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랜만에 기특한 생각을 실천에 옮기게 됐다. 집안의 방들을 청소하고 주방 구석구석까지 치웠다. 남은 것은 쓰레기였다. 아무리 찾아도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는다. 온 방을 뒤져도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 외출하고 돌아온 집사람에게 화를 내었다. 왜 쓰레기통이 없느냐고 했더니 베란다 구석에서 숨겨둔 쓰레기통을 보여주며 "요즘 누가 쓰레기통을 크게 드러내느냐"고 오히려 나의 세련되지 못함을 지적했다.

쓰레기통을 감추는 가정, 쓰레기 소각장을 거부하는 지방 단체들, 오염폐수의 수치를 감추는 당국과 사회 속에서 당연한 듯이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목사인 내가 이러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분명히 추악한 죄가 있으며 그 죄악에 대한 응분의 심판과 지옥의 저주가 있음에도 숨기고 있다. 아니, 아예 외면하고 싶어한다. 여전히 거룩한 가운을 걸치고 엄숙하게 두 손을 높이 들고 축복을 강조하고, 전적으로 할 수 없음에도 능치못할 일이 없다고 만용의 마이크를 흔들고 마음을 찢고 가시 골짜기를 지나야 함에도 편안하며 형통하다고 짐짓 위로하고 있는 목회자, 값싼 은혜와 맛을 잃은 복음을 바겐세일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병은 자랑하고 쓰레기는 쑤시고 들추어내서 태워야 제대로 처리된다는데 나는 어찌해야 할꼬. 교인들을 향해서는 회개와 정직을 추상같이 외치지만 자신은 열외가 되어 영적인 실명제를 어기고 있지 않은가. 차라리 쓰레기 소각장 인부와 하수도 청소부가 솔직하고 순수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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