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6/24) 한목협 제23회 전국수련회 주제발제(3)

● 말씀이 삶이 되는 거룩한 운동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 삶의 한가운데 사시게 되었다는 요한복음 1장 14절에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담겨 있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습니다. 성육신 사건입니다. 역사의 결정적인 시간에 하나님께서 ‘성육신하신 말씀’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창세부터 이어져 온 하나님의 말씀이 신약 시대에 완성되었는데 이것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공예배의 설교와 성례전을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으로 지금 여기, 역사와 사회 한가운데서 현재 진행형으로 살아 움직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전통에서 선포되는 말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들리는 말씀’인 설교와 ‘보이는 말씀’인 성례전, 곧 세례와 성찬입니다. 

성육신하신 말씀, 기록된 말씀, 선포되는 말씀의 세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세 가지 형태의 말씀에서 실제적으로 우리가 접하는 것이 66권 성경입니다. 성령님께서 성경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 은혜에 근거한 ‘말씀묵상’으로써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 가운데서 살며 신앙인의 인격과 일상이 성숙해 갑니다. 이로써 그리스도인이 사는 사회와 역사의 변혁이 이루어집니다. 말씀이 삶이 되는 이 거룩한 운동, 곧 ‘말씀삶운동’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입니다. 이 운동의 구체적인 방법이 ‘말씀묵상’ 사역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아름답게 작동하는 신앙 공동체의 본보기를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에 그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이 구절에서 ‘말씀이 왕성하다’는 표현은 말씀이 삶의 현장에서 살아 움직인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왕성하다’는 번역의 헬라어는 ‘아욱사노’(auxano)란 동사인데 씨앗에 담긴 생명이 움트고 자라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말씀하시면서 씨앗이 자라는 것을 이 단어로 표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우리 삶의 현장에서 작동하게 하는 훈련이 말씀묵상입니다. 이제 말씀묵상의 기본적 관점, 근본적 명령, 작동의 과정을 봅시다.

 

1. 관점

“말씀으로 돌아가자!”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교회가 약해지고 병들고 타락하면서 미래가 암담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외쳤던 말입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또는 “근원으로 돌아가자.”(라틴어 표현, ad fontes)는 표현도 내용으로는 같은 뜻입니다. 시간의 흐름 안에서 기독교 신앙은 과거의 근원을 회상하고 미래의 완성을 희망하면서 현재의 시공간에서 복음의 본질을 살아 냅니다. 기독교 신앙의 근원과 완성과 본질이 66권 성경에 있습니다. 교회와 세계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식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성경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에 따라서 서고 넘어집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유일하고 완결된 계시입니다. 계시(啓示)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시는 것 또는 당신 자신을 보여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원의 사건, 곧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과 성령의 강림이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계시의 중심입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이를 증언하는 것이 성경입니다. 특별계시를 근거로 하여 일반계시가 또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사람다움의 덕목들, 곧 사랑, 평화, 나눔, 섬김, 공감, 연대, 희망 등이 일반계시의 내용입니다. 일반계시는 자연계시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런 가치들은 언제나 성경의 특별계시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특별계시와 일반계시의 덕목으로써 교회와 세상 전체를 섭리하며 이끄십니다. 

교회는 거룩한 성서의 말씀을 땅끝까지 전하여 이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말세의 비밀 병기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서 배태(胚胎)되었고 성령의 강림으로써 역사 속에서 사회적 집단으로 탄생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연관하여 교회를 표현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그리스도의 몸, 성령의 피조물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 진행형으로 드러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와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작동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임재와 현존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아직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그 나라의 완성을 바라보며 걸어가는 순례자 공동체입니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뗄 수 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2. 명령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오르시면서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이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 28장 18~20절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도 예수님 이야기의 맥락에서 표현은 다르지만 같은 내용입니다. 마태복음의 내용은 명령과 보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보장이 명령의 앞뒤를 감싸고 있습니다. 먼저, 19절과 20절 전반부가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명령에 두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라는 존재의 변화’와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라는 실존의 성숙’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방법이 말씀과 그에 대한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게 하는 방법이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말씀에 걸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과 사역의 생명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되 삶으로 지키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일상과 인격의 변화라는 목적을 시야에서 놓치지 말고 지킬 때까지 가르쳐야 합니다. 심장과 같은 이 사역을 위해서 주님께서 명령의 앞뒤에 가장 강력한 보장을 주셨습니다.

18절,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20절 후반부,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제아무리 교회의 규모가 크고 사역이 많아도 말씀의 사역이 약해지면 교회다움을 잃어버립니다. 교회가 커지고 사역이 다양해지면 교계와 사회적인 관계 영역에서 영향력도 커집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말씀 사역이 옆으로 밀려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악한 영이 교회를 무너뜨리는 교묘한 공격입니다. 세속주의적인 힘을 가지게 하면서 성경적인 능력을 무력화하는 아주 오래된 유혹이며 지금도 여전히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사도행전 1장부터 6장 7절까지에 기록된 예루살렘 교회 이야기에서 이 점이 명백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유혹과 공격을 물리쳤습니다. 사도행전 6장 4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은 이런 공격을 받으면서 영적인 분별력으로 다시금 말씀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3. 과정

말씀묵상 곧 성경을 묵상하고 깨달아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은 인격적인 과정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의 말씀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과 인격을 닮는 것이며, 베드로후서 1장 4절 말씀대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인격의 성숙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의 활동으로 진행됩니다.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는 지성을 통한 이해와 인식의 변화입니다. 성경은 암호나 신비로운 코드가 아닙니다.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각과 사유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서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믿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거나 읽으며 이해합니다. 한 문장이나 문단 또는 더 큰 단위의 내용에서 중심 내용이 무엇인지, 반복해서 쓰인 단어가 무엇인지, 앞뒤의 문맥이 어떤지, 기록된 문장의 행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등을 살핍니다. 이해의 과정에는 단계와 깊이가 있습니다. 문장의 뜻을 읽는 단순한 차원에서 시작하여 문맥과 속뜻을 깊이 파악하는 단계로 들어가면서 이해가 깊어지고 말씀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생깁니다. 이런 과정에서 ‘지성의 깨달음’이 깊어집니다.

다음은 감성의 작용입니다. 지성을 통한 이해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감성이 반응하며 작동합니다. 성전의 장사치들을 쫓아내시는 본문을 깊이 이해하면서 예수님의 분노를 느낍니다. 갈릴리 호수를 설명하는 구절들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그 풍광이 그려집니다. 차라리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기도하면서 모세가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매달렸는지 공감합니다.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묶어 놓고 칼을 들어 잡으려는 장면에서 가슴이 저려 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렇게 종종 말씀의 내용이 몸의 감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일반 독서법의 행간 읽기를 말씀묵상에서는 거룩한 상상력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상상력은 감성의 차원에 많이 연관됩니다. 거룩한 상상력을 훈련하고 활용하면서 말씀이 우리 감성으로 깊어집니다. 말씀대로 살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집니다. 이렇게 마음이 강하게 움직이면서 ‘감성의 깨달음’이 점점 더 풍요로워집니다. 

마지막은 의지의 활동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당신의 형상에서 자유의지가 핵심입니다. 이 자유의지는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는 것까지 포함한 그야말로 자유로운 의지입니다. 이 점에서 사람은 기계나 자연과 확연히 다릅니다. 기계는 그 구조대로 작동하고 자연은 그 본성대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 판단하고 선택하며 삽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인격적인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인격성의 핵심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정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예물은 인격적인 판단과 헌신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성으로 이해하고 감성으로 체험하면서 우리의 의지에도 강한 깨달음이 옵니다. ‘의지의 깨달음’이 깊어지면서 우리는 자유로운 의지의 인격적인 결정으로써 말씀에 헌신합니다. 

드디어 말씀이 삶이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성육신 사건이 우리 삶에서 작동됩니다.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에서 가르쳐 주신 문구대로 아버지의 나라가 삶에 임하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고 아버지의 뜻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집니다.

 

● 동네세메줄성경 활용 방법

‘동네세메줄성경’이란 이름에서 ‘동네세메줄’은 동그라미, 네모, 세모, 메모, 줄 긋기의 단어들 첫 글자를 연결한 것입니다. 두 가지 형태의 말씀묵상이 이 성경의 목적입니다.

(1) 정독 말씀묵상
(2) 연구 말씀묵상

여기에서는 ‘정독 말씀묵상’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연구 말씀묵상’은 간단하게만 소개합니다. 연구 말씀묵상에 관해서는 별도의 책자와 세미나를 통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정독 말씀묵상의 방법을 다루기 전에 먼저 오늘날의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대하는 모습을 성찰합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읽고 연구하여 성경 지식이 많아지면서도 말씀에 의한 거룩한 부흥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에 문제가 있어서입니다. 성찰에 이어서 동네세메줄성경의 구조와 활용 방법을 살피겠습니다.

 

1. 성찰

말씀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 뜻을 깨닫고 깨달은 말씀이 우리 삶으로 이어지면서 그리스도인의 삶과 교회 공동체에 영적인 각성과 부흥이 일어납니다. 이 거룩한 힘이 사회와 세계를 변화시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말씀을 대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이사야서 66장 5절의 가르침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며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의 기록처럼 복음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려는 마음이 간절해야 합니다.

이사야 66장 5절 전반부,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복음 5장 39절,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통독, 필사, 암송, 학문적 연구 또는 그 어떤 것이든 성경을 대하는 방법이 나의 업적을 쌓거나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것이어서는 안 됩니다. 통독이나 필사나 암송 등의 분량이나 횟수가 중심 목표가 되는 것, 다른 사람과 경쟁하며 앞서려는 것, 교회나 단체를 효율적으로 이끌어가는 수단으로 써먹는 것, 성경이나 그에 근거한 신학적 지식의 깊이와 탁월함으로 내 존재를 드러내려는 것 등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으로’ 이어지는 길에 놓인 교묘한 덫이며 함정입니다. 말씀과 삶이 어우러지면 엄청난 힘이 생기는데 악한 영은 이 일을 간교하게 비트는 수많은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오래 전부터 효과가 입증된 매혹적인 방법들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연구하게는 하되 성경이 가르치는 태도와 그 마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 그래서 말씀이 삶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아주 위험한 유혹이며 무서운 공격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제대로 말씀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말씀을 대하는 태도와 동기를 성찰하며 점검해야 합니다. 말씀묵상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 사역의 제일성으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문구까지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의 중심에 다시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삶의 한가운데서 이루어지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하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며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기를 비는 기도입니다. 말씀묵상의 목적을 다른 각도에서 설명하면, 그리스도인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 가운데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작동하는 거룩한 힘으로써 일상과 인격 그리고 사회와 역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일에 그리스도인이 헌신하게 하는 것입니다.

 

2. 구조

동네세메줄성경의 기본 구조를 설명하겠습니다. 책을 펼치면 왼쪽 면에는 두 단으로 된 성경 본문이 있고 오른쪽 면은 모두 비어 있습니다. 왼쪽의 본문을 깊이 정독하면서 중요하다고 생각되거나 내 마음에 각별하게 다가오는 단어와 표현에 동그라미도 치고 네모나 세모 표시도 합니다. 서로 연결되는 단어나 표현을 줄을 그어 연결하기도 합니다. 오른쪽의 빈 면에 성경 본문에서 깨달은 것을 메모합니다. 뭐, 자유롭게 도표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오른쪽 면에 ‘비움, 채움, 나눔’이란 단어가 있는데 이에 관해서는 따로 설명하겠습니다.

동네세메줄성경은 신구약 성경 전체가 구약 일곱 권, 신약 세 권, 모두 열 권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권부터 전체를 차례로 사용하거나 신약부터 시작하거나 또는 어떤 책을 선택해서 먼저 사용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의 내용을 그 흐름에 따라 100개의 덩어리로 나누었습니다. 이 구분은 특히 연구 말씀묵상을 위한 것입니다. 

구조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연구 말씀묵상’에 관하여 간단하게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동네세메줄성경의 구조가 연구 말씀묵상에 깊게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연구 말씀묵상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과 일반 성도들을 대상으로 하는 훈련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 경우에는 한 주간에 한 번 모여서 한 덩어리씩 공부하며 묵상합니다. 강의 중심이 아니고 참여하는 사람 스스로 성서 본문을 읽고 연구하며 묵상합니다. 한 번의 모임을 위해 한 주간에 각자 10시간 정도를 공부해야 합니다. 연중 훈련으로 진행할 때 중간의 방학을 고려하고 말씀이 일상과 인격의 변화로 이어지게 하는 훈련 등을 생각하면 연구 말씀묵상 방법으로 전체 100덩어리를 공부하는 데 2년 반이나 3년 정도 걸립니다. 

목회자들의 이런 훈련에서 중요한 점은 목회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묵상하는 것이며, 말씀이 내 삶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의 직무나 기능을 탁월하게 하여 목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성경의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의식을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일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현존 가운데서 살며 그리스도의 마음과 성품을 닮는다는 한 가지 목적이 중요합니다. 말씀묵상이 이 목적 외에 다른 그 어느 것의 수단이 되면 곁길로 빠집니다. 성경 전체를 ‘내가 다 정리해서 내 것으로 만든다.’는 열망은 좋은 것 같아도 참으로 위험한 유혹입니다. 한 덩어리를 묵상하고 거기에서 주님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내 삶으로 헌신하는 훈련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목회 현장에서 성도들과 함께 ‘연구 말씀묵상’을 진행할 때는 한 달에 한 덩어리를 공부합니다. 전체 100개의 덩어리를 공부하는 데 10년 정도 걸린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교회의 목회 상황이나 목회자의 목회 방향에 따라서 기간은 짧을 수도 있고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중요한 점은, 성경을 지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목회자가 어떤 동기에서 어떤 방향으로 말씀묵상을 이끄는지 알아차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따라 목회자가 먼저 말씀을 ‘배우고 지키며’ 여기에 근거해서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해야 합니다.

 

3. 방법

‘정독 말씀묵상’에 관하여 말씀드립니다. 정독 말씀묵상은 기본적인 안내를 기초로 해서 전 교인이 한꺼번에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방법은 ‘연구 말씀묵상’을 위한 예비적인 단계라고 생각해도 좋습니다. 정독 말씀묵상의 주된 목적은, 성경 66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고 묵상하면서 묵상의 즐거움과 복을 맛보게 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말씀묵상의 집으로 깊이 들어가게 하는 문과 같습니다. 이것을 체험하면 말씀묵상의 더 깊은 복을 사모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 말씀묵상을 진행합니다.

1) 분량

일주일 단위로 묵상 분량을 정할 수 있습니다. 동네세메줄성경의 100덩어리 중 한 덩어리가 좋습니다. 그러면 일 년에 성경 절반을 묵상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의도적으로 ‘일 년에 성경 일독’이라는 틀을 벗어나는 것도 필요합니다. 통독의 횟수나 필사나 암송의 분량에 매이는 것이 다반사여서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변화입니다. 정한 본문을 자신의 생활 구조에 따라 매일 일정한 시간에 하든지 아니면 일주일 중 하루나 이틀을 정해서 말씀묵상 시간을 갖습니다. 

하루 단위로 묵상 분량을 정할 수 있습니다. 보통 가장 많이 하는 방법대로 장 별로 하루의 묵상 분량을 정하면 됩니다. 아니면 동네세메줄성경의 한 면 분량으로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면 하루에 왼쪽의 본문을 묵상하며 오른쪽의 빈 면에 자유롭게 메모하거나 글을 쓰면 됩니다. 이 방법이 실제적인 면에서는 여러 모로 좋습니다. ‘하루 한 면’이라는 틀이 아주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2) 진행

이제 실제적인 진행입니다. 시작하거나 마칠 때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왼쪽의 본문을 찬찬히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나 표현에 자유롭게 동그라미, 네모, 세모 표시를 합니다. 연관되는 표현들을 줄을 그어 연결합니다. 왼쪽 면의 여백에 간단하게 메모할 수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그렇게 충분히 묵상하고 나서 오른쪽 면에 묵상한 내용을 적습니다. 완벽하게 정리해서 기록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편하게 쓰세요. 나름대로 이해한 것을 적으면 됩니다. 내 생활의 감사나 고민을 써도 좋습니다. 그림을 그려도 됩니다. 매일 하는 경우에는 신앙 일기라고 생각하고 써도 됩니다. 편하고 자유롭게 한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주 중요한 점을 말씀드립니다. 생활하면서 글을 쓰는 일이 별로 없는 분들에게는 오른쪽 면에 기록하는 것을 너무 강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묵상이 주로 젊은이들이 하는 신앙 훈련이어서는 안 됩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해야 하는 것이 말씀묵상입니다. 특히 적어도 ‘정독 말씀묵상’은 그리스도인 누구나 해야 합니다. 글로 쓰는 것을 중심 목적으로 삼으면 글 쓰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소외되고 말씀묵상이 특정 계층을 위한 훈련으로 변질됩니다. 오른쪽 면에 그저 단어들이나 중요한 표현들 몇 개 또는 짤막한 문장만 써도 됩니다. 그렇게 묵상한 것을 함께 모여서 서로 나누며 기도하면 됩니다.

3) 나눔

이렇게 묵상한 것을 작은 단위로 모여서 서로 나눕니다. 작은 모임의 장점과 역동성 그리고 모임을 진행하는 방법 등은 익히 알려진 것이어서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각자가 묵상하면서 깨달은 것과 받은 은혜 그리고 특히 내 삶이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나눕니다. 다른 사람이 묵상한 내용이나 방법을 고치려 하면 안 됩니다. 어떻게 묵상했든지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소그룹 나눔이 계속되면서 자연스럽게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으로 이어지는 데 초점을 맞추어 나눔의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묵상이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합니다. 훈련하는 과정에서 묵상의 기쁨과 열매를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분량을 단기간에 묵상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말씀에 관한 열망이 강하게 일어날 때는 시간과 열정을 얼마든지 들여서 말씀묵상을 할 것 같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려워지고 결국에는 중단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을 잊지 마십시오. 성경 본문을 듣거나 스스로 읽는 것,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 내 삶의 변화를 열망하고 체험하는 것,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신앙의 공감과 연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인격적인 이해와 결단 그리고 내 삶과 세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경이 기록될 때 일하신 성령님께서 이런 모든 과정에 함께하십니다.

4) 가정에서

가정에서 말씀묵상을 진행할 때는 부모가 인도자가 됩니다. 동네세메줄 성경을 부모가 자녀와 함께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 방법을 예로 드는데 여기에 근거해서 다른 다양한 방법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는, 아직 글을 읽고 쓰는 데 익숙하지 않은 나이의 자녀와 함께하는 방법입니다. 먼저 왼쪽 면의 성경 본문을 읽어 주든지 이야기로 들려주고 서로 얘기를 나눕니다. 그런 후에 각자가 생각한 것을 오른쪽 면에 그림으로 그려 봅니다. 아이들의 생각이나 상상력은 또 그들 나름으로 묵상하며 받는 은혜는 어른들의 생각을 넘어설 때가 많습니다. 

다른 하나는, 글을 충분히 이해하는 나이의 자녀와 함께 하는 방법입니다. 왼쪽 면의 본문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단어 세 개를 골라서 오른쪽 면에 쓰고 왜 그 단어를 골랐는지 글로 쓰거나 얘기해 보라고 합니다. 특별히 마음에 다가오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표현들을 찾아서 오른쪽 면에 쓰고 왜 그런지 글로 쓰거나 얘기해 보게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기도 모르게 성경 본문을 깊이 생각하고 이해하며 자기 삶에 연결하게 됩니다.

5) 교회에서

교회에서 진행할 때는 목회자나 훈련된 지도자가 모임을 인도합니다. 교회학교에서 또는 청년이나 장년을 대상으로 할 때도 가정에서 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경우에는 연령대에 맞게 선생님들이 적절한 그림이나 영상이나 활동 등을 준비해서 사용하면 더 좋습니다. 교회의 작은 모임들(구역, 속회, 셀, 다락방, 가정 등)이 모일 때 한 면 분량을 갖고 위에 제시한 방법으로 진행하면 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성경 본문을 듣거나 스스로 읽는 것,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 내 삶의 변화를 열망하고 체험하는 것,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신앙의 공감과 연대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함께 모여 묵상을 나눌 때 성경의 지식적인 면을 드러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인도자가 적절하게 제어해야 합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훈련하는 이런 과정들에서 인격적인 이해와 결단 그리고 내 삶과 세계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경이 기록될 때 일하신 성령님께서 이런 모든 과정에 함께하십니다.

 

● 말씀묵상의 구조 – 비움, 채움, 나눔

정독 말씀묵상과 연구 말씀묵상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그러니까 말씀을 묵상하는 근본적인 구조와 방법을 설명하겠습니다. 여기에 따른 말씀묵상은 연구 말씀묵상에서 더 깊게 본격적으로 훈련합니다만 정독 말씀묵상을 할 때에도 기본적으로 이 내용을 이해하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묵상 소그룹의 인도자는 이 내용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으로’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본문(Text)에서 삶의 상황(Context)에 이르는 과정’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구체적인 훈련과 모든 사역이 여기에 걸려 있습니다. 말씀묵상은 세 단계로 진행됩니다. 비움, 채움, 나눔입니다. 동네세메줄성경의 편집에서 오른쪽의 빈 면에 이 세 가지 단어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운데 부분인 ‘채움’을 먼저 설명합니다. 채움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1) ‘주님께서 그 본문에서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생각합니다. 관찰 작업입니다. 본문의 내용 자체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 또는 내 마음에 와 닿은 단어나 표현에 표시합니다. 그 단어나 표현이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왜 내 마음에 와 닿았는지를 씁니다.
② 본문을 서너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그 서너 문장을 중심으로 내가 이해한 대로 본문을 써 봅니다. 본문의 단어나 표현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2) ‘주님께서 그 본문을 통해서 나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생각합니다. 새김 작업입니다. 본문과 내 삶, 본문과 우리 사회 및 세계를 잇는 일입니다.

① 본문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내 삶이 지금까지 어떠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성숙해야 하는지 성찰합니다. 우리 가정과 교회가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② 본문의 내용에 따라 우리 사회와 한반도, 동아시아와 세계를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하는지, 또 그 변화를 위해 나와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합니다.

(3) ‘그러면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결단하며 기도하는 일입니다. 기도로써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말씀대로 살며 삶이 변합니다.

① 구체적인 실천과 행동의 방법을 찾아보고 적습니다. 나의 인격과 일상, 내 주변과 세계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정직하고 용감하게 생각하고 결단합니다.
② 내가 찾고 결심한 실천의 내용을 다른 사람과 서로 나누며 함께 기도합니다. 지속적으로 연대하여 기도하며 교회적으로, 사회적으로 힘을 모아 살아 냅니다.

이제 비움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비움은 동네세메줄성경을 펴고 본문 묵상을 시작하기 전에 침묵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의 복잡한 생각이나 근심 걱정을 비우고, 성령의 임재를 구하며, 죄를 회개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번잡한 삶의 현장에서 여러 일로 분산돼 있는 마음을 하나로 모으며 삼위일체 하나님 앞으로 가는 길이 다시금 열립니다.

나눔은 말씀묵상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삶의 현장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묵상의 자리에서 성경 본문을 관찰하며 깨닫고, 그 깨달음을 나와 오늘의 세상에 연결하여 새기고, 실천하기로 결심한 대로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으니 이제는 용감하게 그대로, 지혜롭게 실천의 방법을 찾으며 사는 것입니다. 

문제는 삶의 변화입니다. 나의 인격과 일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면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사는 것, 곧 거룩해지는 것이 기독교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설교에서 가르쳐 주신 것처럼 그리스도인이란 존재는 산위의 동네요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그런 존재답게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말씀묵상의 목표는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의 가르침대로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 출판사의 허락을 받고 ‘동네세메줄성경’(말씀삶출판사, 2022)의 서문을 발제 원고로 실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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