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섬김 사역 준비하는 이건영 인천제2교회 목사

지난 8일 인천 중구 인천제2교회에서 만난 이건영 목사. 1993년부터 이 교회 담임목사였던 그는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 목사는 “후임자에게 교인들의 말을 많이 듣는 목회자가 돼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강민석 선임기자
지난 8일 인천 중구 인천제2교회에서 만난 이건영 목사. 1993년부터 이 교회 담임목사였던 그는 은퇴를 앞두고 있다. 이 목사는 “후임자에게 교인들의 말을 많이 듣는 목회자가 돼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강민석 선임기자

“은퇴 이후 계획이 있으신가요?”

“마트 주인이 되려고 합니다. 가게 이름도 정해놨어요. ‘행복마트’라고.”

“가게 운영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행복 마트에서는 생필품 약 40개만 취급할 겁니다. 위치는 인천의 구도심인 용현동이 될 거예요. 고객은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입니다. 이들은 2주에 한 번씩 3만원어치 물건을 공짜로 가져갈 수 있어요. 한 달이면 6만원어치 생필품을 공짜로 얻게 되는 셈이죠.”

이런 대화를 나눈 상대는 이건영(69) 인천제2교회 담임목사였다. 지난 8일 인천 중구 인천제2교회에서 만난 이 목사는 “개업을 위한 사전 답사도 마친 상황”이라고 했다.

“손님들한테 제가 목사라는 사실은 알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사람들이 수군대겠죠. 주인이 누구이며 왜 이런 가게가 있는지. 주인이 목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누군가는 예수님이나 교회에 호기심을 갖게 될 겁니다. 그런 사람들과 마트 한구석에서 소박한 예배를 드리고 싶어요. 이게 제가 꿈꾸는 저의 노년이에요.”

이 목사는 18일 은퇴식을 갖는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인천제2교회에 다녔고 1993년 12월 이 교회 제3대 담임목사가 됐다. 그의 말을 그대로 빌리자면, 성도들 입장에선 “주일학교에 다니던 건영이가 우리교회 목사님이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천제2교회는 그에게 인생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이 목사를 인터뷰한 이유는 은퇴를 앞둔 소회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는 “내게 맡겨진 엄청나게 큰 짐을 내려놓게 돼 너무 후련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요즘 교인 중엔 저를 만나면 우는 분이 많아요. 헤어지게 돼 섭섭하다는 거죠. 물론 저도 은퇴식 하는 날엔 울 거 같아요. 하지만 현재로선 큰 부담을 내려놓게 된 기쁨이 더 커요.”

이 목사가 이런 감정을 드러낸 이유는 목회자로서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기 때문일 거다. 그는 “설교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목회를 했다. 물론 설교를 준비하는 일이 쉬울 린 없었다. 젊은 시절엔 막막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그가 택한 방법은 자신을 채찍질하는 거였다. 한때는 매주 2주치 설교를 미리 준비하는 식으로 설교를 준비했다. 주일이 다가오면 TV를 크게 틀어놓고, 때로는 러닝머신 위에서 빨리 걸으며 설교 연습을 반복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그는 한 번도 원고를 갖고 강단에 오른 적이 없었다.

이 목사는 “설교가 중요한 이유는 교인들이 설교를 통해 영의 양식을 취하기 때문”이라며 “원고를 통째로 외운 뒤 설교를 했기에 매번 교인들과 시선을 맞추며 말씀을 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목사의 삶에 설교의 메시지가 조금이라도 묻어나야 설교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며 “나는 부족한 게 너무 많은 인간인데 하나님이 내 흠결을 덮어주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다”고 덧붙였다.

이 목사가 전하는 ‘교회론’은 간단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거였다. 이 목사는 “영혼 구원을 최우선으로 하지 않는 교회는 아무리 많은 사역을 하더라도 자선단체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는 지역의 어렵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인천제2교회는 지역 사회를 섬기는 다양한 활동으로 유명하다. 가령 국민일보는 2016년 2월 18일자 지면을 통해 이 교회의 활동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당시 기사 제목이 ‘장애 어린이 돌봄 목욕탕 제공 등 섬김 사역만 21가지’였다. 그렇다면 이 목사가 가장 보람을 느낀 사역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물음에 그는 ‘삼일특수교육센터’를 꼽았다. 교회 6층에 자리 잡은 이 센터는 지적 장애우를 위한 각종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말도 못 하던 아이가 1~2년 치료를 받은 뒤 ‘엄마’라고 말하진 못하더라도 ‘엄…’이라는 소리를 발음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작은 기적이거든요. 문제는 이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쉽지 않다는 거였어요. 재정은 많이 투입되는데 결과가 드러나지 않으니 회의적인 시선이 많았죠. 하지만 꾸준히 센터를 운영했고 지금은 작은 희망을 전하는 곳이 된 것 같아요.”

꿈꿨으나 실천에 옮기지 못한 사역이 있었는지 물었을 땐 “거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목사는 “하나님이 주신 내 은사를 넘어서는 많은 사역을 벌였던 것 같다”며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했다면 교인들이 힘들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목회자의 길을 걷는 내내 가슴에 품었던 성경 구절을 소개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이 목사는 이 말씀을 언급한 뒤 이렇게 말했다. “제가 스스로 걸음을 옮겨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게 아니에요. 저를 항상 움직이게 만든 건 여호와 하나님이었어요.”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222398&code=23111211&sid1=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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