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발령을 기다리던 시기에 저는 한 주간의 절반쯤을 기도원에 머물면서 기도하거나 성경 읽는 데 몰입했습니다. 당시는 1970년 초기로 한참 기도원 운동과 부흥회가 자주 열리던 시절이었습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치유나 방언의 은사 등을 구하였는데, 성령께서는 저에게 ‘지혜의 말씀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하루에 500여 장씩 성경을 읽으면서 탐구하였습니다. 그 무렵 전국 주일학교 성경고사대회 준비를 위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중이었는데, 이 때 사용 중이던 <계단공과>마저도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정을 쏟는 동안 우리 가문에서 처음으로 예수 믿게 된 저를 따라 5형제 중 네 사람의 목사와 한 사람의 장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저부터 서원에 따라 총신대 신대원에 입학했습니다. 수강하는 동안 교수님들의 강의와 채플을 인도하시러 오신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 옹골진 말씀들이 가슴에 들어와 박혔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균형 잡힌 목회자로 성장해 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한 교회의 수련회 교재로 ‘로드십’(lordship)을 공부하는 중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가까이 임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네가 나에게 ‘주여, 주여!’ 하는데 정말로 내가 네 주인이냐?” 제가 대답을 못하자, 주님은 다시 물으셨습니다. “네 아내와 네 자녀도 다 내 소유이냐?”

그때 주님 앞에서 숨길 수 없이 솔직해졌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주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곧이어 따뜻하게 감싸주시는 주님의 손길이 전해졌습니다. 목회자로서 영적인 분별력과 말씀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저에게 생긴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주신 은사들에 따라 어찌하든 말씀을 오롯이 성도들에게 전수하는 것이 교회가 사는 길이요, 한 개인과 가정이 사는 길이라는 목회적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도 말씀 전수에 초점을 맞추어 주일학교를 이끌었고, ‘말씀 전수학교’를 통해 부모가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지속하면서 자녀들에 대한 부모들의 기대도 점점 커졌습니다.

이 사역을 잘 적용하는 저희 집안에 좋은 간증거리가 있습니다. 시카고에서 목회하는 동생의 두 아들은 대학교 진학 전 성경을 8번씩 필사할 만큼 말씀을 깊이 사모하며 자랐습니다. 지금 두 조카들은 탁월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 은혜로 하버드대에서 자신들의 전공분야 최우등 졸업의 쾌거도 이루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확신 가운데 이렇게 외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네 하나님 되시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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