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목회자들로서 교회 갱신의 기치 아래 오늘 여기 모였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의 목회자로 부름을 받은 특별한 은혜를 주신 주께 감사드린다. 또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틀림없이 믿으며 복음적이고 순교적인 신앙 선배들이 가꾼 교단에 속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기독교 신앙이 온전히 보존되며 전파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우리 교단이 안고 있는 역기능적 요소들의 시정을 통하여 체질이 강화되어야 하고 나아가 새로운 문명이 열리는 시대에 능히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새롭게 무장하는 교단이 되어야 한다는 성찰을 공유하였기에 갱신의 기치를 내걸고 모인 것이다.

정보 시대의 도래와 새로운 관점의 확립에 대한 필요성

우리는 지금 고도의 정보와 급속한 변화로 특징지워지고 있는 시대의 전환점에 서 있다. 교회 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일찍이 중세가 저물어가고 근세가 도래하는 시축(時軸)의 회전음(回轉音)을 감지하고 "시대의 새벽"에 서 있다고 갈파했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루터의 그 근세적 시대가 지나고 "새 시대의 새벽"에 있음을 절감하고 있다. 문명의 새로운 주기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이제 수년 후에 우리가 당면해야 하는 21세기는 각종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얼른 갈피를 잡기 힘들만큼 현란한 변화가 계속되는 미증유의 시대일 것이다. 어지럽게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회오리는 거기에 속속 적응할 수 없는 이들에게 벌써 크나큰 충격(Shock)으로 다가오고 있다.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다! 고린도교회에게 변화와 적응의 지혜를 당부한 바울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면서 주께서 엄명하신 세계 복음화의 절대사명을 충성스럽고 시의적절하게 이룩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 시대적 틀(paradigm)을 깨고 새 시대를 이끌어가기에 알맞은 관점을 시급히 수립해야 하겠다는 공감대 위에 서서 우리의 대오를 재정비하고 분연히 일어설 때를 맞이하였다.

새로운 문명의 주무대로서의 아시아 - 태평양 지역과 한민족 및 한국교회의 사명

어찌 그 뿐인가. 앞서 시대적 소명을 흔히들 제3의 물결이라고 말하고 있는 정보화시대적 관점에 비추어 재음미해 보았다면 그 새로운 시대의 역사가 진행되는 중심지역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 또한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다. 산업사회를 뒤잇는 새로운 문명의 주무대(主舞臺)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 못하리라. 드디어 지구촌 시대의 한 자리를 뚜렷이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아태시대의 복음적 주역들 가운데 하나로서 부름받고 있다. 이는 초대교회 이후 지중해 시대에 그리스와 라틴이 구속사의 주요 사역을 담당했던 것이나 중세가 지나가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단행되면서 시작된 대서양시대 이후 겔만과 앵글로 색슨이 세계 선교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것과 비슷한 일이다. 이러한 문명의 전개와 짝을 이루어 가는 선교사적(宣敎史的) 조감 하에 우리가 미래의 주역으로 부름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단지 신국수주의적 편견 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살펴보면서 우리 민족과 교회에게 주어진 사명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너무 잘 알기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주여, 저희가 여기 있나이다. 저희를 보내소서!" 하면서 일어서려는 것이다.

한민족의 향도 역할을 해온 한국교회가 현재 당면한 위기

한국교회는 그 발아기부터 한민족과 고락을 같이 해왔다. 구한말 금세기초 가장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백성의 위무(慰撫)와 교화(敎化)의 사명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 모진 질곡과 수난의 역정을 함께 감내하였던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자들의 준동으로 인한 민족동란 후의 복구나 경제개발 및 민주화의 물결의 주도에도 큰 몫을 담당해 왔다. 그리하여 교회적 내포는 민족적 외연으로 상당한 정도까지 표출되었다고 하겠다. 교회가 구형기부터 줄곧 이 민족의 든든한 길잡이 구실을 담당해왔다는 어엿한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교회의 민족적 사명을 역사적 체험으로 깨닫게 하는 산 증좌이다. 그러나 민족적 생존을 위한 몸부림기의 일조가 세계적 공헌을 위한 용트림기에도 자연적으로 가능할 수는 없지 않은가. 통일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여 대내적인 각종 해결과제에 덧붙여 대외적인 역할 및 세계사적 사명을 걸머진 한민족의 제사장으로서의 한국교회는 다소의 과거 실적에 만족할 겨를 없이 벅찬 미래를 위한 준비와 약진의 중대한 시점에 놓여있다. 과거와 같이 단편적이고 수평적인 사고와 행동 방식으로는 자칫 용도폐기 당할지 모르는 위기감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이 오늘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다. 급속한 성장을 세계가 부러워하던 한국교회는 어느덧 감소추세에 접어들었다.

한국교회의 기수가 되어야 할 우리 교단의 어둡고 안타까운 현실들

그런데 그 규모나 전통으로 볼 때 한국교회의 기수가 되어야 할 우리 교단의 현실을 보자. 교단의 실상을 보고 뜻있는 이들은 탄식하며 안타까움을 호소하고 있다. 성경의 무오(無誤)를 굳게 믿겠다는 결의 외에는 신학적, 목회적, 선교적, 교정적(敎政的), 행정적 및 사회적 제기준 수립의 확실성과 그 적응의 적합성을 십분 구현하고 있지 못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신앙고백조차 구시대적 문헌의 반복차원을 아직도 극복하기 힘들어 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적이며 역사적인 기독교 신행(信行)이 갖는 그 신출(神出)의 경이와 역동적 역사는 한갖 옛이야기가 돼버렸단 말인가. 그리하여 직무에 성실하고 제법 의식 있는 이들은 노회나 총회 일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교권에 물들고 사욕에 밝은 인사들이 그것들을 전횡하는 일이 아직도 자행되고 있지 않은지... 말을 내놓기조차 부끄러운 금권선거가 버젓이 성행하고 있는 우리 총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고도 눈을 감고 살아야 하는지... 이래 가지고 어떻게 전환기의 향도적 기수와 새역사 무대의 선교적 주역이 될 수 있을 것이며 민족 구원의 소명에 알차게 부응할 수 있다고 자부하겠는가. 우리 교단은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마구잡이식으로 교역자를 늘이는 바람에 질이 형편없이 떨어졌고, 젊은이들은 줄줄이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미래에 대한 착실한 준비가 없는 가운데 교권적 소모전으로 소일하다시피 하고 있으니 개탄스러운 일이 아닌가. 우리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기대를 채워주고 있으며, 우리 교단이 한국교회의 여망에 부응하고 있단 말인가.

갱신의 목표는 전일적 복음 전도를 기하여 하나님 나라를 넓히는 것

하지만 우리는 실망스러운 교단의 현실을 보고서 결단코 낙담하지 않는다. 당장 이것저것 들추어내어 난도질하자면 한이 없고, 또 그것은 우리의 애초 목표도 아니다. 성급하게 어느 개인이나 일부 인사들을 상대로 저들의 그간 행동에 대하여 일일이 시시비비를 논단하는 것은 더더욱 우리의 본연의 의도와 어긋난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단이 비록 이 엄청난 변화의 역사에 적절히 대응할 소지를 당장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애정과 희망을 갖고 마주 대하여 성실한 개선과 단단한 무장을 위해 줄기차게 도전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자 한다. 타다 남은 화로에서 불씨를 찾았을 때 기쁨을 맛보듯 우리는 우리 교단의 선배들이 남겨준 청교도적 개혁주의 신앙과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는 교회 개척의 열의 및 최근 세계 선교에의 적극적 참여를 목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참으로 뿌듯한 긍지를 갖는다. 다른 한편 그러한 기왕의 성과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은총(grace)과 정의(justice)가 동시적으로 이행되는 전일적(全一的) 전도(wholistic evangelism)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교단이 한시 바삐 갱신하여 힘차게 다시 일어나야 한다고 비원의 심정으로 강조하는 바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동안 은총 쪽에 힘써 왔으나 정의 방면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개혁주의는 양쪽을 다같이 중요시 한다는 점에서 경건주의적 차원을 훨씬 능가하는 것이다. 우리는 열심히 개척교회를 하고 이미 있는 교회를 성장시킬 뿐만 아니라 학교, 병원, 사회사업 기관 설립 및 지역사회 발전과 사회 모든 분야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놓이도록 분투해야 하겠다.

갱신의 방향은 내부로부터, 곧 깨달은 우리 목회자 자신으로부터

우리는 이러한 작업이야말로 성경과 기독교 역사가 일관성 있게 일러주듯 내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각자의 준엄한 자기 성찰과 분명한 변화 및 사역의 과실(果實)을 기약하거나 이미 현실화한 내적 성숙이 다른 무엇보다 단연코 먼저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하면서, 그와 동시에 대승적(large vehicular) 차원의 대외사역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함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것이 우리의 신학적 고찰이다. 그것은 일의 시간적 선후가 아니고 논리적 선후임을 명기하련다. 일체의 사리에 맞지 않고 의롭지 않은 경향과 사단(事端)을 고치고 바로잡아 신의(神義)의 본래를 가능한 한 최대한도로 확보하여 이를 만천하에 선양하며, 또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할 수 있도록 공동체적 훈련과 개혁의지의 실천을 결행하자는 것이 우리의 분명한 의도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미 잘못된 것들에 대한 또다른 잘못일 수 없고 기득권에 대한 도전권의 조성이 결코 아니라, 다함께 돌이키고 고치어 애초의 거룩한 부르심에 옹근하게 순복하자는 결심이요 노력의 일단이다. 그러하니 목회적 실재(realisty)여, 일어나 여기 모여라! 모름지기 각처에서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고 있는 시대의 남은자(the remnant)가 되어 이렇게 다짐하고 다함께 역사적 결의를 숭고하게 단행하자!

우리의 지향과 목표

1. 21세기 전문화 시대에 필요한 역사의식을 갖춘 다양한 전문인 크리스챤 지도자 양성
2. 지도층이 선지자적 통찰력과 각성으로 교회의 방향을 뚜렷이 제시하는 교단
3. 21세기의 새시대를 대비하여 세계복음화를 다각적으로 실히 준비하는 교단
4. 올바른 교회정치 구현과 개혁에 대한 순수한 노력에 근거해 운영되는 교단
5. 성경적 기독교 세계관과 영성으로 무장되어 있는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
6. 복음적 개혁주의 신앙으로 목회하는 교회다운 교회의 생명력을 가진 교회
7. 교회의 일치를 도모하여 그 결집된 힘이 민족과 세계 앞에 드러나는 영향력 있는 교회
8. 말세의 현상인 교리적 혼란과 이단에 대한 명확한 분별력과 지도력을 겸비
9. 통일문제, 농촌문제, 청소년문제, 노인문제, 환경문제 등 제반 사회 문제에 대한 성경적 해답 제시와 실제적 모델들 마련
10. 성경적이고 역사적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생명 문화 육성

이상과 같은 목적을 구현하고 그 목표를 원활히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주장을 선명히 내세워 정당한 방향을 제시하고, 왜곡된 교회현상과 그릇된 처사에 대하여는 비판과 토론을 통하여 올바른 길을 찾으며, 미래를 착실히 준비하여 실기(失機) 하지 않고 역사적 사명을 다함으로 온 교회가 기쁨으로 하나되어 그 본연의 성무(聖務)를 신실히 감당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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