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동막교회는 미국의 노일련(한국명) 여선교사가 천막주일학교를 세운 것으로 시작되었다. 6.25전쟁 이후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을 중심으로, 동쪽에 있는 천막교회라는 이름으로 뜨겁게 시작했던 교회였다. 그러나 30여 년 전 대구에서 제일 처음 지어진 13평짜리 서민아파트(1달 관리비 5,000원 정도) 옆에 위치하여, 거주인구가 점점 빠져나가는 도심지의 도시공동화 지역에 있다 보니, 교회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침체하고 쇠퇴해갔다. 어쩔 수 없이 담임목사는 당시엔 흔치 않게 조기 은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본인은 1994년 9월에 동막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게 되었다. 35살 젊은 열정이었지만, 이런저런 현실의 벽 앞에서 앞길이 막막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성장하려면 교회를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주민 감소를 염두에 두고 주변 교회들이 하나둘 이미 외곽지로 옮겨나간 상황이었기에, 동막교회마저 이 지역을 떠날 수는 없었다. 이 지역을 떠날 수 없다면, 그렇다면 이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교회, 이 지역사회가 꼭 필요로 하는 교회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그것이 곧 지역교회 본연의 모습이기에, 이 본연의 사명에 충실하기로 했다.

교회 내적으로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함께 교회 외적으로 제일 먼저 노력을 기울여야했던 일은, 교회 주변 주민들의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이었다. 먼저, 교회 바로 옆에 붙어있는 아파트 주민들과의 소원한 관계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었다. 교회는 좋은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관계중심의 전도에 힘쓰며 선물 제공 등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오래된 아파트라 장소도 마땅치 않지만, 비록 작으나마 조립식 경로당을 지어 제공해 주기도 했다. 가까이 있는 기존 경로당에는 수시로 찾아가 도움을 드리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인근에 있는 아동보호센터 등의 시설에도 여전도회를 중심으로 정기적인 봉사활동을 하며 좋은 관계를 맺어나갔다.

또한, 지역사회의 주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교회는 동사무소나 구청과도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었다. 교회가 지역 속에 있기 때문에 동사무소나 구청과 좋은 관계를 가져야 지역사회에서 이미지가 좋아지게 되고, 이것이 보이지 않는 교회 부흥의 힘이 되리라 믿었다. 동사무소에서 행하는 사랑의 연탄나누기, 쌀 나누기, 소년소년 가장 돕기 등 여러 가지 일에는 교회가 앞장서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로 인해서 동사무소에서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항상 본 교회에 먼저 도움을 청하고, 교회도 동사무소의 일에 적극 협조하고 있다. 심지어 동막교회의 소재지인 대구 중구 동인3가 동사무소에서 사용하는 편지봉투의 뒷면에는 동막교회의 예배시간과 장소 등이 자세하게 인쇄되어 있다.

또한, 대구의 중구지역 어르신들을 위하여 대구 중구청과 연합으로 매년마다 운영하는 '한마음 순회봉사' 활동은 이제 주민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동막교회의 연례행사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마음 순회봉사 활동 시 교회는 모든 장소를 개방하여 최고의 잔치를 베푼다. 온 교인이 동참하여 이른 아침부터 잔치음식을 준비하고 선물을 나눠주며, 최선의 섬김으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복지관에서 준비한 미용, 돋보기, 영정사진, 한방검진 및 치료, 지팡이 공급 등 다양한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는데, 이제는 장소가 협소하여 필요로 하는 인원을 다 수용하기 힘들 정도이다.

지금 동막교회는 교회 리모델링과 증축을 하고 있다. 낙후된 건물과 협소한 공간으로 인해 부임 후부터 계획했던 일을 이제 시행하면서, 온 성도들은 거의 365일 특별새벽기도회를 행하고 있다. 7일, 40일, 200일, 그리고 114일로 연이어진 특별새벽기도회에 온 성도들은 불평없이 모두 한마음으로 동참하여 기도하며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 그 기적 중에 이야기하고 싶은 한 가지는, 평소 구청 및 동사무소 등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 기반이 되어 이루어진 일이었다. 예전에 교육관을 구입하고 난 후에 구청직원이 자발적으로 사진을 찍어가서 세금감면 혜택을 받도록 도와준 일도 있었는데, 이번 증축공사에서는 이보다 더 큰 도움을 받게 되었다.

교회가 작년부터 증축공사를 하는 가운데 증축하는 면적에 대해서 건설기반부담금으로 1억 3천 5백만원 가량이 나오게 되었다. 교회증축 시 건설기반부담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교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건설기반부담금 계산에 있어서, 평당 적용을 중구 평균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본 교회는 낙후된 지역에 있다보니 공시지가로 평당 2백만원 정도인데, 대구 최고 번화가인 동숭로 지역이 같은 중구에 포함되어 있어, 중구 평균으로 계산하다 보니 약 4백 2십만원 정도가 되는 것이었다. 어려운 지역 사람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이러한 제도는 모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벌써 이 건설기반부담금 제도가 시행된 지 1년이 훨씬 넘었지만, 대구에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해서 이긴 쪽이 없었다.

건축재정도 어려운데 너무나 억울한 마음에 중구청에 이의를 제기했다. 간절한 호소문을 직접 적어 구청장에게 보내고, 또 직접 구청장을 찾아가 정중하게 말씀드리며 간곡히 도움을 청하였다. 평소 우리 중구 내에서 본 교회에 대한 좋은 소문이 많이 나 있어 중구 내 각계 대표인사들의 모임 시엔 대형교회가 중구 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본 교회의 담임목사를 기독교 대표인사로 청하곤 했던 구청장이었는데, 우리의 호소에 손을 들어준 것이었다. 구청장이 주택건설과장을 불러, 이는 억울한 일이니 동막교회가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할 정도로 동막교회에 대해 우호적인 도움을 준 것이었다.

이로 인해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건설기반부담금을 무려 9천만원 정도나 감면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어려움에 처한 여러 기관들과 교회들이 모두들 불가능하다 두 손을 들었지만, 동막교회는 대구에서 첫 번째로 이 문제를 해결받은 것이었다. 교회가 구청이나 동사무소의 일에 앞장 서 함께 일할 때에, 구청이나 동사무소도 교회가 어려울 때에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낀 일이었다.

과거 동막교회에 부임하던 시절, 동막교회의 사정을 잘 아는 어느 목사가 우스개 소리로 장난스레 동막교회를 향하여 2행시를 지었다. 동막교회는 '동쪽에 막막한 교회'라고. 그런데 지금은 모두들 동막교회를 가리켜 '동쪽에 막 떠오르는 교회'라고 이야기한다. 지금 동막교회는 동쪽에 막막한 교회가 아니라 동쪽에 막 떠오르는 교회로 변화되고 있다. 비록 부흥되지 않는 지역이라 하지만, 이러한 지역에서도 배가되는 교회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동막교회가 가난한 도시공동화 지역에서도 지역의 구청이나 동사무소 등의 행정기구들과 조화로운 연합으로 교회성장이 가능하다는 하나의 선례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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