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년도 세계언론인대회 슬로건이 '가장 먼저 망하는 길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였다고 한다. 21세기를 앞두고 지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세계, 국가, 사회 할 것 없다.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 나아가며 지난 10년간 걸려 변화되었던 것이 이제는 1년만에 변화될 만큼 급속화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 제일 변화하지 않는 곳이 있다. 종교계다. 물론 신앙세계에는 영원토록 불변해야 할 본질적 요소가 있다. 이것은 세상 끝날까지 지켜가야 한다. 공연히 변화의 물결을 따라가다가 불변적인 신앙요소까지 변질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해야 될 요소들이 변하지 않고 경직된 전통주의에 빠지면 교회는 적응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계속 요구되는 교회 갱신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이버는 1915년 10월 종교개혁 기념설교에서 "우리에게는 우리 조상인 종교개혁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축복된 자녀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신교도라는 것을 자랑하고 로마 카톨릭 교회를 짓눌렀던 미신을 행하지 않는 것을 자랑하고 은혜안에서 하나님께 특별히 가까이 있다는 것을 자랑하는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말은 교회가 개혁을 위한 땀방울을 흘리는 데 인색한 것을 경고한 말로 보여진다.

한국교회도 종교개혁으로 인한 게혁교회이며, 개혁정신이 그 기초이다. 그런데 개혁교회의 특징은 언제든지 개혁을 거듭하는 데 있다. 따라서 '교회갱신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당위성을 지닌다. 지상교회는 문제가 없는 온전한 교회가 아니어서 늘 갱신되어야 하고 목사와 교회는 개혁정신으로 무장되어야 하기에 개혁하려는 의지는 항상 필요하다. 개혁교회는 그 이름에 부합하게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개혁을 거듭하고 교회의 타락을 막고 역사 앞에서 하나님이 명하신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감당하도록 현실교회를 과감하게 갱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영국의 존 스토트 목사는 갱신에 대해 독특하고 의미있는 해석을 하고 있다. 즉 갱신은 개혁과 부흥을 결합시키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개혁이란 16세기에 일어났던 것과 같이 성경에 따라 신앙과 삶을 개혁한다는 의미이고, 부흥이란 하나님이 죄인들을 회심시키기 위해 교회나 공동체를 초자연적으로 방문하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갱신이란 교회를 개혁시키는 말씀의 능력과 개인을 새롭게 하는 성령의 사역을 결합시키는 운동을 말한다는 것이다.

개혁은 교회가 비본질적으로 되어진다든지 신앙의 내용이 성경 진리와 달라졌을 때 그것을 본래의 신앙 원리대로 바로잡고 되돌려 놓는다는 뜻이다.  갱신을 본래대로 되돌아갈 뿐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더욱 새로와지는 단계로까지 발전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교회와 목회자가 자신의 잘못과 비리를 뜯어 고쳐서 다시 새로와지는 것이다. 즉 교회가 성령이 말하는 본질적 사명으로 목회자가 그 원래의 소명으로, 교인이 그 본래의 신앙원리로 되돌아가 새롭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갱신의 주 · 객은 목회자

한국교회가 세속화되어 상업주의와 물질주의로 오염되고 형식주의와 편의주의로 타락해 가는 심각한 중병에 걸려 있는 것과 그리고 신자들의 평균적인 도덕적 수준과 사회 의식이 낮고 부끄러운 상태에 있는 것은 상당부분 목회자들의 책임이다. 현실적으로 한국교회는 목사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즉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성경말씀대로 가르치지 않았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바로 목회하지 않았으며 교인들과 사회에 도덕적인 모범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건주의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독일의 필립 야곱 슈페너도 "한 그루의 나무의 잎이 시들고 죽어가는 것은 그뿌리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나타낸다. 마찬가지로 교인과 사회의 규율이 문란한 것은 분명히 그들을 지도하는 목회자들이 거룩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린이들 먼저 목욕통에 집어넣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회자들의 갱신을 우회적으로 지적했다.

그러므로 갱신의 우선적인 대상은 목회자여야 한다. 목사가 성경적인 의식구조로 바로 서면 교회와 사회, 교인은 바로설 수 있다. 종교개혁 전 중세 교회의 엄청난 문제들이 개혁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그 문제에 성직자들이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갱신의 우선적인 객체가 목회자라는 말이다.

갱신은 '뜯어고쳐 새롭게 하는 것'으로 남의 것을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부터 뜯어고쳐 새롭게 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자주 남을 비난하고 시정을 촉구하면서도 자신의 비리를 뜯어고칠 생각은 잘 못하고 있다. 갱신은 나 자신, 즉 목회자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목사가 갱신의 주도적 역할자요, 추진자요,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 결국 목회자는 갱신의 추체이자 객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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