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가 된 이후에 처음 한 사역들은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습니다. 첫 심방도 예외가 아닙니다. 부임하던 주일, 오전예배를 마치고 교회 마당에서 성도들과 첫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였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입구에 서서 힐끔 힐끔 쳐다보는 중년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올백을 한 그의 곱슬머리와 물광을 낸 구두가 유난히 반짝거렸습니다.

먼저 다가가서 공손히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내일 자기 집에 와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는데, 심방대원들과 함께 오지 말고 꼭 혼자서 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첫 번째 심방 요청을 거절한 이유가 없었습니다. 비록 피해야 할 일대일 심방이었지만, 같은 남자이기에 흔쾌히 시간약속을 하였습니다.

그의 월세 단칸방은 낡은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 끝에 있었습니다. 찌든 담배와 곰팡이 냄새가 진동을 하는 방에 들어서는 순간, 칼 주름을 잡은 백바지를 비롯하여 원색적인 양복들이 촌스러운 커튼처럼 벽을 덮고 있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면서 시작된 예배는 시종일관 무미건조하였습니다. 그의 집에는 성경이 없었습니다. 가장 쉬운 찬송조차 따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설교시간에 그의 시선은 산만하기만 하였습니다. 모래알을 씹는 기분으로 예배를 마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가 입을 열었습니다. 지금 경제적으로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교회에서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그의 행동이었습니다. 자신은 왕년에 대구역 근처에서 이름을 날리던 향촌파의 행동 대원이었다고 소개를 하면서 친절하게 용 문신을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품속에서 꺼냈습니다. 놀랍게도 시퍼런 칼이었습니다. 만약에 목자인 제가 어린 양 같은 자기를 불쌍히 여겨주지 않으면, 또다시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알고 보니 그 자칭 어린 양은 동네 사람들이 슬슬 피해 다니는 한물간 왕년 주먹이었습니다.

탈출이 급선무였던 저는 반드시 도와드리겠다는 약조를 그럴듯하게 하고, 황급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빠져나왔습니다. 감사하게도 소식을 전해들은 장로님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라 오직 담임목사의 신변보호를 목적으로 그 무시무시한 어린 양을 불쌍히 여겨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기독신문에 부교역자 청빙광고를 할 때마다 이런 조건을 꼭 넣고 싶었습니다. “무술 유단자 우대”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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