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겨울이었습니다. 은퇴 장립집사님의 하관예배가 고향인 청송에서 있었습니다. 거의 산 정상에 위치한 장지까지 운구하는 일은 몇 번의 휴식이 필요할 정도로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솔잎을 스치는 시린 바람조차도 거친 호흡으로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발인예배 때부터 찬양대로 섬겨 주었던 성도들의 따뜻한 동행이 있어서 동토에 내리는 햇살은 포근하였습니다. 하관예배 후에 우리는 양지 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친 성도들이 두세 명씩 조를 이루어서 숲속으로 슬그머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꽤나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화장실이 없는 겨울 산에서 난감한 문제를 상부상조의 정신으로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차량이 주차된 곳에 올 때까지 미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남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연세가 있어서 체면과 품위를 생각하시느라 번번이 절호의 찬스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한계 상황에 도달한 그는 저 멀리 농로에 덩그렇게 주차된 교회 승합차를 발견하였습니다. 다행히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기회를 맞이한 그에게 있어서 승합차는 피난처요 요새였습니다. 결국 승합차 덕분에 문제를 해결한 그의 얼굴에는 비로소 여유 있는 화색이 돌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승합차 안에는 추위를 피해 일찌감치 하산한 여러 명의 여자 성도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변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그를 발견한 순간, 접근의 목적이 무엇인지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누군가 작지만 다부진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습니다. “수구리!” 몸을 숙이라는 경상도 사투리였지만 모두들 알아듣고 신속하게 의자 밑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난 후, 해제경보가 울리자 모두들 소변보다 더 참기 힘들었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아무런 낌새도 알아채지 못한 그는 유유히 콧노래를 부르면서 다른 차량으로 걸어갔습니다.

요즘도 그날을 추억하면서 폭소를 터뜨리는 성도들을 보면서 앞으로 장지에 갈 때는 승합차에 이런 표지판을 붙이려고 합니다. ‘노상방뇨 금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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