안아주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우리 교회에서 처음으로 예수를 믿고 장로 되고 저보다 나이도 많고, 덩치도 저보다 큽니다.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그 장로님을 한 번 안아주라고 그래서 한 번 안아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우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장로님은 제가 안아주니까 저한테 찰싹 붙어서 한 5분을 우는 장로님도 있습니다. 내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아니까 감격해서 웁니다. 24년된 교인입니다. 목회자들이 3년만 지나면 밑천이 다 드러나는 판인데, 제가 허물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제가 자기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분들이 아니까 무슨 의논이 필요가 없습니다. 성전을 IMF 에 땅사고 250억 정도가 들었는데 장로님들이 저를 보고 “목사님 결정만 하세요. 그러면 하겠습니다.” 돈도 없으면서 그렇게 말을 합니다. 결국은 IMF에 땅사서 교회를 짓는 겁니다. 여러분, 교인들을 사랑하세요.

(7) 경솔한 성품을 회개해야 한다

또 경솔한 성품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지도자들인데 왜 그렇게 경솔하게 말하고 경솔하게 행동을 합니까? 존경하는 목사님 가운데 말년이 아주 비참하신 분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쓸데없는 말하고 왜 그렇게 경솔한 행동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체신이 없어져서 연세는 많은데 그냥 교인들이 다 방자해집니다. 그 책임이 다 목회자에게 있습니다. 특히 회개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혈기입니다. 혈기있는 목사님은 분노의 영이 역사하기 때문에 반드시 실수하게 되고 문제가 일어납니다. 우리 인간은 부패했고 타락의 근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회개치 아니하면 성품의 변화가 일어나지 아니하고 성품의 변화가 없으면 절대로 목회에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실망을 느끼고 깊은 절망을 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사야서는 나는 부족한 사람이로다, 나는 이제는 망하게 되었구나, 자기 자신을 생각해 보니까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인 것처럼, 사도 바울이 오호라 곤고한 사람이로다 라고 탄식한 것처럼 우리 자신에 대해서 철저하게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이 다락방에 모여 열흘 동안 기도했는데, 그들이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하는데 무슨 기도를 했을 것 같습니까? 제 생각에는 철저하게 회개하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우리 교역자들에게도 다른 것 다 제쳐놓고 내 자신의 죄와 허물을 생각하면서 내 타락의 근성, 내 성품의 안좋은 것을 놓고 철저하게 회개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철저하게 회개하고, 철저하게 깨지고, 철저하게 낮아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는 한번도 40일 금식기도를 못해봤기 때문에 40일 금식기도를 하신 목사님들을 보면 굉장히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어떤 은혜를 받으셨을지 굉장히 궁금합니다. 그래서 간증을 부탁을 하는데 40일 금식기도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은혜받았다고 하시는 분은 별로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40일 금식기도하면서 정말 은혜받은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의 금식기도 목표는 철저한 회개였습니다. 회개하기 위해서 40일 금식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자기 안에 너무나 안좋은 기질과 성품과 습관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버리려고 해도 안되니까, 그거 버리려고 40일 금식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성령께서 기뻐하셨겠습니까? 그 분의 말을 들어보니까 많은 은혜를 받았고, 목회에도 성공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회개하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 성령입니다. 회개하는 것 자체가 은혜지만 회개함으로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 능력의 사람이 되고 목회에도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역자의 모든 권위는 오직 주님만이 풀어주실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고민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저는 고민거리가 있으면 그냥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또 기도합니다. 대개는 3, 4일이면 해결이 됩니다. 어떤 때는 그날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사흘, 나흘만에 응답을 주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응답을 받으면 해결이 다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이번 며칠 동안에 여러분의 고민거리 주님 앞에 다 내어놓고 부르짖으면서 응답받고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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