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한 지 45년, 교회 개척 39년,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지난 10월 9일(금) 오후 1시 양삼산양교회에서 교갱협 자문위원으로 섬기고 계신 정연철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예배가 열렸습니다.

추대예배는 남울산노회장 김덕환 목사(영남교회)의 개회사에 이어, 경남노회 증경노회장 이상근 목사(옥포제일교회)의 기도, 울산노회 증경노회장 권성오 목사(대신교회)의 성경봉독과 전임부교역자의 특송이 이어졌습니다. 이어서 증경총회장 이승희 목사(반야월교회)가 ‘그리하여’(행9:26~31)란 제목으로 설교를 전했으며, 증경노회장 이성택 목사(서현교회)의 권면, 증경총회장 서기행 목사(대성교회 원로)의 축사, 박종덕 목사(성광교회 원로)의 격려사 순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영상으로 축하인사를 전한 교갱협 고문 김경원 목사(서현교회 원로)는 “먼저 정 목사님의 원로목사 추대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제가 기억하기로 정 목사님은 가슴이 따뜻한 목사님, 눈물이 있는 목사님, 그리고 영혼을 사랑하고 그 영혼을 위해서 애쓰는 아름다운 목회자입니다. 이제 그 무거운 목회의 짐을 내려놓고 원로가 되시는데 앞으로의 사람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뒤따르는 후배들이 닮고 싶은 목회자, 본받고 싶은 목회자의 그 걸음, 원로로서의 아름다운 걸음을 걸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인사를 전했습니다.

교갱협 대표회장 김찬곤 목사(안양석수교회)도 “사랑하는 목사님을 볼 때마다 후배들은 참 감사했습니다. 따뜻한 미소, 겸손하심, 온유하심이 우리들에겐 참 아름다웠습니다. 목사님 남은 시간 더욱더 행복하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더 풍성한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라고 축하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이날 정연철 목사는 총신대학교에 발전기금 5천만원, 대신대학교에 장학금 및 발전기금 2천만원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진 후, 마지막으로 답사하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목회한 지가 45년이 되면서 이곳에 와서 개척한 지는 39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기에 제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제가 어떻게 예수를 믿게 되고 이 아름다운 천사가 흠모하는 성역을 감당할 수 있었겠는가. 두 번째는 이미 작고하신 천국 가신 우리 장로님과 권사님들, 수많는 교우들, 그리고 현재도 삼양교회 중직자 장로님 권사님들이 모두 다 저의 버팀목이었습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삼양교회가 여기 있겠는가? 또 저는 목회에 하나님의 은혜가 뭐냐하면 멘토를 잘 만났습니다. 옥한흠 목사님과 이용걸 목사님, 또 한국교회를 위해서 목회하신 하용조 목사님, 이동원 목사님, 홍정길 목사님 같은 한국교회를 움직이는 어른들의 격려와, 때로는 목회가 무엇인가 가르쳐주셨기 때문에 여기가지 온 것입니다. 또 부교역자들, 60명이 넘는 분들이 제 목회에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또 가장 가까운 저희 집사람, 마지막까지 기다려주시고 참아주시고 기도해주신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장학금을 전달한 것은 제가 기도원에서 오래 있을 때에 많은 분들이 저를 데려가기 위해 장학금을 줄 테니까 우리 학교로 오라고 할 때 이용걸 목사님이 ”목회는 보수를 하든지 어딜 가든지 신학은 바로 해야해. 신학이 잘못 되면 앞으로 목회하기 힘들어.“ 그래서 저를 총신에 인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총신에 빚진 것을 갚을 길이 없어요. 등록금이, 토큰이 없어서 그와 같은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이 끝까지 졸업시켜준 것을 언제 내가 총신에 빚을 갚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퇴직금 5천만원을 학교를 위해서 헌납했습니다. 또 대신대학교는 제일 가까운 지역 아닙니까? 이때 아니면 언제 도울 수 있겠는가 해서 도왔고, 나머지 퇴직금은 한빛국제학교에 장학금으로 다 드렸습니다. 후계자 양성을 위해서 이 시대가, 이 사회가 사람을 키우지 않으면 미래가 없으며,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을 키워야 하기에 장학금으로 내놓았습니다. 마지막에 제 사택까지도 국제학교에 헌납하고 가기로 당회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바쁜 가운데 오셔서 축하해주신 것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 정연철 목사는 1949년 7월 경북 구룡포에서 3남 4녀중 장남으로 불신가정에서 태어나, 포항에서 학창 시절을 마쳤습니다. 이후 서울로 상경해 생활하다가 군복무 중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당시 시골교회의 삐걱대는 사과상자 강대상을 보고 감동되어 강대상을 해드리려고 월남전에 지원하였며, 전역 후 강대상을 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후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형제, 자매, 일가 친척의 배척으로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와 말씀연구에 전념했으며, 첫 사역지로 경기도 광주에서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5년 동안 피땀어린 기도로 교회를 신축하고 영혼 구원에 전력하던 중 총신신대원을 졸업했습니다.

1982년 양산읍에 삼양교회를 개척할 때는 한 가정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통도사, 내원사, 범어사, 향교 등 불신과 유교 사상이 강한 복음의 불모지에서 70여 평의 삼양교회를 신축, 입당 후 교회가 협소하여 1995년 8월 15일 교회부지 1,890평을 매입하여 새성전을 착공했으나 IMF를 맞아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정연철 목사는 머리를 깎고 기도원에 들어가 금식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응답을 받아 2000년 3월, 새성전 입당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비전센터 건립, 한빛국제학교 설립, 태국 제2삼양교회 건립, 인도 만나교회 설립, 필리핀 베데스다 설립, 물금중앙교회 건립, 구룡포 항구교회 건립, 선교사 파송 등 인재 양성과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대내외적으로는 남울산노회장, 기독신문 이사장, 양기총 대표회장, 양산성시화 대표회장, 양산경찰서 경목실장, 교갱협 부울경 대표회장 등의 직무를 역임했습니다. 또한 정연철 목사는 정도목회, 목양일념으로 제자훈련, 심방, 기도와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세 번에 걸친 일천번제 릴레이 금식기도, 70일 철야기도, 40일, 20일 특별새벽기도회 뿐만 아니라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또한 목회사역을 하시는 중에 성도들이 잘못한 경우가 있으면 추상과 같은 견책을, 때로 힘들고 지쳐있을 때에는 사랑과 기도와 격려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이에 1982년 본 교회를 개척하고 만 30년 동안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 헌신한 정연철 목사를 공동의회가 압도적인 지지로 찬성하여 원로목사로 추대하기로 결의했으며, 이에 노회의 허락을 받아 삼양교회의 원로목사로 추대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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