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설교자이다. 하지만 좋은 예배자가 아닐 수 있다. 내가 설교할 때는 예배에 전념하지만, 다른 사람이 설교할 때는 전념하지 않을 수 있다. 설교할 때 가장 힘든 대상은 목회자들이다.

1740년 10월 19일 조지 휘필드는 자신의 일기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오늘 아침에 설교했다. 집회가 시작되자 곧 전보다 더 영적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에드워즈는 설교하는 동안 내내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조다난 에드워즈가 담임목사로 섬기는 노댐프턴교회에서 열린 집회에서 조지 휘필드 자신이 설교할 때 그 교회 담임목사가 가장 큰 은혜를 받는 모습을 기록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1703년 10월 5일생이다. 조지 휘필드는 1714년 12월 27일 생이다. 에드워즈가 휘필드보다 무려 열한 살이나 많았다. 그렇지만 그는 겸손한 설교 청취자가 되었다. 박용규 교수에 따르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탁월한 신학자이면서 복음 전도자였다. 그는 바울처럼 신학자이면서도 인류의 구원 문제를 깊이 고민했던 목자의 심장을 가진 인물이었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깊이 인식하고 살았던 칼빈주의 학자요, 사상가요 전도자였다. 지성과 영성을 동시에 소유했으면서도 지성이 그의 영성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영성이 그의 지성을 지배했다. 그만큼 책을 많이 읽고 박식한 지식을 소유한 인물도 드물 것이다. 에드워즈는 철학자요, 문학가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 그의 작품 속에는 철학적 가치와 문학적 가치가 높았다. 그러나 그의 철학과 문학과 사상은 언제나 신앙의 지배를 받았고, 또 그래야 한다고 믿었다.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놓고 그 권위에 자신을 철저하게 복종시켰다.

그는 프린스톤대학교의 전신인 뉴저지대학교의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조지 휘필드의 설교를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한편 에드워즈 자신도 대단한 부흥 설교가였다. 그가 시무했던 노댐프턴교회는 두 번에 걸쳐 영적 각성을 경험한다. 1734~1736년과 1740~1742년이다. 휘필드의 설교를 듣고 눈물을 흘렸던 것이 1740년 10월 19일이었기에 그는 이미 첫 번째 대각성 운동을 이끄는 뛰어난 설교자로 쓰임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드워즈는 휘필드와 경쟁하지 않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자신보다 학력이 낮고 나이도 열한 살이나 어린 휘필드의 설교에 눈물을 흘리며 은혜 받은 것이다. 휘필드의 설교에 눈물을 흘린 9개월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애 최고의 설교를 선포하게 하신다.

1741년 7월 8일, 그 유명한 “진노하시는 하나님 손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설교를 선포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 에드워즈는 학력과 지성, 나이에 앞서고 있었고 이미 그도 뛰어난 설교자였지만, 휘필드의 설교를 경청하는 진정한 예배자였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 우리는 나보다 학력, 경력, 나이가 부족하거나 나와 비슷한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진정한 청중의 자리에 있는가? 노회, 총회, 또는 연합 단체에 가면 예배를 드린다. 가끔 안타까운 것은 본인이 설교하지 않을 때 겸손한 설교의 청취자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이제 우리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겸손을 배워야 한다.

또한 담임목사는 후배인 부목사의 설교에 은혜받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설교하는 것은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물론 부목사들은 담임목사의 리더십에 전적으로 순종하며 설교에 대한 멘토링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담임목사도 부목사의 설교에 겸손한 청취자가 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자 불링거의 말처럼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살전 2:13)이기 때문이다.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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