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꿈으로 교육대학을 다니던 중에 ‘활동성 폐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은 갈수록 심해지고,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자포자기하며 미열과 권태감을 안고, 힘들게 하루하루를 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부터인가 새벽 4시만 되면 교회당 새벽 종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전에는 없던 일이 4일간이나 지속되자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내가 전에는 학생회 학생회장도 했고, 열심히 교사도 했던 사람인데 어느새 내가 이렇게 되었네.”

얼른 일어나 준비하고 조그만 개척교회 예배당 맨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죄악된 모습이 영화필름처럼 계속해서 돌아갔습니다. 얼마나 큰소리로 울부짖으며 뒹굴었던지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기도회에 온 식구들이 다 돌아가고 없었습니다. 결단하고 “주님, 저를 한 번만 살려주시면 목회자의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서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후 주님은 제 병을 완벽하게 치료해 주셨고, 저는 섬마을 총각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제는 약속을 지킬 때가 되었다’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습니다. 결국 12년 교사 생활을 접고 목포로 이사했습니다.

부임한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맡았는데, 성령께서 어린이 전도에 불타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100여 명이었던 학생들이 불과 6개월 만에 60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가슴 속 뜨거움은 계속 되었습니다. 담임목사님 허락을 받고 금식기도에 들어갔다가,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가라’(행 8:26)는 말씀과 함께 남도 선교의 비전을 얻었습니다.

그 비전을 품고 목포 삼학도 바닷가의 무허가촌 결손가정 아이들 20여 명과 15년 간 공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까마귀를 통해 전해주듯 베푸시는 일용할 양식으로 그 아이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연명하면서 살았습니다.

제게 사명을 주시던 그 새벽에 주신 말씀대로 아이들과 ‘남도선교회’라는 이름으로 공동체를 세우고, 미자립교회 청소년들을 불러 청소년 복음잔치를 시작했습니다. 소박하게 시작했던 그 사역이 2020년까지 33년간 이어지며, 무려 56차를 맞았습니다. 공동체를 거쳐 간 학생 중에서 목회자가 35명 가량 배출되었습니다.

비전을 주신 주님께서 열매도 맺게 하셨고, 그렇게 섬겼던 열정이 이제는 목회의 비결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전심으로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 능력을 주시고, 칭찬 듣는 존귀한 삶을 살게 하신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임마누엘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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