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08/19) 교갱협 제3차 영성수련회 폐회예배

호세아 6장 1~3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여러분들이나 저나 소원이 있다고 하면 갱신일 것입니다. 어떻게 새로워질 것인가? 어떻게 갱신될 것인가? 내가 갱신되지 않으면 우리 일터가 무슨 소용이 있겠으며, 하나님께서 갱신시켜 주시지 않는 이 민족 앞에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자나깨나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저를 좀 갱신시켜 주옵소서!" 하는 것이 소망이 됩니다.

부흥회를 가면 "목사님, 우리 교회를 뒤집어 주십시오." 라는 요청을 듣는데, 제가 무슨 수로 뒤집어 놓겠습니까? 뒤집는다면 타교회가 아니라 우리교회를 뒤집어 놓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럴 만한 힘이 없습니다. 꼭 갱신되어야 될 것이 우리의 모습이고, 어떻게 회복될 것인가 하는 것이 여러분들의 숙제이고, 그러다 보니까 이곳 수련회까지 온 것으로 생각합니다. 호세아가 우리에게 주었던 말씀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갱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것은 원리적인 말씀입니다. 저희 교회가 장마로 인해서 정전된 일이 있었습니다. 자동차단기가 습기만 차면 내려옵니다. 올려도 내려오고 올려도 내려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내려놓았더니, 어느 것 하나 작동되는 것이 없습니다. 전화가 됩니까? 책상 위의 스탠드를 켤 수가 있습니까? 인터폰이 됩니까? 더운데, 에어콘을 켤 수가 있습니까? 그때 제가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전기 하나가 안들어 오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돌아가야 할 것들이 돌아가지 않는 사회, 또 교회가 문제이고, 우리 자신이 잘 돌아가야 함에도 돌아가지 않는 것이 문제인 줄 압니다.

서론적으로 갱신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갱신은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새롭게 되는 것은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고 전도서 1장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 새것이 없나니 강물은 흘러서 바다로 들어가고 바람은 서에서 동으로 북에서 남으로 불어온다고 했습니다. 갱신은 여러분과 저에게 있지 아니하고, 울어도 아니되고 참아도 아니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역사이기 때문에 사모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만약 갱신이 땅의 것이라든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든가, 무슨 물질문명이 이룰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애타게 부르짖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새로운 것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스도 밖에서는 아니라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속에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노래만이 새로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조해 주실 새하늘과 새땅, 새것입니다. 여기에 새롭다는 말은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가 작년보다는 올해가, 98년보다는 99년이 더 좋아지라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전혀 새로운 세계, 아! 우리가 이런 것들을 상상했었던가! 우리가 이런 것들을 꿈꾸어왔던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 갱신을 바라는 여러분들은 꿈꾸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은 "주여, 우리를 갱신시켜 주옵소서." 주께는 능력이 있고 주께는 새로움이 있고, 주께는 신령함이 있고 주께는 아름다운 것이 있는데, 저의 마음 속에는 죄와 악함이 가득하게 차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엎드린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저는 갱신은 한마디로 말해서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을 떠난 데에서부터 시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에는 "우리가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하는 지적이 나옵니다. 생명에서 떠나있으면 모든 총명이 어두워지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인 영성이 죽어버리고 맙니다. 감각이 죽어버리고 맙니다. 부패되었는데 알 수가 없습니다. 생명에서 떠나서 오히려 완악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탕자의 문명을 오늘날 현대의 문명이라고 한다면, 탕자의 문명은 하나님을 떠난 문명입니다. 한국교회에 문제가 있다면, 왕의 대로를 가기는 기뻐하면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의 길은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께로 이 민족을 돌려야 되는데, 경제부흥으로만 달려오다 보니 나중에서야 잘못되어 있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경제부흥과 민주화를 위해서 달려가고 있을 때, 우리가 새벽종을 울리면서 이 민족에게 영성운동을 일으켰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과거에 대한 부끄러운 후회가 남습니다.

오늘 이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말은,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영성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들이나 똑같은 것을 느끼겠지만, 29년 동안 설교를 했는데도 강단에 올라갈 때마다 긴장이 됩니다. 30년이 지나도 떨리는 것은 여전하고, 도리없는 것은 여전할 것입니다. 길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 뿐입니다.

제가 부목사로 있을 때 왜 그렇게 담임목사가 되고 싶었던지, 모시고 있던 목사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서두르지 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다." 그러던 중 목사님을 현관에서 만나서 "기도 좀 해주십시오." 했더니 "왜? 문제있어?" "저도 빨리 담임목사로 가야죠." 목사님께서 기도하지 않느냐고 해서 담임목사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했더니, "거꾸로 기도하는 구만!"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당회실로 들어가서 "제가 뭘 거꾸로 기도하고 있습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지금 이 땅 위에 갈 길 못찾아 방황하는 영혼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님이 저들의 영혼을 살려낼 사람이 어디에 있나 고민을 안하시겠느냐? 그런데, 김목사 같이 전부 담임목사만 하려고 하고 있고, 준비는 안된 사람을 담임목사 시켜놓으면 양을 키우는게 아니라 양을 잡아먹으려고 하니 어디 하나님께서 고민 안하시겠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부산에 있었는데, 부산에만 해도 400만의 방황하는 영혼이 있으니 기도나 하라는 소리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에 담요를 가지고 교회에 와서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까지 기도를 거꾸로 했는데, 창피하지만 지금까지 기도한 것 몽땅 취소하고 다시 기도하겠습니다. 담임목사가 되든 부목사가 되든 좋으니, 목사 좀 만들어 주십시오. 아니 먼저 사람 좀 만들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했는데, 그 기도를 시작한지 한달 만에 담임목사로 갔습니다. 그때 제가 또 느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무척 바쁘시구나. 철도 들기 전에 가져다 놓은 것을 보니까 무척 바쁘신 분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군가가 하나님께로 마음만 돌리면, 누군가가 하나님께로 손들고 돌아오기만 하면, 누군가가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누군가가 주의 마음을 알아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주의 백성을 가르치기만 한다면 너무나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런 안타까운 주님의 심정, 여러분들이 그런 하나님의 눈에 띄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으로 돌아가자

두번째로, 여호와께로 돌아간다는 말을 저는 말씀으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이 아니면 역사하시지 아니하시고, 말씀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안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는 시간이 그렇게 귀합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된 병자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물었습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그때 환자가 대답하는 말이 "물이 동할 때에 뛰어들어가야 되겠는데 물에 나를 넣어주는 사람이 없나이다." 이 말을 가만히 분석해보면 절망적인 대답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이 동할 때 들어가면 낫는다고 했지만 물이 동하면 누가 먼저 들어가겠습니까? 피부병, 위장병, 머리아픈 사람 등 잘 뛸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들어가고, 38년 동안 오그라들어 있던 사람은 누군가가 와서 들어줘야 합니다. 누군가가 들것에 들려 들어가려고 보면 이미 끝난 것입니다. 이 사람은 소망없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만약 여러분과 나에게 하나님의 계시가 없다면 소망없는 소망을 기다리면서 목회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까 교인들도 실패하고 목회자들도 실패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38년이나 된 병자가 왜 38년 동안 못일어나고 있었겠습니까? 그건 간 단하게 말하면 아파서 못일어난 것입니다. 병을 이길 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말씀만이 아니라 그 속에 능력의 역사가 동반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가 오셨어도 알아보지를 못했고, 이것이 기회와 기적의 순간인 줄도 몰랐습니다.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말 속에 능력이 없었다면, 이는 나를 한번 더 놀리는 말이고, 기만하는 말이자 나를 한번 더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는 하나님이셨습니다. 38년된 병자의 온 몸에 알지 못하는 힘이 일어나, 일어나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그동안 오그라 붙었던 근육과 뼈가 우두둑 소리가 나면서 힘살이 펴지며 일어났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일어났습니다.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일어남을 당했습니다.

오늘 한국의 교회를 누가 치료합니까? 내 교회를 누가 치료합니까? 30년 동안 설교하고도 아직도 안되는 것은 목사가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왜 애가 타고 두려워서 떠는가 하면 "주여, 능력이 임하지 아니하는 설교가 제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지 아니하는 한 시간이 저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교인들을 또 한번 절망시키며, 또 한번 생명없는 무미건조한 사람으로 만드는 헛된 역사의 반복이 교회에서 일어나서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는 무능력 한 인간의 모습 때문에 안타까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살았고"는 살았다는말입니다. 운동력이 있다는 말은 헬라어의 의미로 영어로 하면 Operate라는 말입니다. Operate라는 말은 힘있는 군대가 작전을 개시하는 것입니다. 산을 정복해야 되겠다, 기점을 탈환해야 되겠다 할 때 훈련된 육해공군이 총동원되어서 작전을 개시할 때 Operate라는 말을 씁니다. 운동력 있다는 말은 이 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구원할 때는, 성삼위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과 능력과 지혜와 계획과 경륜을 총동원하여 한 영혼을 살리신다는 것입니다. 창세 전에 계획하셨습니다. 그 뜻대로 주님이 오셨습니다. 수 천년 동안 선지자들이 외쳤습니다. "메시야, 그가 오시면, 그가 오시면, 그가 오시면" 수 천년 동안 준비하였습니다. 살리기 위한 역사였습니다.

큰 공장을 지어놓고 공장기계를 설치하면 돌아갑니까? 메인스위치를 올리면 그 순간 "웅~" 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가 돌아갑니다. 콜라공장에서는 콜라가 쏟아져 나오고, 휴지공장에서는 휴지가 쏟아져 나오고, 라면 공장에서는 라면이 쏟아져 나옵니다. Operate가 되지 않는 한, 그 공장은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Operate가 있다는 말은 생산력이 있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수술실에는 Operation Room이라고 써붙여 놓습니다. 여기에 쓰인 운동력이 있다는 말은 수술을 의미합니다. 죄가 어디에 붙었습니까? 인간 깊숙히 붙었는데, 저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죄성을 무엇으로 끊어야 하나? 도끼로 끊어낼 수 있다면 내가 도끼를 한달 열흘을 갈아서 찍어내겠는데, 그런데 이놈의 죄성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죄가 많습니다. 안그러는 것 같으면서도 비교를 잘합니다. 공로의식 내세우지 말라면서도 조금만 교회가 잘된다고 하면 우리 목사님 잘했다고 해야 좋아서 입이 돌아갑니다. 왜 못된 것은 하나도 안빼고 제 안에 다 자리하고 있는지, 저 같으면 그때마다 벌써 발로 내질러 버렸을 텐데, 아직도 날 붙들고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 무지무지하게 질기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서, 그 분의 말씀만이 내 안에 있는 죄성을 깨뜨리고, 육적인 질병으로, 역사적인 질병으로 말미암는 관행이든 습관이든 이 질병을 송두리째 고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걸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걸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길은 없습니다. 다른 방법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까닭은, 우리가 단 위에 서있을 때 울리는 꽹과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능력이 나타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알지 못하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하나님의 성령이 운행하시면서 살았고 운동력 있는 말씀으로, 누가 어떻게 아파하는지, 누가 어떻게 밤잠을 못자며 울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죄악 때문에 두려워 떨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일일이 방문하시고, 오늘도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저는 지금도 강단에 설 때 소망을 가지고 올라갑니다. 죽은 자를 우리가 무슨 수로 살려냅니까? 38년 동안 오그라들어 있었던 영혼을 우리가 어떻게 살려냅니까?

창세기 1장2절에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의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땅은 혼돈합니다. 공허합니다. 흑암이 깊음 위에 있습니다. 절망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신이 운행하고 있습니다. 역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그 생명의 빛으로 인하여 순간에 공허가 사라집니다. 흑암의 깊음이 사라집니다. 혼돈이 생명의 창조로 말미암아 질서가 일어납니다. 밤과 낮이 생겨납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떠오릅니다. 하늘에 구름이 올라갑니다. 하늘 위의 궁창과 아래 궁창이 나뉘어지고 온 땅에, 바다에, 공중에 생물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창조의 역사입니다.

지금까지 세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모두는 치료받아야 될 영혼들입니다. 깊은 병에 걸려있습니다. 죽음의 병에 걸려 있습니다. 듣기 싫어도 멸망의 병에 걸려 있습니다. 진노와 저주 아래 있습니다. 사망 권세에 붙잡혀 있습니다. 어찌하면 좋습니까? 주여 나를 세우실 때 내가 주께로 돌아가오니 살아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으로 인하여 나를 살려 주옵소서. 내 백성을 치료해 주시고, 내게 맡긴 백성들이 주의 음성을 듣고 무덤으로부터 나오게 하여 주시고, 생명의 찬란한 빛의 역사를 주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에는 우리가 왜 그렇게 목이 말라야 합니까? 그 속에는 생명의 기운이 있기 때문입니다. 97년 교갱협 영성수련회 때 우리는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라는 주제로 모였습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에스겔 선지자를 해골들이 있는 곳에 세웁니다. 바싹 마른 해골입니다. 오래된 해골입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주께서 아시나이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 하니까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공동묘지에서 해골들을 놓고 설교를 합니다. 그것도 전혀 가망성이 없는 바짝 마른 뼈들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그런 전율같은 것을 느낀 적은 없으십니까? 귀는 막혔고, 영혼에 생기는 돋아나지 아니하고, 이 때 무슨 말을 해야 살아나는지...

제가 소록도에 가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수 백명이 그 컴컴한 어둠 속에 앉아있었고, 그들은 온몸이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데, 주시는 메시지가 없습니다. 소망없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런지... 근데 그 때 내린 결론은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하면서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냥 그 말을 그대로 믿으며 얼마나 좋아하는지, 대한민국에서 설교하기 제일 좋은 교회가 소록도입니다. "주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라고만 해도 좋아하는데, 오늘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뭐가 없습니까? 생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인 줄로 압니다. 이 민족에게 교회가 없습니까? 악기가 없습니까? 성가대가 없습니까? 찬양이 없습니까? 뭐가 없습니까? 하지만, 영혼을 살리는 생기가 없음을 하나님이 탄식하며 외치는 것이 있습니다. 인자야 사방에서부터 여호와의 생기가 불어와 이들을 살게 하라. 그가 소리를 외칩니다. 그들이 살아 일어나는데 큰 군대더라.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제 사역의 현장에서 싸우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우리는 갱신할 수 없습니다. 갱신될 수도 없습니다. 38년된 환자보다 더 오랜 질병이 있습니다. 여러분과 나는 갱신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갱신되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주여, 나를 갱신시켜 주옵소서. 이땅 위에 부흥의 불길을 지피는 일에, 주께서 시키는대로 한 몫을 하기를 원합니다. 주여, 나에게 능력을 주옵소서. 힘을 주옵소서.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 주님이 주시는 성령의 능력과 말씀 안에서 갱신시키심을 받고, 갱신시키심을 따라, 갱신시켜 주시는대로, 갱신된 목회가 여러분들의 목회현장에서 하늘로부터 임하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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