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문영 저, 나남, 2001-10-15, 576쪽, 28000원
책의 제목이 좀 무겁다. 처음엔 책의 부제가 '미국행정, 청교도 정신 그리고 마르틴 루터의 95개조'라고 되어 있길래 호기심이 생겨 펼쳐 보았다. 종교개혁의 정신이 청교도 정신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미국의 행정에까지 이어지는 것을 설명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신선했다. 그런데 제목이 인쇄된 속지 첫 장을 넘기니까 한 장 중앙에 다음과 같은 글이 비문처럼 실려 있었다.

"일제시대 일본어 사용이 강요된 때, 유독 배재 학교 채플시간에서는 '조선어'가 사용되었다. 열네살 때 예배시간에 들은 내 나라 말을 나는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때 받은 느낌은 '이제부터 나는 내 나라를 위하여, 기독교의 틀 안에서, 공부를 잘하자'를 다짐케 했다. 일흔네살인 오늘, 이 다짐 앞에 내가 공부한 것을 책으로 엮어서 세상에 내놓는다."

이 글을 읽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감동을 느꼈다. 일제 시대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 남아,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사는 지식인이 가지고 있었던 출발점이 기독교의 틀이며, 나라를 위한 학문이었다는 것이 바삐 움직이던 내 마음을 붙들었다.

이 책은 인간과 종교, 국가의 바람직한 관계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작가는 이 세 가지 모두가 모두 인간의 죽음과 맞바꿈으로 그 참모습을 드러내는 귀중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노예는 죽음을 무릅쓰고서야 자유인이 되며, 종교는 교권의 탄압을 떨치고 일어서야 참 종교의 진리를 얻으며, 국가는 국민의 피 흘린 대가가 있어야 진정한 민주국가로 태어날 수 있다라고 전제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이 책을 쓰고자 하는 이유이며, 그가 살아온 질곡의 세월에 대한 평가이며, 소신이기도 하다.

부제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종교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국가가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에 대해서 조감도를 내려다 보는 듯이 쓰고 있다. 그는 제10장 '위기 극복의 청교도적 대안'에서 민주 행정을 위해서 만든 기도문을 싣고 있다. "하나님이시여, 우리에게 끝날 때까지 값싼 위안이 아니라, 오히려 많은 고통과 고난과 형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우리를 훈계하시옵소서!"

기독교의 배경을 가지고, 법을 공부했으며, 미국에서 경영과 행정을 공부했고, 행정의 틀 속에서 논어와 맹자까지 아우르는 저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라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배경을 딛고 서서 치열하게 고민하며 나아갈 때에야 비로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더 철저히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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