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탁석산 저, 웅진닷컴, 2004-02-19, 216쪽, 10000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열심히 외웠던 국민교육의 첫 자락에 대해 저자는 우리는 과연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을까?를 묻는다. 그리고 21세기를 살아가는 시점에서 '민족'이란 과연 무엇이며, '민족주의'는 또한 무엇인가? 라고 질문한다.

민족의 이름으로 무엇이든(통일이든, 정치든...) 행해지는 것은 모든 것이 정당화되고, 받아들여지는 풍토 속에서 이런 질문은 가히 도발적이다. 그리고 민족이라는 단어만 나오면 비장감을 떨칠 수 없을 정도로 교육받고 애국애족이 강조되는 상황에서 이 질문은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다.

그러나 저자는 철학자, 역사가, 일본인, 그리고 사회자를 등장시켜 이들이 토론하는 형식을 빌려 차근차근 '민족'과 '민족주의'의 차이가 무엇이며, 어떤 경로를 통해 이 두 단어가 우리 사회 속에 자리 잡게 되었는가를 정리한다. 그리고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일반인들의 선입견을 제거하기 위해 총 5장에 걸쳐 논의를 진행하면서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나름의 대안까지도 제시한다.

먼저 제1장에서 '민족'이란 "일정한 지역에서 장기간에 걸쳐 공동생활을 함으로써 언어, 풍습, 종교, 정치, 경제 등 각종 문화내용을 공유하고 집단귀속감정에 의해 결합된 인간집단의 최대단위로서 문화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정의되지만 사실상 이것은 실체를 규정하기 어려운 관념(저자는 상상이라고 표현한다)적 공동체임과 동시에 문화공동체라는 측면에서는 실재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다의적 의미이기 때문에 정의가 어렵긴 하지만 "민족을 근간으로 한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여 이를 창건, 유지, 확대하려는 민족의 정신상태나 정책원리 또는 그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양자에 대한 정의를 바탕으로 저자는 한국은 근대국가를 이루는 과정에서 겪은 외세의 침략과 고난을 통해 국가형성의 통합논리로 민족이 강조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지적한다. 즉 민족이란 용어와 민족의 이름으로 싸우는 민족주의는 근대국가를 제대로 이루어 내기 위해 국민을 통합시키기 위한 도구적(임시적) 표현으로 그쳐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이것은 민족이라는 포장으로 모든 것을 덮어버리려고 하는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제2장에서 저자는 한국은 특별히 민족주의가 과잉되어 나타나는 나라라고 본다. 특히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역사 기술은 민족주의적 시각에서 기록된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일례로 고구려의 남성적 기상을 강조하는 것이 그 예로 나타난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에서 온 국민들이 열광한 것 역시 민족주의의 표출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에 대한 과잉은 자칫 식민사관과 같은 또 다른 ism에 대한 극단적 반발로 볼 수 있는 것으로 균형적 시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세계시민주의에 대한 강조가 오히려 요청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2장에 이어 3장은 한국에서 민족주의가 형성된 시기를 크게 다섯(구한말에서 1905년까지, 1905년에서 1910년의 한일합방까지, 1910년부터 해방까지, 해방이후부터 1990년까지, 그리고 1990년 이후)으로 나누고 민족이 근대민족국가형성을 위해 필요한 용어였음을 지적한다.

제4장에 오면 한국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민족주의라는 사다리를 한 칸 한 칸 올릴 때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증오의 대상으로 민족주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타자라고 본다. 그러나 향후 일본과의 바람직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민족주의를 탈색하고 일본을 평범한 외국으로 보아야할 필요성이 있음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5장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민족주의가 국가를 통합하는 견인차로서 그 역할이 있지만 첫장에서 밝힌 바대로 세계시민국가로 한국사회가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본서에서 저자는 민족주의라는 편협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면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체제 속에서 한국이 도외시될 수 있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본서를 읽으면서 민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우리시대의 모든 현상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다시 한 번 우리공동체의 자화상을 보며 새로운 미래의 공동체상을 어떻게 그려내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더한다는 점에서 본서 일독의 의미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방송토론 형식이라는 독특한 형식은 어려운 내용을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감미료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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