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마지막 달을 변함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한해를 결산하는 12월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아왔던 우리에게 생각과 점검을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의미 있는 달이다.

12월이 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불우이웃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추위, 배고픔, 외로움, 노숙자, 고아원, 양로원 등의 단어들을 생각하며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불우 이웃과 소외된 계층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한시적 생활보호 대상자’, ‘차상위 계층’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면서 관심을 표출하기도 한다. 하지만 올해는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 나 자신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그런 모습이 더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솔직히 우리들 자신과 주변을 살펴보면 넉넉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어떤 사람이 스스로 불우이웃이라고 말할 때 이를 공감하여 자기 자신조차도 불우이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도 점점 많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자신이 어려운 상태에서도 정말 자기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뻗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야 말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지금 우리는 12월을 살아가면서 정치, 경제, 사회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총체적인 고민과 갈등들을 해소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뉴스와 인터넷에 수없이 회자 되고 있는 조국 사태, 검찰개혁문제, 촛불집회, 패스트트랙 선거제·공수처법 등 결국 이런 것들은 ‘보수와 진보’, 그리고 ‘내편과 네 편’이라는 ‘두 진영의 싸움’으로 비화되었다. 이런 와중에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이러한 일들에 관련된 기독교 지도자들의 행보들에 대한 다양한 평가들은 분열과 혼란 등으로 점철되었다.

뿐만 아니라 총신대학교의 전직 재단이사들의 행보들, 그리고 최근에 학교 내에 야기된 성희롱과 성차별 문제,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 거세게 불고 있는 동성애와 세습 문제 등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에게 한국교회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계기로 반기독교 세력들은 참된 기독교 신앙을 폄하하고 훼손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기독교의 전부인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교권을 획득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불법들과 가짜 뉴스들, 그리고 기독교인의 삶에서 ‘최고의 권위가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자들의 전통을 무시하고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사례들은 우리를 탄식하게 한다.

한국 경제는 얼마나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가? 경제에는 큰 문제가 없다는 정치적인 언론 보도와는 다르게 우리 경제가 점점 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상황들로 인해 연말이면 자의든, 타의든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불우 이웃들에 대한 사랑의 관심이 점점 식어가고 잊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공이 아니라 섬김’(Not Success But Service)이라는 좌우명을 책상에 붙여 놓고 살아왔고 젊은 나이에 영양실조로 삶을 마감하였던 서서평 선교사(Elisabeth Johanna Shepping, 1880~1934)를 알고 있다. 그녀는 1912년에 조선에 입국하여 1934년까지 22년간 조선인으로 살면서 ‘간호사’란 이름보다 ‘어머니’가 더 잘 어울린 푸른 눈의 선한 이웃으로 살았던 여인이었다. 그녀의 이웃은 한센병자들이었으며, 그녀는 당시 조선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가진 것을 가난한 이들에게 내어주었고 정작 자신은 영양실조로 풍토병에 걸려 삶을 마감하였다. 서서평 선교사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은 남들에게 주고 남은 담요 반쪽, 동전 7전(錢), 강냉이 2홉, 그리고 자신의 시신을 의학용 해부용으로 기증한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섬김의 삶을 후대의 우리들에게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서서평 선교사의 모습처럼 “성공이 아니라 섬김입니다”라는 것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함없이 한국사회의 전 영역에서 잘 표현했더라면 조국사태가 발생되었을까? 검찰개혁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을까? 내 편, 네 편이 나왔을까?

우리는 지난 8월에 서울 한복판에서 생활고로 굶어 죽었던 탈북 엄마와 아들에 대한 소식을 매스컴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런데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이들의 시신이 죽은 후에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발견되였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늘 소외되고 불우한 이웃들은 항상 우리 곁 가까이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물으셨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눅 10:36) 답변을 들은 주님은 명령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지금 우리의 마음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당신의 마음은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출처 : 기독신문(http://www.kid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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