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01/19) 교갱협 제2차 정기총회 개회예배

호 4:1~9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사위와 살인과 투절과 간음 뿐이요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그러므로 이 땅이 슬퍼하며 무릇 거기 거하는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 그러나 아무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 같이 되었음이니라 너는 낮에 거치겠고 너와 함께 있는 선지자는 밤에 거치리라 내가 네 어미를 멸하리라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저희는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저희가 내 백성의 속죄 제물을 먹고 그 마음을 저희의 죄악에 두는도다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나 일반이라 내가 그 소행대로 벌하며 그 소위대로 갚으리라

이처럼 귀한 모임에 동참케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교회갱신협의회가 생긴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여러분의 교단이 우리 교단보다 영적 센스가 한 걸음 앞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김경원 목사님이 총신 회장을 하실 때, 우리 신학교 간부 임원이 만나서 “통합과 합동을 좀 합해보자. 어른들은 못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해서, 부활절 예배도 같이 드리고 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다시 이 자리를 내서 만나게 되었고, 정말 외롭고 힘들고 어렵지만 이렇게 귀한 운동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옥 목사님 방에서 나오다가 옥 목사님이 “교갱협에 오늘부터 들어와.” 하시길래 제가 옥 목사님 말씀은 뭐든지 다 잘 들어서, “들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하니깐 “교단 바꿔!” 하셨습니다. 정말 여러분들의 귀한 모임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제 마음에 축복하며, 격려하며, 또 박수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갱신’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 말이겠습니까? 아까 목사님이 기도해주신 것처럼 갱신할 대상은 난데 누구를 갱신하겠습니까? 또 교회가 세상에 대해서 할 말이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을 잘 앎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이렇게 더 이상 살 수가 없기 때문에 남을 정죄하고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격려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가 이런 모임을 가진 줄을 압니다.

전쟁에 있어서 경보체제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미국이 이라크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경보체제의 승리였다.” 라고 말할 정도로 경보체제가 잘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시대적 고난, 특별히 IMF를 놓고 여러가지 많은 얘기를 하지만, 그 중 우리가 몇가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이상하게도 경보체제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안기부가 있는데 왜 이것을 안했을까? 그렇게 막강한 안기부가 다른 것은 다 점검하면서, 왜 나라가 이렇게 갑자기 망하는 것에 대한 경보체제가 가동이 안되었을까?

두번째입니다. 저희 교회에 앵커맨들이 많이 있는데 요즈음 MBC나 이런데서 굉장한 자성운동과 성령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보도 뉴스를 하는 분들이 저하고 만나고 성경공부도 하고, 얘기도 하고 하다가 이런 얘기를 합니다. 어떻게 언론이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면서도 왜 IMF가 올 것이라는 경고는 우리 사회에 못했을까, 어디에서 이것이 무너졌나 하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한국은행, 청와대 경제비서실, 재경원, 또 경제 부총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사전에 미리 감지하고 준비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못했을까.

제가 미국에서 최근에 돌아왔는데 그 곳에서 하는 말에 의하면, 김영삼 대통령께서 클린턴과 만났을 때야 심각성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도 딴소리를 하니깐, 너희 나라나 잘해라. 그래서 쇼크를 먹고 조사를 하기 시작했을 땐 이미 늦었다는 것이죠. 금년 4월부터 투자한 돈이 다 빠져나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한 1년 반 전에 우리나라 큰 기업을 하시는 분에게 처음으로 들었던 것이 그 얘기입니다. "우리나라 1년 못 버팁니다" 그러더군요.

이번에 IMF 위기가 부딪쳐 온 것은 똑같은 패턴이 있습니다. 성수대교 무너진 패턴과 똑같습니다. 삼풍백화점 무너진 패턴과 똑같습니다. 우리 국민들, 언론, 그 누구도 어제까지 흥청망청 살았는데 하루 아침, 어느 날 그냥 삼풍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지금 우리가 그런 충격을 전부 받고 있는 이런 상황입니다. 경고 기능이 마비된 사회는 엄청난 사고를 예측케 하는 사회입니다. 지난 5년 동안 하나님은 우리 사회에 수많은 경고등을 보내주셨습니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그리고 비행기 추락사건 등 끊임없이 하나님은 빨간 불을 비춰주셨습니다. 우리는 도덕적 붕괴 소리도 수없이 들었습니다. 지존파, 온보현, 그 다음 부녀자 납치, 최근에 일어난 것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의 학원폭력 등이었습니다.

저희 교회 같은 경우에는 온보현한테 피살사고로 정강이를 채이고... 비닐봉지에 씌워지고... 야산에 버려진 그 여자가 저희 교인이었습니다. 여기 바로 양재동에서 성경공부 하고 나오다 납치를 당했어요. 그 차에... 그리고, 그렇게 무참하게 죽었습니다. 장례식 때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더라구요. 그것도 예수 안 믿는 사람도 아니고 정말 예수 잘 믿는 성령충만한... 그 어머님에 의하면 그 전날 방언으로 찬양하고 기도했던 그 자매인데...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내 아내가 있을 수 있고, 내 딸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딸이 거기 있었다. 그 자매는 청년부 자매인데, 우리 모두를 위해서 대신 죽은 거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현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든 가능성을 지고 그 자매가 우리를 대신해서 죽었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경제 붕괴하는 소리가 왜 안 들렸겠습니까? 우리는 빚 내서 빚잔치한 나라 아닙니까? 최근의 우리는 해도 너무했다고 생각합니다. OECD는 왜 가입합니까? 그리고 만불씩 가지고 나가서 마음대로 쓰라고 그랬어요. 저금하면 살 수 없는 경제체제가 되었어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우리 사회가 너무 무절제하게... 그렇게 돈을 써대고... 그렇게 수입품 브라자 하나에, 팬티 하나에 몇 십만원씩 하는... 미국에서도 그러지 않습디다. 여러분, 토요일에 토토즐이나 이 신세대들 TV 프로그램들, 미국에도 제가 아무리 찾아봐도 그렇게 하는 나라가 없어요. 우리는 해도 너무 했습니다. 사실 경제가 무너지는 소리를 못 들은 것이 아니에요. 4~5년 동안 계속 있었어요. 정치 붕괴하는 소리도 우린 많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정리해 보면, 우리는 우리 사회가 물질 만능사회, 쾌락을 추구하는 사회, 허영과 사치로 가득찬 사회로 어느새 변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준비도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마저도 이 경고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회가 뭘 잘못했냐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우리는 열심히 기도했고, 찬송을 불렀고, 전도를 했고, 부흥을 하려고 애를 썼는데 교회가 뭘 잘못했느냐 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제일 치명적인 경보체제의 마비는 우리 교회에 있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새 이 사회가 이렇게 소용돌이치고 걷잡을 수 없이 딴 길을 가고 있는 동안에, 우리 교회가 정신병 걸린 것처럼 목회라는 이름으로,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없는 짓들을 우리 자신이 많이 하지 않았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경고 기능을 우리가 잃었다는 거지요. 설교 속에서, 우리 삶 속에서.

저는 이 시간에 사사기의 논리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사기의 논리는 간단합니다. 일곱 번의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까? 똑같은 논리가 전개되는데 경제대란은, 경제파국은, 정치적인 부패가 없으면 절대로 있을 수 없습니다. 경제파국은 정치적인 부패와 아주 끊을 수 없는 고리가 있습니다. 그러면 정치부패는 어디에서 오는가, 정치가의 부패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국민의 도덕적 타락이 정치부패의 길을 열어 준 것입니다. 그러면 국민의 도덕적 타락의 길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게 문제입니다. 국민의 윤리와 예수 믿건 안 믿건 간에 도덕의 타락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종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 때 국민의 도덕이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불교나 다른 종교는 그만두고 우리의 입장에서 놓고 볼 때, 오늘날 교회가 걷잡을 수 없이 미쳐가는 우리 사회에 대한 경고 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에, 아니 그것보다도 어떻게 하면 교회 정치가 세상 정치를 비슷하게 카피를 해갈까 하는 생각만 했기 때문에 국민의 도덕은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요즈음 가끔 국민일보나 신문을 볼 때 확 뒤집어 버리는 게 뭐냐 하면 거기 나오는 광고들입니다. 총재, 부총재, 부대회장, 나오는 얼굴이 계속 나오고, 무슨 총재가 그렇게 많고 이게 뭐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이 모임들이 진짜인가? 여러분, 기독신문이나 기독공보나 국민일보에 도배하는 것은 다 그런 광고들입니다. 이게 지금 우리가 겉으로는 1,000만 성도 부흥한 것 같지만, 우리 자체 안에 얼마나 썩어져 가고 있는가! 저는 아까 들어오기 전에 옥목사님께서 그런 얘기하는 것에 공감을 했습니다. 개척교회 하시는 분들이 빚을 내서 하는 거나, 재벌들이 하는 거나, 은행들이 하는 거나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큰 교회 벌렸다가, 믿음으로 해서 다 망해 가지고 교회가 쓰러진다는 얘기를 제가 듣고,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도 약간은 미쳐있는 것이 아닌가.

다 제 정신이 아닙니다. 남이 좋은 차 사니깐 나도 좋은 차, 남이 좋은 아파트, 나도 좋은 아파트, 다른 교회가 성공하니깐 나도 성공해야 하고, 전부 경고기능, 사고기능 자체가 뭔가 지금 그냥 파도 속에 같이 몰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 여러분의 모임에서 해야할 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메시지는 바로 이것을 인정하고, 회복하고, 다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말씀 역대하 7장 14절 “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이번 송구영신예배 때 설교를 했는데, 거기에서 발견한 메시지 하나는 ‘내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회개는 세상 사람에게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게임은, 오늘 한국 사회에 일어난 이 게임은 하나님과 제사장과의 게임이라는 것입니다. 교인과의 게임도 아닙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문제입니다. 요나 하나만 회개하면 파도는 잔잔해집니다. 니느웨성은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거부했었고 내가 회개할 것이 뭐가 있냐고, 아주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과 여러가지 유대주의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그렇게 변명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제비를 뽑게 하고 바다에 던지셨습니다. 나는 이것이 오늘 우리 시대를 향한 해결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4자회담을 대표했던 이시영 장로님이 며칠 전에 제방을 들렸습니다. 그 분은 평신도 장로임에도 불구하고 예언자적인 통찰력이 있어서, 아주 깜짝 놀랐습니다. 그 분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최근 시국에 대한 장문의 팩스를 여러 장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4자회담에 나가서 이야기할 때, 이것을 느꼈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다. 북한만 다루지 않고 남한도 다룬다. 북한은 배고파서 망하는 민족이고, 남한은 배불러서 망하는 민족이다. 하나님은 북한만 다루지 않는다. 잘못된 정권에 대해서 북한만 심판하지 않고 잘못된 종교 지도자들이 있는 한국 사회를 향하여 하나님은 똑같은 징계의 채찍을 드셨다.’ 동의를 했습니다.

결국 키(Key)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입니다. 정부도 아니고 세상도 아닙니다. 이 민족을 향하여 마지막 제사장 나라로, 이 선교 21세기 미전도 종족을 전도하고, 세계를 구원하는 한 나라로 하나님이 삼기를 원하셨는데, 너무 썩었고 그래서 하나님이 축복을 주셨지만, 그들은 축복을 뒤바꿔 가지고 그것을 자기의 명예와 종교적인 야욕을 채우는데 사용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 민족을 정말 들어 쓰시고 싶어서 청소하시는 것입니다. 그 대상은 누구냐?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다. 종교제사장들이다. 그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은 우리 교회 장로님들도 아니고 교인들도 아닙니다. 여러분과 저 자신이라고 믿습니다. 경고 기능을 다시 회복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우리가 운전을 잘해야 합니다. 운전사가 미치면 그 차에 탄 사람은 다 죽습니다. 이것이 dangerous leadership입니다. radical leadership과 dangerous leadership. 좋은 지도자 만나면 다 살지만, 좋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면 다 죽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심이 있는데, 우리가 설교자로서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로서의 경고 기능이 살아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두 번째, 우리가 이 시대 진정한 영적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가? 리더십이란 지배력이 아니라 영향력입니다. 성경에 두가지 리더십, 다윗의 리더십과 사울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기대했던 분이 다윗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사울의 리더십이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다윗입니까? 사울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회를 맡겨주셨고 영적 기능을 맡겨주셨는데, 한 때는 사울을 하나님이 쓰기를 원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버렸습니다. 우리도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버릴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바벨론의 70년 포로로 가게 한 분이 하나님이라면 우리라고 안 버리겠습니까? 우리의 리더십은 다윗의 리더십인가, 사울의 리더십인가?

우리 목회자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은 소위 경고의 부재성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향하여 경고하는 기능을 다시 회복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 그대로 선포하고, 사람 무서워하지 말고, 교단 무서워하지 말고, 자기 지위 무서워하지 말고, 그 교회 떠날 생각하고, 우리는 이 하나님이 주신 경고 기능을, 목회자의 경고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영적 리더쉽을 우리는 회복해야 합니다. 호세아서 4장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은, 5장에 보면 세그룹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제사장입니다. ‘제사장들아 들으라’ 두 번째 ‘이스라엘 족속들아 들으라’ 세 번째는, ‘왕들아 들으라’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질문하는 사람들은 제사장들입니다. 제사장들이 제일 중요한 사람입니다. 소수이며 아무 세상적으로 능력이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우리의 영적 기능이 세상을 살리는데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 호세아서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거민과 쟁변하시나니’ 하나님이 지금 그 논쟁을 우리에게 걸어오시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다. 맞습니까? 사랑도 없다. 맞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 그렇게 수많은 신학책이 있고 신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우리에게 없는 것이에요. 율법이 있고 종교적인 의식이 있을지라도 정말 참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지식이 우리에게 부족하지 않았는가? 그것을 여기에서 지적합니다. 오히려 2절에 보면 저주와 사기와 위선, 살인, 투절과 거짓말입니다. ‘간음, 강포하여 피가 피를 뒤대임이라’ 이것이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시는 이유입니다. 이 땅에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 아는 지식도 없고, 그 다음에 이런거, 이런거, 이런 것이 있기 때문에 난 너를 심판할 수 밖에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세 가지가 없고 일곱 가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것이 생기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3절에 보면 땅이 통곡한다, 슬퍼합니다. 이 땅의 황폐함을 보소서. 황무함을 보소서. 이 땅의 저주받은 것을 보소서. 이 땅의 병을 보시옵소서. 땅이 황폐하고 통곡하고 그 다음에 거기 거하는 모든 인간들, 모든 자와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해갑니다. 바다의 고기가 다 없어집니다. 환경오염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무 사람이든지 다 두지 말며 책망과 누구에게 원망하지 말며, 핑계되지 마라. 하나님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장들에게 야단쳤을 때, 제사장들은 죄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지 않고, 자꾸 하나님께 반항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내 잘못이 아니고 저 사람이 잘못입니다 하고 자꾸 얘기한 것은 예레미아나 에스겔이나 이사야서에서 반복적으로 발견하는 주제입니다. 그런 자는 낮에 가겠고, 제사장은 밤에 가고,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구나. 내가 지식을 버렸으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도록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다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여러분, 우린 이 얘기를 겸허하게 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이 모임은 물론 총회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다음 얘기일꺼에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가 듣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기막힌 진노와 사랑을 깨닫고 목회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저는 이 말씀 하나를 듣고 마음에 숨이 멎는 듯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7절 ‘저희는 번성할수록’ 이 저희는 제사장이죠. ‘범죄하고’ 그래서 ‘내가 저희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 저희가 내 백성의 제사장들입니다. 뭐에 관심있습니까? 하나님께 관심없고 속죄물에 관심이 있어요. 속죄물에 관심있다는 얘기는 교인들의 죄에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죄를 지어야 속죄물을 가지고 오니깐. 그래서 교인들로 하여금 죄를 짓지 않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헌금 들어오는데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숫자 늘어나고 부흥하고, 이러는데 관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없애버리겠다. 그런 얘기입니다. 장차는 백성이나 제사장이 구분이 없고 그 소행대로 벌하며 그 소행대로 갚으리라.

오늘 우리는 이 경고의 말씀을 겸허히 들어야 될 줄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을 살리게 하는 길이요,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길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우리 목사님들도 어느새 물질적인 세계관에, 가치관에 다 마약에 물들 듯이 다 젖어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선교를 이용한 공명심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 주변에 저도 선교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선교 단체들 많이 보는데, 정말 선교하는 것인지 의심날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정말 하자는 것인지, 정말 개혁을 하자는 것인지, 그런 물음을 가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도전을 주고, 쇼크를 주었던 제 부목사 얘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작년 12월에 저희 교회 부목사 일곱분이 다 떠났습니다. 선교지로 갔고, 공부하러도 갔고, 또 선교사로도 가고 다 갔습니다. 그 중에 이번에 갓 목사된 강동진 목사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가겠답니다. 정말 총명하고 키도 조그마한 분이셨는데, 어디로 가냐 했더니 충북으로 간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부목사는 100% 다 선교사로 가는데, 해외도 안가고 국내로 가겠답니다. "목사님 절 좀 보내주세요" "당신이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데 1년만 더 있으면 안되냐?" 자기는 가야 한답니다.

그런데 전 잘 몰랐습니다. 하도 졸라서 가라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느냐 했더니 충북에 법주사 있는 동네로 가는데, 거기 인구가 3만 명인데 교회도 없고 황폐한 곳이랍니다. 거기로 가서 교회를 세우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 생활을 하겠답니다. 자기는 목사 타이틀 버리고 농사꾼이 되겠다고. 자기 부인이 의사인데 같이 가기로 동의를 했답니다. 그 말에 와! 요즈음에도 이런 목사가 있구나! 그러면 누구하고 가냐 했더니, 한 두 식구 정도라고, 교회있냐? 했더니 없다고, 집있냐? 했더니 없다고 합니다. 누가 월급 주냐? 했더니 그것도 없고, 일단 가기로 결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얼굴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peace가 있습니다.

그래서 보내놓고 보니깐 안됐어서 다시 또 연락을 했습니다. “그러지 말고 당신 가서 밥먹고는 살아야 할텐데, 그러니깐 우리 교회 부목사로 있으면서 부목사 월급 주고, 사택 주고, 자동차 주고 다 하고 우리 사람도 보내주겠다. 우리 같이 일하자.” 했더니 웃으면서 거절합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하나님이 내게 맡긴 일이에요. 해낼 꺼에요.“ 아무 것도 없이 떠났습니다. 내가 도와준다 해도 싫답니다. 저는 오랫 만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 그러면 잘 가봐라. 너에게 물질적 도움은 주지 않겠다. 그것이 너를 망하게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럼 네가 기도하고 하나님 음성 들은대로 추진해 보아라.“ 세 사람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서 천사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아, 이 사람이면 어디 가서 무엇이든지 해내겠구나! 자기는 지리산에서 개척교회를 20개 이상 개척한 사람인데, 꼭 거기 가야 한다고 그럽니다. 누가 말려도 꼭 법주사 그 동네에 가서 우상에 사로잡혀 있는, 가난한 교회도 없는, 그 동네 가서 우선 농사꾼으로 살 것이랍니다. 뭘 도와주겠다고 해도 도움을 안 받겠다고 하니 방법이 없습니다. 요즈음 맨날 그 사람 생각을 합니다.

저의 교회에 또 제가 참 좋아하는 부목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지금은 캐나다에 있는 공동체에서 일하고 있는 분인데, 그 분이 아들을 하나 낳았습니다. 그러더니 두 번째 아이는 “나 입양합니다.” 그럽니다. 애기를 낳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술해 버리고 딸 아이를 하나 입양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하나로 공동체에서 일을 하다가 거기에서 어느 부부가 딸 셋을 낳고 한 사람은 죽고 다 가버리고, 할머니가 혼자 남았습니다. 그 세 딸을 자기 자녀로 입양을 했습니다. 그러니깐 네 명이 된 것입니다. 다 사춘기 아이인데, 그들을 다 보살피고 있더라구요. 부목사 월급 가지고 네 아이를 키우고 삽니다. 정말 자기 자식같이 사랑합니다.

또 한 친구는 우리 교회 중등부 파트타임 교역자였는데, 그 사람이 내 선생이라 지금 얘기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를 가르치고 있는 분들입니다. 온누리 교회를 떠난다고 합니다. 왜 떠나느냐? 했더니 자기는 가난한 자와 상처난 자와 같이 살아야 한답니다. 성남에 그런 아이들이 많데요. 그래서 제가 그 때 그랬습니다. 네가 가난한 자와 살려면 부자를 알아라. 부자를 이해 못하고 가난한 자를 사랑하면 혁명적으로 될 수 있다. 부자를 먼저 이해해라. 그러려면 우리 교회에서 일 좀 해라. 일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또 떠난답니다. 그러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일을 다해라. 우리가 다 도울 테니깐. 그래서 만든 것이 하나로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예수원에 가서 좀 있다가 거길 뛰어들겠다고 합니다. 10년이 지났는데 그 사람은 한 번도 그의 영적 태도를 바꾼 일이 없습니다. 지금도 똑같습니다. 내 부목사였지만 그들은 내 선생입니다.

자, 오늘 우리 시대에 저렇게 살기로 결정한 사람도 있구나! 저는 그 분들을 보면서 한국교회에 소망을 갖습니다. 하나님은 저분들을 사랑할 것이다. 그리고 저 분들의 기도를 기뻐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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