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는 말

앞으로 5년 동안 나라를 다스릴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열림으로 인해 온 나라가 대선정국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갔다. 교회 역시 진공상태가 아니라 세상의 삶의 자리에 놓여있으므로 이러한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관망자로 서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소위 진보정권이라고 하는 노무현 정권은 한국교회의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태도에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3ㆍ1 운동 이후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정교분리에 충실하여 정치적인 분야에는 무관심과 중립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노정권 이후 이러한 교회들은 정치 영역에서 자기 목소리를 강하게 내기 시작했다. 과거 군사정권 때는 생각지도 못한 반정부집회를 갖고 정치성향을 분명히 하는 기독교단체를 여기저기 만들고, 교회의 설교단에서는 당파성이 농후한 정치적 발언이 흘러나오고 있다. 어떤 목사들은 드러내놓고 정권교체를 강조하고 특정 대선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기도 한다. 이로서 정교분리는 한국의 주류교회에서 사실상 폐기처분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적인 무관심과 중립을 신앙의 미덕으로 여기던 사람들이 이제는 적극적인 참여로 바뀌었고, 참여의 도를 넘어서 오히려 교회가 정치화될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회의 정치화라고 하는 것에서 한국교회는 또 다른 경험을 갖고 있다. 장기간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보수교회들의 정교분리정책을 비난하면서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주장하였던 민중신학이 있었다. 이 신학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고, 교회의 사회적인 책임에 있어서는 칭찬받을 만한 역할을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과거의 신학으로 전락하였다.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 신학이 현실정치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세우면서 결국 복음을 정치화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교회는 역사 속에서 정치적 무관심과 교회의 정치화라는 두 개의 불건전한 축 사이에서 방황하였고, 또한 지금도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교회와 국가의 관계, 교회의 사회정치윤리에 대한 신학적인 확고한 토대가 마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100년이 넘어버린 기독교 역사와 아울러 사회의 급격한 정치변화 속에서 우리는 진보나 보수에 관계없이 교회의 정치적인 책임 내지는 정치참여의 올바른 원칙과 방향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

여기에 독일의 고백교회가 심혈을 기울여 채택한 바르멘선언의 신학이 한국교회에 좋은 이정표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독일 나치시대에 많은 교회들이 '독일 그리스도인 Deutsche Christen'에 속하여 히틀러 정권을 지지하는 정치화의 나락의 길로 들어갔을 때에, 이런 그릇된 정치화에 대항한 교회들이 고백교회를 구성하여, 그리스도인의 복음적인 정치윤리를 담아 바르멘 선언을 선포했다. 전쟁 후 독일교회는 이 바르멘 선언을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관한 교과서로 삼아왔다.

이 바르멘신학에 담긴 사회윤리의 틀을 루터주의의 두왕국설(Zwei-Reiche-Lehre)과 대비해서 칼빈주의(개혁주의)적인 그리스도주권설(Die Lehre der Konigsherrschaft Christi) 이라고 표현한다. 이 두 개의 사회윤리적인 사고 구조는 바르멘 선언의 신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뿐 아니라, 개신교 신학의 두 개의 중요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몰트만은 개신교 역사 속에서 이 두 설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개신교는 400년의 역사 속에서 두 개의 서로 다른 신학적인 개념들을 발전시켰으며, 이것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인 상황과 정치적인 책임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루터의 두왕국설과 개혁주의의 그리스도 주권설이다. 이 두 사회윤리적인 개념은 나치시대 교회의 투쟁에서 개신교회의 국가에 대한 자리매김을 규정하였다" (J. Moltmann, Politische Theologie-Politische Ethik, München 1984, S.123)

이 그리스도주권설은 바르멘신학의 가장 주된 역할을 한 칼 바르트를 비롯해서 독일의 에른스트 볼프, 골비처, 퇴트 그리고 프랑스의 자크 엘룰 등의 신학자들로 이어졌다. 아울러 독일의 전 대통령 요하네스 라우와 현 개신교 총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볼프강 후버가 현실 정치 속에서 이 사회윤리를 실천하고 있다. 이외에도 몰트만, 융엘, 링크, 크라퍼르트, 바인트커, 크뢰트케 등 현존하는 많은 신학자들이 이 신학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가고 있다. 비록 사회적 교회적인 상황이 다르지만, 우리는 이 바르멘 속에 담겨있는 그리스도주권설에서 한국교회가 배워야 할 사회윤리적인 지표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2. 바르멘 선언의 역사적인 배경

1933년 1월 30일 히틀러가 의회를 장악하고 수상이 되면서 독일 역사 최초의 민주국가였던 바이마르공화국이 붕괴되었다. 집권한 히틀러는 3월 23일에는 특별법을 선포하여 정당을 해산하고 모든 권력을 장악하면서 독일과 유럽을 파국으로 몰고 가기 시작했다. 

1차 대전의 패전 이후 세워진 바이마르 공화국은 두 개의 흐름을 갖고 있었는데, 겉으로는 민주적인 헌법을 통한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듯하였으나, 그 내면 속에는 자유주의나 사회주의를 대항하는 다양한 형태의 '보수적인 혁명'의 흐름들이 있었다. 전쟁에서의 굴욕적인 패배뿐 아니라, 승전국들의 과다한 배상 요구와 독일 고립화정책은 독일인들의 민족적인 자존심을 짓밟으면서 독일 내의 보수주의자들로 점차 민족주의적인 성향으로 기울어 가게 했다.

전쟁 전까지 황제의 보호 아래서 안정감을 향유했던 교회는 그 어느 그룹보다도 패전과 민주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면서 깊은 불안감을 느꼈다. 사회의 민주화는 점차로 교회 내의 교권주의적인 체제에 대한 변화를 요구했고, 교회의 리더들과 보수적인 신앙인들은 이러한 요구를 위험스러운 것으로 여기면서 보다 강력한 정치적인 리더십으로의 회귀를 염원했다. 이들의 눈에 내적으로 반공과 반유대주의를 표방하고 국가질서를 강조하면서, 외적으로 강한 독일을 지향하는 히틀러의 강력한 리더십은 새로운 돌파구로 보였다. 히틀러는 국가내의 모든 영역을 자신의 권력 안에 넣으려고 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폐기하고 자신의 통치이념인 지도자원리(Fuhrerprinzip)를 모든 사회각층에 통용시키려고 하였는데, 이런 권위주의로 회귀는 다수의 교회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히틀러가 그동안 바이마르공화국의 민주주의 아래서 국민들이 누렸던 기본권을 제한하는 특별법을 제정한 다음 달, 개신교 총회장이었던 쩰너(Zellner)는 '루터주의자들의 집회'에서 이렇게 연설했다. "헌법을 새롭게 개정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우리는 교회의 우두머리에 있는 비숍을 원하지 교회의회를 원하지 않는다. 바이마르 국가의 민주적인 원리를 따르려고 하는 그릇된 시도는 무너져야 한다" (K. D. Schmidt, Die Bekenntnisse und grundsätzlichen Äußerungen zur Kirchenfrage Bd.1: Das Jahr 1933, Göttingen 1935, S.140.)

그런데 당시 독일교회의 이러한 정치적인 편향성은 1917년부터 칼 홀(K. Holl)에서 시작된 루터 르네상스와 무관하지 않았다. 홀은 종교개혁이 바로 독일인 루터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서양기독교사의 독일이 갖는 역사적인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패전 이후 발전되는 민족주의의 정신적인 지주는 다른 누가 아닌 루터였고 이로 인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더 더욱 민족주의적인 사회흐름에 앞장서게 되었다.

이런 민족주의적인 사고는 모든 외국의 것에 대한 배타심으로 표출되면서 반칼빈주의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신개신교주의(Neuprotestantismus)의 선봉에 섰던 트뢸치(Troltsch)는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 서유럽을 중심으로 발전된 민주주의의 정신적 모체를 칼빈주의로 규정하면서 낡은 전통에 갇혀서 독일 민주주의에 장애가 되고 있는 루터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루터파는 바이마르의 혼란한 민주주의야말로 수입된 서유럽의 정치체제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칼빈주의는 자유주의, 막스주의, 그리고 민주주의와 함께 비독일적인 것으로 폄하되었다. (K. Kuppisch, Die deutschen Kandeskirchen im 19. und 20 Jahrhundert, Göttingen 1975, S.120)

이처럼 독일 기독교의 다수를 차지하는 루터주의가 민족주의와 결탁되면서 나치에 저항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문을 열어주는 오류를 범하고 만 것이다. 당시의 영적인 흐름을 보면 이런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돌프 히틀러는 결코 우연히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의 지속적인 현상(Zustand) 무엇보다도 독일적인 현상이었다" (K. D. Bracher, Die Deutsche Diktatur, Entstehung Struktur Folgen des Nationalsozialismus, Köln,1972, S.140.)

이런 상황에서 나치에 동조하는 적극적인 목사들과 교인들이 '독일그리스도인'이라는 단체를 구성해 갔다. 이들은 한편으로는 교권투쟁을 통해서 교회의 권력을 장악하여 교회로 히틀러의 정치적인 도구가 되게 하려고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치사상을 신학적으로 이데올로기화 하는 작업을 해나갔다. (DC의 브라운슈바이그 6개조 선언 중 1. 히틀러 안에서 독일국민을 위한 때가 찼다. 왜냐하면 히틀러를 통해서 그리스도 -  우리를 돕고 구속하시는 하나님 - 가 우리 속에 더욱 강력해졌기 때문이다.  2. 하틀러(나치의)는 지금 독일민족의 교회로 나아가는 성령의 길이고, 하나님의 뜻의 길이다. C. Stoll, Dokumente yum Kirchenstreit III, München 1934, S.56.)

이들의 뒤에는 엘러트, 히르쉬 또 간접적으로 알트하우스 등의 보수적인 루터신학자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러한 '독일그리스도인'의 운동이 교회의 정치화이며 동시에 신학의 타락으로 규정한 목회자들이 모여서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를 만들면서 '독일그리스도인'과의 교회투쟁(Kirchenkampf)을 시작했다. 이들은 고백교회가 지향해야 할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신학적 방향을 연구하여 이것을 바르멘 선언(Barmer Theologische Erklarung) 6개 조항에 담았다. 이 신학적인 작업은 거의 칼 바르트에 의해서 주도됨으로 바르멘선언에 대한 이해는 무엇보다도 바르트신학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부퍼탈의 바르멘에서 열린 고백교회공의회에서 1934년 5월 31일 통과되어 선포된 바르멘선언은 이후 독일개신교회 사회정치윤리의 근간이 되었고 전후 세계교회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3. 루터의 두왕국설

바르멘신학의 눈으로 볼 때, 나치의 등장과 교회의 정치화는 사실 오랜 기독교 역사 속에서 왜곡된 사회윤리의 산물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루터의 두 왕국설이었다. 루터의 수많은 글 중에서 1523년에 쓴 "세상 권력에 대하여" (Von weltlichen Obrigkeit)라는 단편이 두 왕국설을 가장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고 있다. 어거스틴의 영향을 받은 루터의 신학 속에서는 하나님과 사단, 그리스도의 몸과 사단의 몸, 예루살렘과 바빌론, 영과 육, 복음과 율법 등이 강하게 이분법적으로 대치된다. 그에 의하면 세상에는 두 개의 왕국이 있는데, 그 하나는 신자들이 속해있는 하나님 나라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자들이 속한 세상나라이다. 하나님은 두 개의 통치기관(Zwei Regimente)을 세워서 이 두 세계를 다스리게 한다. 하나는 교회를 지칭하는 영적인 정부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 신자들을 다스린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세상정부로 세상나라에 속한 불신자들을 다스린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사랑과 자유와 믿음 안에서 교인들을 다스리며 그러므로 여기에는 율법이나 강제시키는 공권력이 없다. 이에 반해서 율법을 근간으로 다스리는 세상 정부에는 외적인 질서를 위해서 법과 공권력이 필요하다. 다소 일관되지 못한 루터의 '두 왕국' 이론을 '두 정부'라는 틀에서 이해할 때, 그가 말하려고 했던 두 나라는 궁극적으로는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나라'와 '삶을 보존해 주는 세상 나라'로 구분하려고 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Vgl. J. Moltmann, Politische Theologie – Politische Ethik, München 1984. S.129.)

루터가 이처럼 두 개의 왕국, 두 개의 정부를 분리하는데 열중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당시 교회와 국가가 자신의 역할과 한계를 분명히 구분하지 못하고 아말감처럼 혼합되어 버린 데 있었다. 가톨릭 비숍은 군대를 갖고 무력으로 세상일에 간섭하고 있었고, 반면에 세상제후들은 루터를 이단시하고 그의 책을 불태우도록 명령하는 등 공권력으로 영적인 일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루터는 이런 현상이 중세의 특히 가톨릭교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보았다. 아울러 그는 농민전쟁이나 종교적열광주의자들이 추구하는 신정정치 역시 복음과 율법을 구분치 못하고 뒤섞음에서 오는 결과라고 비판하였다.

이렇듯 교회와 국가의 그릇된 혼합을 바르게 지적한 루터의 두왕국설은 이 둘은 나누는 데만 골몰하면서 둘 사이의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음으로 또 다른 정치윤리적인 문제를 함유하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은 18세기 이후 국민주권과 정치 대중화의 확산으로 변화된 정치환경을 간과하고 루터의 사상을 교조적으로 교리화시키려고 했던 신루터파(Neuluthertum)에 의해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나치 당시에 활약했던 이 신루터파를 흔히 루터주의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 루터주의 두 왕국설에 나타나는 문제를 몇 가지 보면, 첫째로 국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독립된 자율의 영역으로 만든 것이다(Eigengesetzlichkeit des Staates). 그리스도주권설에 서 있는 신학자들이 가장 많이 비판하는 이 자율성(Eigengeset-zlichkeit)이란 '하나님의 말씀과는 무관하게 자기 스스로의 규칙과 법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근세 서양의 계몽주의와 세속화를 통하여 정치, 경제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일어난 탈교회 내지 탈종교의 과정에서 형성된 양상이다. 독일어권에서는 막스베버가 그의 저서에서 경제, 정치, 예술, 섹스 그리고 학문의 세계가 자율성으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Vgl. M. Weber, Gesammelte Aufsätze zur Religionssoziologie I, Tübingen 1988, S.552.) 자유, 자율 등을 바탕으로 일어난 다양한 사상운동들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치 않을 뿐 아니라, 말씀을 그들의 사고와 행위의 근간으로 삼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것을 당연시하고 이러한 사조를 신학 속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은 바로 자유주의신학이라고 칭하는 신개신교주의(Neuprotestantismus)였다. 정통주의를 비판하고 나선 자유주의신학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기독교를 요구했다. 이들은 교회가 지금 낡고 닫힌 도그마를 붙잡고 세상으로부터 고립되든지, 아니면 새로운 종교적인 에토스를 끌어안고 세상에 대해서 열려지든지 분기점에 서있다고 하면서 모든 영역에서의 윤리를 낡은 도그마로부터 독립시켜 철학, 역사, 과학, 예술, 심리학등을 망라한 광범위한 종교적인 에토스 위에 세우자고 했다.

그러나 이들처럼 세상의 독립과 해방의 과정을 당연시하는 신학은 그 다음에는 그 세상과의 연결점을 찾으려고 하고, 이 세상과 잘 어울릴 수 있는 교회로의 변화를 서두른다. 그러면서 복음은 오직 교회라는 울타리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것으로 가두어버리고, 교회 밖은 또 다른 윤리적인 에토스를 허용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윤리적인 에토스는 거꾸로 교회 안에까지 흘러들어와 결국은 교회와 신학자체를 타락시키는 과정을 밟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 것이 '독일그리스도인'이었다. 그러므로 이 왜곡된 교회의 모습은 나치의 등장으로 생겨났다기보다는 오히려 슐라이어르마허 이후 오랜 세월 개신교 신학의 잘못된 과정의 산물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일그리스도인'의 가르침과 행위는 1700년 이후 전개된 전체 신개신교주의의 아주 독특하고 강렬한 열매에 불과하다" (K. Barth, Lutherfeier, TEH(Theologische Existenz Heute) 4 (1933), S.20. 바르트는 이 신개신교주의의 근본이 되는 자연신학(Die natürliche Theologie)을 비판하였고 그것이 바르멘 제 1항에 잘 나타나 있다.)

'독일그리스도인'의 신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루터주의의 두왕국설 역시 자율성(Eigengesetzlichkeit)의 또 다른 양상이다. 루터주의자들은 국가가 하나님과 무관하다고 말하지 않지만, 대신 그리스도와는 분리된 창조주 하나님의 영역으로 밀어놓는다. '독일그리스도인'의  대표적인 신학자 히르쉬의 경우 정치질서는 창조주의 통치 아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두었다. (Vgl. E. Hirsch, Über das grundsätzliche Verhältnis von protestantischem Christentum und politischer Bewegung (1934), in: U. Duchrow und W. Huber (Hg.), Die Ambivalenz der Zweireichelehre in der lutherischen Kirche des 20. Jahrhunderts, a.a.O., S.60f.)

여기서 정치윤리는 복음과는 무관한 창조질서, 보존질서를 근거로 하게 되고, 주어진 질서를 보존하며 지키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되는 것이다. 알트하우스의 경우 루터 전통에 충실하면서 순수한 복음을 율법으로부터 철저히 분리시켜 오직 개인의 칭의를 위한 것으로 국한시킨다. 그는 정치 사회적인 규범의 근거로 '원계시'(Uroffenbarung)를 주장한다. 복음을 의미하는 그리스도계시와는 엄격히 분리된 원계시에서 창조의 세계, 자연적인 질서, 이성, 역사와 사건들 그리고 신화등이 계시적인 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다. (Vgl. P. Althaus, Uroffenbarung, Luthertum 46 (1935), S.17f.) 다시 말해서 루터주의자들은 국가를 그리스도의 통치 밖에 둠으로 그 정치적인 규범을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무관한 율법, 질서, 원계시 등에서 찾으려고 했던 것이다.

둘째로 두 왕국설은 이중윤리의 문제를 안게 된다. 1932년 볼프는 루터주의자의 사회윤리를 비판하면서 이들은 개인적, 내적인 영역에서는 산상수훈을 윤리의 규범으로 삼고, 정치나 경제의 영역에서는 공권력을 찬양하고 사회질서를 우선하는 관료적인 율법을 규범으로 삼는다고 지적했다. (Vgl. E. Wolf, Zur Sozialethik des Luthertums (1932) in: U. Duchrow und W. Huber (Hg.), Die Ambivalenz der Zweireichelehre in der lutherischen Kirche des 20. Jahrhunderts, a.a.O., S.43-48, S.44.) 소위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적인 가르침을 자신의 개인의 윤리에만 적용하고 사회윤리의 규범은 율법이나 이성 또는 시대사상에 의존함으로 개인적으로는 성실하고 착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양심에 거리낌을 갖지 않고 국가의 범죄에 동참하게 된다. 가령 뷘쉬의 말을 보자.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서는 선하고, 사려있고, 용서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회공적인 영역에서는 이런 태도와는 달리 세상사람으로서 세상의 법칙을 좇아야 한다. 예컨대 장사나 정치세계에서는 종종 권력, 비정함, 간교 그리고 타산적인 것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아울러 사적이거나 공적인 삶에서 권력쟁취나 자기이득을 취하려는 자연스러운 욕망을 좇게 된다" (G. Wünsch, Die Bergpredigt bei Luther, Tübingen 1920, S.223. 틸리케 역시 이것을 두왕국설의 문제로 보았다. “(두왕국설의) 두번째 위험은 세상을 Eigengesetzlichkeit의 조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조직에 개인적으로 들어가 영향을 줄 수 없고, 다만 실증적인 지식만을 얻고 사실만을 인정하게 된다. H. Thielicke, a.a.O., S. 596).)

셋째로 두왕국설은 정치적인 무관심을 야기한다. 복음을 통한 믿음의 영역을 개인적인 삶으로 제한하고, 공적인 삶으로부터 분리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탈정치적인 성향을 갖게 되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세상없는 믿음과 믿음 없는 세상"(J. Moltmann, a.a.O., S.135.)을 가져다줄 뿐이다. 세상은 일시적이고, 우리의 고향이 아니기에 사회의 변화를 위한 노력과 책임은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사회와 국가를 새롭게 하는 것은 믿음의 테마도 그리스도인의 소망의 대상도 아니다. 진정한 가치는 반대로 개개인의 내적인 믿음과 영성이다. 이렇게 믿음을 개인적이고 내적이고 영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으로 인해서 두왕국설은 "정치적인 금욕"(politische Abstinenz)를 불러왔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일은 세상에 속한 불신자 즉 극단주의자들이나 인본주의자나 물질주의자에게 넘겨졌던 것이다. 1920, 30년대 당시 독일 시민의 대부분은 정치를 냄새나는 일로 취급하면서 스스로 손을 더럽히려는 사람들에게 그 일을 넘기려고 했다.(Vgl. W. Scherffig, Junge Theologen im >Dritten Reich<, Dokumente, Briefe, Erfahrungen, Bd.1(1933-1935), Neukirchener 1989.S.12.)

넷째 두왕국설은 정치적인 중립을 지향하면서 보수적인 성향으로 흘러갔다. 루터주의자들은 교회로 하여금 정치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말고 중립에 머무르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처럼 겉으로 표현되는 중립 이면에는 언제나 "일방적으로 보수주의적인 경향"(H. Gollwitzer, Die christliche Gemeinde in der politischen Welt, Tübingen 1954, S.18. Vgl. auch W. Trillhaas, Die lutherische Lehre von der weltlichen Gewalt und der moderne Staat, in: H. Dombois (Hg.), Macht und Recht, Beiträge zur lutherischen Staatslehre der Gegenwart, Berlin 1956, S.32.)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와 유리된 창조론적 정치윤리에서는 창조질서(Schopfungsordnung)와 보존질서(Erhaltungsordnung)가 중요했고, 여기서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혼란으로부터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민사회의 질서를 지켜주는 것 즉 체제유지였다. 히틀러가 독재를 합법화하는 특별법을 공포했을 때에 루터주의자들이 환영한 것은, 체제와 질서유지를 자유나 인권보다 앞세웠기 때문이다. 이런 보수적인 성향은 2차세계대전후에도 여전했는데, 서독의 루터주의자들은 국가의 평화와 안녕을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막아야 한다며 미국이 앞세우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충실했고, 동독의 루터주의자들은 소련이 앞세우는 공산주의 국가이데올로기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이다.(Vgl. J. Moltmann, a.a.O., S.125.) 

4. 그리스도 주권설

4.1 쯔빙글리와 칼빈

스위스의 쯔빙글리와 칼빈 역시 콘스탄틴황제 이후 기나긴 역사 속에서 자행된 교회와 국가의 혼합에 대항하여 두 정부(Zwei-Regimente)를 분명히 구별했다. 그러나 루터와 다른 것은 둘을 분리하지 않고 구별하면서 도리어 둘 사이의 연관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쯔빙글리는 율법과 복음, 세상나라와 하나님 나라를 분리하지 않고 성경 속에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Gerechtigkeit Gottes)가 정치세계에서 나타나야 할 인간의 공의(Gerechtigkeit des Menschen)의 근원적인 척도가 됨을 통하여 둘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칼빈의 경우는 이 두 정부의 연결은 그의 기독교강요 4권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서 그는 교회와 국가 둘을 모두 하나님의 섭리의 동일 연관선상에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세상정부를 영적정부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리의 도구"(J. Calvin, Unterricht in der christlichen Religion, Institutio christinae religionis, übersetzt von O. Weber, Neukirchen 1988, IV,20,6)로 그리고 관료나 통치자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의 종" 보았다.(J. Calvin, Auslegung der Heiligen Schrift (Kol.1,16), O. Weber (Hg.) Bd.17., Neukirchen 1963, S.294.) 그는 정치적인 삶을 더러운 것을 취급해서는 안 되며(IV,20,2) 도리어 좋은 정치를 "우리가 세상에서 얻는 그 어떤 것보다도 탁월하고 훌륭한 은사"로 규정했다.(J. Calvin, Auslegung der Heiligen Schrift (Eph.1,21), a.a.O., S.119.) 그러므로 칼빈은 두 정부가 결코 상호 모순이나 경쟁 속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통해서 루터와 자신을 구별했다. 이러한 긍정적인 해석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정치적인 사역에 책임감 있게 참여하는 것을 신앙적인 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므로 루터의 두왕국설에서 야기된 탈정치나 이원론적인 내면화 내지 정치적인 무관심을 초래하지 않았다.

아울러 루터가 사랑이라는 것을 국가의 규범으로 삼지 않고 단지 국가 안에서 개개인 성도들의 행동동기로 규정한 것과 달리, 칼빈은 사랑의 법을 사회적인 규범과 연결시켰다. 그래서 사랑과 자비를 대변하는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으로서의 국가의 역할을 강조했고, 이것은 교회로 하여금 권력자에게 강한 투쟁적인 목소리를 가능하게 하였다. 바르트는 바로 이러한 칼빈의 사회윤리를 높게 평가하면서 "칼빈의 교회는 루터의 교회에서 결코 존재하지 않는 구약적인 전투하는 교회 ecclesia militans"라고 찬양했다.(K. Barth, Die Theologie Calvins (1922), GA II, Zürich 1993. S.150.) 칼빈의 기독교강요가 통치자에 대한 시민의 불복종의 권리로 끝나는 것은 분명 우연이 아니다. 결국 이런 칼빈의 정신은 그의 제자 존낙스를 통해 스코틀랜드의 정치현실에서 실천되었다. 낙스파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면서 칼빈이 죽던 해인 1560년 스코틀랜드에서는 칼빈주의(개혁주의)의 사회윤리가 그대로 담겨있는 'The Confession of Faith'가 채택되었던 것이다.

4.2 기독론적 사회윤리

바르멘신학은 이러한 개혁주의전통에 서서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인의 개인과 사회 모든 윤리의 근원으로 고백하고 있다. 특별히 이 기독론적인 관점은 2항에서 잘 다루어지고 있다.

Barmen II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1:3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모든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Zuspruch)인 것처럼, 동일하게 우리 모든 삶의 영역에서 권세 있는 하나님의 명령(Auspruch)이시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세상과의 무신(無神)한 결합에서 기쁨으로 해방되어, 자유와 감사함으로 그의 피조물들을 섬기게 되었다. 우리는 다음의 그릇된 가르침을 배격한다 : 즉 삶의 영역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다른 주를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그리스도를 통한 칭의와 성화가 필요 없는 영역이 있다라는 주장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은혜이면서, 동시에 은혜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지표이시다. 그의 가르침과 명령은 개인이나 가정의 영역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또 교회에서의 윤리만도 아니다. 국가와 정치 영역에서의 규범 역시 그의 가르침과 명령을 따라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그가 주로서 통치하지 않는 영역이 단 1Cm도 없기 때문이다.

이 바르멘 2항을 이해하는 데에는, 국가와 교회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규명하려고 한 바르트의 "칭의와 공의 Rechtfertigung und Recht"(1938)가 중요한 지침서가 되고 있다.

바르멘에서 가리키고 있듯이 바르트는 국가를 그리스도의 통치와 분리된 영역으로 두는 것을 그릇된 가르침으로 규정한다. 이 그릇된 가르침에는 국가가 자연법에 의해서 세워졌다고 하는 근대 국가이론뿐 아니라, 정치적 규범을 그리스도와는 분리된 율법이나, 원계시, 창조계시 등에서 찾으려고 하는 루터주의자들의 시도가 포함되어 있다. 바르멘은 교회뿐 아니라, 국가 그리고 모든 우주의 영역이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를 규명하는 작업을 위해 바르트는 빌라도사건을 다룬다. 그가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언도한 사건을 해석하면서 국가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두 가지 관점에서 말한다. 먼저는 국가를 대변하는 빌라도는 공의로 재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죄한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언했다. 이는 현존하는 국가가 하나님의 의로 통치해야 하는 창조의 본의에서 벗어나 불의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 십자가형이 결국은 주께서 만인의 죄를 씻어 의롭게 하는 칭의 사역에 사용이 되었다는 사실을 주시한다. 여기서 그는 국가는 그 왜곡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에서 유기되지 않았다고 말한다.(K. Barth, Rechtfertigung und Recht (1938), in: Rechtfertigung und Recht. Christengemeinde und Bürgergemeinde [u.a.], Zürich 1998, S.13. 이후 페이지를 괄호로 표기) 이러한 해석을 통해서 바르트는 국가가 영적으로 왜곡되어 있음(Damonisierung)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질서와 구속의 질서 즉 국가와 교회 속에는 긍정적인 관계가 있다는 결론을 짓는다.(15)

이 둘은 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는데서 공통점을 갖는다. 어떻게 국가가 그리스도의 종인가? 바르트는 지금이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의 시점임을 중요하게 여겼다.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는 모든 나라와 정사와 권세위에 높이 들리시며 이 모든 것이 그에게 복종했다고 바울은 선언한다(고전15:24, 빌2:9f, 골 1,15f,2:15). 이 말씀대로 국가는 현재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으며,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로 세상을 통치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종교개혁주의자들의 말처럼 하나님의 나라(regnum Dei)와 사단의 나라(regnum diaboli) 사이의 이원론적인 세계전쟁은 더 이상 있을 수 없다. 국가는 이제 영적전쟁의 대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으로 그 존재와 위엄과 역할과 목표는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죄인의 칭의를 위한 주님의 사역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란 죄의 생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세계통치의 기구이며, 나아가 은혜의 도구이다.(Vgl. H. Gollwitzer, Die christliche Gemeinde in der politischen Welt, Tübingen 1954. S.31.)

그의 기독론적인 국가 이해는 또한 종말론적인 근거를 가지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미래에 가게 될 곳은 하늘의 도성이다.(빌3:20, 히11:10, 13:14 ..) 여기 사용된 po,lij, poli,teuma 뿐 아니라, ku,rioj,, basilei,a, 시민권 등의 용어도 종교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인 어원을 갖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시민권을 갖고 있는 하늘의 도시는 상상이 아니라, 실제적인 완전한 국가이다. 이 완전한 하늘의 도시는 종말론적인 희망으로 이해될 뿐 아니라, 이미 교회를 통해서 세상 나라에 공의의 근원과 규범을 제공해주고 있다. 죄인이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음을 믿는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원한 의의 나라를 전하고 선포하게 될 때, 이미 교회는 정치의 잣대가 되는 세상 공의의 근원과 목표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급진적인 종말주의자들처럼 하늘나라가 이 세상 정치의 영역에 세워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가톨릭처럼 교회에 실현될 수 있다는 것도 아니다. 교회의 역할은 단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의 그리고 다음 세대에 오게 될 완성된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교회는 세상국가에 대해서 "그의 책임과 예언자적인 파수군의 직분"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10) 국가가 인정하던 하지 않던 간에 교회는 국가를 세우고 보존하는데 있어서 가장 결정적인 요소이다. 왜냐하면 교회만이 국가가 시작된 기원, 자연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세워진 권위, 그리고 그의 미래의 최종적인 운명을 알고 증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약한다면 그리스도주권설을 근거로 한 바르멘 제 2항에서는 교회와 국가가 함께 그리스도의 통치와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아주 긴밀한 연관성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르멘 제 5항에 내포된 유비론적인 관계에서 보다 구체화되고 있고, 여기서 국가에 대한 교회의 보다 구체적인 책임과 역할이 제시되고 있다.

4.3 유비론적인 사회윤리

교회와 국가가 함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은혜의 도구라고 할 때에 과연 둘은 어떤 관계를 갖고 서로의 한계는 무엇이며, 서로의 역할은 무엇인가 에 대한 것은 바르멘 제 5항에 집약되어 있다.

Barmen V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벧전2:17) 성경은, 아직 구속되지 못하였으나 교회가 있는 이 세상에 하나님이 국가를 위임하여 임무를 주었음을 말씀하고 있다. 국가는 인간적인 통찰과 인간적인 능력을 따라서 경고 내지는 공권력 행사를 통하여 공의와 평화를 지켜야 한다. 교회는 감사와 경외함을 갖고 하나님이 국가를 위임한 것을 축복으로 인정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계명과 하나님의 공의를 기억하고, 그것을 갖고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책임을 또한 기억한다. 교회는 만물을 붙드시는 말씀의 능력을 신뢰하고 복종한다. 우리는 다음의 그릇된 교훈을 배격한다: 첫째로 국가가 자신에게 위탁된 임무를 넘어 인간의 삶의 유일하고 전적인 질서가 되거나 나아가 교회의 것을 결정한다거나 할 수 있다는 그릇된 교훈. 둘째로 교회가 자신에게 위탁된 임무를 넘어 국가적인 형태나 국가의 임무,  국가의 위엄을 가진다든지, 그것으로 스스로 국가의 한 기관이 되어야 한다거나 할 수 있다는 그릇된 교훈"

이 바르멘 제 5항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는 화목론(Versohnungslehre)을 다루는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 IV권 전체, 이 중 특별히  IV/4 "신앙적인 삶 Das Christliche Leben"을 통해서 조명된다. 그러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설명은 이보다 먼저 저술된 "기독공동체와 시민공동체 Christengemeinde und Burgergemeinde"에 잘 나타나고 있다.

이 책에서 바르트는 세 개의 원으로 형성된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교회와 국가의 관계를 설명한다. 가운데 중심 되는 원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그 원 밖의 원에는 기독공동체가 되는 교회가 그리고 가장 밖의 원에는 시민공동체가 되는 국가가 자리 잡고 있다.

교회와 국가는 아직 구속되지 못한 세상 속에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았고 함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다. 교회와 아울러 국가가 세워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그러나 원과 원 사이에 경계가 있듯이 이 둘 사이에는 그 성격과 맡은 역할에서 분명한 경계가 있다. 교회는 교회로서, 국가는 국가로서의 역할과 한계가 있다. 이 역할을 벗어나고 영역을 넘어서서는 안 된다는 것이 바르멘 제 5항 후미의 거부문항이 지적하는 바이다.

또한 교회가 그리스도와 국가 사이 중간지점에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키에르케고르가 표현한 바대로 결코 뛰어넘을 수 없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 완전한 것과 세상의 보이는 불완전한 것 사이에는 완벽한 분리가 있다. 세상 나라는 결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고, 하나님 나라는 이 땅 위에 어떤 세상 나라의 형태로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비유(Gleichnis) 혹은 유비(Analogie)의 원리가 있다. "하나님은 그 피조물에게 창조주로서의 자신과의 관계에 있어서 유비의 특성을 주셨다"(KD (Die Kirchliche Dogmatik, Zürich 1932ff) II/1, S.261.) 신약의 복음서에서 주님이 하나님 나라를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것은, 이미 그런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생활 구석구석에 하나님 나라의 비유의 속성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가 역시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의 속성을 갖고 있다(gleichfahig). 국가의 구성, 역할, 국가가 지향하는 의와 평화 모두가 하나님 나라의 속성들과 관계를 갖고 있다. "기독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국가의 공의라는 것은 교회가 믿고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에의 비유, 상응, 유비로서의 국가의 존재를 말해주는 것이다"(K. Barth, Christengemeinde und Bürgergemeinde, in: ders., Rechtfertigung und Recht. Christengemeinde und Bürgergemeinde [u.a.], Zürich 1998, S.63 (이후 괄호번호로 처리)) 여기서 교회의 역할이 나오는데, 교회는 하나님 나라와 국가 사이에 존재하면서 국가로 하여금 자신의 참된 본질을 보고 알도록 도와준다 : 바르멘 제 5항에서 말해주듯이 국가는 먼저 인간적인 통찰력과 능력으로 바른 통치원리를 세우고 여기서 형성된 잣대를 갖고 정치적인 판단과 결정을 내리면서 공권력을 행사하여 법과 평화를 지켜간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이성이나 통찰력이라는 것이 죄로 인하여 오염되고 왜곡되어 있다. 그래서 국가는 올바른 판단과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부패의 길로 가기 쉽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성에 입각한 통찰력이 과연 국가로 하여금 공의를 세울 올바른 정치적인 척도를 세워가게 할 수 있는지가 의문시 된다. 이러한 이성의 오류와 한계성으로 인하여 세상국가는 자신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 나라와의 유비성을 검토 받을 필요가 있다(gleichnisbedurftig). 국가는 하나님 나라, 그 근원적인 세계를 볼 수도 알 수도 없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이 세계를 보는 교회는, 인간의 이성을 좇아 산출된 정치적인 판단과 잣대가 하나님의 말씀에 상응한 것인지를 유비적인 과정을 통해서 분별하고 판단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 교회의 세상국가에 대한 책임과 역할이 있는 것이다.

이 유비의 과정을 바르멘은 기억(Erinnerung)이라고 하는 것 말로 표현하였다. 기억이라고 하는 말 속에는 교회가 결코 국가에 성경말씀을 들이대며 그대로 시행하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내포되어있다. 정치의 세계 속에서 인간적인 성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복음적인 가르침을 바로 시행시키려고 하는 근본주의적인 교회의 욕구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왔다. 그 극단적인 예들은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실현시키려고 했던 열광주의적 신정주의나 유토피즘이다. 이것은 복음의 오용이고 복음의 율법화로 결국은 현실성이 없는 과격한 혁명을 요구하다가 자멸했을 뿐이다. 오늘날 성경의 말씀이 담겨진 시간과 공간성, 그리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성을 무시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국가에 요구한다면 이것은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4.3.1 잣대의 근원

교회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의 계명과 공의를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판단기준의 근원을 다루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원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다. 교회 생활의 잣대의 근원뿐 아니라, 정치세계에서의 잣대의 근원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 말씀은 바르멘 제 1항에서 명시했듯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이 증거하듯이 우리가 귀 기울이고, 살든지 죽든지 신뢰하고 순종해야 할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이 바르멘에 담긴 사회윤리가 다른 기독교사회윤리와 구분되는 시금석이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이 과거 자유주의자나 루터주의자들처럼 정치윤리를 이성의 영역으로 넘기려고 한다. 정치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복음으로 다룰 문제가 아니고, 이성적인 잣대를 갖고 접근하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독일에서 그 대표적인 신학자는 마틴 호네커(M. Honecker)이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국가가 인간적인 통찰력과 능력에 의해서 통치하도록 규정한 바르멘 제5항은 루터의 두왕국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석한다.(Vgl. M. Honecker, Zur gegenwärtigen Bedeutung von Barmen V, ZEE 16 (1972), S.207-218, S.211f.) 만일 호네커의 말대로 정치세계의 윤리를 단순히 인간의 이성에 근거해야 한다고 인정할 때, 국가가 바른 정치를 하고 있는가를 분별해줄 수 있는 예언자적인 기능을 위해서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시대적인 이성의 흐름을 분석하고 다양한 사회학과 사회철학을 이해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더 이상 기독교사회윤리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다. (이에 대해서 바인트커은 오늘날 개신교 사회윤리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오늘날 유행하는 개신교 사회윤리는 여러 다양한 사회학적이고 사회철학적인 이론들과의 결합에 무게를 두고 세워진다. 그 조화란 많건 적건 자의적으로 꿰맞춘 혼합물, 그리고 가장 다양한 것들 그리고 때로는 시사하는 바가 있는 학문적인 관점들로 엮어지는 것이다. 그런 사회윤리의 설득력이란 근본적으로 다양한 수입된 이론의 설득력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도대체 이런 수입된 이론이라는 것이 개신교의 사회윤리의 신학적인 관점을 이해하는데 무슨 관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M. Beintker, Das Volk Gottes im Weltgeschehen, ZDT, 17 (2001), S.95-111, S.104.)

교회는 언제나 모든 판단의 근원을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 그의 계명 그리고 그의 공의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이 교회는 정치적인 영역 속에서 올바른 예언자적인 책임을 질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나님이 세상 속에 세우신 국가가 지향해야할 근본적인 방향과 기준을 함유하고 있는 근원이기 때문이다.

4.3.2 해석과 적용

교회는 하나님 나라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의 책임'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 정치의 세계가 성경적인 원리가 해석되고 적용되는 자리이다. 그런데 정치세계와 관련된 성경 해석과 적용을 통해서 교회는 시스템이나 개별적인 각각의 사례보다는 국가가 지향해야 할 일정한 방향과 지속적인 노선을 얻게 된다.

그런데 해석과 적용이 바르기 위해서는 그 삶의 자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인간적인 통찰과 인간적인 능력에 의해서 세워진 일반적인 정치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결여될 경우에는 일정한 방향과 지속적인 노선이라는 것이 관념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나아가서는 극단적인 것이 되기 쉽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방적이고 연역적 원리에서가 아니라, 정치의 통전성 속에서 해석되어져야 한다. 유비의 작업은 "단순한 연역적인 도식이나 또는 반대로 현실상황에 종속된 결정론"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W. Huber, Gerechtigkeit und Recht, Gütersloh 1996, S.126.)

이 유비작업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기억함과 인간의 통찰을 기억하는 일 다시 말해서 믿음과 이성이라는 것 사이의 상호관계가 중요시된다. 정치 세계의 현실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 더 바르게 이해하게 되고, 거꾸로 세상사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해준다. 이 반복되는 상호작용은 그리스도인들의 지평을 넓혀주고, 이로 인해서 그들은 세상의 정치적인 실제를 더욱 잘 이해하고 동시에 이 시각으로 성경을 새롭게 이해하고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정치적인 상황이 바뀌어지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로 인해서 성경을 새롭게 읽게 되고 또 성경 스스로가 하는 말을 듣게 된다. 오직 성경 속에서 피난처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당면한 현실의 위험성과 가능성 그리고 그 결과를 가르쳐주고, 나아가 상황이 얼마나 여유있고 깊고 실제적인가를 분별하도록 말해준다"(K. Barth, Christliche Gemeinde im Wechsel der Staatsordnungen, Dokumentation einer Ungarnreise, Zürich 1948. S.42.)

시몬의 설명은 바르멘 속에 담겨진 유비작업의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올바른 정치적인 행위를 위한 어떤 형태의 통치 프로그램을 먼저 성경에서 이끌어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주어진 사안과 구체적인 임무에서 먼저 시작하면서 그것을 이성과 경험에 의해서 검토하고 이 분야에 전문가를 참여 시키면서 어떤 해결책이 있는가를 따지는 것이다. 바르멘선언은 그런 점에서 인간적인 통찰과 인간적인 능력을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사전작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비신자보다 똑똑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주어진 상황을 밝혀내고,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그들이 가진 믿음이 현실을 보는 시각을 좌우한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같이 사고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방향과 잣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하면 이성과 전문적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여러 결정적인 안건들 가운데서, 우리의 신앙에 더 잘 맞고, 더 잘 결합된 사안을 선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선택이란 결코 자연법적 명제에서 나온 것 같이 절대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보다 더 나은 것이라는 의미에서 선택이기에 그 선택은 상황에 연관되어있고, 또 상황에 따라 바뀌어질 수 있는 선택들이라는 것이다"(H. Simon, Die zweite und die fünfte These der Barmer Erklärung und der staatliche Gewaltgebrauch, in: J. Moltmann (Hg.), Bekennende Kirche wagen, Barmen 1934-1984, München 1984. S.205ff.) 이러한 정교한 연역적 귀납적인 작업의 과정에서 정치판단을 형성하는 일정한 방향과 지속적인 노선이 드러나는 것이다.

4.3.3 정치적인 입장표명

그 다음단계에서 교회는 그의 척도를 갖고 의로운 국가와 불의한 국가, 더 나은 정책과 더 나쁜 정책을 선별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 교회는 어떤 정치 형태가 하나님 나라에 더 상응하는 것인지 물어야 하고, 이런 더 나은 국가형태의 질서를 세우고 보존하고 실천하는데, 여러 다양한 경우와 다양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의 구체적인 분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치형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인 입장표명은 먼저 성도 각 사람을 통해서 되어질 수 있다. 각 그리스도인들은 사회에서 중요한 정치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으므로 개개 성도들의 결정은 정치영역에서 커다란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의 중요한 역할은 각 성도들이 올바른 정치적 분별력과 결단을 가진 건전한 시민이 되도록 양육하여 세상 속에 보내는 것이다. 둘째로 교회적인 차원에서 정치적 입장표명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대단히 신중함과 주의를 요한다. 여기에는 먼저 당면한 정치 사안에 대한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이고 객관적이면서 상황에 맞는 정보가 먼저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신학적인 검증을 거쳐야 한다. 교회는 그 회원들에게 이러한 정보들과 아울러 어떤 결정의 잣대가 합당한 것인가에 대해서 충분히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총회나 이에 상응하는 대표성을 가진 기관이 할 수 있다. "아주 중요한 정치적인 상황이 주어질 때 장로회나 공의회의 입을 빌어서 당국에 청원서를 제출하거나 공적인 선언을 하는 것 역시 교회에게 주어진 역할과 권한이다"(77)

4.3.4 실제적인 예

바르트는 "기독공동체와 시민공동체"에서 이러한 이론을 갖고 몇 가지 실제적인 예를 제시했다. 먼저 성경을 주석하여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특성을 분석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이 행위를 찾아내고 이것으로 정치영역에서 유비의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해석과 적용의 상호작용 가운데서 몇몇 일정한 정치적인 결정과 행동양식을 만들어갔다.

- 하나님의 인간성(Menschlichkeit Gottes)에서 그는 '인간'을 기독교윤리의 일정한 방향과 지속적인 노선 중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영역에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어떤 '사물'이 아니라, '인간'을 가장 맨 앞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 인권 그리고 기본권은 기독교정치윤리의 공리와 같은 것이다.(65,67)

- 그리스도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셨고, 가난하고 병든 자의 친구가 되신 것에서 교회는 국가 속에서 언제나 약한 자, 억압당하고 가난한 자, 망명자들을 돌아보아야 하고 그들 편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사회적인 공의'(soziale Gerechtigkeit)는 기독교 윤리의 중요한 잣대로 제시되는 것이다. '사회적 공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교회의 중요한 정치적인 임무이다.(67)

- 자유는 복음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서 자유를 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국가에 선거의 자유, 결정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모든 국민에게 기본권으로 보장해 주도록 요구해야 한다. 교회는 실제적인 독재건 원리적인 독재건, 부분적으로나 전면적으로 인간의 자유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독재를 용인해서는 안 된다.(67)

- 그리스도의 몸은 균등하다고 하는데서 정치적인 '평등'을 도출했다. 그러므로 교회는 신분이나 인종 또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치적인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찬성할 수 없다.(68)

- 교회의 은사와 역할이 다양하다는 것이 사회의 다양성을 유비한다. 여기서 삼권분립을 도출한다.(68f)

- 하나님은 자신을 세상에 계시하셨고, 그리스도께서 빛으로 오셔서 어두움을 물리치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비밀경찰, 비밀외교에 거리를 두어야 한다.(69)

이러한 기독론적이면서 유비적인 시도와 구체적인 사례 제시는 일부 신학자들로부터 분명치 못할 뿐 아니라, 자의적이고 부분적으로 억지로 꿰맞추었다는 비판을 받았다.(Vgl. H. Lindenlauf, Karl Barth und die Lehre von der 'Königsherrschaft Christi", a.a.O., S.250. H. Thilecke, a.a.O., S.717.) 이미 바르트 자신도 여기에 제시된 것들이 여러모로 보충되고 발전되어야 함을 밝혔다.(72)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시도를 통해서 "기독교적인 복음과 구체적인 정치적 결정과 행동양식 사이의 비유적이면서 아주 구체적인 관계"를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72)

그런데 여기서 쉐롱의 비판은 이 유비작업에서 반드시 유의할 점을 잘 지적해주고 있다.(Vgl. D. Schellong, Die Gerechtigkeit als Gleichnis des Himmelreichs, zur politischen Ethik Karl Barths, in: Karl Barths Theologie, Aufnehmen und weiterdenken, Tagung der Evangelischen Akademie Baden, a.a.O., S.54-74) 성경을 정치행동규범의 근원이라고 할 때, 그리스도인들이 범하기 쉬운 오류가 있다. 먼저 정치이성이나 정치적인 상황에 근거해서 어떤 정치이론이나 정책, 방향등을 미리 정한 뒤 그것에 대한 성경적 뒷받침을 찾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성경적인 정치원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도된 작업은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왜곡시킬 수 있다.

쉐롱은 드 보날드의 예를 이런 그릇된 유비작업의 문제로 지적한다. 보날드는 프랑스혁명을 비판하고 과거 신분제도로의 복고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삼위일체를 끌어들였다 :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시므로 그것을 근거로 세상에는 세 개의 신분을 있어야 한다. 고로 이 신분의 질서를 파괴한 프랑스혁명은 불의한 것이다 라는 결론을 내렸다. 드 보날드에게 있어서는 복고정치의 정당성이 이미 전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정치의 정당성을 공인받으려고 하는 의도로 삼위일체를 끌어들인 것이다. 쉐롱은 바르트가 하나님이 빛이시라고 하는 데서, 비밀정치와 외교를 배격하는 결론을 도출한 것도 드 보날드와 유사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한다.

바르트에 대한 그의 비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러한 문제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검토되고 비판되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이성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해석과 적용을 과정을 가져야 한다. 정치현실을 무시한 채 하나님이 말씀을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정치현실을 앞세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화시켜서도 안 된다. 여기서 우선순위는 간과되어서는 안 될 중요한 원리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고 우선이다. Text와 Context의 상호작용이 있지만, Context가 우선 될 수는 없다. 그럴 때,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 결정된 것을 추인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린다. 1933년 이후 이런 왜곡된 유비방법의 문제에 대해서 바르트는 아주 예민하게 반응했다. "비유의 근원(analogan)이 되는 복음이, 비유의 대상(analogatum)이 되는 정치적인 통찰력보다 우선함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다"(K. Barth, Briefe 1961-1968, GA V, Zürich 1975, S.152. Vgl. B. Klappert, Versöhnung und Befreiung, Versuch, Karl Barth kontextuell zu verstehen, Neukirchen 1994. S.205ff.) 바르멘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기억하고 그 다음으로 정치세계의 책임을 기억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 순서를 분명히 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의 의보다 하나님의 의, 정치보다 신학, 정치의 외연(politische Explikation)보다 정치의 내연(politische Implikation)을 우선하는 순서에 있어서 바르멘과 아울러 바르트의 신학은 분명하다. 이것이 교회나 신학의 정치화를 막는 중요한 길이다.

결론적으로 바르멘의 윤리는 기독론적 유비론적인 윤리이다. 기독론적 이론을 통해서 루터주의의 두왕국설에서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통하여 야기되는 다양한 문제를 극복하고, 유비론적 이론을 통해서 복음을 정치영역에 직접 적용하려고 하는 근본주의나 신정주의의 문제도 극복했던 것이다.

5. 한국교회의 정치윤리

한국교회의 정치윤리를 말하면 먼저 정교분리를 떠올리게 된다. 이것은 미국선교사들을 통해서 한국교회에 전달되고 뿌리내린 미국의 국가와 교회이론이다. 독립하기 전 영국의 식민지로서 미국에서는 영국성공회가 국교의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유럽에서 종교의 박해를 피해서 온 다양한 개신교인들은 이곳에서 역시 국교로 인한 핍박과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이러한 종교적인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독립에 성공한 후 미국은 유럽과 같이 국가와 종교가 밀착하여 어떤 종교에 혜택을 부여하는 국교제도를 없앴다. 이렇게 해서  중세를 거친 이후 최초로 국가와 교회의 분리제도가 미국에서 정착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사실 정교분리는 먼저 교회가 국가에 종교적인 중립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정치문제에 무관심하기를 요청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고 하는 막연한 표현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부작용을 낳았다. 어떤 교파가 미국 사회에 소수일 때, 이러한 정교분리는 그들에게는 종교의 자유를 의미했다. 그러나 그 교파가 다수가 될 때,(예컨대 처음에는 장로교, 그 후에는 침례교) 이 제도는 한편으로는 교회의 정치적인 무관심이나 무책임을 불러일으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정치영역에서 보수적인 경향을 강화시켰다.(Vgl. Mark A. Noll, Das Christentum in Nordamerika, Leipzig 2000, S.99ff.)

우리나라의 정교분리는 미국이 가진 이러한 역사성과 관계없이 강한 이원론적인 성향을 띄면서 국가나 사회적인 일을 믿음의 영역에서 제외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것은 루터의 두왕국설과 유사한 것으로, 사실 한국교회는 앞에서 지적한 독일루터주의의 현상들을 그대로 경험하였다. 정치문제에 대한 무관심 내지 중립성이 영성을 추구하는 신앙인의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고,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세상나라의 변화와 발전은 불신자들의 손에 넘겨졌다. 그러면서 교회는 이들의 희생과 수고로 일군 정치발전의 혜택을 향유하는 이중성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선교 초기에는 선교사들이 요구하는 정교분리가 교회에서 잘 먹혀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국인의 몸에 배어있는 유교는 정치성향이 강한 윤리로 왕에게 대한 충성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당면한 국가의 위기와 국왕의 불행에 침묵하거나 무관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또한 선교사와 교회가 서양문화 신교육의 중요한 거점과 통로가 되었기에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교회를 통해서 신문화에 먼저 깨인 사람들이 더욱 국가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졌다. 이것이 모아져서 분출된 것이 바로 3ㆍ1운동이었다. 3ㆍ1독립운동은 거의 기독교가 중심이 된 사회운동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실패로 한국교회는 급속히 정교분리의 가르침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교회의 이런 급격한 변화는 여러 사회정치적인 영향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3ㆍ1운동에의 적극적인 참여가 사회책임에 대한 신학적인 기반 위에 진행된 것이 아닌데 더 큰 원인이 있었다.

이후로 교회는 사회성을 상실한 채, 내면화, 내세화 그리고 개인화 되었고 그것이 해방이후 지속되었다. 5ㆍ16혁명 이후 오랫동안 지속된 군사독재정권하에서 교회는 많은 부흥을 경험했으나, 사회현실에는 무관심했다. 그래서 인권을 유린하면서 자행되는 불의한 정권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일부 영향력 있는 교회 지도자들 중에는 대놓고 유신을 찬양 고무하기도 했다. 국가의 역할이란 기껏해야 교회가 평안히 복음을 전파하도록 보호해주는 것이라고 하는 단순한 생각에서 인권이나 민주주의보다는 나라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우선시 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차례의 진보정권이 들어서면서 정치문제에 침묵하던 한국의 보수적인 교회에 많은 변화가 왔다. 교회와 목사들은 공식석상이나, 심지어 설교강단에서 서슴치 않고 정치적인 발언을 하였다. 대부분이 정권비판적인 발언이었다. 현 정부를 친북반미정권으로 규정하고 이에 반하는 반공친미 집회를 가지고 정권타도를 외치기도 했다. 이제 대선을 앞두고는 공공연히 야당후보를 지지하고 장로대통령을 만들기 위해서 발 벗고 나서기도 한다. 정치에 대한 이러한 태도 변화는 국가가 잘못되면 교회가 할 말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그동안 한국교회가 어떤 이유에서건 터부시했던 정치적 책임을 이제는 적극적으로 감당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그동안의 사회윤리적인 전통이었던 정교분리를 내던져 버렸다.

우리 한국교회에 또 다른 사회윤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민중신학이다. 유신에 반대하는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군사정권의 독재에 항거하면서 감금, 투옥, 고문 등 많은 핍박과 고초를 겪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 바로 민중신학이었다. 한때 민중신학은 제 3세계의 대표적인 정치신학으로 많이 소개되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민중신학을 한국의 바르멘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재에 항거했다는 공통점 이외에 민중신학과 바르멘은 오히려 전혀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민중신학은 대다수의 한국교회에 별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 신학에서 일어난 현저한 복음의 왜곡 때문이다. 민중신학에서는 민중을 너무 중요시한 나머지, 그것을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구원해주는 주체로 바꾸고 말았다.(민중신학에 대해서 우호적이었던 몰트만 역시 이 부분은 동의하지 않았다. “민중이 단순히 고통 받는 국민이 아니라, 자신의 고난을 통해서 인간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면, 이것은 기독론적인 문제를 야기시키는 것일 뿐 아니라, 국민에게 너무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일이 아닌가” J. Moltmann, Erfahrungen theologischen Denkens, Wege und Formen christlicher Theologie, München 1999. S.231.) 민중이 메시아가 되는 것이다. 이들은 전통적 기독론인 대속주로서의 예수(Stellvertretungschristologie)가 교회를 비정치화했다고 비판하면서 예수와의 연대(Solidaritatschristologie)를 강조했다. 이 연대기독론에서 예수는 민중으로 함몰되어 간다. 첫 단계에서 예수는 민중과 동일시되고 다음에는 예수가 인격이 아니라 민중의 사회상으로 이해되면서, 마침내 그의 고난, 죽음과 부활은 하나의 민중 사건으로 해석된다. 즉 민중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고 부활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예수 해석에서 예수는 더 이상 하나님의 아들, 인간의 죄를 위한 대속주로서의 예수가 되지 못하고 기독교복음은 민중 이데올로기로 전락해버리는 것이다. 독일의 '독일그리스도인'이 나치를 신학화하면서 극우적인 성향으로 정치화되었다면, 민중신학은 민중을 신학화하면서 극좌적인 성향으로 정치화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민중신학은 다수의 복음적인 한국교회에서 기독교적인 사회윤리로서의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 채 과거의 신학이 되고 말았다.

6. 나가는 말

오늘날 한국교회는 정치윤리의 차원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좌측의 극단적인 정치신학은 힘을 잃었고, 우측의 정치적인 무관심과 무책임을 강조한 정교분리도 내던져졌다. 어찌보면 양 극단에서 벗어나 보다 더 성숙한 기독교 사회윤리 즉 국가와 교회간의 건전한 관계가 정립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려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그리스도인들의 많은 정치행동들은 확고한 정치윤리의 터가 없다보니 감정적이고 자의적이고 선동적인 경향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교회, 특별히 목사가 너무 정파적인 입장에 서서 강단에서 여과되지 않은 정치설교를 하고 있다. 자신의 정치신념을 상대화하기 보다는 도리어 신앙 안에서 절대시하다보니 정파나 이념논쟁의 한 가운데 뛰어들기도 하고, 선거운동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념을 뛰어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자신을 이념의 틀에 가두고 색안경을 낌으로 사회를 객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교회는 자칫 세상 정치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그동안 견지해 온 정치적 무관심과 무책임에서 벗어나 그 반대쪽에 있는 교회의 정치화라고 하는 함정에 함몰될 우려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차분히 진지하게 물어야 한다. 왜 그러한 정치적인 설교와 정치적인 입장표명과 정치적인 집회와 행위를 해야 하는가? 왜 반미이고 왜 친미인가?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주장하는가? 과연 그 정치적 잣대의 근거는 이성인가? 아니면 남북대치의 정치현실인가? 국제 정세 때문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과연 그 말씀의 해석은 정당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정치적인 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성경을 오용하는 것인가? 우리는 지금 아무런 원칙도 신학도 없이, 주어진 정치현실에 매몰되어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고민과 대화 속에서 우리는 장기적으로 복음적인, 복음을 근거로 한 사회윤리의 신학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가야한다. 목회자는 더 많은 정치적인 지식을 갖고 정치현실을 객관화 시킬 능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각 분야의 전문가와의 대화의 채널을 갖고 말씀과 정치영역 사이에서의 상호작용을 통해 더 나은 정치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여기에 미리 당파성을 띄고 그것을 정당화하려고 하거나 현실정치적인 영향력을 가지려고 하는 모임은 별 의미가 없다. 아울러 설교강단에서 당파성이 농후한 설교를 하여 교인들과 사회에 영향을 주려고 하기보다는 교인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올바른 정치적인 분별력을 가진 시민으로 양육하기 위하여 보다 통전적인 교회교육을 시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독일교회의 사회윤리적인 모체가 되고 있는 바르멘에 더 많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여기의 기독론적-유비론적 관점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정치적인 무관심과 교회의 정치화라는 두 위험을 피하고 균형 잡힌 건강한 기독교 사회윤리를 제시할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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