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전통 재래시장에 간다. 2, 4, 7, 9일에 연이어 장이 서는 말바우(광주광역시 북구) 시장이다. 광주에서 담양 쪽 도로가 열리는 곳이라서 담양, 순창, 순천, 화순, 구례, 곡성으로 길이 열리는 곳이다.

일찍 오는 시외버스들이 촌에서 오는 보따리 손님들을 내려놓는다. 짐 보따리래야 밭에서 뽑은 싱싱한 채소나 과일 그리고 햇곡식이 대부분이다. 아는 얼굴들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보따리 이야기들도 정겹다.

시내버스에서 내리니 발 앞에서부터 물건을 풀어놓았다. 가을 장이라서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인 것 같다. 금방 뽑은 무 배추 외에도 작은 그릇에 가득담은 고구마, 고추, 생강, 마, 똘배, 단감 도토리, 연뿌리가 어우러지고. 장사 티 없어 보이는 우리 어머니 같은 할머니들이 자리를 지킨다.

따뜻해 보이는 겨울 옷, 화장품, 밭에서 쓰는 농기구, 마른 나물, 국화 화분 같은 것이 줄을 잇고, 집 앞까지 물건을 내놓은 가게들을 한참 지난다.

겨우 한 사람씩 비켜 가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누군가의 집 대문 앞이나 단장 아래 양쪽으로 자리 잡은 할머니들이 텃밭에서 가꾼 것들을 벌여놓고, 굽은 허리로 주저앉거나 발 뻗고 앉아 배추나 열무, 파를 깨끗하게 다듬거나 토란을 깎아 담으며 손님을 기다린다.

푸성귀 틈에 하얗게 깎은 토란 그릇을 내어놓은 할머니 앞에 아내가 선다. 토란이 얼마냐고 묻는다. “5천원 만 줘”, “몇 개 더 줘요” 아내의 인사같은 애교에 할머니는 기분 좋은 말대접이란 듯 선뜻 한 주먹을 더 올려준다. “고맙습니다. 많이 파세요” 인사하고 비닐봉지를 건네받는다.
마스크를 귀에 매는 줄을 파는 가게. 앞에 서니 아저씨가 앞으로 나와 마스크를 끼워 보이며 이렇게 사용하란다. 노인들에게 친절한 주인이다.

생선 골목, 꽃게, 고등어, 낙자와 함께 갈치도 파는 생선 가게이다. “이것, 목포 먹갈치 지요. 만 원어치 주세요” 세 마리가 도마 위에 올라간다. “작은 놈 한 마리 더 주던데…” 아내의 말에 한 마리가 더 올라가고 토막을 내서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준다.

내가 입을 내복 만 원, 깐 마늘 한 봉지 2천 원, 오이 3개 천 원으로 오늘 장은 그만이다. 작년에 먹었던 홍시는 아직 못 만났다. 아직은 철이 안 된 것 같다.

부추 모종을 찾았으나 양파 모종뿐이다. 지난봄에 상추 모종을 심었는데 처음에는 잘 크는 것 같더니 나중에 말라버렸다. 아파트가 10층 위로 올라가면 화분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데 우리 집이 11층이다.

농촌 할머니들의 용돈벌이 장사. 먹거리를 많이 팔고 사는 곳, 부르는 물건 값을 깎고, 말만 잘하면, 기분만 좋으면 덤을 주고, 거래가 신나는 곳. 여름이나 가을이나 말바우시장은 인정이 넘치고 활기가 넘쳐서 좋다.

언뜻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오래전 할머니 집사님, 마른 명태를 손으로 찢어 시장에 나가 팔면 얼마 남지도 않을텐데 꼭꼭 헌금을 드리던 가난한 살림의 믿음 생활, 나이 많은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는지.

남편이 직장 생활을 접었을 때 시장 가까운 곳에 좁은 가게를 내고 손님들 반기며 토스트를 굽던 부부 집사님의 열심,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남매 잘 키우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보기에도 든든하다.

남편이 건축 사업에 실패하고 어렵게 재기할 때 리어카로 시장 바닥을 다니며 어묵 장사를 해서 가족을 책임지던 부인, 남편과 아들을 연이어 앞세우던 날 “하나님은 어디 계시느냐?” 처연하게 울부짖던 모습이 안 잊힌다.

아내와 돌아오며 한때 함께 했던 얼굴들 떠올리며 목회 시절을 뒤돌아본다. 이런 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며 기도로 살아온 날들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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