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복음적 그리스도인' 경선 투표 성향

지난 몇 차례 미국 대통령 선거와 총선에서 막강한 정치변수로 부상한 이 나라의 '복음적 그리스도인'(born again or evangelical christian)들이 2008년 대선에서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인지 주목된다.

'가치 투표자'(value voter)로 불릴 정도로, 낙태나 동성결혼 문제 같은 도덕적 가치들에 대한 보수적 성향을 견지하면서 이런 문제들과 관련하여 정치후보가 어떤 정치적 행동을 해왔는지를 중요하게 따져온 '복음적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이 이번 경선 과정에서도 동일한 투표 성향을 유지할 것인지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특히 이번 대선은 모르몬교가 공화당의 유력 후보로 등장하면서, '복음적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이 가치와 종교, 둘 가운데 어떤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지, 곧 도덕적 가치만 공유하면 후보의 종교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일 것인지,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모르몬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낼 것인지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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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요인들과 관련하여 미국의 '복음적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이 결집된 성향을 보일 것인지, 아니면 분산된 양상을 보일 것인지에 따라 공화당 내 경선의 향방이 결정될 것이며, 나아가 민주당 대 공화당, 양당 간 대선 경쟁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1월 1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까지 6개 주 경선을 치른 공화당은, 주마다 다른 후보가 1위에 오르면서 혼전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주별 경선 순위). 그렇지만, 경선 당일 실시된 출구조사 결과들을 분석해 보면, 공화당의 '복음적 그리스도인' 투표자가 순위 경쟁에서 중요한 변수로 나타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복음적 그리스도인' 투표자가 많은 주에서는 모르몬교도인 롬니가 대체로 부진했고, 침례교 목사 출신인 허커비가 선전했음을 알 수 있다.

주별 경선 순위

■ 1월 3일 아이오와 코커스
민주당=오바마(37.6)-에드워즈(29.7)-클린턴(29.5)
공화당=허커비(34.4)-롬니(25.2)-톰슨(13.4)-매케인(13.1)-폴(10.0)-줄리아니(3.5)
■ 1월 5일 와이오밍 코커스
공화당=롬니(66.7)-톰슨(25.0)
■ 1월 8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민주당=클린턴(39.1)-오바마(36.5)-에드워즈(16.9)
공화당=매케인(37.1)-롬니(31.6)-허커비(11.2)-줄리아니(8.5)-폴(7.7)-톰슨(1.2)
■ 1월 15일 미시건 프라이머리
민주당=클린턴(55.3)
공화당=롬니(38.9)-매케인(29.7)-허커비(16.1)-폴(6.3)-톰슨(3.7)-줄리아니(2.8)
■ 1월 19일 네바다 코커스
민주당=클린턴(50.7)-오바마(45.2)-에드워즈(3.8)
공화당=롬니(51.1)-폴(13.7)-매케인(12.7)-허커비(8.2)-톰슨(7.9)-줄리아니(4.3)
■ 1월 1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공화당=매케인(33.2)-허커비(29.9)-톰슨(15.7)-롬니(15.1)-폴-(3.7)-줄리아니(2.1)

무명의 후보에 불과했던 허커비는, 당내 경선의 첫 출발지라는 상징적 의미가 부각된 1월 3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돌풍의 주역이 됐다. 출구조사 결과, 아이오와 코거스에 참여한 공화당 투표자의 60%가 자신을 '거듭난 또는 복음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밝혔고, 이들 가운데 46%가 허커비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공화당의 선두 주자로 꼽혀온 롬니는 이 첫 경선지에서 총 득표율은 25.2%였지만 '복음적 그리스도인' 투표자들의 표 가운데서는 19%밖에 얻지 못했다.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공화당 투표자들은 또 '후보와 신앙이 같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응답한 투표자일수록 허커비를,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투표자일수록 롬니를 지지했다.

공화당 투표자 가운데 '거듭난 또는 복음적 그리스도인'은 23%로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던 1월 8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는 매케인과 허커비가 이 그룹 표를 각각 28%씩 나눠 가졌고, 롬니는 27%를 얻었다.

롬니의 고향인 미시건에서는 예상대로 롬니가 1위를 차지했지만, '후보와 신앙이 같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응답한 투표자들(총 24%) 가운데서는 허커비가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반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한 투표자들에게서는 극히 적은 4% 밖에 얻지 못했다. 눈에 띄는 점은, 낙태를 전면 불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투표자들 가운데서는 허커비가 1위를 차지했다.

'복음적 그리스도인' 유권자 수가 뉴햄프셔나 미시건보다 훨씬 많았던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에서도 허커비는, 전체 득표율에서는 매케인에 뒤져 2위에 그쳤지만, '거듭난 또는 복음적 그리스도인' 투표자들의 표는 매캐인을 누르고 가장 많이 얻었다(43%-27%). 이 그룹으로부터 롬니는 전체 득표율(15.1%)을 밑도는 11%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출구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후보 자질이 신앙('후보가 무엇을 믿는지')이라고 밝힌 사우스캐롤라이나 공화당 프라이머리 투표자는 전체의 26%였고, 이들은 매케인과 허커비를 선호(각각 34%, 31%)했다.

한편 가장 중요한 후보 자질이 가치('나와 가치를 공유하는지')라고 밝힌 투표자는 전체의 43%였고, 이 가운데서는 허커비가 월등히 높은 득표율(48%)을 기록했다. 롬니는 '종교'를 중요시 여기는 투표자들의 표에서는 매케인과 허커비의 협공에,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투표자들에게서는 허커비의 위세에 표를 잠식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곳 경선 결과에서 주목할 것은, 복음적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의 투표 향방을 결정하는 데 지금까지 중요한 요인이 되어 왔던 낙태 문제에서 공화당 투표자들의 표가 매케인과 허커비 사이에서 분명하게 갈렸다는 점이다. 낙태 합법화를 지지(전면, 대부분)하는 투표자들은 공화당 후보로서는 비교적 진보적인 매케인을, 불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투표자들은 후보들 가운데서 가장 뚜렷하게 보수적 가치 지향성을 보이고 있는 허커비를 지지했다.

여기서도 '후보와 신앙이 같다는 점'이 '아주 중요하다'고 응답한 투표자들은 허커비에게 가장 많은 표를 던졌다.


▲ 이번 미국 대선은 모르몬교가 공화당의 유력 후보로 등장하면서, '복음적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이 가치와 종교, 둘 가운데 어떤 것에 더 무게를 두고 있는지, 곧 도덕적 가치만 공유하면 후보의 종교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일 것인지, 더 노골적으로 얘기하자면, 모르몬교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낼 것인지도 확인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www.pewforum.org & www.cnnpolitics.com에서 사진 및 자료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가치 투표' 고수할까? '모르몬교 반감' 드러낼까?

지난 2002년 모르몬교의 본산인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에서 겨울 올림픽이 열렸다. 그리고 그 해 미국의 대표적 보수 교단인 남침례교회는, 미국 사회의 주류에 편입하려는 모르몬교에 대한 경각심을 미국 사회와 교회에 심어주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밝히면서 이 도시에서 총회를 열어 모르몬교와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이 솔트레이트 겨울 올림픽에서 준비위원장(CEO)을 맡았던 인사가 바로 미트 롬니다. 롬니는 이 올림픽을 치르고 난 뒤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미국 정치 일선에 본격 등장했다.

남침례교회로서는 대선에 출마한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정치 경로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을 만도 하다. 그런 까닭일까? 남침례교회는 지난해 2월 롬니가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든다고 공식 선언한 이후 지금까지 교단 인터넷 홈페이지에 정통 기독교 교리와는 이질적인 모르몬교의 성경관이나 그리스도관을 알리는 글을 올려놓고 있다. 또 이 교단 산하 남침례신학교 총장이자 복음주의 신학 논객인 앨버트 몰러 총장은 지난 7월 빌리프네트(blog.Beliegnet.com) 온라인에서 펼친 한 모르몬교도 작가와의 논쟁에서 모르몬교가 기독교가 아닌 까닭을 조목조목 들기도 했다.

롬니의 대선 출마 선언 직후인 지난해 3월 2일 미국 갤럽은 미국 성인의 46%가 모르몬교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인 지난 8월에 실시한 퓨 포럼(Pew Forum)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모르몬교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상이 부정적인 면(27%)이 긍정적인 면(23%)보다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이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들은 모르몬교에서 '일부다처제'나 '컬트'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떠올렸다.

이처럼,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공화당 후보 경선에 공식적으로 뛰어들 무렵부터 그의 모르몬교 신앙을 두고 긍정적 시각에서든 부정적 시각에서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공화당 경선에서 '복음적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이 결집하면, 그것도 '가치'보다 '신앙'을 중심으로 결집하면 공화당 유력 후보인 롬니로서는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아무래도 그가 모르몬교도라는 사실이 '복음적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에게는 불편하게 작용할 것이다. 롬니가 '복음적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이른바 '가치 투표자'들의 표심에 호소하고 있는 까닭은 그래서이다.

지난 9월 '크리스처니티 투데이'는 롬니를 인터뷰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 "남침례신학교 앨버트 몰러 총장이 롬니가 대통령이 되면 모르몬교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할 것이고 복음주의 선교에는 해가 될 것이니 걱정스럽다고 한 바 있다. 어떻게 그를 설득해서 당신에게 투표하도록 만들겠는가?"

롬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단지 나를 보려는 이유 때문에 내가 다니는 교회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든 나는 그 사람을 아주 심각하게 의심할 것이다. 매사추세츠 주지사에 재직한 지난 4년 동안, 우리 교회는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교인이 되려고 찾아와서 넘쳐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 물었다. "당신이 경선에 나서면서 복음주의 기독교와 모르몬교의 차이점들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롬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모르몬교' 교회와 교리들은 복음주의 기독교 교리들과 꽤 다른 점들이 있지만, 우리의 가치들은 많은 부분에서 동일하다. '두 교회 사이에' 서로 다른 정책적인 결과를 가져올 만큼 그렇게 뚜렷한 교리적 차이점이 무엇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있을 때, 많은 가톨릭 교인들이 모르몬교도 주지사에게 대해 의구심을 가졌었다. 시간이 지나자, 우리 주의 한 가톨릭교회 지도자가 이런 말을 했다. '이곳에서 우리의 최고의 친구는 모르몬교도 주지사지 가톨릭 주의회 의원들이 아니다.'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가 분명하면 교리적인 차이는 실제로는 중요한 것이 못된다."

미국 기독교권, 특히 복음주의권을 겨냥한 이 '크리스처니티 투데이' 인터뷰 이후 롬니는, 자신이 모르몬교도라는 사실 때문에 의구심 또는 불편한 마음을 품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미국 유권자들을 달래기 위한  시점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07년 12월 6일, 텍사스 조지 부시 대통령도서관 연설을 이른바 '케네디 모멘트'(JFK moment)로 잡았다.

롬니는 이날 자신이 모르몬교도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언론과 미국 사회,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두며 이렇게 말했다.

"거의 50년 전 또 한 사람의 매사추세츠 출신 후보는 자신은 대선에 나선 가톨릭교인이 아니라 대선에 나선 미국인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대선에 나선 미국인입니다. 만약 내가 여러분의 대통령이 된다면, 나는 어떤 특정 종교, 특정 집단, 특정 대의, 특정 이익을 위하여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오직 합중국 국민의 공통의 대의만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롬니의 이날 연설에 대한 반응은, 공직자 롬니가 모르몬교회의 교권에 휘둘리거나 모르몬교의 특정 교리를 국가 정책에 반영하려는 신정주의자 행세를 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긍정적 평가만 나온 것은 아니다. 롬니가 모르몬교로서 자신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인류의 구주임을 믿는다"는 한 마디로 기성 기독교회의 주류에 모르몬교를 슬쩍 끼워 넣으려고 했다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이나 복음적 교회와 보수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는 유사성만을 강조하고 둘 사이의 신학적, 교리적 차이점이나 이질성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는 비판도 동시에 나왔다.


▲ 미국 대통령선거 출마를 꿈꾸는 공화당 소속 후보들이 2007년 5월 3일 캘리포니아주 시미밸리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 기념도서관에서 첫 토론회를 열었다. 이 공화당 토론회를 기점으로 다음 대통령 자리를 위한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었다. 왼편부터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샘 브라운백 전 상원의원, 짐 길모어 전 버지니아 주지사,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 던컨 헌터 하원의원, 토미 톰슨 전 위스콘신 주지사, 존 맥케린 상원의원, 론 폴 하원의원,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톰 탠크레도 하원의원.
ⓒ AP Photo

모르몬교도라는 점이 롬니에게 핸디캡으로 작용할지, 아니면 미국의 유권자들이, 특히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복음적 그리스도인' 유권자들이 본선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롬니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하여 민주당과의 대선 경쟁에서 보수적 '가치'의 승리를 거두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줄지, 더불어, 미국 사회 일반이 모르몬교에 대해 어떤 변화된 태도를 보여줄지, 올 여름까지 계속될 미국 공화당 경선이 우리의 이목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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