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약한데서 심히 큰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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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약한데서 심히 큰 능력
  • 옥한흠 목사
  • 승인 1996.08.2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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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08/26) 교갱협 제1차 영성수련회 개회예배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교회갱신을 하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많이 나오는 시대는 불행한 시대입니다. 교회 안에는 그런 말이 없어야 됩니다. 그래야 건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갱신하자고 하는 소리가 크게 들릴수록 뭔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이고 개혁하자는 이야기가 크면 클수록 교회가 잘못가고 있다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 참 불행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저 자신이 이런 구호를 외쳐야 한다는 것은 저 자신도 완전하지 못하면서 얼마나 부담스럽고 주님이 보실 때에 고쳐야 할 것이 수두룩할 텐데 그런 것을 다 안고서 남을 향해 고치자, 새로워지자고 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런 면에서 제 마음에는 아픔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위로하심이 있기를 바라고 우리모두에게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겸손한 자들이 될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우리들은 굉장히 어려운 시대에 놓여있습니다. 뭐 어렵다, 힘들다, 위기다 하면 자꾸 사람들이 말하기를 너의 생각이 부정적이지 않느냐? 좀 긍정적으로 보라고 합니다. 저도 하도 많이 들으니까 이제는 저 나름대로 분석을 합니다만 내가 너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만 가지를 보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것을 자주 자주 점검을 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저는 부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목회를 해오면서 제 자신이 추구했던 철학이라든지 또 성도들 하나하나를 보면서 저 자신이 갖는 기대감이라든지 또 이 시대를 향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려고 노력하는 저의 입장에서 볼 때 저의 사고는 절대 부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소극적도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은 환상이 있고 예언이 있고 꿈이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성령의 사람이라면 왜 하필이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어려운 시대다. 위기다. 큰일 났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말을 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나의 부정적인 사고 때문이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보면 특별히 선지자 시대를 보면 상황이 위기에 치달을수록 거짓 종들은 평화를 외쳤습니다. 평화가 뭡니까? 긍정적인 사고방식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좋게 해석하는 겁니다. 그럼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누립니다. 그리고 분명히 보아야 할 문제점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리고 좋은 것만 자꾸 부각시켜서 확대하니까 사람들이 그걸 쳐다보고 자기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이 눈앞에 와도 그것이 심판인지를 미쳐 알지 못하고 다 같이 망했어요. 병든 낙관주의는 시대가 위기에 빠질수록 더 기승을 부립니다. 오늘 우리 주변 특별히 우리 교단 안에 그와 같은 병든 낙관론을 가지고 가급적이면 현실을 오도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요. "뭘? 교회가 아직도 부흥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동안 이만큼 축복하시지 않았느냐?" "선교사가 몇 명이 나가고 있는데?" 뭐 이런 소리를 하면서 문제없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 우리 자신들이 다시 한번 성령의 음성이 무엇인가를 귀담아 듣는 시간되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 시대를 염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염려하신다고 믿기 때문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탄식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탄식한다고 분명히 믿습니다. ‘뭐 할일이 없어서, 내 교회나 잘하면 되지’ 할일 없어서 교단걱정하고 한국교회 걱정합니까? 솔직히 내가 걱정한다고 한국교회가 달라질거요? 내가 발로 뛴다고 교단이 달라질거요? 골치아프게 뭐하러 그럽니까? 그러나 우리가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성령의 탄식이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조금만 눈을 뜨고 보면 어려운 시대입니다. 굉장히 어렵습니다. 성령이 떠나시지 않을까하는 우려마저 생길만큼 어려운 시대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기장처럼 보수다, 복음이다, 하며 떠드는 교단이 아니었다면, 경건이다 하며 거룩한 체하며 위선을 하지 않았더라면 괜찮아요.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보수를 외치며 거룩한 체해온 교단입니다.  거룩하다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위기는 더 심각합니다.

솔직히 목사들끼리 앉아서 하는 얘기를 평신도들이 들을까 봐서 안절부절하는게 우리 목사들입니다. 평신도들이 있는 자리에서는 말 못하는게 너무 많잖아요. 목사끼리이고 서로 이해하니까 털어놓는 것이지만, 그 말이 행여 평신도 귀에 들어갈까 싶어서 한 번 옆을 돌아보고 말을 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면서도 양심상 이거 이대로는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없었어요. 어느  때나 이 정도의 문제는 있었다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가지고 가급적이면 태연하려고 했습니다. 너무 태연하려다가 이제는 상당히 어려운 고비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제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잖아요? 여러분이 너무 잘 알지 않습니까?

솔직히 얘기해서 저는 교단 제에 대해서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저는 솔직히 관심이 없었어요. 교단이다, 조직이다, 운영이다 하는 것은 필요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교회는 유기체입니다. 조직체가 아닙니다. 할 수 없어서 사람들이 모이는 집단이다 보니까 조직이라는게 필요하게 되었으니까 이 조직이 제대로만 운영이 되면 그것은 필요한 선이 될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부작용을 일으키게 되면 필요악입니다. 제가 그런 시각을 가지고 늘 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한동안은 교단을 뛰쳐나가서 밖에서 돌기도 했고 나중에 다시 교단으로 들어올 때 참, 제 이름을 빼놓지 않고 5년 동안 기다렸던 모노회에 가서 약간 인격적으로 모욕적인 질문을 받으면서 인사를 했어요. 분명히 그런 사람들이 볼 때에는 자기들은 교단을 지키는 정통을 가진 사람들이고 나는 밖으로 돌다가 갈때 올때 없어서 다시 돌아온 사람이 된 꼴이죠. 그러니까 약간 비위 상하는 항의를 해도 저는 "잘못했습니다" 하고 교단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왜 밖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느냐? 그것은 한마디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별 수가 없나 봐요. 위대한 성자들이 모여도 별 수 없다는 것을 제가 알았어요. 한 가지가 좋으면 한 가지가 안좋더군요. 교단이 크니까 아무래도 좋은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단이 작으니까 바로 하려는 것은 있는데 좁아요. 너무 좁아서 숨이 막힐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친구들하고 의논하고 저는 합동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합동교단은 그래도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교단이니까 약간 냄새나는 것이 있어도 이 정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돌아왔어요. 노회 가입을 하고 저는 3년 전까지 노회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노회를 출석을 안했는데도 노회에 있는 친구들이 저를 잘 이해해주고 덮어주었습니다. 큰 교회하는 목사고 초교파적으로 뛰는 목사이니까 우리가 보호해줘야된다고 하면서 참 잘 보호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는 것이 있으면 제가 적극적으로 돕고 하면서 그렇게 지내왔는데 3년 전부터 제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그 달라진 이유는 제가 몸담고 있는 집안도 깨끗이하지 못하면서 타 교단을 향해서, 한국교회를 위하고, 세계교회를 위해서 이러고 저러고 하느냐? 이건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단에 들어와서 이해를 하기 시작하니까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느낍니다. 이상하게 교단의 문제를 클로즈업시켜서 보면 볼수록 저 자신이 더 클로즈업됩니다. 차라리 상대가 좀 깨끗하면 나도 좀 깨끗하게 보일텐데 내가 몸담고 있는 교단이 너무 내면적으로 충격을 주니까 그 충격이 나의 충격이 되고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같이 망할건가? 그렇게는 할 수 없죠. 죽어도 몸부림을 치다가 죽는 것이지 몸부림도 치지 않고 나 죽여주쇼!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더욱이 저 자신이 아프게 생각을 하는 것은 우리 교단에서는 우리 교회가 제일 큰 교회입니다.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어요. 30, 40대의 후배목사들 중에는 가슴앓이를 하면서 말을 하지 않고 바로 해야 된다는 정의감과 양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찌할 수가 없어서 땅 만치고 있는 훌륭한 후배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선배라고 하는 사람이 모른척하고 있으면 뒤에 따라오는 후배들이 어떻게 힘을 쓰며 앞날을 놓고 비전을 가질 수 있겠어요? 결국 가로막는 것은 나 같은 존재입니다. 차라리 큰 교회를 하지 말고 시골에 있는 작은 교회를 한다면 아무도 안 쳐다보는 사람이니까 가만히 있다가 죽어도 좋고 자기 교회만 하다가 죽어도 좋지만, 제 입장은 이미 노출이 되었기 때문에 책임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는 것은 비겁한 일이고 하나님 앞에서도 죄를 범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제 자신이 생각을 바꿨고 저의 뜻을 조금씩 나누고 보니까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있었어요. 너무나 참신한 마음을 가지고 똑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생각밖에 많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 때문에 또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실, 아무 준비도 없이 시작된 것이 교갱협입니다. 하나님께서 코너에 몰아붙이는 것 같은 어떤 큰 손을 느꼈기 때문에 서로가 마음을 나누다 보니까 함께 모이게 되었고 함께 모이다 보니까 어려운 길인 줄 알면서도 “같이 가자!” 이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나갈 수밖에 없게 된 이 시대는 참 불행한 시대입니다.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그렇다고 저는 누구를 정죄할 생각이 없습니다. 입장을 바꾸어놓고 저도 30년 동안 노회에 몸 담고 노회에서 서기 하려고 운동하고, 노회장 하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그다음에 서로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법전문을 들고 싸우고 이러면서 30년 동안 그런 풍토에 갇혀있고, 그런 풍토에 익어있고, 그런 풍토에서 능력이 개발되었다고 한다면 지금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나 나나 뭐가 다를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생각할 때 가슴 아프게 보는 그런 분들이 말하고 행동하고 교단에 영향을 주는 모든 것을 놓고 정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잘못된 줄을 알면서 그들이 행동합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을 하면서 그들의 마음에는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각증세가 있다는 걸 저는 분명히 압니다. 이 자각증세가 있다는 것을 제가 읽고 있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 교단에는 하나님이 소망을 갖고 기대하고 계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만약에 그런 자각증세마저 아예 없어져버린 지도자들이 이 교단을 좌지우지한다면 저는 솔직히 말해서 이 교단 떠납니다. 하나님이 떠나면 나도 떠나는 겁니다. 그러나 이 교단에 대한 애착을 갖는 이유는 위에 있는 분부터 그 밑에서 추종하는 분들까지 대화를 해보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탄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도 기대를 갖고 계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주님이 가장 아끼는 신부입니다. 생명처럼 아낍니다. 그리고 모든 능력과 지혜를 다 동원해서 지킵니다. 그리고 교회가 잘못되었을 때는 절대 방치해두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신부이기 때문에 주님은 절대로 방치하고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진리요, 기독교 2천년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입니다. 합동교단도 주님의 신부입니다.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이 피로 값 주고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끝까지 지킬 것이며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위기가 옵니까? 주님은 반드시 일을 하십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십니다. 손을 쓰십니다. 오래 참으시는 때는 있어도 교회를 포기하시는 법은 없습니다. 사람이 잘못되었으면 잘못되었지 교회가 잘못되는 법은 없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흠과 티가 없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를 지도하는 지도자가 잘못되면 잘못되었지, 그리스도의 몸이 잘못될 수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가 잘못되면 잘못되었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부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주님은 교회를 지킵니다.

그러나 그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인간들이 잘못해서 교회에 위기가 오고 예수님 몸 자신에 어떤 큰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하시면 주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일을 하시기 시작합니다. 저는 그걸 분명히 믿습니다. 주님이 일어나서 일을 하실 때 그가 지금까지 변함없이 선택하시는 전략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약한 자, 작은 자를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몸 된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 교회를 다시 원상복귀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시대를 감당할 수 있는 교회로 다시 재충전하시고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사용하시는 자들은 한결같이 작은 자요, 약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전략이었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잘못된 곳으로 끌고가는 많은 지도자들이 보지 못하는 허를 찌르는 작전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현실적으로 볼 때 주님이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까? 루터를 한번 보세요. 그 당시의 입장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제도로 보아서는 교회가 바로 국가의 행정기관이나 같았습니다. 교황의 입장은 대통령의 자리입니다.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루터는 저 전라도 광주 어느 동사무소의 동장 정도의 위치밖에 안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아시죠? 그 당시의 분위기로는 루터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막강한 정치 세력을 손에 쥐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 루터는 한 번 소리만 크게 질러도 끝날 존재로 보였습니다. 각종 부패와 각종 사회악으로 완전히 능력을 상실했던 웨슬리 시대에 聖클럽을 만들어서 기도하고 금식하던 그 새파란 대학생들은 당시에 영국의 실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의 눈에 볼 때 주일학교 학생들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런 힘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사용하십니다. 그러니 이것은 마귀의 허를 찌르는 작전입니다. 마귀가 미처 대비를 못하고 있는 허점을 주님이 찌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작은 자 약한 자는 현실적으로 실권을 갖고 있고 또 힘을 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방심하고 있는 영역입니다. 전략적으로 말하면 마지노 진지입니다. 불란서의 마지노 요새와 같습니다. 마지노 요새를 불란서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습니까? 너무나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요새만 있으면 독일군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이 요새에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막강한 폭발력을 가지고 공중공격을 할 때는 못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마 하며 방심했습니다. 요새가 든든하다고 생각하니까 당연히 방심을 하죠. 결국 독일이 불란서의 허를 찔렀습니다. 그래서 흔히 비유로 마지노선 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여러분, 마귀는 주님이 보실 때 아주 약하고 무력한 자는 주목을 안 합니다. 신경도 안 쓰고 방치해 둡니다. 그렇게 방치하고 방어를 안 하니까 그 쪽에서 어떤 공격이 일어날 때는 대비를 안 하고 있으니까 당하는 겁니다. 주님이 약한 자, 작은 자를 사용하시는 이유가 바로 마귀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며, 마지노 요새를 공격하는 작전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참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원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가 싹이 트면서 그 나라는 확장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겨자씨는 얼마나 작습니까? 이사야는 하나님 나라의 기적을 일컬어서 가장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게 된다고 말씀했고 예언했습니다. 가장 작은 자가 강국을 이룬다고 이사야 60장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놓고도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허약한 자 였습니다. 하나님은 그 줄기를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바울의 본문을 보아도 바울은 육신적으로 몹시 약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압니다. 남이 보기에도 저래가지고 무슨 일을 할까하는 염려가 될 만큼 어떤 면에서는 가시를 갖고 있었던 사람입니다만,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오히려 바울에게 너무 인간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주님이 느꼈을지 모릅니다. 아무리 그가 중생 받고 하나님의 특별한 소명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바울도 인간이기 때문에 그 마음에 자존심이 있기 마련입니다. 얼마나 많이 배운 지성인입니까? 얼마나 그는 자존심이 강합니까? 그게 쉽게 하루아침에 무너질 리가 없죠.

그러기에 바울도 나름대로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하는 내면의 버팀목이 있었어요. 주님께서 그 버팀목마저 꺾으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몸에 가시를 주어서 완전히 자기 힘이 빠지도록 만드셨어요. 자기 힘이 빠져야 비로소 주님이 주목하시는 작은 자, 약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게 주님의 전략이었습니다. 큰일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의 몸 된 교회가 위기를 만났을 때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주님이 선택하시고 사용하시는 방법이었습니다.

저는 교갱협에 뜻을 같이 하기 위해서 모이는 여러분들, 특별히 저와 지금까지 마음을 열고 머리를 맞대고 왔던 우리 형제들을 가만히 보면 참 작은 자들이라고 늘 생각을 합니다. 저부터 시작해서 우리는 힘이 없어요. 우리 교단의 정치 흐름을 좌지우지 했던 사람들이 볼 때에는 참 보잘 것 없는 존재들입니다. 교회는 조금 크고 목회는 잘 하는지 모르지만, 정치적인 힘을 가지고 주무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상하게 이번에 교갱협을 좀 해보자고 했더니 주저하지 않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다 비슷비슷해요. 정치적으로 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별 볼일없는 사람들이 모이더라구요.

그리고 일부에서는 이런 말도 합니다. “뭐, 한때 교단에서 자리라도 잡아보려고 하다가 힘없이 밀려나서 설 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교갱협을 하니까 전부 거기에 매달려서 야단법석이다.” 사실인지도 몰라요. 전부 그렇게 보이는가 봐요. 사실인가봐요. 그런 면에서 사람들의 눈에 작은 자, 무력한 자들이 교회갱신을 해보자며 모였다는 점에서 우리 교갱협에 관심을 가지고 함께 하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우리 중에 큰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면에서 약한 자입니다.

우리가 작아지고 힘이 빠져야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옵니다. 우리가 작아진다는 것은 나의 힘이 어떤 일을 하지 못할 만큼 작아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작은 자를 찾으시는 것 같아요.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에도 사람의 힘이 이상하게 강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제가 건강에 문제를 안고 있어서 지난 7년 동안 여러분이 모르는 많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지금도 별 차이가 없습니다만 제가 7년 전을 돌이켜 보면서 큰 진리 하나를 발견합니다.

제 힘이 굉장히 강했던 것 같아요. 제가 쓰러지기 전까지 몸도 건강했어요. 몸이 건강해서 마음대로 뛸 수 있으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그만큼 나를 소유할 만한 공간이 자꾸 작아지더라구요. 내 힘과 내 힘이 주는 압력이 너무 강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내 안에서 자리를 잡을 수 없을 만큼 위축을 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그렇지요. 건강하고 자신만만하고 젊고 교회는 자꾸 부흥하고 사방에서 오라고 야단이고 하니까 내 힘이 얼마나 강합니까? 그러니까 기도를 덜 하고 가급적이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적당하게 줄이고 더 많이 뛰고, 더 많이 만나고, 더 많이 말하고, 하는 쪽으로 계속 나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내 힘은 무지무지하게 강해요.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너무 강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그 만큼 약해지더라구요. 그러니 하나님이 사용하지 못하죠. 결국은 누가 나를 사로잡았습니까? 마귀가 나를 사로잡았죠.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몸이 약해서 쓰러진 게 아니라 완전히 시험에 빠졌어요. 저는 그것을 지금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힘이 강하면 하나님의 힘이 약해진다는 이상한 공식이 저의 마음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바울도 왜 하나님이 가시를 주어서 그렇게 약하게 만들어버렸을까? 바울에게 뭔가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바울이 완전한 사람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걸 두었다가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만큼 제한을 받을 위험이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치셨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모세도 자기 힘이 정말로 대단했을 때는 하나님이 그를 사용할 수가 없었어요. 나중에 하나님이 그를 사용하시려고 할 때에는 모세에게는 힘이라는 것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비로소 하나님이 그를 손에 쥐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려면 그 사람의 힘이 남아있을 때에는 구조대원이 안 들어갑니다. 발악을 하고 물을 먹고 살려달라고 아우성 칠 때는 그대로 두었다가 나중에 기진맥진해야 들어가서 머리채를 잡고 나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사생결단하고 힘을 쓸 때에는 아무리 구조대원이 기술이 좋고 건강하다고 해도 잘못하면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몸된 교회를 위해서 사용하는 사람들, 특별히 교회가 부패했을 때, 교회가 잘못된 길로 걸어갈 때, 하나님의 생명과 같은 교회를 바로 잡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자들을 물색하실 때에 하나님은 100% 자신의 힘을 가지고 하길 원하지 사람의 힘을 이용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람의 힘은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의 힘이 남아있으면 안 되니까 가장 약한 자, 가장 작은 자를 하나님이 찾으시는 겁니다. 모세가 그래서 사용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교회를 하는 분들은 이 진리를 왜 자주 잊어버립니까? 7년 전에 저 자신처럼 너무나 자신만만하고 건강해요. 교회갱신은 우리에게 남아있는 힘을 가지고 하려고 하면 우리 모두 망하고 교회도 망하고 아무것도 못합니다. 나중에는 다 망합니다. 우리 힘 가지고 하면 안 됩니다. 잘못된 것을 치료를 하든지 고치려면 힘보다도 효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힘으로 고치는 것이 아니라 효력으로 고치는 것입니다. 힘만 강하다고 병을 고칩니까?

홍콩에 주재원으로 가서 몸에 좋다고 하니까 그 흔해빠진 녹용을 매일 아침저녁 다려먹어서 완전히 가버린 청년이 있습니다. 녹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 힘이 전부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 부목사 하나가 지금 병원에 3개월째 누워있습니다. 조그마한 종기가 있어서 걸리적거리고 불편하니까 비뇨기과에 가서 종기하나를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개인병원이었는데 그래도 서울에서 개업을 할 정도면 어느 정도는 바탕이 닦인 사람이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러니 누가 의심이나 하겠어요? 그 비뇨기과에 가서 종기 하나를 보여줬더니 의사가 보고 “별거 아닙니다. 당장 수술합시다. 그리고 내가 보니 손도 더 댈 때가 있는데 이왕 들어왔으니까 다음에 두 번 다시 찾아올 필요가 없도록 해드리겠습니다” 하고는 이 순진한 목사가 그대로 듣고는 자기의 귀중한 몸을 맡겼습니다. 이 의사는 칼을 가지고 그 종기를 도려내고 옆에 필요한 것도 수술해서 말끔히 처리했습니다. 자기 발로 걸어 들어가서 자기 발로 걸어 나와서는 이제 수술하고 2-3주만 지나면 다 낫는다고 하니까 기분 좋아가지고 주일날 교회에 와서 사역을 하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좀 이상해졌습니다. 도무지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강남 성모병원으로 달려가서 응급실에서 체크를 했더니 이제 죽을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시간을 다투는 겁니다. 왜냐하면 종기를 손을 잘못 댄 것입니다. 칼을 가지고 함부로 베어서 안 되는 자리를 칼로 도려낸 겁니다. 그러니까 그 와중에서 패혈증이 걸린 것입니다. 피에 균이 들어갔어요. 이것은 피의 기능을 계속 저하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보통 한 8시간 정도 지나면 10명 중에 8명은 죽는다고 합니다. 피의 기능이 자꾸 떨어지니까 나중에는 신체에 있는 모든 부위에 이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일이 크게 벌어진 겁니다. 중환자실에 입원을 시키고 최대한 사람은 살려야 하는데 얼마나 그 병이 무서운지 신장 기능이 올스톱 되어버렸어요. 그러니까 투석을 하기 시작하고 간에 문제가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얼굴이 완전히 황달색이 되고 눈이 노랗게 되버려요. 모든 기관에 기능이 자꾸 떨어지니까 손을 쓸 수가 없어요. 내과의사가 장담을 못하고는 오늘저녁을 넘겨봐야 안다는 거에요. 다음 날도 모르겠다는 겁니다. 나중에는 의식이 없어져 버려요. 숨을 쉬지 못해요. 완전히 가버렸어요.

제가 그 병을 보면서 강한 것이 전부가 아니구나! 칼이 강하고 수술이 강한 것 아닙니까? 강한 힘을 쓴다고 해서 몸에 잘못 된 것이 고쳐지는 것이고 되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효능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그런데 패혈증 때문에 수술했던 자리가 피가 제 기능을 못하니까 몽땅 썩어버렸어요. 썩은 것은 회복을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이 다시 돋아나고 있어요. 그걸 보고 의사들이 이것은 의학계에 발표해야 할 희귀한 현상이라고 합니다. 교회에서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주셨나 봐요.

잘못되었습니까? 힘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효능이 중요하고 효력이 중요합니다. 사람에게 있는 힘은 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효력 면에서는 영적으로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는 어떤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만이 효능을 발휘합니다. 우리 갱신해야합니다. 개혁해야 합니다. 많은 문제가 잘못되어갑니다. “예! 좋아요. 한번 힘을 써볼까요?” 숫자를 많이 늘리고 동지들을 많이 규합하고 조직을 철저히 하고 막대한 돈을 집어넣어서 정치적으로 한번 대결을 하고 힘과 힘이 부딪히는 싸움을 한번 해봐요? 싸움은 되겠지요.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는대는 인간의 힘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진정한 효력은 성령의 손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힘이 역사하려면 나에게 있는 힘을 뽑아버려야 되요. 그래서 나는 약한 자, 나는 작은 자가 되어야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합시다. 하나님께서 나를 보실 때 하나님께서 찾고 계시는 작은 자라고 생각하시는가? 이것을 조용히 자문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작은 자라고 하나님이 보신다면 우리는 잘 모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큰 자라고 생각하시면 우리는 잘못 모인 것입니다.

또 하나 물읍시다. 우리는 작은 자를 주목합니까? 우리 동료들 중에서 작은 자를 주목하느냐고요? 하나님은 주목하시고 찾고 계시는데 우리는 작은 자를 자주 자주 도외시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저는 지나가다가 작은 개척교회가 상가에 조그마한 십자가를 세워놓고 있으면 늘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사람 눈에는 굉장히 초라하고 작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한 번 눈여겨보시면 굉장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늘 저는 그 생각하고 기도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지나가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기도가 나와요. 하나님은 그런데서 일을 하시거든요. 사람들이 멸시하고 무시하고 안중에 두지 않던 그런 곳에서 하나님의 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지금까지 성경 안에서의 역사요, 기독교 역사에서  증명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작은 자를 주목해야 합니다.

교회갱신을 하고 싶습니까? 작은 자를 주목하는 하나님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이 주목하시는 작은 자인가를 먼저 묻고 그 다음에 나는 작은 자를 과연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주목하는가를 다시 한번 묻자고요. 이것만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분명히 확신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치유하시는 능력, 개혁하시는 주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영광받으시고 주의 신부되신 교회가 이 세상에 다시 한번 그 놀라운 영광을 드러내는 그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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