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갱신, 풀리지 않을 것같은 실타래 앞에선 그의 외침

▲ 옥한흠 저, 국제제자훈련원, 2004-10-25, 290쪽, 10500원
내가 배운 개혁신학의 주요 교리 중 하나가 '성도의 견인'이다. 그 신학적 논거는 인간이 비록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이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안에 있다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최후의 승리'를 믿으며, 그러한 믿음을 가진 성도는 이 세상의 온갖 유혹과 시험, 환란과 핍박이 와도 반드시 승리한다.

신학교를 다니며 교회의 부교역자로 섬겼던 3년과 타문화권에서의 선교사역 12년을 돌아볼 때, 나에게는 적지 않은 좌절의 기회가 여러 모양으로 찾아왔다. 아니 지금도 나는 그러한 기회에 적나라하게 노출되어 있다.

신학교에 지원하게 된 동기가 '주님의 부르심'이었고, 신학교를 다니며 그 주님의 부르심에 '아직도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응답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3년 동안 '주님과의 제자훈련'을 꿈꾸며 다녔던 신학교나 그 기간 동안 목회를 훈련받고 부교역자로 사역했던 교회, 그리고 사회주의권이자 우리나라와는 전쟁으로 인연을 맺은 베트남에서 사역했던 기간들을 돌아볼 때, 그 상황(context)들이 진리의 기준인 주의 말씀(text)과 너무 거리가 멀고 그 거리는 결코 좁혀질 수가 없다는 것을 알자 자연스레 낙망과 좌절, 포기가 다가왔다.

외부 요인으로 인한 일은 그래도 다시 일어서기가 쉬웠다. 나는 베트남에 도착하여 사역을 시작한 지 채 2년도 되지 않았던 때, 현지 교회 청년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다 적발되어 첫 추방을 당하였다. 그것도 현지 교회 한 목사의 밀고에 의해.

한국의 성탄과 송년의 화려한 분위기 속에 추방당한 무명의 선교사가 갈 곳은 없었다. 눈 덮인 기도원에서 주님만을 불렀다. 그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준 두 구절의 말씀을 지금도 기억한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할꼬'(시 118:6),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시 118:17).

작년 말, 이번에는 베트남 내 소수종족들의 독립을 위한 분규와 연관되어 나는 또 한번 원치 않는 출국을 하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비인가 신학교 사역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신학교의 학생 중 2명이 유력한 소수종족 지도자 자녀로 베트남 정부에서는 이것이 학교 대표인 나를 '반정부 활동지원'의 정치적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이런 일을 당하니 나의 소명과 정체성은 상당히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갑작스런 상황 변화로 인해 가족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십대 초반의 두 자녀는 불안해하고, 한국에 홀로 계신 어머니도 이 기회에 한국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비치셨다. 나도 자식을 낳아 키우다 보니 '일곱 딸 중의 외아들을 외국에 보내고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실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그래도 사명은 지켜야 하는데, 그래도 선교사인데, 베트남이 어떤 땅인데,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사역해 왔는데' 라는 생각들이 바른 건지 아니면 일개 장식품이나 빛바랜 훈장인지를 구분하기도 힘들었다. 자녀들의 진로와 내 나이, 그리고 지난 일들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점점 고개가 숙여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나를 향한 인도하심이 있었다. 베트남에서 급히 나올 때, 동기 목사님이 베트남에 오면서 요즘 한국의 베스트셀러라고 소개하며 선물로 사온 몇 권의 단행본을 가지고 나왔는데, 그 중의 한권이 바로 옥 목사님의 저서 '소명자는 낙심하지 않는다'였다. 물론 몇 개월이 지나도록 읽을 마음도, 읽을 시간도 없었다. 갑자기 바뀐 상황 속에서, 그리고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지 모르는 여건 속에서 나도 모르게 낙심하고 있었고 이 정도면 낙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스스로의 논리에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베트남에서 10여 년간 사역하던 한 동료 선교사는 아무런 말없이 연초에 선교사를 사직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였다. 내 머리에서는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눈에 옥 목사님이 쓰신 책 제목의 '낙심'이란 단어가 들어왔다. 나는 무심코 옥 목사님의 책을 펼쳐보았다. 그 전에 옥 목사님의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책으로는 만난 일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내용이 책 출판을 위해 글로 쓰신 것이 아니라 강연하신 것을 책으로 만들었기에 표현이 진솔하고 박진감이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말씀하신 내용들이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었고 그러다보니 점점 동질감을 느끼며 옥 목사님의 메시지에 빠져들게 되었다.

'교회 갱신은 새로운 팀 리더십을 기다린다'에서는 느헤미야의 리더십을 예로 들었는데 너무 동감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의 이 구조적인 모순과 한계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또 다른 구조가 아닌, 바로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왔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란 곧 지도력과 연관되는데, 그 지도력 가운데 느헤미야는 지금의 상황과 비슷한 여건이었기에 나의 실제적인 모델이 된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옳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과 열정, 이를 위한 치밀한 계획과 준비 등이 지도자로서의 기본 덕목임을 한 번 더 확신하였고, 반대자들을 다루는 방법을 알았다는 점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처럼 느헤미야에게 주신 사명 완수의 기막힌 재능으로 내가 본받아야 할 점이었다.

옥 목사님은 또 '스데반의 죽음'에서 지도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였다. "지도자는 책상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는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위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나는 위기라는 말 속에서 갑자기 몸에 전율을 느꼈다. 한국 경제가 어렵고, 한국 교회가 힘들고, 선교사들이 어렵고, 이러한 어렵다는 말은 이미 귀에 익숙한데 이 어렵다는 말과 위기라는 단어가 하나 되는 마음이었다. 사실 어렵다는 말과 위기라는 말은 의미가 다르다. 어렵다는 표현은 비교적 쉽게 쓸 수 있지만 위기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며칠 전 한 신문에서 읽은 기사 중 "히브리어로 위기는 출산용 의자 즉, 고대 산모가 앉았던 의자를 뜻한다. 생명을 탄생시키는 창조의 순간이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 때" 라는 구절이 생각났다.

서서히 내 머리 속에 정리되는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의 연속된 삶의 정황 속에서 늘 마음에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을 찾지 못하였는데, 바로 이 위기라는 단어에서 단서를 찾았다. '그래, 지금이 위기구나. 지금이 위기인데, 위기라고 느끼지 못했기에 마음 속에 계속되는 고민과 갈등이 있었고 이것을 소화하지 못하니 결국 낙심하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였고 그 순간부터 이상하리만큼 차분한 마음이 들었다. 마치 초등학교 시절, 주사를 맞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의 불안과 초조감이 주사를 맞음으로 해결되는 것처럼...

옥 목사님은 이 글에서 짐 엘리엇 선교사의 예화를 들었는데, 내가 베트남을 떠나올 때 읽지 못하고 가져온 또 한권의 책이 바로 짐 엘리엇 선교사 수기인 '영광의 문'이었다. 그는 비록 28세의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늘 주님을 위한 소모품으로 헌신되어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주님을 위해 산다고 살았지만 소모품으로는 살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는 살기 싫었고 꼭 그렇게 살아야만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선교사로서의 교양과 위치, 사역, 안정과 발전을 위한 마음이 늘 있었다. 일부 그러한 개척 지역에서는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소모품처럼 살아갈 수 있지만 이렇게 통신과 교통이 발달한 사회에서는 비효과적이라는 논리도 제기하였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위기 때 필요한 지도력은, 주님께서 보이신 참다운 지도력은 그게 아니었다. 소모품으로서의 본이었고 그러한 지도력이었다.

'소명을 받은 자는 낙심하지 않는다'에서도 나는 따끔한 회초리를 한 대 맞았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소명자는 부흥 콤플렉스에 희생당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진정한 소명자는 사람 수가 많고 적음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자본주의 나라에서 태어나 살면서 나도 모르게 자본주의가 몸에 배였다. 내가 신학교에 가기 전 대학에서 공부한 전공은 '회계학'으로 경영, 경제와 무역을 같이 배웠다. 나는 군대에 가서도 회계학과생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암호병에 차출되었다. 수많은 병과 중 가장 먼저 차출되었고, 한 기수 500여 명 중 단 9명이라는 정예 요원이었기에 나는 그 병과가 대단한 일을 하는 줄 알았다. 물론 군대에서의 암호는 생명과 같은 존재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결국은 숫자 놀음이었다. 아무 의미 없이 나열된 숫자를 빨리 가감산하고 이를 정해진 법칙에 따라 해독하는 단순 역할이었다.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숫자 특히, 돈이라는 물질의 숫자만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어버린 기형 사회가 바로 자본주의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가진 자가 위에 있고, 가진 자가 힘이 있다. 이는 성경적으로 볼 때, 지극히 잘못된 것이다. 자본주의의 큰 폐단 중 하나가 바로 '숫자'인데, 이것이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본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나도 그것을 따르고, 때로 어쩔 수 없다는 변명을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선교사는 어떤가? 선교사도 결코 이에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더 큰 유혹을 받고 나중에는 남은 구원시키는데, 자기는 구원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자들이 바로 선교사라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다.

최근에 겪은 일련의 갈등 속에 나도 이와 같은 종류의 고민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베트남이라는 선교지도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이미 정부를 비롯한 개개인의 모든 사고는 자본주의화 되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 내가 당한 일련의 일들도 얼마든지 관계나 자본, 여러 가지의 힘을 동원하면 해결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부흥 콤플렉스, 자본 콤플렉스, 힘의 논리 콤플렉스를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지도력, 지도자, 위기, 소모품, 숫자 콤플렉스 등의 단어와 나의 현실이 겹치기 시작하였다. 한없이 나약해진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제는 갈멜산에서 팔백오십 명의 바알 선지자를 대항하여 여호와의 불을 내리더니, 오늘은 이세벨의 분노에 고개를 숙이며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소서'라고 한 엘리야(왕하 19:4), 그리고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을 싫어하고 노하며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라고 했던 요나(욘 4:3)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엘리야에게 천사를 통해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주시며 일어나서 먹게 하시고, 요나에게는 박 넝쿨을 통해 니느웨 성읍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가르치셨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오늘도 충직한 일군들의 말씀과 교훈을 통해 역사하신다.

결국은 하나님께 소명 받은 일군들이 무수한 낙심과 좌절 그리고 시련을 딛고 일어나 저 천국을 향하여 행진하는 것이다. 그러한 무리들이 손에 손을 잡고 달려갈 때 주님의 나라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확장되고(막 4:27), 그들은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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