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소설가 강선봉 이야기

토요일, 점심 약속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 

운전 중에 핸드폰이 울린다. 소록도 사는 소설가 강선봉 씨다(소록도 동성교회). 내가 형님이라 호칭하는 것은 여든이 넘은 나이 때문이다. 아내가 갑자기 위중해서 구급차로 전남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묻는다. 콩팥이 안 좋다는데 혈압이 뚝 떨어지고 상태가 안 좋단다. 소록도 가면 종종 점심을 대접해 주시는 부인 송 집사님이시다. 작년에는 텃밭에서 가꾸어 열매로 담갔다는 발효식품 약을 받아오기도 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사위에게 물어서 입원 절차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응급실에 입원해서 하루를 지내고 일반 병실로 옮겼는데 호전되고 있다니 다행이다.

강선봉 소설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를 소록도 남성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예배시간이면 피아노를 연주했고, 개인적으로 만나서 신앙생활의 간증을 나누곤 했다.

그의 삶은 참 특별하다. 1939년에 진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결혼해서 딸 하나를 낳고 한센병이 발병했는데, 집에서 쫓겨나듯 했지만, 친정으로 갈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동냥질로 살아가는 외진 곳에서 어울려 살았다. 기막힌 형편에 들어선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나서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는데, 둘 사이에 아들 선봉이가 태어났다. 아이게 다섯 살 되었을 때 아비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한센병자인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맡길 사람이 없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형편이 되어서, 어린 것을 데리고 동냥질에 나섰지만 그런 생활아 몸에 익지 않아서 몹시 불편했다. 서로 동냥할 마을 나누어서 나서지만 막상 집 앞에 서면 머뭇거릴 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린 것이 보기에도 이러다간 보리 한 줌도 얻지 못할 것 같았다.

엄마를 따라나선 선봉이가 “동냥 왔어요.” 소리를 질렀다. 아주머니가 나와서 보리쌀 한 줌을 내주더니, 아이를 눈여겨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여기 잠시 기다려라.” 하더니 다시 나와 쌀 한 그릇을 부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로서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여덟 살 되던 1946년, 전국에서 걸식하는 한센인들을 강제로 잡아다 소록도에 수용했다. 맡아줄 사람이 없는 선봉이를 엄마가 데리고 왔다. 처음에는 한센인 자녀들이 모인 소록도보육원에 수용되었지만 춥고 배고픈 지독한 고생을 하면서, 열세 살 되던 해에 한센병이 덮쳐왔다. 

그래도 어머니와 함께 기도하던 그는 ‘공부해야 한다, 배워야 한다’는 희망을 붙들었다. 소학교와 중학 과정을 마치고, 소록도병원에서 의료인을 양성하는 의학강습소 공부도 했다. 그 일이 평생을 살아갈 발판이 되어 줄 것을그 때는 알지 못했다. 교회생활도 열심히 해서 장로님들은 신학교에 보낼 생각을 했지만 그 길을 따르지는 못했다.

그에게 사회생활을 접할 기회가 왔다. 한센인들의 자립 정착을 위해 소록도 사람들 자력으로 오마도 간척 공사를 시작했다(1962년). 그 일로 육지로 나온 그는 사라지듯 멀리멀리 떠났다. 세상에 나온 그는 의료인 자격증을 취득해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서전을 쓰듯 소록도 한센인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그들의 슬픔과 고통과 강제 노역의 고통을 증언하는 책『소록도, 천국賤國으로의 여행』(2012. 3. 4 한국고등신학연구원) 책을 냈고, 시집『곡산의 인동초 사랑』(2016, 9, 9 한국고등신학연구원)도 출판했다(2006). 일본의 한센인 단체 초청으로, 일본에 가서 한국 한센인들의 성공적 정착생활을 소개하고, 자신이 애환을 담은 『姜善奉 詩集, 小鹿島の松籟』를 출판했다(2018. 11. 20 解放出版社).

기독교 신자로 눈물과 한숨과 기도와 찬송으로 살다 간 어머니를 기억하고, 나의 부모와 같은 형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섬기면 함께 살리라 작정하고, 어릴 적 추억을 찾아 고향 같은 소록도에 다시 들어왔다.

아내의 갑작스러운 병, 깜짝 놀라 응급실로 달려왔는데, 의료진이 잘 보살펴주고 상태가 호전되었다니 참 다행이다. 이렇게 어려운 중에도 ‘한하운 문학회’에서 ‘보리피리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소록도 남생리, 바닷가 그의 집에 찾아가서, 문학을 이야기하며 점심을 나눌 수 있게 된 것 같다.

형님, 다행입니다. 또 만납시다. 건강하십시오.

강선봉 - 오른쪽에서 두번째.
강선봉 - 오른쪽에서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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