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11/03) 장로교 4개교단 목회자협의회 연합수련회 주제강연

신구약 성경에서는 '개혁' 이라는 낱말 대신에 주로 '새롭게 하다', 곧 '갱신하다'는 표현을 쓴다. 적어도 성경의 용어로는 개혁보다는 갱신이라는 말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교회를 새롭게 하는 주체는 원칙적으로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강하게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21장 5절의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는 말씀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리하여 개혁을 추구하고 실행하는 우리들이 어디까지나 그 개혁 또는 갱신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뜻을 늘 먼저 살펴야 한다는 점, 또 우리의 개혁은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만 가능하다는 점, 따라서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개혁 또는 갱신에 응답하는 식으로 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미래의 한국 사회와 세계 사회

- 정보 통신 기술 과학 사회

요즈음 우리는 미래사회가 정보 통신 기술 과학 사회일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청소년층을 중심으로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는 개인용 컴퓨터나 각종 휴대용 전화기만 생각해보더라도 이 말은 실감이 난다. 각종 공공 단체와 사립 기관의 행정이 전산화되고 개인과 단체에 대한 온갖 정보를 쉽게 얻어볼 수 있는 사회에서 정보는 삶의 필수적인 요건이 될 것이다.

 

- 다원화 사회

또 다원화 사회가 미래 사회라는 말도 많이 한다. 이 역시 지난 80년대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민족이나 공동체의 문제를 두고 진지하게 고민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그 대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무리를 이루어 자신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해나가는 적은 모임들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다원화 사회에서는 종교도 여러가지이고, 한 종교 가운데서도 여러 가지 빛깔을 지닌 분파들이 생겨서, 사람마다 무리마다 자기에게 맞는 종교와 분파를 찾아 그로부터 자신들의 내면적이고도 실질적인 욕구를 채우려 할 것이다. 이점에서는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 세계화 사회

다소 어긋나 보이지만 이른바 세계화의 물결 가운데서 생활 습관이 일반화되고 획일화되는 경향도 강해질 것이다. 이 세상 어딜 가 보아도 거의 비슷한 음식을 먹고 비슷한 집에서 살고 비슷한 옷을 입는 정도가 커질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젊은 세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이제는 우리 나라를 찾는 서양 사람들도 의식주 문제에서 이전처럼 그리 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 물론 그 사람들이 우리를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되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나라의 삶이 그야말로 국제적으로 - 더 정확히 말한다면 서양식으로 -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편익을 추구하는 사회

무엇보다도 미래 사회는 편의를 추구하는 사회일 것이라는 생각도 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그 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편리하게 해 보려는 욕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그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모두들 분주한 사회가 미래 사회일 것이다. 이른바 삶의 질을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드높이고자 하는 욕구가 사회에 가득찰 것이다. 이리하여 질 높은 삶을 최고선으로 삼는 가치관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

 

- 경제 제일주의 사회

경제 문제로 현실 사회 공산주의 국가가 거의 사라진 뒤부터 들어선 새로운 종류의 자본주의가 미래에는 더욱 더 그 힘을 떨칠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비인격적인 집단인 법인, 기업 같은 단체들이 개인의 인격성을 일그러뜨리거나 다스리는 사회가 될 것이다. 이런 종류의 비인격적인 세력은 실제로 개개인의 일상 생활과 사회의 일상적인 흐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데도, 그 주체를 제대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새 경제 질서는 세계를 하나로 묶 는 것이어서 더욱 더 무섭다. 이제는 작은 마을의 경제조차도 세계 경제의 흐름에 좌우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시 문화적인 면에서도 이런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생명 위기 사회

미래 사회가 어쨌든 여러 가지 면에서 우선 살기 좋아지는 사회로 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러한 문명과 문화의 발전 가운데서 이상하게도 사람은 점점 더 덜 사람다워지는 일이 벌어지게 되리라 예상해볼 수 있다. 사람의 삶에 보탬이 될 문명과 문화가 오히려 사람을 다스리고 통제하고 얽매는 일이 많아질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사람을 죽이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다. 사람 사이의 정다운 관계가 끊어지고 많은 인간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수 있다. 그리하여 긴밀한 결속력을 지닌 무리에 소속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질 것이고, 이는 곧 숱하게 많은 작은 동아리가 생겨나게 할 것이다.

 

- 여성 진출의 사회

이점에서 미래는 여성들이 이전의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역할을 할 시대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남성 중심으로 움직여져온 사회에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한 여성들의 권익을 찾자는 소극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위기에 처한 이 세상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데는 여성들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미래 한국교회 개혁의 과제

엄격히 말하면 교회의 개혁은 사회의 요구가 없더라도 해야 할 일이어서 교회, 특히 개혁 교회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 속에 있는 교회는 또한 사회로부터서도 개혁을 요청받고 있다. 종교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되는가, 아니면 사회 발전의 장애물이 되는가 하는 문제는 종교사회학에서 오랫동안 다투어온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기독교회는 두말할 나위 없이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종교, 그리하여 마침내는 사회를 온전히 살려내려는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통전적인 삶을 보여주고 이끌어가는 교회

지단날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도저히 견주어 볼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다르고 계속 달라질 미래 사회에서는 교회도 전통적인 교회로만 남아 있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래 사회가 날로 더 정보화, 과학 기술화, 전문화, 다원화, 세분화되고 복합적으로 될수록 교회는 복음의 기본 정신에 충실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통합적이고 총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엡 1:10), 개인적으로도 단체적으로도 교회는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통전적인 삶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전보다 더욱 더 힘쓰며, 그런 삶을 가꾸어나가야 살 것이다.

한마디로 미래 한국교회는 사람의 삶에 총체적으로 관여하여 온전한 샬롬의 구원을 일구는 교회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인격과 삶이 구분되어 자기분열증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과 사람을 도구화하려는 기술문명 사회를 바로 잡아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한국교회의 과제

- 주민 문화 공간일 수 있는 교회

아직도 영혼구원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는 교회들이나 기독교인들이 적지 않고, 미래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 내면의 문제가 더욱 더 중요해진다고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미래 사회의 일반적인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보다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들에 더 가치를 두는 쪽으로 흐를 것이고, 이런 상황을 교회도 더 이상 몰라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눈에 띄고 살갗에 와닿는 실질적인 삶의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인데, 그러한 것 가운데 하나가 문화라 하겠다.

이리하여 미래 사회에서 한국교회는 하나의 문화 공간으로서 제 몫을 톡톡히 맡게 될 것이다. 최근에 기독교 신앙과는 상관없이 음악회나 미술 전시회나 연극 공연 같은 것을 교회 부속건물에서 하고 싶어하고 또 그렇게 하도록 배려하는 교회가 생겨나고, 또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교회당이나 목사의 집례로 거행하고 싶어하는 비기독교인들이 생겨난다는 사실도 이를 말해준다. 그리하여 그전에 교육관이라고 부르던 교회 부속 건물이 한편으로는 사회봉사관이라고 달리 불리기 시작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는 문화관이라고 불리는 경우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또 저소득층 주민들의 취미 활동이나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도 이런 문화관에서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 건전한 가치관, 생활관을 보존하는 교회

다원화 사회에서 혼돈에 빠진 사람들은 굳이 종교적인 신앙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삶을 지탱해주고 이끌어줄 가치관과 생활관을 추구할 것이다. 이리하여 미래의 한국 교회는 직접적인 회심에까지 이르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기독교적 가치관과 생활관을 소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나라의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인 청소년 교육도 이런 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성공 제일주의보다는 세상의 빛 노릇하게 하는 교육을 우리 교회가 해나감으로써 이기적인 풍조가 확산되는 것을 막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기술 정보 문명의 발달로 몸을 제대로 쓰지 않고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육체 노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제로 육체 노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또다른 근본인 땅을 갈고 가꾸는 일을 조금이라도 맛보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을 교회, 특히 농촌 교회가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농업) 노동의 영성' 을 되살림으로써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총체적인 영성을 개발하는 일이 미래 한국교회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 사회 소외층의 보금자리가 되는 교회

달리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뒤에 쳐지는 약한 사람들이 앞서 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거의 띄지 않게 될 터인데, 이 때 이렇게 뒤쳐진 사람들을 붙들고 씨름하는 일이 교회의 중요한 임무가 될 것이다. 모두들 앞으로 앞으로만 달려 나가는 사회에서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고 뒤를 돌아보면서 이 엄청난 속도의 달리기에서 낙오하는 이웃들의 존재를 깨닫고, 그들의 손을 그들과 함께 천천히 달리는 일을 교회가 할 수 있고 해야할 것이다.

여기서 교회는 성서의 오랜 전통과 세계 교회 및 한국교회의 옛 전통을 따라 사회 소외층의 보금자리가 되어야 하는 과제를 떠맡게 된다. 특히 공적이거나 사적인 다른 사회 복지 기관이나 시설에서조차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이 교회이면 좋겠다.

구체적으로는 아직도 험한 조건 아래서 힘들게 일하고 또 그리하면서도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농어산촌 사람들과 중소기업 노동자들, 빈민촌이나 기지촌에 내팽개쳐진 부녀자들, 아무런 대책 없이 사회 가장 자리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저소득 장애인들을 잘 섬길 책임이 미래 한국교회에 있다. 얼마 전부터 점점 더 그 수가 늘어나고 있는 '이주 노동자' 들과 '남한 이주 북한 주민들'과 그들의 가족들도 미래 한국교회가 지키고 돌보아야 할 사람들이다. 더 나아가서, 가정 윤리가 급속하게 깨짐으로써 늘어나는 결손 가정의 구성원들, 이를테면 젊은 이혼남녀와 그 어린 자녀들과 홀로 사시는 노인들도 교회가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 일치와 화해와 통일의 터전인 교회

우리 겨레가 남북뿐만 아니라, 동서, 계층, 세대 따위로 이리저리 갈라져 있고 나누어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러할 때 화해의 복음을 전한다는 교회야말고 이 갈라지고 찢긴 것을 다시 한데 묶는 터전이 될 수 있다, 이리하여 미래 한국교회가 이전보다 더 일치와 화해와 통일에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반세기가 넘도록 겨레가 나누어져 사는 현실과 아울러 세계 교회사에서 비슷한 보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여러 모로 나누어진 우리 개신교의 상황은 21세기 한국교회는 갈라진 사람들과 단체들을 다시 한데 묶고 서로 만나게 하는 교회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러한 일치와 화해와 통일은 미래 사회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그 어느 단체도, 이 한반도의 그 어느 지역도 제 홀로 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 교회와 세계 곳곳에 숱하게 널려 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제 혼자 힘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실제적인 이유에서도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 세계 사회의 중재자가 되는 교회

이뿐만 아니라, 미래 한국교회는 더이상 남한 또는 한반도의 교회에 머물 수 없다. 세계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래도 아직은 성장하고 있는 드문 교회 가운데 하나로서, 또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온 나라의 교회로서, 이른바 가난한 나라들과 이른바 잘 사는 나라들 사이에서, 또 그 양쪽 나라들의 교회 사이에서, 이 둘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하는 것도 미래 사회가 한국교회에 요청하는 바이다.

여기서 또한 우리는 해외 선교 문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 날 일부 서양 선교사들이 저지른 잘못, 곧 자국의 세력 확장이라는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서 결국은 피선교지 주민들을 해치고 그들의 미움을 받아 쫓겨나게 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생명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장소인 교회

미래 사회의 생명 보존과 육성을 위해서 교회는 우선 적은 일부터라도 환경 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일들을 꾸준히 해나갈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생명을 경시하고 사람을 사람답지 못하게 하는 현대 사회의 여러 가지 흐름은 사람과 생명보다는 경제성과 효율성을 더 중요하게 보는 국가 정책이나 국제 사회의 정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만큼, 미래 한국교회는 그에 맞서는 올바른 정책을 연구하여 제시할 책임도 지게 된다.

 

- 여성 진출을 장려하고 후원하는 교회

여기서 또한 다시 한번 분명히 강조할 일은 앞으로 한국교회는 교회 안팎의 여성들의 존재를 이전보다 더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여성들이 우리 미래 사회에서 생명을 보존하고 육성하는 일에 그 힘을 넉넉히 발휘할 수 있도록 자리를 내어주고 뒷받침해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 다른 사회 양심 세력들과 연대할 줄 아는 교회

우리 나라와 이 세계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회도 하나의 사회 세력으로도 다른 양심 세력들과 함께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국민들 가운데 이전보다 더욱 더 강해질 것이다.

 

미래 한국교회 자체 갱신의 몇 가지 과제

이런 여러 가지 미래 사회의 요구를 한국 교회가 잘 감당하자면, 한국교회 자체가 잘 유지되고 발전해야 한다. 교회가 살아 움직여야 한다. 잘못된 것은 지금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 살아있는 감동적인 예배

나는 무엇보다도 교회당 안에서 거행하는 공식적인 예배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해 본다. 교회가 교회 안팎의 여러 가지 일을 해나가지만 그 일에 참여한 모든 기독교인들이 한데 모여서 함께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것 -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교회이기가 힘들다.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방식으로 그저 형식으로만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예배 참석자들이 삶이 그대로 한데 묶여져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감동적인 예배가 정기적으로 거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교회에서 여러 가지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서 더 이상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우선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준비하여 참여하는 교회, 우리의 생활 감정에 맞는 예배 의식의 개발, 신자들의 일차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면서 정말 책임성 있게 잘 준비된 말씀의 선포 같은 것이 중요한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고백하며 고칠 줄 아는 교회

교회는 교회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이를 고백하며 고치기로 굳게 결심하며 실제로 고쳐나갈 때에 교회로 계속 남아 있을 수 있다. 인간의 정신 문화와 물질 문명이 고도로 발달되고 있다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게 자신들을 변명하고 정당화하고 합리화하는 '이상한' 풍조가 우리를 휩싸고 있다. 그 가운데서 어쩌면 우리 목회자들도 헤어나오고 있지 못한 듯하다.

이점은 특히 면죄부 문제를 둘러싸고서 480년 전에 종교개혁 운동이 벌어진 사실에 비추어보더라도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이에 대해 마틴 루터가 내건 95개조의 첫 항목에서 '회개'의 문제를 기독교인 평생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숙한 교회는 사람들이 교묘하게 저지른 죄의 문제를 정직하게 해결할 수 있는 교회일 것이다.
이리하여 미래의 한국교회는 잘못이 있었을 경우 이를 솔직히 인정하고 용서를 빌 줄 아는 진실된 인격을 갖춘 용기 있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어야 할 것이다. 교회가 그리할 때, 우리 사회의 도덕과 기강이 바로 설 밑바탕이 마련되는 것이다.

 

- 교회 조직과 운영의 민주화 교회

자체의 조직과 운영을 바로 잡는 문제는 사실 총회 임원 선거에만 관련되는 것은 아니다. 좁게는 노회 임원 선거와 개 교회의 민주적인 운영에도 해당되고, 넓게는 여러 종류의 교회 연합 기관 임원 선거와 합리적인 운영에도 해당되는 문제이다. 여기서 또한 신학적으로 교역자와 평신도의 관계를 새롭게 밝히고, 평신도 중심의 교회가 실제로 어떠한 모습을 띠게 될는지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와 실험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교회 운영과 행사의 검소화

무엇보다도 일상적인 교회 활동이나 특별 행사를 할 때, 필요 이상의 소비를 억제하고 검소하고도 실질적으로 해나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 교회 여성 지도력의 배양

여성 안수 문제에 대한 찬반의 입장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우리 한국교회의 발전과 유지에 여성 평신도들과 여성 교역자들에 크게 공헌해왔다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교회갱신과 개혁을 추구하는 움직임에서도 반드시 여성이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여성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여성들과 함께 일해나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 다양한 차원의 개혁 운동, 교회 연합 운동

교회 개혁은 여러 차원에서 해나갈 수 있다. 우선 '교회' 라는 낱말을 하나의 집합 명사로 보아서, 한국교회 전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한국교회를 이루고 있는 각 개교회, 지역 교회 차원에서 교회 개혁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둘 사이에 놓인 각 교단 총회나 노회 차원, 심지어는 여러 가지 교회 연합 기관의 차원에서 교회 개혁의 문제를 다룰 수도 있다.

 

- 구체적인 개혁 지침

앞서 살펴 본 미래 사회의 여러 가지 요구에 응답하는 교회가 되려면 그에 대해 개인적으로나, 개교회적으로 고쳐나갈 일도 있지만, 때로는 사회 정책 같은 것도 제시할 필요도 있다. 아무튼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지교회에 속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제 일상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주 구체적으로 잘 알려주고, 그렇게 개혁에 동참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밀어주는 일이다.

 

미래 한국교회 개혁의 전망

앞으로 한국교회가 이런 개혁의 책임을 얼마나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 긍정적인 요소

첫째, 미래 한국교회에서는 교파나 교단이 그리 큰 역할을 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징후가 여기저기 나타나고 있다. 지난 칠팔십년대 사회 운동에 교단을 넘어서서 여러 교회가 함께한 것이 그 대표적인 보기라 하겠다. 어찌 보면 이는 지난날 한국교회의 분열이 신학적인 분열이라기보다는 교권 다툼에서 빚어진 것이었다는 사실과 상관이 있는지 모른다.

둘째, 한국교회 역사 초기에 왕성하게 활동했던 평신도층과 여신도층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 한국교회와 사회를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층이 아직도 우리 교회 안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들을 잘만 키우고 이끌어가면 미래 한국교회 개혁은 성공적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국민들의 민주 역량이 커짐에 따라 일어나고 있는 여러 종류의 시민운동이 우리 교회의 개혁에도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넷째, 교역자들 가운데 성실성과 실력을 갖춘 분들이 꾸준히 교회의 개혁을 위해서 조직적이고 합리적으로 힘쓰고 있다.

 

- 부정적인 요소

첫째, 교역자 또는 교역자 후보생들 가운데 성공제일주의, 입신양영주의, 교권주의가 여전히 큰 힘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심지어 교회 개혁조차도 자기의 성공의 발판으로 삼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둘째, 한국교회의 신앙이 아직은 개인적인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어서 새 시대의 사회적인 요청에 대해 둔감한 교역자들과 평신도들이 더 많아 보인다.

셋째, 한국교회의 신학도 아직은 우리에게 맞는 신학을 독창적으로 개발하기보다는 각기 배운 전통을 따라서 서양 선진 신학을 이해하고 소개하는데 치우쳐 있다고 하겠다.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문화 사대주의가 한국교회와 신학 안에 아직도 깊이 뿌리박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넷째, 한국교회와 신학계에서는 아직도 상대방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자기의 의견을 당당하지만 겸손하게 주장하여 최선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올바른 대화의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서, 개혁하겠다는 사람들 사이에 또다른 종류의 분열과 다툼이 일어난 소지가 많다.

 

나가는 말

미래 한국교회 개혁의 전망이 어떠하냐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달린 것이지만, 달리 생각하면 전적으로 개혁을 하려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도 있다.
미래 사회 한국교회의 개혁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개혁의 대상 안에 우리들 자신도 들어간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날 정의롭지 못한 사람들이 정의를 외침으로써 정의의 개념이 오염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사랑을 외침으로써 사랑이 역겨운 말로 느껴질 수 있었듯이, 오늘 개혁되어 마땅한 사람들이 개혁을 부르짖기 때문에 개혁이란 개념 자체가 더럽혀지고 있다. 이리하여 '개혁' 이란 낱말의 본디 뜻부터 되찾아야 할 형편이 되었다. 이러한 때, 개혁을 외치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 개혁되어 있고, 개혁되고 있을 때만이 우리가 부르짖는 개혁이 설득력을 지니게 될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리하여 나는 나와 목회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려고 한다.

(1) 나는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나를 개혁하고 있는가?
(2)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로서 교회가 교회다워지게 하기 위해서 목회자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가?
(3)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는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개혁되고 있는가?
(4) 내가 섬기는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가?
(5) 내가 속한 교단은 이 땅에 하나인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교단의 권리를 포기하고 있는가?
(6) 개혁을 바라고 있지 않는 사람들과 내가 얼마나 성실히 대화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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