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대담] 김경원 서현교회 원로목사

김경원 목사가 지난달 19일 교회에서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소명의식을 회복하고 갱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자신의 목회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김경원 목사가 지난달 19일 교회에서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이 소명의식을 회복하고 갱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자신의 목회 여정을 소개하고 있다.

‘은혜’와 ‘감사’는 크리스천이 일생 붙들고 가야 할 키워드다. 평신도뿐 아니라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다. 한 교회에서 전도사와 부목사로 시무하고 담임목사로 부임해 원로목사로 추대되기까지 42년을 몸담았던 김경원(73·서현교회 원로) 목사에게도 은혜와 감사는 삶의 고백에 빠지지 않는 단어다. 김 목사는 지난달 19일 교회에서 정진영 국민일보 종교국장과 대담을 하고 한국교회를 향해 ‘소명의식 회복과 갱신’을 당부했다.

대담=정진영 종교국장

-삶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서현교회에서의 목회를 2017년 12월 마무리했다. 근황이 궁금하다.

“은퇴 전에 깊이 생각했던 사역이 있다. 군선교다. 군대에서 세례받는 이들이 연 14만명, 많을 때는 17만명까지 된다고 한다. 세례받은 사병 70%가 대대에 배치되는데 거기엔 군목이 없다. 세례는 받았지만, 이후의 신앙 지도가 지속되지 않아 제대할 때는 다시 불신자로 나와 버리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소위 민간인 군선교사가 부대에 들어간다. 그런데 그분들은 계급도 없고 재정지원도 없어 활동이 제약돼 있다. 민간 군선교사들이 사역을 잘하도록 후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해 은퇴 후 이 사역에 주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014년 3월 미래군선교네트워크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이 단체를 통해 80여명의 군선교사들을 후원하고 한 달에 한 번 부대 방문, 소속 군선교사 기도회, 상담 등의 사역을 한다.”

- 목사 하길 잘했고 목사로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목회자의 길을 택한 건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목회가 쉽다는 목사도 있는데 잘못된 말이다. 어렵고 힘들지만, 내겐 목회만큼 재밌는 게 없었다. 예를 들어 부족하고 모자란 설교인데도 이 설교를 듣고 성도들이 회심을 하고 믿음을 강하게 갖게 됐다고 하는데, 세상에 이런 일이 어디 있겠나. 하하. 그런 걸 비롯해 사역하면서 정말 행복한 목사였다. 서현교회란 목장을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셨기 때문이기도 하다. 전임 목사님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졸지에 맡게 됐다. 서른두 살 목회자가 얼마나 실수가 많았겠나. 그런데도 아버지뻘 장로님 어머니뻘 권사님들이 한마디 불평과 비판도 없이 모자람을 채워주셨다. 한경직 목사님이 생전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목사님같이 성공한 목사가 될 수 있습니까.’ 대답은 이렇다. ‘하나님 앞에 서봐야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평가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같은 생각이다.”

- 좌절은 없었나.

“왜 없었겠나. 부임한 지 5년 만에 주일 밤에 본당이 홀라당 다 타버렸다. 그때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기도 하고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조롱하는 것처럼 들렸다. 목회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경찰에서 수사하다 안 되니 목사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추적하려고 무작위로 성도들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 얼마 후 형사들이 ‘여러 군데 찌르면 보통 한두 건은 튀어나오는데 여기는 목사에 대한 불만이나 부정적 인식이 하나도 없다’고 하더라. 오히려 장로님 권사님들이 ‘우리가 장로 권사 노릇 잘 못 했다’며 회개하셨다. 그렇게 충격을 극복했다. 목회자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서현교회의 DNA이고 전통이다.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 몸에 밴 것이다. 바통을 이어받은 이상화 목사에게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이 목사도 목회가 재미있을 거라고 믿는다.”

- 32세부터 서현교회를 담임했는데 사회만큼 목회자나 성도도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그때가 1979년이다. 그 이전 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80년대까지는 그래도 목회자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 ‘소명’이었다. 지금 목회자의 가장 큰 문제는 소명의식 상실이라고 본다. 전엔 ‘부르심에 순종한다’가 목회자의 출발점이었는데 지금은 직업으로 선택된다는데 문제가 있다. 목회자가 결코 좋은 직업이 아니다. 한국교회 70% 이상이 미자립교회다. ‘소명이냐 직업이냐’ 여기에 가장 큰 차이가 있고 그런 영향이 교인에게 미쳤다고 본다.”

- 어떤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보나.

“출발점을 다시 잡아야 한다. 신학대학원의 경우 시험이 영어 논술 성경상식 중심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심층면접을 통해 ‘부르심을 받고 왔는지’ ‘소명 의식은 확실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더하자면 현직 목회자들도 ‘하나님 앞에 바로 선 거룩성’ ‘수준 있는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을 지내면서 갱신에 방점을 뒀는데 교회의 갱신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고 보나.

“고 옥한흠(사랑의교회) 목사님과 함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 내 목회자들을 모아 교회갱신협의회를 시작했다. 교갱협 시작하고 10년쯤 지난 뒤 옥 목사님이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갱신운동하는데 왜 더 나빠지느냐’라고 하시길래 내가 대답했다. ‘우리가 운동 안 했으면 더 나빠졌을 겁니다. 운동해서 요만큼 나빠진 겁니다.’ 한목협은 초교파로 갱신그룹이 모인 곳이다. 갱신 나눔 섬김 일치를 강조했는데 연합도 갱신된 상태에서 되는 거지 잘 안되더라. 갱신에 완성은 없다고 본다. 목회자를 포함해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갱신은 지속돼야 하는 개념이다. 당시 교단 내 선거에 몇십억 드는 것을 규탄하며 운동이 시작됐는데 지금도 달라진 게 거의 없다고 본다. 결국 갱신은 목회자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 지금은 교회를 개혁하자, 스스로 변화하자는 운동이나 움직임이 과거만큼 안 보이는 것 같다.

“정확하게 봤다. 교갱협 안에서부터 그런 힘이 결집돼야 한다. 목회 현장의 필요를 채우는 하나의 단체가 돼선 안 된다. 미안하지만 한목협도 초기보다 많이 약화됐다. 몇 년 전만 해도 주요 일간지와 방송사에서 한목협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터뷰도 요청하고 각종 사안에 코멘트도 요청했는데 그 기능이 거의 죽었다. 다시 일으키기 위해 지형은 목사가 힘쓰고 있다.”

- 성도는 성도답게 사는 게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하셨다.

“예배당 안에 갇힌 성도, 이게 문제다.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야 한다. 한국교회를 향한 수많은 비판이 있다. 성도들이 성도다움을 잃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수님처럼 빛과 소금이 되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사랑을 베풀고 세상을 섬기는 일이다. 그게 세상 속에서 성도다운 삶을 사는 지름길이다.”

김경원 서현교회 원로목사(오른쪽)가 지난달 19일 교회에서 정진영 국민일보 종교국장과 대담을 갖고 한국교회를 향한 당부를 전하고 있다.
김경원 서현교회 원로목사(오른쪽)가 지난달 19일 교회에서 정진영 국민일보 종교국장과 대담을 갖고 한국교회를 향한 당부를 전하고 있다.

- 올해는 교회가 정치에 휘둘릴 소지가 아주 높다. 교회와 정치의 관계, 교회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보는가.

“교회가 교회 이름으로 정치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 성도가 개인적으로 시민이나 국민 자격으로 정치적 의사는 표현할 수 있다. 교회 역사나 정치사에서 교회 이름으로 정치 참여한 적 많이 있다. 부끄러운 역사다. 극단으로 치우친 사례도 있다. 합당하지 않다고 본다.”

- 총선 앞두고 정치인들이 교회 방문하는 사례도 생긴다.

“목회 현장 있을 때도 선거철 다가오면 갑자기 찾아와 헌금하고 한번 인사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요청이 수도 없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인사시킨 적이 없다. 교회가 정치와 선거운동의 현장이 되면 안 된다.”

- 교회가 사회적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데 오히려 촉발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덤에 가면 갈등이 없다는 얘기가 있다. 살아있는 존재는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화평케 하는 자로서 교회는 갈등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교회 자체가 갈등을 안고 있다. 그러니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 정치만 진보·보수가 있는 게 아니라 교회 안에도 진보·보수로 나뉘고 그대로 사회에 표출하다보니 갈등을 더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 오랜 기간 목회하고 은퇴하신 원로이자 선배로서의 소회와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은퇴할 때 목회를 돌아보며 두 가지 단어를 얘기했는데 하나는 ‘은혜’ 다른 하나는 ‘감사’다. 사도 바울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 은혜로 된 것이다’란 고백과 같다. 목회자의 능력이 목양에 필요하긴 하겠지만 결코 그것만으론 안 된다. 그래서 뒤돌아볼수록 감사하다. 후배들에게 ‘너는 왜 목사가 됐느냐’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 대답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목회자의 기본은 된 것이다. 하나님이 왜 나를 목사로 세우셨을까. 거기에 자신 있게 대답하라. 그 대답에 따라 사역이 이뤄진다. 이 대답이 잘 안 이뤄지니까 엉뚱하게 가는 것이다.”

정리=최기영 기자, 사진=송지수 인턴기자 ky710@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125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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