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교회 현장에서 회자되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그건 “월세가 소명보다 힘이 더 세다”는 것이다. 월세가 몇 달만 밀리면, 목회자의 소명은 순식간에 끝없이 추락하고 만다. 목회자가 생계비 문제로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다. 얼굴 표정에 그대로 나타난다. 그러면 몇 달 만에 처음 교회를 방문한 신자마저 기겁을 하고 도망간다. 그러면 목회자는 그것 때문에 절망한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그렇지 않아도 사면초가에 놓여 있던 미래자립교회들이 2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앞에 절망하고 있다. 월세를 내지 못해 예배를 중지한 교회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 개척은 계속되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방과 조롱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시고 하나님나라를 확장시키시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을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회 개척을 계속하는 것이다. 

나는 확신한다. 교회 개척은 주님의 소원이요,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가 계속해야 할 일은 ‘건강한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교회 개척은 주님의 소원이지만, 목회자를 통해 하신다. 그게 바로 많은 교회들이 개척되지만, 실패하는 교회 역시 많은 이유다. 교회 개척에 성공하려면 목회자 자신의 노력뿐만 아니라, 총회 차원에서의 후원과 지도가 필요하다. 미래자립교회를 위한 백년대계와 청사진을 수립하는 일에 총회 임원들이 앞장서야 한다. 몇 가지 제언을 드린다.

첫째로, 후원 교회들의 리더십을 동기부여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총회가 지난 2016년 교회자립개발원을 설립한 것과, 제106회 총회 임원들 중 많은 분들이 미래자립교회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개선할 점이 없지 않다. 노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후원 교회들의 자발성이 매우 부족해 보인다. 그 이유가 뭘까? 후원 교회들의 담임목사와 장로들을 동기부여하는 일에 소홀한 결과다. 의미 있고 중요한 일도 자발성이 결여되면 지속되기 힘들다.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더라도 후원 교회들에게 미래자립교회를 후원하는 일의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그래서 필요하다. 후원 교회 지도자들에게 공교회성과 연합을 호소하는 것이 후원 동참을 요청하는 것보다 급선무다.

둘째로, 미래자립교회 목회자들에게 목회적 지원을 하라. 교회 개척에 실패할 경우, 목회자와 그 가정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 교회 개척의 실패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많은 경우, 재정 부족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그것 못지 않게 중요한 요인은 목회 역량 부족이다. 본인이 인정하기 싫겠지만, 사실이다. ‘목회 역량’이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영성·인격·사명감·실력·인간관계·소통 능력·통찰력·끈기·창의력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회와 노회, 교회자립개발원은 교회 개척을 준비 중인 목회자들을 (재)교육하는 일에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시작이 틀리면 끝은 틀릴 수밖에 없다. 옳지 않은 동기로 교회를 개척하는 목회자들이 없지 않다. 담임목사 자리가 없어서, 목회 현실에 대한 분노 또는 자기의(自己義) 때문에, 세속적 야망 달성을 위해…. ‘교회 개척학교(가칭)’ 훈련을 통해 이런 문제를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속한 노회는 매년 두 차례에 걸쳐 미래자립교회 담임목회자들을 위해 세미나를 실시하고 있다.

셋째로, 교단 신학교를 내실화해야 한다.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William Booth)는 당시 시대 상황을 바라보며 “성령 없는 종교,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회개 없는 용서, 거듭남 없는 구원, 지옥 없는 천국”이라고 탄식했다. 13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이 조국 교회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 아닌지 두렵다. 교회가 위기다. 해마다 30~40대 그리스도인 10만 명 이상이 교회를 떠나고 있고, ‘가나안 성도’는 100만 명 내지 300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현재 교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교인들이 은퇴할 시점인 2028년부터는 교회 재정이 반토막 나고, 2050년에는 교인 수가 현재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추측된다.

목회자 수급(需給)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아니, 너무 늦었다. 목회자의 공급 과잉은 미래자립교회 문제의 악화로 직결될 것이 뻔하다. 이를 위해 총회 임원들과 총신대학교 재단이사회 간의 긴밀한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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