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로교회 30주년

수영로교회(정필도 목사)가 교회설립 30주년을 맞았다. 1975년 6월 1일 목재공장에서 '선교교회'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수영로교회는 30년 역사를 지내면서 장년성도 1만 2000명이라는 대형교회로 성장하며, 지역 복음화와 교계발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로 자리매김했다.

 

수영로교회 탄생은 당시 군목으로서 부대 전장병의 세례라는 전무후무한 사건(?)을 일으키던 정필도 목사가 생면부지의 부산으로 오면서 비롯됐다. 72년 공군 군목으로 입대한 정필도 목사는 첫 복무지인 일월산에서 1년 만에 전 장병의 세례와 신자화라는 기적적인 결실을 거두면서 당시 공군 군종감이 정필도 목사에게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정 목사는 당시 군복음화후원회 위원장이었단 정태성 장로와 함께 일하기 위해 부산을 택했다. 부산의 40보급기지창에 군목으로 부임한 정필도 목사는 이곳에서도 전 장병을 세례받게 하는 입지전적인 결실을 거두게 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산기독실업인회 모임에 설교자로 초청됐으며, 정 목사의 열정과 설교에 감동한 기독실업인들이 앞다퉈 자신이 속한 교회 강사로 초빙하거나, 경영하는 회사에 강사로 초청해 설교와 특강의 기회를 마련했다. 기독실업인들은 정 목사의 설교를 더 많은 사람에게 듣게 하려고 CBS에 자비를 들여 방송설교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할 정도였다. 이후 학생집회나 노회, 연합제직세미나 등의 강사로 참여해 도전을 주며 부산복음화에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75년 4월 예편을 앞둔 정 목사는 서울 소재 5개 교회로부터 청빙제의를 받았으며, 동시에 정태성 장로의 셋째 아들인 정해찬 장로로부터 부산에서 교회개척 제의를 받았다. 신학생 시절 서울에서 이미 개척교회 경험을 한 정 목사로서는 개척교회 목회가 힘들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형편에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부탁이었다. 개척을 위해 기도하면서 정 목사는 수천명의 인파가 모여 있는 환상과 함께 "이 양떼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느냐"는 거부할 수 없는 음성에 항복을 했다.

75년 6월 1일 정필도 목사와 몇 가정이 정해찬 장로 회사인 (주)태창목재 구내강당에서 교회설립예배를 드리고, 세계선교하는 교회라는 의미에서 '선교교회'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이때 정 목사는 오영섭 여전도사를 만난 것이 수영로교회 개척에 있어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오 전도사로부터 많은 목회적 도움을 받았다. 이후 정 목사는 구예배당인 수영로터리에 교회건축 부지를 저렴한 가격에 마련하고, 75년 10월 1일 성전기공예배를 드렸다. 생각지도 않은 부분에서 예비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감사하며, 교회의 새로운 비전을 품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이처럼 남다른 개척이야기를 담고 있는 수영로교회는 이후 장족의 발전을 거듭, 2001년 현재 위치한 해운대에 대형예배당을 마련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대형교회이면서도 단기간에 교회체계를 소그룹형태의 셀교회로 전환시킨 것은 교회의 부흥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수영로교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현재 수영로교회는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이 한창 진행중에 있으며, 30주년 기념 춘계부흥회에 이어 6월 1일 임직식 및 <수영로교회와 정필도 목사 목회이야기> 출판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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