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 게츠 저, 김현희 역, 국제제자훈련원, 2003-08-25, 299쪽, 9600원
대부분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집, 교회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진리이기에 우리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 무감각해진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어 나갔다.

요즘 하나님의 교회를 판단하는 척도(measure), 기준은 어떠한가, 외형적인 건물 크기와 모양, 교인수, 헌금 액수, 다양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들로 교회를 일단 판단하려고 하는 것 같다. 성장주의에 얽매이는 목회자들을 약간의 비판의 눈으로 바라보는 내 자신조차도 솔직히 이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는 내 자아를 발견하곤 한다. 옆에 있는 교회는 성도들이 몇 명이나 모이나? 프로그램을 얼마나 다양한가? 교회 시설은 좋고 편리한가... 이런 모습들이 하나님의 피 값주고 사신 교회의 현 모습인 것은 솔직히 부정하지 못하겠다.

과연 하나님의 의도하신 그대로의 교회,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 하나님은 교회가 무엇이 되기를 원하시는가? 그것을 평가하기 위한 하나님의 기준은 무엇인가? 본서는 이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즉, 교회의 참된 평가에 대해 신약성서, 특히 사도행전과 서신서들이 제시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1세기 당시의 교회 모습을 통해 이 질문들에 대답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운 점은 교회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척도의 근거를 오로지 성경에만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경이 하나님의 호흡하심으로 기록된 무오한 말씀이다는 사실을 믿는 예장합동, 또 좁게는 내 개인에게 정말 반갑고 도전받은 점이었다. 성경에 뿌리를 두고 성경에서 출발하고 성경 내에서만 해석하고 표준으로 삼는다지만 우리는 때론 성경이 교회를 해석하는게 아니라 교회가 성경을 재해석하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척도를 제시할 때마다 신약성서를 인용하고 그 말씀에 기반을 두고 제시하고 있어서 더 동감이 되었다. 무오한 하나님의 기준과 타협하는 문화적 가치, 우리의 가치관, 내 자신의 생각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날아가 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교회의 성숙을 평가하기 위해 사도행전과 바울의 서신서들을 통해 당시 1세기의 교회의 모습에서 이렇게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웠다. 신성한 세 가지 핵심코드 중, 인내하는 소망을 이야기하면서 사도행전에 기록된 바울이 고소당했던 장면들, 사랑을 이야기하면서 서술한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들, 사랑하라고 명령하고 권면한 편지들, 고린도전서 13장 4~6절을 통해 묘사한 '사랑의 스펙트럼'(헨리 드러본드의 말)이야기, 바울의 편지들 중 특히 고린도전서의 바울 글과 설명의 비교, 등등 다양한 성경 이야기들을 통해, 알고 있었던 내용들이었지만 교회의 척도와 연관해 새롭고 더 깊고 풍부한 내용들을 알 수 있었다.

이같은 성경에 기반을 두고 유추된 교회평가기준은 아주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제시되었다. 무려 36가지의 척도는 어느새 내게 약간의 영적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가령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하나님의 은혜, 즉 우리가 획득할 수 없고 또 영원한 것인 그 은혜로부터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로 이해해야 한다는 평가기준이나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는 것으로 영성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평가기준들은(그 밖에 또 많이 있지만) 성경지식에 도움도 되면서 그리 답답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반면, 그리스도인들이 그들 안에 그리스도의 생명이 계발되도록 얼마나 기도하는지를 확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얼마나 서로에게 은혜를 베푸는가, 지역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지를 평가해야 한다는 등의 평가기준은 참으로 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교리적으로 또한 성경지식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예수님처럼, 아니 적어도 비슷하게도 살지 못하는 내 자신을 볼때면 참으로 부끄럽고 답답해져오는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그분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괴로움의 위험성과, 그리스도인으로서 완벽한 삶을 살지 못한다는 심한 죄책감으로 인한 비극적인 결론의 위험성도 이 책은 놓치지 않고 설명해 준다.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여전히 계속되는 자신의 죄로 인해 힘들어하는 우리들에게 그분의 피로 가려 주시는 그 놀라운 은혜를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것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함을 드러내는 부분으로 에클레시아를 이루는 신자들의 공동체 외에 본서는 교회의 영적 리더들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우리는 공동체에 속한 신자들이면서 동신에 작은 모임의 리더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부분은 중요한 것 같다. 또한 목회자에 따라 교회의 모습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자가 없는 양들은 곁길로 가기 마련이고, 마찬가지로 영적 목자가 없을 때 하나님의 양들은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성숙한 영적 지도자들이야말로 성숙한 교회를 만드는 데 핵심요인이 된다. 본서는 디도데전서와 디도서의 말씀을 근거로 지도자의 특성을 제시한다. 여러 번의 설교와 말씀읽기로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이지만, 이 익숙한 말씀이 교회의 척도로 제시되고 또한 앞으로 작은 부분에서 영적 지도자로 서야 할 내 자신의 모습이어야 하기에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영적 지도자들의 성경적 자질을 갖춘 정도가 교회를 평가할 때의 기준이 되면, 사랑을 반영하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교회에서의 성숙의 수준은 그 지도자들의 성숙 이상이 될 수 없음은 꼭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사역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원하시는 교회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좁게는 내가 사역하는 공동체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공동체인가? 나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전인가? 분명한 답을 제사함에 있어 머뭇거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한 것 같다. 본서에 제시되어 있는 평가기준에 따라 다시 세밀하게 평가받고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교회를 업그레이드할 정도로 놀랍고 자세한 안내서로 우리들의 교회가 평가받고 건전한 방향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동시에, 바뀌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선 두려움도 가져다준다. 성령님이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면서 성경에서 제시하는 원리들에 타협하지 않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으로 교회에 적용해야 할 것 같다. 다음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그(그리스도)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즉, 겸손과 기도하는 태도로 이 과제를 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바로 앞 단락에서 진술했듯이 이런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기대도 있지만 두려움도 앞서는게 사실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 넓게는 교회를 이 척도로 평가하고, 그 평가로만 끝낸다면 이 책의 저자, 나아가 하나님의 마음도 아플 것이다. 그렇다면 이 평가기준에 따라 우리 교회가 도달하지 못한 기준은 더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도록 우리는 행동개시를 해야 할 것이다. 어찌보면 교회의 절적인 문제를 바로잡는 갱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도덕적 위기를 터치하는 일이고, 교회가 무력해지는 것을 다루고, 나아가 교회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하고 교회와 세상의 차별성을 드러내어 교회의 영적인 생명과 능력을 잃지 않도록 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일 것이다. 이런 무너진 성벽을 쌓는 일이 어찌 두렵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이시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알면서도 무감각하게 성벽을 다시 쌓지 않는다면 우리 교회는 더욱 더 세상과 구별됨없이 더 세속화 될 것이다. 우리네 역사를 보도라도 병든 교회가 그 세대를 책임진 예는 없었다. 교회 수가 많다고 해서 그 세대를 책임진 예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은혜, 성령의 역사를 교회에 부어주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하나님은 여전히 한국교회에 꿈을 갖고 계신다. 같이 공부하고 있는 전도사님들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온 세계를 복음화 시키기 위한 큰 계획 속에 한국 교회를 두고 계신다는 것이 느껴진다. 우리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꿈을 가지고 우리의 가슴과 우리의 교회에 불을 지피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 척도가 교회뿐 아니라 주님의 종으로서의 척도가 되는 은혜가 내 안에도 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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