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빈 길 저, 김승호 역, 선학사(북코리아), 2004-04-15, 183쪽, 9000원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덕공동체>(김승호 옮김, 선학사, 2004)는 기독교윤리학자이자 종교사회학자인 로빈 길 교수가 1992년에 영국 엑시터대학에 초청되어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현대 사회에서 돌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사람들이 자기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돌봄을 행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유래한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파편화된 포스트모던 시대에 교회가 도덕적인 가치를 창조하는 '도덕 공동체'가 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교회가 '도덕공동체'라는 견해는 고전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케임의 주장에서 비롯된다. 그는 공통된 이념들을 가지고 공동의 의식들을 수행하는 종교 공동체인 교회는, 성직자들의 집단이 아니라 단일한 믿음을 가지고 모든 믿는 이들에 의하여 구성되는 '도덕 공동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공동체는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문을 닫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이기주의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공동체 밖으로 표출한다는 점에서 도덕 공동체인 것이다.

저자가 인용하듯이, 이러한 공동체 개념은 동료들과 함께 한 연구의 결과물인 Habits of the Heart: Individualism and Commitment in American Life(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85)1)를 통해 '시민종교'를 주창했던 로버트 벨라의 공동체 개념으로 이어진다. 그는 공동체를, 사회적으로 상호의존적이며 토론과 의사결정에 함께 참여하며, 그 공동체를 규정하며 그것에 의해 양육을 받는 어떤 '실천'들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이해하며, 이러한 공동체는 어느 순간에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를 가지며 그래서 공통의 과거와 과거의 기억들로 한정되는 '기억의 공동체'라고 말한다. 그 안에서 구성원들이 모두 참여하여 서로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도덕 실천의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래, 철학자와 사회과학자들은 종교가 사회적인 가치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동의하지 않고 종교의 사회적인 중요성이 감소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른바 '세속화' 논제이다. '세속화'는 "종교가 신앙과 의식 그리고 인간의 일상생활에 대한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쇠퇴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저자는 현대 종교사회학에서 처음으로 세속화를 중심 논제로 제시한 브라이언 윌슨의 저작들을 인용하고 있는데, 윌슨은 세속화를 "종교적 사고, 의식 및 기구들이 사회적 의미와 중요성을 잃게 되는 과정"으로 정의하면서 종교의 쇠퇴를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가르침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포스트모던 시대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는 종교와 같이 절대 가치를 주장하는 담론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상대화된 가치 또는 다원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길 교수는 포스트모던 세상에서조차 종교 공동체들이 도덕적 선구자로서 행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종교 공동체들이 전달하는 가치들은 세속의 가치들과는 다른 것들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로버트 벨라가 말하는 종교의 '초월성'과 통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길 교수의 주장은 한국교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서 폭발적인 성장을 이룬 반면에 교회의 대형화 추세에 따른 내부 빈곤감이 이전에 비해 증폭되고 있다. 교회의 생활이 질보다는 수와 양에 치중하여 교인 수 확장, 건물 확대, 재정 확대에 치중을 하면서, 한국교회들은 공동체로서의 교회관과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교회의 공동체성을 상실하는 실정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어 교회가 본연의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교회구성원들에게조차 스스로의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또한 영향력을 행사하지도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길 교수가 "영국 교회들이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라고 한 질문을 똑같이 한국교회에 던져보고자 한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에 대하여 기대하는 것은 사회에서 무시되고 있는 도덕의 차원을 다시 공공 영역으로 들여옴으로써 사회 구성원들이 개인 및 집단 이기주의로부터 벗어나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갖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시민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시민 사회는 법과 정치의 강제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결사의 자유가 적용되는 자원의 영역이고, 이윤과 이기심보다는 헌신에 의해 동기 부여되는 삶의 영역들과 관련된다는 것을 감안할 때, 공공 영역에서 사람들 사이에 사회 교섭을 증가시키고 도덕에 대한 헌신에 동기 부여할 수 있는 집합의 가치들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종교가 이러한 시민 사회의 힘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 자본을 형성한다면 세속화 과정에서 사사로운 영역으로 물러난 종교가 다시 공공성을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린스턴 대학교의 종교사회학자인 로버트 우스노우가 쓴 Christianity and Civil Society: The Contemporary Debate(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6)도 현대 시민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서적이라 할 만한다.

로빈 길 교수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도덕공동체>는 200쪽이 되지 않는 분량이지만, 읽기가 만만치 않다. 번역상 매끄럽지 않은 문장들도 더러 있지만, 이보다는 강의록이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상세한 설명보다는 중요한 내용들이 물 흐르듯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데다가, 그의 강의록이 수많은 근대 사상가와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이론들을 수시로 인용하고 있는 만큼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폭넓은 선지식을 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면 백과사전을 옆에 놓고서라도 반드시 일독해야 할 책으로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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