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온 한센인 마지막 생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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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온 한센인 마지막 생존자
  • 황영준 목사
  • 승인 2021.08.02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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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신성교회 정오 기도하는 할머니들과 설교하는  황영준 목사.
소록도 신성교회 정오 기도하는 할머니들과 설교하는 황영준 목사.

남해안 지방에 4백 밀리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소록도 장 권사의 전화를 받았다. 물난리라도 날 것 같다며 걱정하는 안부 전화다. 코로나 때문에 소록도병원 출입을 폐쇄하고는 가질 못했으니 만나본 지 오래되었다.

장 권사와 할머니들이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는 신성교회 ‘정오 기도팀’은 지금도 예닐곱 명이 모인단다.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기도 전통’이라서 내가 교회 은퇴하기 전부터 찾아가 설교도 해주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요양 병동으로 들어간 박정자 집사(85세)의 형편이 궁금해서 근황을 물었다. 얼굴과 손에 한센병 흔적이 있어선지 모일 때면 뒷자리에 앉았지만, 일부러 손을 붙잡고 인사를 했었다.

북한 진남포에서 살았던 박정자(1939~   ). 그가 꿈도 못 꾸었을 소록도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하루는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보았다(2015. 5. 27). 일곱 살 때부터 나병 증상이 있어서 어머니 손에 붙들려 기도하러 따라다녔다. 8・15 해방 후에 북한은 교회 문을 닫았다. 기독교인들은 가정집이나 산과 들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말하자면 공산 치하의 지하 교회였다.

열한 살 때였다.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병원에 갔더니 나병으로 확진하고는 비좁은 곳에 가두었다. 나병환자를 신고해서 강제 격리하는 때였다. 어머니는 자식을 빼앗긴 듯 병원을 찾아다니며 분노하고 울었다. 수용소로 떠나는 네 병을 하나님이 고쳐주실 것이다. 기도해라. 엄마가 날마다 기도할 거다 하고 당부했다. 그것이 어머니와 영원한 이별일 줄 몰랐다.

원산만元山灣에 있는 대도大島 요양소에 수용되었다. 일제 때 해군 진지였던 시설이었다. 그곳에서 처음 만나 낯선 어른들과 함께 살았다. 오빠가 찾아왔다. 동생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근심하는 낯빛으로 "정자야 눈썹이 없다..." 하고 말한다. 정자는 집에 못 가겠다 싶은 생각에 슬피 울었다. 오빠는 어른들에게 동생을 부탁하고 "이 어른들이 어머니, 아버지다. 말씀 잘 들어라" 하고 떠나갔다. 그때 대도 섬에는 나병환자 3백여 명이 살고 있었다.

감옥 같은 섬 생활 3년째, 열세 살 되던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유엔군과 국군의 비행기와 함포 폭격으로 북한 땅은 불바다가 되었다. 죽음의 공포 속에 이런 소문이 들렸다. 유엔군에 기독교인이 많아서 예배당은 폭격하지 않는다. 십자가를 그려놓으면 폭격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나환자들은 이불 홑창에 붉은 십자가를 그려 비행기에서 볼 수 있는 곳에 내놓았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섬에 폭격이 멈추더니 국군이 찾아왔다. 환자들은 "국군 만세!"를 외치며 환영했다. 굶주린 그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매우 친절했다. 영국군(유엔)군도 찾아오고 군의관 몇이 환자들을 치료해 주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들이라도 만난 듯 반겼다.

전세가 바뀌어 국군이 후퇴하면서 이듬해(1951년) 1월에는 함흥에서 피난민이 남한으로 내려갔다. 신도와 대도는 해병대가 지키고 있었다. 환자들 가운데 소록도서 살았던 분(김봉남: 대도요양소 공생위원장) 여럿이 소록도로 가서 살고 싶다며 그곳에 가서 살게 해주라고 호소했다.

국군도 11월에 철수하면서, 석탄을 수송선에 환자들을 태웠다. 군군이 한 사람애 맨 나중에는 어린 정자를 등에 업고 왔다. 역사적인 '북한 나병환자 월남越南 사건'이다. 배는 망망대해를 지나고, 해안을 따라 부산을 거쳐 13일째, 베일에 감추어진 듯 안개 짙은 남해안 한 섬에 도착했다.

그날이 1951년 11월 18일. 99명이 소록도에 내렸고, 여러 마을에 나누어 수용됐다. 같은 병에 고생하던 사람들이라서 잘 도와주었다. 환자들 대부분이 기독교인 이어서 교회에서 자주 만나는 신앙 공동체였다. 주민들 거의가 기독교인이어서 날마다 새벽 기도회 모임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고, 어른들은 청소년들을 사랑해서 학교도 운영했다. 정자는 교회에서 또래들과 어울렸다. 박정자도 믿음으로 살며, 예배당 건축할 때는 정성을 바쳤다.

신성교회 예배당 건축 이야기다. "가마니를 깔고 모였어요. 남자들은 힘쓰는 일을 했고,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팔아서 헌금을 드렸어요. 살점이 떨어져도 아픈 줄 모르고 벽돌을 날라 건축 일을 도왔지요." 한다.

23세 때 결혼한 남편은 세상을 일찍 떠났고, 예배당 건축 때 함께했던 사람도 몇 안 남았다. 탄식하듯 "왜 나는 안 데려가는지…" 하며 울먹인다. 원산서 함께 왔던 사람들 다 죽고 혼자 남았으니 '다음은 내 차례인데...'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새로운 환자는 없고, 고령화로 수용인원이 많이 줄었다.

정오, 기도 종소리 울리는 기독교 성지聖地. 북한(원산)서 탈출해온 한센병자 중 마지막 생존자. 가족과 헤어진 이산가족. 소록도 교회 역사의 증인, 평생 믿음으로 살아온 박정자 집사, 손 붙들고 기도하고 싶다.

"하나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울며 기도하던 어머님을, 함께 살았던 성도들을 잘 만날 수 있게 영혼을 강건하게 지켜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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