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옥한흠 저, 국제제자훈련원, 2004-10-25, 290쪽, 10500원
중년의 어느 가을날, 불현듯 ‘소명!’ 이라는 말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지천명이 코앞인데 뜨거움으로 나를 사로잡을 무엇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인간의 감성이란 게 나이가 들수록 무뎌지는 것 아닌가? 이제 웬만한 일에는 크게 놀라지도 않고, 기쁨에 겨워 파안대소하며 웃어제낄 일들도 흔치 않다고 믿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명’ 이란 단어가 내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곧 이어 신학교 문을 두드리게 했다. 늦된 신학생. 그러나 성령의 특별한 은혜다. 이제 난 두 번째 ‘청춘’을 맞는다. ‘신앙의 청춘!’ 이는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누리게 된 생애 최고의 기쁨이고 선물이다.

   까까머리 고교시절, 감수성 강한 소년의 가슴을 한 판 휘저어 놓았던 글이 있었다.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청춘! 너의 두 손을 대고 물방아 같은 심장의 고동을 들어 보라...” ‘청춘예찬’ 이란 수필의 첫 시작이라고 기억된다. 청춘?, 그게 정확히 뭔지도 몰랐지만, 글 전체를 통해 흐르던 생명의 충만함과 역동하는 힘이 나를 사로잡았었다. 아름답고 아련한 기억이다. 그로부터 강산이 세 번 바뀌고, ‘청춘’ 대신 ‘소명’이 나를 다시 설레게 한다. 소년시절 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충만하고, 거룩한 설레임이다. 예기치 못한 하나님의 초대로 나는 다시 청춘을 산다. 세상은 절대로 알 수 없는 신앙의 청춘!

이런 상태에서 옥한흠목사님의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를 읽었다. 10편의 설교말씀은 부르심에 대한 나의 신념을 더욱 확고히 해 주었다. 아직은 학생이지만 목회 일선에 나가기 전에 영적으로 견고히 무장하며, 겸비한 마음으로 준비해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무엇보다 대목회자의 숨김없는 고백과 회한에 감동이 일어난다. 면면이 이어지는 진심어린 권면의 말씀에 한국교회의 새로운 소망을 발견한다. 아직도 하나님은 이 땅의 교회 위에 충만한 은혜로 역사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 옥목사님을 쓰시는 이유를 발견한다. 목사님은 자신을 ‘작은 자’로 표현하셨다. 겸손한 자, 자복하는 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목회자들이 굳건히 교회를 지키는 한, 세계복음화는 한국교회의 몫이며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명임에 틀림없다.

교회갱신이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래서 지금은 불행한 시대라는 안타까움으로 시작되는 책이다. 대교회를 담임하는 목회자로서, 굳이 먼저 꺼내지 않아도 될 법한 단어를 불쑥 꺼내서 청중(독자)을 놀라게 한다. 진리로 불타는 가슴은 자신의 입장을 돌아보지 않는 듯하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성회가 우선이다. 큰 생각이고 큰 믿음이다.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건강을 잃었음을 아쉬워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놀라운 부흥을 우리가 감당하지 못한 탓이다. 특별히 자신을 포함해서 이 땅의 교회 지도자들을 향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일부 병든 낙관주의가 현실을 애써 외면하고 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는 냉철한 신앙의 안목으로 이 시대 주님의 교회를 바라본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균형과 분별력이다. 이것이 이 시대에 본이 되는 목회자를 꼽으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목사님을 떠올리는 이유이다. 글마다 회한과 안타까운 심정이 묻어난다. “성령님이 이 나라를 떠나시지 않을까?...” 정말 기가 막힌 독백이 아닌가? 하나님을 사랑함이며 국가를 향한 충절의 절정이다. 이 땅의 교회를 사랑함이요, 가슴앓이다! 깊은 고뇌와 성찰과 의분에서 표출되는 눈물겨운 선지자적 경고다.

목사님은 교계의 지도자들과 목회자, 그리고 모든 성도를 포함한 한국의 기독교를 향해 진정한 회개와 회복을 촉구한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고 누구나 던질수 있는 메시지이지만, 공허한 외침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비장함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자신에 대한 죄의 고백과 회개에서 우러나는 진실 때문이다. 순전함과 진성성이다. 과거와 현재 자신의 실수와 결점까지도 숨기지 않는다. 대형 교회의 목회자로서 자칫 빠지기 쉬운 유혹들에 대한 경계를 늦추지 않는 경성함이 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엄격하다. 목회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진실한 성도로 바로 서기를 갈망한다. 의를 향한 목마름이다. 그래서 저자의 권면은 설득력이 있다. 살면서 듣기에 싫지 않은 질타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쓰리고 찌르는 경고의 말들이지만, 저자의 깊은 사랑에서 나오는 충고는 오히려 따뜻하다. 오히려 감사하다. 개혁과 갱신은 단 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음을 교훈한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지속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일어나는 변화만이 진정한 갱신을 이루는 길임을 깨닫는다.

그러면 개혁과 갱신은 언제 가장 효과적일까? 기득권층이 기득권을 포기할 때다. 사심과 욕심을 내려놓을 때다. 그러나 그런 일을 인류 역사상 극히 드문 일이고 기대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 연유로 목사님의 소망은 자연스레 ‘작은 자’에게로 향한다. 하나님의 전략은 작은 자, 연약한 자를 사용하셔서 사단의 허를 찌르는 것이다. 약하고 무력한 자는 사단의 관심의 대상이 못된다. 놀라운 하나님의 지혜요 성경이 증거 하는 바이다. 하나님의 아들도 그렇게 오셨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서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전혀 없으셨다. 교갱협(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은 힘없고 소위 ‘별 볼일 없는 목회자’들의 모임이라고 목사님은 천명한다. 그러나 약한 것, 힘없는 것이 하나님의 강함을 입는 비밀임을 선포한다. 내 힘이 빠져야 비로소 주님의 힘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힘이 강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것을 우리는 흔히 보지 않는가?

또한 개혁과 갱신의 차이를 구분하여 설명한다. 갱신은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교회의 질적인 문제를 바로 잡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이 시대 교회가 세상과 구별됨이 없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공감을 한다. 기독교 밖에서 목회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또 어떤가? ‘목회자는 명예를 추구하고 인기에 영합하는 사람...’ 이것이 불신자들의 대답이다. 참으로 부끄럽다. 권위와 신뢰를 모두 잃어버린 오늘의 사역자들... 갱신이 없으면 더 깊고 어두운 나락으로 추락할 것이고, 목사님의 염려대로 성령이 떠날지도 모른다는 근심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처절할 정도로 세상에 오염이 된 한국교회를 저자는 아픈 마음으로 바라본다.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세상과 구별된 순수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임을 역설한다. 위기감을 느낀다. 치열한 영적싸움이다. 이 싸움을 승리하는 길은 오직 하나, 성경의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기억하자! 왜곡되고 변질되는 근본‘ 원인은 원칙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원칙으로의 복귀다. 우리의 돌아갈 결국은 ‘말씀의 원칙이라고 목사님은 힘주어 말한다.

저자는 어두운 현실 가운데 대안을 제시한다.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 침체된 21세기 한국교회의 회복을 성령의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 영성과 감성과 체험의 신앙이 그것이다. 장로교는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한 지성이 앞서는 교단이다. 그러나 새로이 자라나는 세대는 이성과 논리보다는 체험과 감동을 중시한다. 논리가 아닌 체험이 신세대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뜨거운 성령의 역사를 간구해야 한다. 다양한 모습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의 충만함을 구할 때, 사람이 임의로 일으킬 수 없는 부흥의 불길이 타오를 것이다. 성령은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임한다는 사실, 성경이 증거하는 바가 아닌가?

소망! 저자는 어두운 현실 가운데 희미한 빛을 발견한다. 정말 귀하고 귀한 빛이다. 한국교회의 미래가 그 곳에 있었다. 교회 지도자들이 세속화 되어 자신들의 안전한 왕국에만 머무르려는 현실 저편에,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계획해 놓으셨다. 바로 젊은이들의 헌신이다.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 선교를 위한 집회에 몰려왔고 뜨겁게 기도하는 현장을 저자는 목격한 것이다. 선교와 복음에 생명을 걸고 나서겠다는 뜨거움의 현장보다 더 확실한 보증이 있을까? 성령의 역사고 주의 예비하심이다. 세계복음화를 위한 하나님의 소망이 아직 한국교회에 있음을 확인한다. 그들은 이 시대에 남은 자들이다.

이 책은 하나님의 비밀한 소명을 가슴에 품은 노목회자의 교훈이자 외침이다. 어두운 현실 가운데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망의 빛을 발견하는 혜안과 미래 목회의 방향까지 제시하는 목회의 지침서다. 작은 일에 열심을 내었더니 성장은 열매로서 맺혔다는 저자의 고백에서 신실한 인격의 진수를 만난다. 진정한 목자다. 제자훈련을 통해 작은 예수를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과 헌신에 하나님은 부흥이란 선물로 위로를 주셨다. 소명자는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이다.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기 전에 십자가로 나아간다. 십자가의 영성을 가지고 주께서 하시던 일을 지금 이 시대에 지속 하는 것이다. 사명을 다한 후, 소명자가 해야 할 한마디까지 권면하기를 잊지 않는다. ‘은혜!’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대형교회의 성공한 목회자...’ 이것이 저자에 대한 나의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책에서 만난 목사님은 이 시대에 한국교회를 향해 선지자적 경고를 던질 수 있는 몇 분 안 되는 목회자 중 한 분이심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과 나만이 아는 비밀을 간직한 소명자! 이 시대에 하나님은 그를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낙심한 하나님을 본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소명자도 낙심하지 않는다. 이 귀한 교훈을 가슴에 품고 나도 그 좁은 길을 가야겠다. 주여 나를 지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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