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교단을 사랑하고 더 나아가 한국교회의 내일을 염려하는 마음에서 교회갱신을 갈구하고 있는 우리들이 제81회 총회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우리의 심정을 호소합니다.

 

1. 총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진지한 연구가 있기를 바랍니다.

37년 전 본 총회가 문을 열었을 때에는 한국교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하며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가 분명하였습니다. 그것은 신학적으로 양극단화되는 다시 말해서 극보수로 치닫는 위험과 좌경화되는 위험을 견제하는 균형타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 총회는 나름대로의 소임을 다해 왔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가 이렇게 자문자답하지 않으면 안될 심령의 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왜 총회를 모이는가? 총회가 모이는 목적은 선거가 아닙니다. 정치가 아닙니다. 입씨름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고 있기에는 한국교회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긴박합니다.

총회가 모였으면 빛을 잃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앞에 놓고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가릴 줄 아는 안목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잘못되었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주저하지 않고 고치는 겸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포기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과감하게 던지는 용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일을 내다볼 수 있는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현실적인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과 대안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총회는 그 구조와 체질상 이 모든 요구를 만족시킬 만한 능력이 많이 상실된 상태입니다. 규모가 너무 커서 군중심리를 이용하는데는 좋을지 몰라도 진지한 대화와 토론을 거쳐 건설적인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총회가 되기에는 너무 비대하고 너무 낭비적이고 무책임합니다. 장로교의 기본 원리는 양심의 자유와 교회의 자유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총대마다 양심의 자유를 떳떳하게 행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 있지 못합니다. 총회의 기능이 이미 한계점에 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구조상 농경시대에 만들어진 총회의 조직을 가지고 정보사회로 치닫고 있는 오늘의 세대를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세상에서 초가집에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금은 초가집 시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총회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요?

 

2. 실추된 교회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마음을 찢는 반성과 회개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를 비웃고 있습니다. 미국 대사관과 카나다 대사관에 가 보십시요. 목사에게 비자를 발급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이미지가 천주교에 비해 얼마나 초라하고 민망스러운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기가 막히는 일은 다른 교파나 교단의 사람들이 우리 교단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들으면 모욕감을 참을 수 없는 말들이지만 우리 모두의 자성을 위해 들은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무식하니까 보수한다고 합니다. 싸우는 데는 남다른 은사가 있다고 합니다. 돈과 권력에 너무 약하다고 합니다. 인물이 없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의 비판이 다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도 지탄 받아야 할 허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한국교회의 지도자적인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나 가릴 것 없이 이번 총회에 임하는 모든 총대들은 에스라의 양심을 가지자고 감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호소하는 본 협의회 목사들이 더 양심적이라든지 더 거룩하다는 뜻에서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총회를 향하여 바라고 계시는 뜻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으로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 9장 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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