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 리영희 저, 한길사, 2005-03-10, 746쪽, 22000원
1984년도에 대학을 입학한 나로서는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의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을 통해서 리영희 기자를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인생역정을 읽어 보면서, 문익환 목사의 평전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을 느꼈다.

책 내용 중에서 발췌되어 적힌 글이 표지에 씌여 있는데, 그 글이 리영희 기자의 소신을 훌륭하게 요약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더욱이 진정한 '지식인'은 본질적으로 '자유인'인 까닭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결정에 대해서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존재하는 '사회'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고 믿는다. 이 이념에 따라, 나는 언제나 내 앞에 던져진 현실 상황을 묵인하거나 회피하거나 또는 상황과의 관계설정을 기권(棄權)으로 얼버무리는 태도를 '지식인'의 배신으로 경멸하고 경계했다. 사회에 대한 배신일 뿐 아니라, 그에 앞서 자기 자신에 대한 배신이라고 여겨왔다."

리영희 기자의 독특한 이력은 한국전쟁 당시 통역장교였다는 것과 해양대학 출신이고,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 관계를 내다보는 시각이 남다르고, 사건 취재 기자가 아니라, 조사 기자로서 책상에 앉아서 중앙정보부에서도 모르는 미국의 정책을 예견하여 미국 CIA 첩보원으로 오해받았던 부분과 자신의 조사 작업을 통하여 글을 써서 우리 민족의 나갈 길을 제시하는 부분 등은 '통찰'의 힘에 대해서 다시 한번 머리에 먹물이 튀긴 자들에게 도전하고 있다.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책을 통해서 광적인 반공주의적 가치관과 병적인 극우적 세계관 밖에 없었던 한국인들을 일깨우고 훨씬 높은 가치와 체계,인간적 사유와 존재양식도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 이 책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는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은 알 것이다.

박정희 시절 71년 선거 때문에 '총통정권'이라고 비난을 받고, '64인 지식인 선언'이 나와서 학생들이 궐기를 했을 때, 10월 15일 위수령을 내리고 주요 10개 대학에 군을 투입해서 점령해 버리는데, 그 때 고려대를 점령하고 들어간 부대 대대장이 바로 '전두환 중령'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원래 했던 짓 그대로 한 것이다.

지식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끊임없이 비춰보고 다듬지 않으면 얼마든지 휩쓸리고, 별 것 아닌 것을 숭배하고 살게 되어서 다른 사람들마저 지옥자식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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