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건축연구소 정시춘 대표

"이 불경기에 교회건축이 호황인 데는 이유가 있다. 70~80년대 교회를 많이 지었는데 그 건물을 이제 헐고 새로 짓는 것이다. 그때 지은 건물로는 기능이 모자라니까 새로 짓는 것인데, 처음부터 제대로 건축했어야 했다. 그런데 대다수 교회는 헐고 새로 짓는 쪽을 택한다. 증축하는 교회는 10%를 넘지 않는다. 10~20년 만에 건물을 새로 짓는 교회가 과연 교회인가. 교회건축에 막대한 헌금과 시간을 투자함으로써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면 이를 어찌 교회라고 할 수 있나. 교회당을 짓기 위해 존재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가 건축을 많이 할수록 교회건축 전문가는 명성과 부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는데도 정시춘 대표(정주건축연구소)는 교회건축 붐에 대해 "상업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교회 본질까지 잃어버린 교회 건축의 호황 뒤에는 재건축을 부추기는 '건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끼리는 비판하지 않는다는 패거리적 동료 의식이 신앙과 건축가의 양심을 앞설 수는 없나 보다.

 

그리고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34년 동안 내로라 하는 큰 교회와 기관 1백여 곳을 설계한 그가 최근 상가 교회의 건축 환경과 건축 문화에 관심을 쏟고 있는 것이다. 돈과 명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대형 설계보다 상가 교회에 관심을 돌린 이유가 궁금해 지난 3월9일 그가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상업주의 판치고 있는 교회 건축

관심의 변화를 묻기 전에 최근 교회 건축 흐름과 그 속에 담긴 신앙부터 질문을 던졌다. 사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정 대표가 입만 열면 하는 말이어서 이제 식상하게 느끼지 않을까 생각했다. 역시 그는 "항상 하는 말인데…" 라며 운을 뗐으나 기다렸다는 듯 자신의 지론을 쏟아냈다.

정 대표는 대략 10년 전부터 교회가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빌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이전까지는 큰 교회는 교세를 드러내는데 집중했고, 작은 교회는 예배드릴 거처를 마련하는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교회가 양적 팽창을 거듭하던 시기에는 예배 인원을 수용할 공간 확보가 최우선이었지, 건물이 교육·문화 등에 미치는 영향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교인 수가 정체되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교회는 주변으로 눈을 돌리다보니 지역사회 선교에 적합한 교회 건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정 대표는 말한다. 교회 기능이 바뀌니까 교회 건축도 설교·예배·전도를 우선하는 배치에서 문화·교육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동안 교회는 건물이 활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만 집중해 건축 의미를 따지지 않다가 1990년대부터 교회 건물에 문화를 어떻게 표현할지, 교육을 위해 어울리는 건축은 어떤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하더라."

 

 

파이프오르간 사건을 아시나요

 

사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교회 건축은 교회 본질을 고려하기보다는 여전히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거나 유행을 좇는 풍조가 강했다고 정 대표는 말했다. 재건축뿐만 아니라 음향과 영상, 장비 등이 유행하자 기존 스피커가 넉넉한데도 새로 스피커를 구입하거나, 최첨단 영상 장비를 설치했다가 예배에 방해된다는 것을 알고 사용을 자제하는 사례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때 대형 교회를 휩쓴 파이프오르간 도입은 한국 교회가 얼마나 예배 공간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소리가 울리는 중세 성당처럼 말씀보다 의식이 중심인 예배를 드리는 곳에서는 파이프오르간이 어울린다. 그러나 현대 개신교 예배당은 울리면 안 되는 공간이다. 말씀이 잘 전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회는 앞뒤 재지 않고 파이프오르간을 설치하려고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인지, 어떤 가치가 있는지 꼼꼼히 따지지 않고 유행하는 것이면 무조건 구입해 놓고 보는 경향이 교회의 현주소다."

정 대표는 교회가 존재 이유에 맞는 모양을 갖추기보다 유행을 좇는 배경에는 재건축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건축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부추긴다. 이들은 건축부터 음향, 영상, 오르간 등 다양한 예배 도구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비싸고 큰 것으로 바꿔야 한다고 옆에서 들쑤신다. 교회 건축에 상업주의가 판치고 있는 셈이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열리는 교회건축 관련 세미나에 사람들도 많이 몰린다. 문제는 교회 본질에 맞는 건축을 가르쳐야 하는데, 교회는 포장하는 데만 관심을 쏟는 실정이다."

교회당 수명은 10년?

그는 대충 짓고 마음에 안 들면 헐고 새로 짓는 건축 풍조가 교회에도 만연하다고 꼬집었다. 1970~80년대 교회들이 증축할 여지를 남기지 않고 지었다가 요즘 헐고 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교회는 건축을 위해 1년 예산의 5~10배를 투자한다. 교회당을 짓는 시기 앞뒤로 헌금을 총동원하기 때문에 5~10년은 교회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교회당을 짓는데 신중해야 하지만, 교회는 10년 만에 헐고 또 짓는다. 이런 교회는 교회로서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있는 교회가 아니다.

정 대표는 그동안 교회당은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고, 폐쇄적으로 지을 뿐 아니라 모양도 예쁘지 않고 덩치만 커 거부감이 들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교회당을 지을 때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저기 가면 편안하겠다' '사랑이 있는 곳이구나' '저곳에 신이 있겠다'는 마음이 들게 지어야 한다. 들어가고 싶고 알아보고 싶은 곳으로 지어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 건축도 선교이기 때문이다."

상가 교회를 살리자

재정이 넉넉한 큰 교회는 한동안 자기 정체성을 포기하면서라도 이런 점을 고려한 교회당을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상가 교회의 경우, 오직 상가에서 탈출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상가를 벗어나기는 갈수록 어렵다. 상가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많지 않아서다.

정 대표가 건물로 기독교의 가치를 드러내기를 포기하고 기존 방식에 안주하고 있는 상가 교회도 많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은 2003년. 당시 정 대표는 교회 건축을 고민하는 지인들과 함께 교회건축문화연구회를 결성했다. 초기에는 장로교·감리교·성결교는 물론 정교회·성공회·루터교회 등 흔히 접하기 어려운 교회를 탐방하며, 교회 건축이 예배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연구 결과가 어느 정도 축적된 지난해 연구회 회원인 나형석 교수(협성대)가 우리 생각을 한국 교회에 도움이 되도록 내어놓자며 상가교회 연구를 제안했다.

정 대표는 회원들과 상가 교회를 돌며 개선이 필요한 내용을 챙겼다. 우선 겉으로 보이는 첨탑과 간판을 고쳐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세교회 고딕 양식에서 따온 첨탑은 교회가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각인시켰지만, 상자형 상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중세 교회 양식을 현대 교회가 여과 없이 사용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현대 교회를 보면서 중세 교회를 연상한다면 이미지 차용에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 새 건물이든 상가 건물이든 교회는 첨탑을 통해 자기 이미지를 세우는데 실패했다."

 

 

첨탑 이미지는 '실패작' … 공간 활용도 낮아

 

간판에서는 상가 입주 업체와 교회를 차별화하는데 실패했다. 교회 간판도 건물 외벽을 도배한 지저분한 간판 가운데 하나로 인식될 뿐이라는 것이다. 예배당 안으로 눈을 돌려도 좁다는 이유로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게 상가교회 대부분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상가 교회는 돈을 적게 들이기 위해 건축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 리모델링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돈을 적게 들이는 일이 경제적인 것은 아니라고 충고했다. 같은 돈을 들여도 공간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변했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작은 교회가 리모델링하면서 설계를 몇 번이나 변경해 추가 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하는 예가 많은 현실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상가 교회도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문화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표현할 수 있다"며 "조금만 애정을 갖고 디자인하자"라고 제안했다. 이러한 생각을 정리해 발표하는 세미나를 교회건축문화연구회 회원들과 함께 진행한다. 오는 4월 18일 오전 10시 30분 대한성서공회 4층 세미나실에서 열리는 '상가 교회를 위한 건축 세미나'에서 다양한 모델과 대안적인 사례를 제시할 계획이다.

상가교회 리모델링에 전념

정 대표는 34년 전 설계 사무실을 열고 처음 시작한 일이 교회 건축이었다고 했다. 그가 설계한 교회는 입소문을 통해 다른 교회에 알려지면서 교회 대여섯 군데를 설계했다. 그러나 이제는 건축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 한국교회의 건축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데 전념할 생각이다.

"한동안 설계하느라 바빠서 교회 건축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지만, 대학 강의를 하면서 조금씩 건축을 넓게 보기 시작했다. 어느 시기부터는 설계보다 교회 건축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는 일이 내 소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남은 인생을 올바른 교회 건축이라는 문제에 매달리며 살고 싶다."

:: 이 원고는 복음과상황 제157호(2005.4.1)에 실린 기사를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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