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여름, 주일 오후예배 때 일입니다.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와 폭염에 지친 성도들은 하나 둘씩 한계 상황 앞에서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말씀의 은혜를 사모하던 권사님의 눈은 밀려오는 하품을 저지하느라 글썽거렸습니다. 졸음마귀를 이기기 위하여 커피사탕을 늘 의지하던 집사님은 대표기도가 끝났지만 여전히 고개를 푹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목이 뒤로 젖혀지는 바람에 잠에서 깬 찬양대원이 놀란 표정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날따라 유난히 길고 어려운 설교를 겨우 마무리 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맨 뒷줄에 앉아 있던 부교역자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예배시간에 부교역자가 성도들에게 급하게 전달할 말이나 물건이 있으면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최대한 자세를 낮춥니다. 그리고 신속정확하게 미션을 수행한 후 바람과 함께 사라집니다.

그런데 그는 너무나 여유가 있었습니다. 고개를 들고 허리를 곧게 편 자세로 천천히 직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과연 누구에게 볼일이 있어서 설교시간에 걸어 나오는지 궁금해서 저의 시선은 그의 동선을 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맨 앞줄의 장로님 옆을 돌파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침없이 강대상으로 뚜벅뚜벅 올라 왔습니다. 결국 그의 최종목적지는 바로 저였습니다.

그때까지 깨어있던 성도들은 황당한 듯 그의 돌발행동을 관전하고 있었습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있는 저에게 그는 무언가를 건네주었습니다. 헌금봉투였습니다. 우리 교회는 오후예배 때마다 성도들이 드린 헌금을 부교역자가 정리해서 설교 후 기도시간을 이용하여 강대상에 올려놓습니다.

그런데 그는 유두고처럼 설교시간에 깜빡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주변에 있는 성도들이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시간이라고 착각한 모양입니다.

임무를 다 마치고 의기양양하게 자리로 돌아가던 그는 갑자기 감전된 듯 움찔거렸습니다. 자기가 무슨 행동을 했는지 드디어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창피했던지 그는 예배도 마치기 전에 바람과 함께 교역자실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저도 축도 후에 바람과 함께 목양실로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저기서 들리는 성도들의 웃음소리가 졸음 제공자인 저를 향한 놀림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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