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교단의 한 해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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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교단의 한 해를 돌아본다
  • 류명렬 목사
  • 승인 2019.12.27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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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에게 세상사가 별다른 신선함을 주지 못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서커스를 관람할 일이 있었다. 평소 서커스에 관심이 없고 내용도 뻔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괜한 시간낭비를 할 것이라 내심 생각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고정관념 속에 있는 서커스가 아니었다. 서커스에 스토리를 입히고, 단원들은 분장과 의상으로 배우가 되어 있었고, 첨단 영상과 음향 기술을 동원해서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그 서커스는 단순한 서커스가 아니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작품이었다. 그 공연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교회를 생각하게 하였고, 설교를 비롯한 목회사역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하였다. 그런 의미에서 교단의 한 해를 돌아보고 싶다.

2019년은 3·1운동 100주년이라는 의미를 안고 시작하였다. 삼일절을 기점으로 많은 기념식과 기념예배가 이루어졌다. 행사의 중심은 3·1운동에 대한 역사적 조명이었고, 교회는 그 격랑의 시대에 무엇을 하였으며, 어떤 역사적 의미를 남기었는가를 회고하였다. 그러나 아쉬웠던 것은 역사의 조명과 후광을 입은 오늘 우리의 현실과 행동이다. 아무리 과거 역사가 커다란 아우라(aura)로 작용할지라도, 현재의 온고지신이 없다면 빛바랜 역사가 될 뿐이다.

2019년 우리 사회는 ‘조국 사태’와 같은 분열의 소용돌이 속에서 몸살을 앓았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대립하는 현실에서 교회는 제2의 3·1운동과 같은 선각적 메시지와 행동을 제시했어야 했다. 신자들조차도 진영논리에 종속되어 양분된 모양을 보이는 현실 속에서 교단과 지도자들의 통합적 리더십이 아쉽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하나님나라의 관점에서 현실 문제를 정리하고, 성도들이 선택의 기준을 삼을 수 있는 제안을 마련하는 것도 실천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104회 총회 결의로 태동된 총회교육개발원은 의미가 크다. 인구감소와 반기독교적 사회분위기로 우리의 다음세대는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있다. 수적인 감소와 위축뿐만이 아니라, 실질적 신앙교육이 문제점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교육개발원이 출범한 것이다. 교육개발원의 과제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는 신앙교육 교재와 프로그램 개발, 그리고 이것을 어떻게 전국교회에 의미 있는 움직임으로 확산시킬 것인가이다. 교육개발원에 교단적인 지지와 격려를 보내야 할 것이고, 교육개발원이 ‘속 빈 강정’이나 ‘표지만 바꾼 옛 책’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단 정치의 가장 큰 변화는 총신운영이사회의 폐지 결정이라고 본다. 총신은 교단의 신학과 정체성의 산실임을 부정할 수 없고, 그동안 운영이사회는 학교가 교단의 지도 아래 있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소위 ‘소총회’라고 불리는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학교를 둘러싼 모든 갈등을 덮고 총신이 임시이사체제를 정리하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나아가 교단 미래의 산실로서 기능을 감당할 수 있을지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시점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교단의 정체성이다. 104회 총회에서 WEA 교류문제와 로마가톨릭 이교 지정문제로 격론이 있었다. 분열의 트라우마가 있는 우리에게는 심각한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것만을 분명히 하면 된다. 신학의 순수성과 신학의 편협성을 구분하고, 반대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죄의 낙인을 찍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신학적 문제’과 ‘연합사업의 문제’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다가온다. 우리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하자!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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