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리 버튼 러셀 저, 김은주 역, 다빈치, 2001-06-30, 333쪽, 18000원
'마녀의 문화사'는 인류 정신사의 그늘 속에서 오랜 생명력을 지속해 온 마녀들의 역사와 개념 변천을 종교사적, 문화사적 관점에서 조명한 책이다. 마녀란 허구적인 존재도, 중세의 산물도 아니라고 말하는 지은이는 마법과 마술, 종교재판, 마녀사냥, 그리고 현대의 마술에 이르기까지 마녀와 관련된 주제들을 10장에 걸쳐 구체적으로 설명해 나간다.

이 책에 따르면 마녀사의 출발은 종교사와 일치한다. 고대 다신교(多神敎) 신앙 속에서 마녀는 악, 악마 등과 더불어 나타났고, '마녀의 술법(術法)'이란 의미로 마법(魔法)과 구분되는 '마술(魔術)'의 개념도 성립했다. 중세에 이르러 마녀는 하나의 사회체계 속에서 논쟁과 규제의 대상으로 새롭게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근대까지 이어진 '마녀사냥'의(이때 희생된 마녀들의 숫자가 10만이 넘는다고) 형태로 구체화된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그동안 터부시 되었던 마녀의 존재는 오컬트(occult) 붐과 고대여신숭배와 관련된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현대의 마녀들은 새로운 종교를 창조하고 있다"고 말하는 지은이는 우리가 마녀의 존재를 믿든 안 믿든 마녀를 종교적, 역사적 맥락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단 이 책은 '마녀'와 '주술'에 대해서 학문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는 말하길 '한 시대의 신조는 다른 시대의 미신이며, 우리가 현재 품고 있는 신념의 대부분이 언젠가는 미신이라 여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미신을 시종일관된 세계관에 근거를 두지 않는 신념이라고 정의해야 한다'라고 한다.

이와 같은 저자의 정의를 따라가면 우리는 '미신'에 대해서 상당히 체계적인 시각을 갖게 하기 때문에 그 유명한 '마녀사냥'에 대해서도 또 다른 시각을 갖게 한다. 저자의 주장은 마녀 사냥이 본질적으로 특정한 사회적, 지적 유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중세의 탓도, 기독교의 탓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아리스토텔레스주의나 르네상스 주술의 탓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인간성에 내재하는 하나의 결함, 즉 악을 타인에게 투영하여 그 사람들을 국외자로 규정함으로써 그들을 가차 없이 처벌하려는 빗나간 욕구가 취한 하나의 형태라고 본다.

'거짓의 사람들'(M. Scott Peck,89쪽)에서는 '악'은 공개적이거나 은폐적인 강압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다른 사람에게 부과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스캇 펙의 주장과 저자의 말이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는 나아가 '마녀'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여자'의 지위와 관련하여 꼼꼼히 설명하고 있는데 주의 깊게 읽어볼 만한 부분이 많다.

저자는 '마녀사냥'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인간을 고문하고 살해하는 일에 대한 열광이 몇 세기 동안이나 지속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 우리들이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사실은 최근 반세기 동안에도 홀로코스트, 수용소군도, 캄보디아의 대량학살을 비롯한 무수한 고문과 처형이 비밀리에 자행되었기 때문에 700년~1000년까지, 1700년~1900년까지의 기간처럼 비교적 멀쩡한 정신의 시대가 어떻게 가능했는지 라고 묻는 게 더 낫다라고까지 말한다.

정말 부끄러운 인간 정신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갑자기 옛 기도문이 생각난다.

"새로운 진리를 직면할 용기가 없는 비겁함으로부터,
반쪽만의 진실로 만족하는 게으름으로부터,
모든 진리를 안다고 생각하는 오만으로부터,
선하신 주님이여! 우리를 건져주소서!"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