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밀고 당기는 지루하고 피 말리는 협상을 마무리하고 타결됐다. 아마도 우리나라고 미국이고, 내로라 하는 협상의 귀재들을 테이블에 앉혔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대표들에 대한 '나머지'의 불만들이 만만치 않다.

교회들 사이에서도, 이 자유무역협정 테이블에 빗대봄직한 협상들이 있다. 최근에 이뤄진 그 가장 대표적인 협정이 <칭의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이다. 협상(신학적 대화) 테이블에 앉은 대표가 아닌 '나머지'의 입장에서 이 <공동선언>에 대한 '불만'을 한번 제기해 보겠다.

'인간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 곧 '칭의'는 기독교 신앙과 교리의 핵심이다.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은 '인간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신앙고백 운동이기도 했다. '믿음에 의한 칭의'를 주창한 마르틴 루터를 파문한 로마가톨릭교회는 1545년부터 1563년까지 트리엔트공의회를 열어 '하나님의 은총과 인간의 협력을 통한 칭의, 곧 '믿음과 선행을 통한 구원' 교리를 확정했다.

그런데 칭의교리는 신-구 교회만 갈라놓은 것이 아니다. 프로테스탄트 진영 내부의 이견도 그리 간단치 않다. 이미 종교개혁 시대에 루터파와 깔뱅파는 서로에게서 미묘한 차이를 느꼈고, 18세기에 가지를 치고 나온 웨슬리 파의 '칭의'관은 오히려 가톨릭에 더 가까워 보였다.

이렇게 칭의교리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만큼, 교회를 갈라 세운 쟁점이 되기도 했다. 이 칭의교리에 관하여 감리교회와 루터교회와 가톨릭교회가 일치를 이루었다는 뉴스가 지난해 7월말 서울발로 전 세계에 전해졌다.

세계감리교대회가 지난해 7월 23일 서울에서 열렸고, 개신교 행사에는 대체로 인색한 한국 언론들이 평소와는 달리 다들 이 대회를 큰 기사로 다루었다. 그리고 그 머리기사는 별반 차이 없이 '감리교회와 루터교회와 가톨릭교회가 교회일치를 선언했다’는 식이었다.

사실이 그렇다면, 16세기 종교개혁 이래 기독교 역사 최대의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을, 지난해 7월 서울에서 열린 <칭의교리에 관한 공동선언> 서명식의 자초지종과 의미하는 바를 짚어보자.

지난해 서울에서 루터교세계연맹과 교황청교회일치평의회와 세계감리교협의회, 세 기구의 대표들이 서명한 <칭의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루터교세계연맹과 교황청교회일치평의회 대표들이 처음으로 이 <공동선언>에 서명했다. '종교개혁 이래 최대 사건'이라는 말은 이미 그때 세계 언론에 오르내렸다.

1999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린 '칭의교리에 관한 공동선언' 조인식. 루터교세계연맹의 당시 의장 크리스티안 크라우제 주교(왼쪽)와 바티칸 교회일치평의회의 당시 위원장 에드워즈 캐시디 추기경이 서명하고 있다.사진/ 루터교세계연맹(LWF)
1999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린 '칭의교리에 관한 공동선언' 조인식. 루터교세계연맹의 당시 의장 크리스티안 크라우제 주교(왼쪽)와 바티칸 교회일치평의회의 당시 위원장 에드워즈 캐시디 추기경이 서명하고 있다.사진/ 루터교세계연맹(LWF)

그로부터 7년이 지나 서울에서 또 한 번 치른 서명식은 1999년 <공동선언>에 세계감리교협의회라는 이름을 하나 더 올리는 행사였다. 한 마디로, 2006년 서울에서 열린 <칭의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의 의미와 경중은 1999년 아우크스부르크 <공동선언>의 연장선에 놓고서 따져야 한다.

7년 전 세계 언론들은 아우크스부르크 서명식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큰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면서도, 정작 <공동선언> 자체에 대해서는, 심층 분석은 고사하고 그 내용(요약)이나마 소개하는 최소한의 성의나 균형감도 보여주지 않았다. <공동선언>은 모두 44항(영문으로 A4용지 7장)에 이르는 적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결국 일반인들은 언론의 대서특필과, 어쩌면 침소봉대에 휘말려 그 일이 '진짜 대단한 역사적 사건인가 보다'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공정하게 말하면, 아우크스부르크나 서울의 <공동선언>이 갖는 역사적 의미가 전적으로 허위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나름대로 그 자체로도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뜻 깊은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긴장을 풀지 않고서 해야 할 일이 또한 역사적 평가 작업이다.

국제기구가 교회를 대표?

잘라 말하면, 7년 간격을 두고 이뤄진 아우크스부르크 서명식과 서울 서명식에 대한 과장된 평가에는 '일반화의 오류'가 들어있다.

<공동선언> 서명 주체는 루터교세계연맹과 교황청교회일치평의회였고, 나중에 세계감리교협의회가 추가됐다. 이를 두고, 루터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 그리고 감리교회라고 일반화하는 데는 여러 가지로 무리가 있다.

루터교세계연맹(LWF)은 전 세계 140개 루터교단을 회원으로 보유한 가장 큰 루터교회 국제기구다. 그렇지만 이 기구에 세계의 모든 루터교회들이 다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규모에서는 작지만, 국제루터교협의회(ILC, 회원교단 29개)와 복음주의루터교고백교회협의회(CELC, 회원교단 20개) 같은 독자적인 성격을 가진 다른 루터교회 국제기구들도 있다. 1999년 <공동선언>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끌고 있을 무렵 미국의 보수 루터교단 루터교미주리시노드는(이 교단은 루터교세계연맹 가맹 교회가 아니다) 미국 주요 일간지들에 이런 문구가 들어간 전면 광고를 냈다. "전 세계 루터교단의 45%는 <공동선언>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루터교세계연맹을 루터교회로 일반화하는 데는 무리가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 하겠다.

그렇다면, 로마가톨릭 쪽 사정은 어떤가? 그쪽 서명 주체가 교황청 기구이니 당연히 로마가톨릭교회 내부의 합의된 입장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그러나 정황을 보면, 여기도 그리 간단치 않다.


1999년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열린 <칭의교리에 관한 공동선언> 조인식에 참석한 루터교세계연맹과 바티칸 교회일치평의회 대표들이 함께 예배하고 있다.
사진/ 루터교세계연맹(LWF)

<공동선언>이 로마가톨릭 내부에서 차지하는 실제 위상을 짐작케 하는 사건 하나가, 아우크스부르크 서명식이 있고 채 1년이 지나지 않아 터졌다. 2000년 6월이었다. 지금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인 당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 프로테스탄트에 대해서 '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 되고 '교회공동체'로 불러야 한다는 내부 지침을 내렸다.

비-가톨릭교회들과의 일치운동 주무 기구인 교회일치평의회에 대한 일종의 교리적 감독권이 있는 신앙교리성이 하달한, 프로테스탄트교회를 격하한 이 문서는, 당시 한 참 무르익고 있던 프로테스탄트-가톨릭 화해 무드에 찬물을 끼얹었고, 루터교세계연맹의 로마가톨릭 쪽 대화 파트너였던 교황청교회일치평의회의 대표성은 물론이고 이 기구가 동의한 <공동선언>이 가톨릭 내부에서 얼마나 교리적 위상을 획득했는지, 의문을 가지게끔 했다.

감리교회 쪽에서도 지난해 서명식을 두고 다른 목소리들이 나왔다. 세계감리교협의회가 서울 대회에서 <공동선언>에 동참하기로 막 결정할 무렵, 브라질 감리교회는 가톨릭과 감리교 사이의 어떤 합의에도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것은 짧고 다른 것은 길게

<공동선언>에서 몸통에 해당하는 부분은 '제3부 칭의교리에 관한 공통 이해'(14~17항)다. 그런데 <공동선언> 전체 44항 가운데서 루터교세계연맹과 교황청교회일치평의회, 두 기구가 '공통 이해'에 도달한 실질적 내용은 제15항부터 제17항까지 겨우 3개 항으로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이어지는 제18항부터 제39항까지, 22개 항에는 '공통 이해'에 담지 못한, 곧, 의견일치를 보지 못한, 각자의 고유한 입장들에 대한 '보충 설명'이 장황하게 서술되고 있다.

짧게 선언한 '공통 이해'와 길게 부연한 '각자 입장'이라는 이 불균형을, 두 기구는 이렇게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칭의교리와 관련하여 의견일치에 도달한 기본적 진리들에 비추어 볼 때 여전히 남아있는 언어나 신학적 세부설명, 강조점의 차이점들은 수용할 만한 정도이며, 이러한 차이가 기본적 진리들에 관한 의견일치를 훼손하지는 않는다." 궁색하다.

칭의교리와 관련하여, 두 교회가 '의견일치'에 도달한 것은 총 3개 항에 걸쳐 압축적으로 기술한 '기본적 진리들'에 불과하고, 두 교회 사이에는 여전히 상당한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공동선언> 자체가 이미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루터교미주리시노드가 보수적 루터교의 신앙과 교리의 입장에서 <공동선언>의 문제점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기하면서 이미 지적한 바다. 이 교단은 <공동선언>이 발표되자마자 산하 신학교들에 의뢰해 <고백주의 루터교회의 관점에서 본 칭의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루터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 사이의 칭의에 관한 이해는 그 언어와 세부사항과 강조점에서 차이가 존재한다고 공동선언 자체가 인정하면서도, 어떻게 일치에 도달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라고 반박하며 조목조목 문제를 제기했다.


2006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감리교협의회-루터교세계연맹-바티칸교회일치평의회의 <칭의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대표들이 서명하고 있다.
사진/ 기독교대한감리회

두 기구가 1999년에 공식 서명한 <공동선언>은 결국 '의견일치에 도달한 기본적 진리들에 대한 간단하고 압축적인 선언'과 '포기할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입장에 대한 긴 추가 설명'이 모두 들어 있는, 복잡한(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립적인 수식어다.) 문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절차와 형식은 세계감리교협의회가 <공동선언>에 추가 서명하는 과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협의회는 별도로 내놓은 <감리교 성명>에서 "<공동선언>의 '칭의 교리에 관한 공통 이해'(15-17항) 부분은 감리교 교리에 부합한다"며 앞서 두 기구가 도달한 '공통 이해' 원안에 대한 동의를 '간단하게' 표한 다음, 이어지는 7개 항에서 칭의에 관한 감리교 고유의 "가르침"을 '길게' 달아놓았다.

교리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분들을 두고(한미 FTA 협상에서는 쌀이나 쇠고기가 그랬나보다), 서로 입장이 다른 교회들이 일치를 이루겠다고 나섰으니 애초부터 완전한 일치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아마 협상 테이블에 앉은 대표들도 처음부터 그렇게 큰 기대는 안 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갈라놓고 있는 교리 투쟁을 종식시키고 일치를 이루고 싶어 하는 이들의 열망도 존중한다.

그렇지만, 그래도, 1999년 10월 31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에서 루터교세계연맹과 교황청교회일치평의회가 서명하고, 2006년 7월 23일 대한민국 서울에서 세계감리교협의회가 추가 서명한 <칭의교리에 관한 공동선언>을, 루터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와 감리교회, '세 교회'가 명실상부하게 의견일치에 도달한 문서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세계감리교협의회가 <공동선언>에 동참하자, 항간에는 '다음은 세계개혁교회연맹(WARC)'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꼼꼼히 따져보고 깊이 생각해봐야 할 여지가 많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교갱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