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석학 6인이 진단한 21세기 교회와 신학

 

▲ 이문장/앤드류 월즈 등저, 이문장 역, 2006-12-03, 271쪽, 13000원

이 책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 먼저 하나.

미국성공회가 2003년 한 동성애자를 주교로 서품했다. 세계성공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세계성공회는 이 문제로 지금 크게 두 진영으로 갈라서 있다. 이런저런 논리로 동성애를 수용하는 쪽은 미국과 유럽 지역에 몰려있고, 그 반대 진영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교회들이다. 지난해 '글로벌 사우스 앵글리칸'이라는 모임이 열렸다. '남반구 성공회'라는 이름 그대로, 이 대회에 모인 앵글리칸들은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남미의 성공회 주교들이었다. 물론 이들은 미국성공회의 동성애자 주교서품에 극도로 분노하고 있는 보수진영 인사들이었다. 이 운동의 지도자는 나이지리아성공회 관구장인 피터 아키놀라 주교다. 지난해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아키놀라 주교를 '세계를 움직이는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뽑았다. 릭 워렌 목사는 이 주간지 같은 호에 기고한 글에서,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고 이 움직임을 주도하는 지도자가 바로 아키놀라 주교라고 평했다.

<기독교의 미래>는, 이 책의 작은 제목 그대로, '기독교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 책의 아프리카 신학자 셋과 아시아 신학자 둘, 그리고 유럽 신학자 한 명은, 비서구권 또는 남반구 기독교인이 세계 기독교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면서 질문한다. "신학의 중심도 서구에서 비서구로 이동하고 있는가?"

답은 '아직은 아니다'에 가깝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 6명의 다국적 신학자 그룹은, 서구교회에서마저 이제는 소통 불가능한 '그들만의 학문', '신학자들만의 신학'이 되어버린 서구신학이, 전혀 문화의 토양이 다른 비서구 교회에 군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2000년 교회의 역사를 보더라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역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기독교는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옮겨 심겨 새로운 토양에서 더 크게 자라났다는 것이다(cross-cultural transplantation).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라는 말로 충분히 소통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헬라문화에서 나고 자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메시아'는 소통 불가능한 그들만의 언어였다. 그래서 무명의 안디옥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지중해 세계의 무수한 신들을 부르는 말인 '퀴리오스'(주)를, 예수를 고백하는 말로 과감하게 번역(cross-cultural translation)하였기 때문에, 복음은 유대문화를 넘어 드넓은 헬라세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고 이들은 예를 든다.

기독교 2000년의 역사에서 복음과 문화의 교섭이 이러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이들은, 그래서, 지금은 다시 한 번 복음의 '옮겨심기'를 해야할 때라고 말한다. 그것도, 귤을 탱자로 퇴화시켜버린 실패한 '토착화 신학' 작업이 아니라, 제대로 말이다. 그 뿌리가 튼튼히 내려 시들지 않고 자라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이들은 비서구 교회는 무엇보다도 이미 생명력을 상실한 서구신학에서 과감하게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스스로 신학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프리카의 신학은 아테네나 로마에 있는 어떤 신학교에서 배운 것을 쫓아가는 수준이 되어선 안 된다. 대신 자체의 방법론, 자체의 방향성, 자체의 목소리를 찾아야 한다. … 먹을 것이 없어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는 처절함을 경험한 아프리카의 신학자는 접시 가득 스테이크가 놓여 있어도 식욕이 없어 먹지 못하는 미국의 신학자와는 명백히 다른 방식으로 신학 작업을 전개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 케냐 출신 신학자 존 음비티의 '스스로 신학 하기' 명제다.

미국성공회의 도발에, 세계성공회는 '동성애는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그렇지만 자유주의 또는 진보 신학으로 무장한 이들은 끄떡도 하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 동성애는 하나의 '문화'이다. 문화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정죄해서도 축성해서도 안 될, 그 자체로 의미있는 것이라는 사고가 이들에게는 깔려 있다. 이들에게서는 성경이 아니라 문화가 오히려 위에 있어 보인다.

이제는 포기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한때, 동성애를 수용하자는 신학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을 설득 또는 제압하기 위해서였는지, 성경에서 동성애를 수용하는 전거를 찾으려고 무던히 노력하기도 했다. 그들의 그 신학 작업은 참으로 경탄하리만큼, 더러 논문의 본문보다 각주가 더 길 정도로, 복잡하고 정교했다.

이런 저런 각주를 달아 성경을 재해석해내는 이들과, '이제는 더 이상은 당신네 서구신학을 맹종하지 않겠소'라며 '당신들의 신학논문이 아니라 성경에서 우리 스스로 답을 찾겠다'는 아프리카 교회의 한판 힘겨루기를 지켜보면서, 이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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