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체계로서의 귀납적 설교 방식: 설교

▲ 프래드 크래독 저, 이우제 역, 대서, 2007-03-28, 367쪽, 13000원
강조점에 따라 간편하게 구별하자면, 고전적 설교는 텍스트(성경) 지향적 설교요, 현대의 설교는 컨텍스트(청중) 지향적 설교라고 할 수 있다. 크래독은 그의 책 "설교"에서 양자 다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균형을 이루려 노력하고 있다. 본문과 독자라는 두 지평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는 독특한 설교학 책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고전적 설교에서 현대의 스토리텔링 설교로의 전환에 있어서 징검다리로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리만큼 우리나라 설교학 교실에서는 거의 주의를 끌지 못해 온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전에 잊혀진 설교학의 고전'인 것이다(이런 와중에 최근 대서출판사에서 "크래독의 설교 레슨 : 귀납적 설교의 위대한 멘토"라는 제목으로 재번역되어 출판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탁월한 전달가 크래독이 스스로 중요한 내용들을 놀랍도록 압축하면서도 적절하게 풀어놓고 있으므로 이 책을 효과적으로 요약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의 큰 아우트라인을 따라 가면서 각 뼈대 속에서 제시되는 인상적인 주장들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동시에 크래독이 남긴 독특한 기여에 대해서 나름대로 풀어 설명해 보고자 한다.

설교의 신학

이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제1부는 설교신학을 제시한다. 첫째로 설교에 대한 근본적인 신념들을 잘 정리한다. 여기서 크래독은 예리하게 지적한다. 설교가 본문에 푹 빠져서 한 구절씩 해설해 나간다 할지라도 현실 문제를 전혀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면, 본문이 독자에게 영향을 줘서 순종하는 데 성공한 것을 그 설교가 성취해 내지 못했다는 의미에서 '비성경적'이다.

둘째로 상황에 적합한 설교에 대해 제시한다. 설교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설교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설교문'이 '설교되는' 상황 속에서 경험되어져야 한다. 설교의 내용이 진실되어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것인가' 하는 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점이다.

셋째로 설교의 신학을 다룬다. 설교가 신학을 설교하는 것은 아니지만, 설교 자체가 성경본문과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신학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설교가 하나님의 계시가 현재 계속되는 것으로서의 성격을 가진다면, 우리가 하는 설교의 내용이나 방법 모두 다 계시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일치되어야 할 것이다.

설교 : 전달해야 할 메시지를 찾는 일

제2부는 가슴 속에 담긴 말로서의 설교의 성격에 대해 말한다. 설교자가 가슴 속에 담긴 말을 설교에 담아내기 위해, 첫째로 설교자는 연구해야 한다. 연구는 순종이요, 예배요, 목회요, 일이요, 경험이다. 연구에서 크래독이 독특하게 주장하는 것은 단편소설 읽기이다. 단편소설은 설교의 사촌으로서, 설교 자료의 배열에 능숙해지고 절제와 강조의 방법을 익히게 만들어 준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단편소설을 적어도 일주일에 한 권은 읽음으로써 재미와 명확성과 설득력을 갖춰야 한다.

둘째로 청중을 해석해야 한다. 크래독은 여기서 중요한 것을 지적한다.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것과 설교를 구성하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정이므로 합해 버릴 수 없다. 한꺼번에 해낼 수 없는 두 작업인 것이다. 메시지를 이끌어내려면 본문 해석을 해야 하고 설교를 구성하려면 청중을 해석해야 한다. 설교자가 본문 자체의 해석과 전달에 있어서 '이것이다!' 하고 두 번의 깨달음을 가지지 못하면 청중은 한 번의 깨달음도 얻지 못할 것이다. 청중 분석을 하려면 청중과 거리를 두고 그들을 제3자의 낯선 사람으로 여기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하고, 그 다음에 비로소 청중을 자기가 몸담은 교회의 친밀한 회중으로서 바라보며 그들의 구체적이고 독특한 시각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본문을 해석해야 한다. 설교자는 먼저 본문 속으로 들어가 일반적으로 시도되는 다양한 방법으로 본문을 연구한다. 그렇지만 최종적으로는 본문과의 거리를 다시 회복하며 본문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확정하고, 자신의 언어로 본문을 바꿔야 한다. 그렇지만 본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형태에 유의해야 한다. 설교에서 본문 자체의 형태를 바꾸면 본문의 기능이나 내용까지 변경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는 축복 선포가, '심령이 가난해져야 한다'는 윤리 권면으로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넷째로 본문이라는 과거와 상황이라는 현재의 거리를 극복하면서 본문과 청중의 관계를 설정하는 몇 가지 방법론을 사용해야 한다. 특정한 상황에 있는 특정인을 위한 것이 될 수 있을 때 그 해석이 참된 해석이 될 수 있다. 그저 막연히 성경을 해석하지 말고 '어느 곳엔가 있는 어떤 사람을 위해서' 성경을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출판된 설교집은 그 가치에 명백한 제한을 가지고 있다.

아마 수많은 설교 준비자가 여러 설교집을 참고하며 설교를 준비할 때 놓치는 부분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가장 은혜롭고 힘이 있는 설교는 시의적절한 설교이지만, 출판을 위해서 일반화시키는 과정에서 그 중요한 시의적절성이 사라져 버린다. 혹시 설교에 당시 설교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독자로서의 설교자가 처한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므로 적용점의 초점이 다르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자기 양을 먹이는 구체적인 설교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양을 먹이는 피상적인 설교를 하게 될 것이다(출판을 위한 설교문을 가지고 설교하는 설교자들은 자기 회중과 갈수록 분리될 것이다.). 어떤 저자의 설교문을 보면서 그 설교문이 나오게 된 설교 방송 자체를 듣고 비교하면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설교 : 메시지를 설교로 만드는 일

제3부는 메시지를 설교로 만드는 일에 대해 다룬다. 2부의 내용도 다른 설교학 책에서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조언을 많이 담고 있지만, 3부는 정말 풍요롭고 독창적인 도움을 가득 담고 있다. 첫째로 설교가 갖추어야 할 요건을 제시한다. 설교는 통일성, 전통성, 인식 가능성, 일체성, 기대 가능성, 친밀성을 갖춰야 한다. 이 내용들은 짧지만 대부분의 설교학 책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아주 중요한 사항들이다.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인데도 쉬 간과되어 온 부분들인 것이다. 이 요소들 중 백미를 뽑으라면 통일성이라 할 수 있다. 크래독은 설교를 구성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본문(text)과 제목(title) 외에, 주제문(theme)과 주제(subject)를 꼭 추가하여 작성할 것을 촉구한다. 주제문은 설교를 지배하는 사상을 간단하고 긍정적인 한 문장으로 나타낸 것이다. 주제는 설교 내용을 둘에서 다섯 단어로 간단하게 요약한 것으로, 간혹 제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설교자 자신을 위한 것이지 회중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제목은 주의와 관심을 끌기 위해 주제를 재구성한 것이다. 본문에서 주제문을 찾아내듯이 주제문에서 주제를 찾아내고, 주제에서 제목을 찾아야 한다.

설교자가 주제문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회중이 그 설교를 듣고 분명하게 이해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글로 정리한 설교자가 정리하지 못한 것을 듣는 회중이 어떻게 정리할 수 있겠는가? 현재 일반적으로 설교자들이 제시하는 설교의 제목은 거의 다 제목이 아니라 주제다. 수필이나 소설이 순진하게 주제를 제목으로 제시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그러나 현실 설교계에서는 이 잘못된 관행이 당연하다는 듯이 지배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설교계에서 가장 시급하게 고쳐져야 할 잘못된 관행일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규칙에 따라 정확하게 제목을 제시하면 주제를 제목으로 제시하는 전통에 익숙한 사람들이 제목을 보고 설교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불평하기도 하는 실정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설교자들의 잘못된 관행에 길들여진 회중의 오해에 불과하다. 주제를 제목으로 제시해 놓고 지난 주 설교 제목이 뭐냐고 묻는 설교자는 지난 주와 지지난 주의 본인 설교 제목이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아마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주제의 특징을 잘 잡아낸 독특한 제목은 회중에게 강요하지 않아도 오래 기억될 수 있다. 크래독의 책에서 아쉬운 것은, 이 중요한 내용을 겨우 세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지나치게 간단하게 스쳐지나가 버린다는 것이다.

둘째로 설교의 형식을 제시한다. 설교의 형식은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어서, 청중의 관심을 유발 및 지속시키고, 경험을 형성하고, 신앙을 형성해 주고, 참여의 정도를 결정한다. 설교의 형태는 설교 형식 모음집이나 본문 자체, 교인들의 요구에 대한 설교자의 느낌 등 다양한 자료에서 택할 수 있다. 때로는 설교자가 형식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이 때는 설교의 구조와 개요를 만드는 일이 뒤로 연기되게 된다. 그리고 설교를 기록하는 것은 설교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글과 말은 다르므로 (즉 문어체와 구어체는 다르므로), 될수록 구어체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설교를 전달할 때 생기는 어색함을 방지할 수 있다. 설교하면서 '~했다'체로 되어 있는 설교문을 '~했습니다'체로 바꾸는 과정에서 우리는 설교에 쏟아야 할 귀중한 에너지를 불필요하면서도 실수를 유발하게 만들기 쉬운 과정에 붓는 것을 에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형식을 풍성하게 하는 요소들을 제시한다. 크래독은 여기서 설교의 언어에 관심을 기울인다. 설교에 사용되는 표현들에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표현법과, 경험이나 감정, 그리고 기억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표현법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적절히 구사하게 되면 예화를 들 필요가 없어지고, 그 반면에 청중은 설교자가 유용한 예화를 많이 사용했다고 칭찬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도 다른 설교학 책에서는 거의 얻지 못하는 크래독의 독특한 강조점으로, 이것을 터득하게 된다면 예화 걱정(제시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리고 제시한다면 어디서 어떻게 예화를 구할 것인지)은 거의 버려도 될 것이다.

넷째로 실제 설교를 행하는 일을 제시한다. 설교하기 전에 장소나 예배 의식, 강단에 가져갈 물건, 설교자 자신에 대해 사전에 점검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설교 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설교 중 어떤 것에 신경을 쓰면서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제시한다. 크래독은 이 부분에서도 너무나 귀중한 요소들을 시의적절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 동안 존 스토트 등이 텍스트와 컨텍스트라는 두 지평 사이의 '다리 놓기'로서의 설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는 했다. 그렇지만 설교 준비나 선포에 있어서 이 두 영역을 설교자가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해서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안내해 주는 설교학 책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크래독은 능숙한 솜씨로 두 가지 내용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시리즈로 나와야 할 방대한 양의 내용을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의 이 책에서 놀랍게도 지혜롭게 풀어냈다. 원래 신약신학자로서 설교를 위한 몇 가지 간단한 주석도 내놓은 크래독은 자신의 주해적 방법에 탄탄한 원고 구성 방법, 효과적 청중 분석, 그리고 설교의 전달 기법까지 접목하여, 설교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설교자들에게 길이 남을 보배를 선물한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은 설교학 책자 가운데 독보적인 존재이며, 자세히 읽으며 익히면 설교자에게 천군만마를 얻게 해주는 탁월한 구원병이다. 그러므로 그의 "설교"는 한 번 읽고 지나가 버릴 책이 아니라, 수시로 들여다보고 스스로의 설교를 갈고 닦는데 사용할 교범으로 옆에 둘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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